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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1)

당육선공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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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육선공주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趙武 呐呐而爲晉賢臣注+① 檀弓 “趙文子, 其中退然若不勝衣, 其言吶吶然如不出諸口.” 文子卽武也.하고 絳侯 木訥而爲漢元輔注+② 本傳 “絳侯周勃爲人木彊, 高帝以爲可屬大事.” 張釋之傳云 “絳侯言事, 曾不能出口.”하고
公孫弘 上書論事어늘 帝使難弘以十策하신대 不得其一注+③ 本傳 “弘請罷築朔方. 武帝使朱買臣等難弘, 發十策, 弘不得一, 迺遜謝上.”이러니 及爲宰相하여는 卒有能名하고
周昌 進諫其君 病吃不能對詔하여 乃曰 臣 口雖不能言이나 心知其不可注+④ 本傳 “高帝欲廢太子, 昌庭爭之强. 上問其說. 昌爲人吃, 又盛怒, 曰 ‘臣口不能言, 然臣期期知其不可. 陛下欲廢太子, 臣期期不奉詔.’”라하니


3-1-24 조무趙武는 말이 어눌하였으나 나라의 현신賢臣이 되었고,注+① 趙武 呐呐而爲晉賢臣:≪禮記≫ 〈檀弓〉에 이르기를 “趙文子는 그 몸이 유약하여 마치 옷의 무게조차 견디지 못할 듯하였고, 그 말은 어눌하여 마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듯하였다.”라고 하였다. 文子가 곧 趙武다. 강후絳侯는 고지식하고 말재주가 없었으나 나라의 승상丞相이 되었으며,注+② 絳侯 木訥而爲漢元輔:≪史記≫ 〈絳侯周勃列傳〉에 이르기를 “絳侯 周勃의 됨됨이는 곧고 강직하여, 高帝가 큰일을 맡길 만하다고 여겼다.”라고 하였으며, 〈張釋之傳〉에 이르기를 고 하였다.
공손홍公孫弘은 글을 올려 정사政事를 논하였는데, 당시 황제가 열 가지 조목으로 공손홍을 힐난하게 하자 공손홍이 하나도 반박하지 못했습니다만注+③ 公孫弘……不得其一:≪漢書≫ 〈公孫弘傳〉에 “公孫弘이 朔方郡에 성 쌓는 것을 그만두자고 청하였다. 그러자 武帝가 朱買臣 등에게 공손홍을 힐난토록 하자 열 가지 이점을 말하였다. 공손홍은 하나도 반박하지 못하게 되자 이에 라고 하였다. 재상이 되어서는 마침내 현능하다는 명성을 얻었으며,
주창周昌은 임금에게 나아가 간언할 때 말 더듬는 병을 앓고 있어 임금에게 제대로 답하지 못해 겨우 말하기를 “이 입으로는 비록 말할 수 없으나 마음으로는 그것이 불가함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注+④ 周昌……心知其不可:≪漢書≫ 〈張周趙任申屠傳〉에 “高帝가 태자를 폐위시키려 하자 周昌이 조정에서 간쟁하기를 강경하게 하였다. 황제가 그의 의견을 물었다. 주창은 말을 더듬는 데다 또 몹시 성이 났으므로 말하기를 ‘신은 잘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은 불가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태자를 폐하려고 하십니다만 신은 期期 그 명을 받들지 못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絳侯는……못했다 : 木强敦厚하여 문학을 좋아하지 않았던 주발은 제생들을 불러 일을 말할 때에도 “빨리 설명해다오.”라고 하며 질책하였다는 고사가 있다.(≪漢書≫ 〈周勃傳〉)
역주2 공손홍이……사죄하였다 : 공손홍은 朔方郡에 성을 쌓는 일에 대해, 중국을 피폐하게 하여 쓸모없는 땅을 받든다고 반대하였다. 이에 武帝가 朱買臣 등을 시켜 朔方郡을 설치하는 이점을 가지고 공손홍을 힐난하게 하였다. 주매신 등이 열 가지 이점을 제시하였으나, 공손홍은 하나도 반박하지 못했다.(≪漢書≫ 〈公孫弘傳〉)
역주3 期期 : 말을 더듬을 때 내는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다.

당육선공주의(1)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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