裴延齡
이 僻戾而好動
하고 躁妄而多言
하여 遂非不悛
하고 堅僞無恥
注+① 本傳 “延齡資苛刻, 又劫于利, 專剝下附上, 肆騁譎怪. 其進對, 皆他人莫敢言, 而延齡言之不疑, 亦人之所未聞者.”하니 豈獨有識深鄙
리오 兼爲流俗所嗤
일새
頃列班行에 已塵清貫하니 更居要重하면 必斁大猷라
是將取笑四方하고 貽殃兆庶하여 尸祿之責이 固宜及於微臣하며 知人之明이 亦恐傷於聖鑑하노니
伏願重循前議하고 俯察愚誠하사 更於四人之中에 選擇하여 取其尤者하시면 庶諧僉屬하여 不紊朝經하리이다
延齡
은 妄誕小人
이라 任之
면 交駭物聽
하리니 臣雖熟知不可
나 猶慮所見未周
하노니 趙憬
의 眼疾漸瘳
注+② 本傳 “憬, 隴西人. 元中, 進中書侍郞同平章事, 與陸贄同輔政.”하여 後日
에 即合假滿
이니 待其朝謁
하여 乞更參詳
하사
8-2-3 배연령은 편벽하고 포악하면서 움직이기를 좋아하고 조급하고 경망한 말이 많으며, 그릇된 일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고 거짓을 고집하면서 부끄러움을 모르니,
注+① 裴延齡……堅僞無恥:≪舊唐書≫ 〈裴延齡傳〉에 “裴延齡은 성품이 가혹하고 각박한데다가 또 이익을 강탈하여, 오로지 아랫사람에게 빼앗고 윗사람에 아부하여 괴이한 짓을 마음대로 했다. 그가 덕종에 나아가 대면한 말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감히 말하지 못한 것이었고, 배연령이 주저 없이 말한 것은 또한 다른 사람들이 미처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고 하였다. 어찌 견식만 아주 비루할 뿐이겠습니까. 세속의 비웃음까지도 받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최근에 조정朝廷의 반열에 있으면서 청직淸職을 이미 먼지로 더럽혔는데, 다시 요직에 있게 하면 반드시 국가의 큰 계책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이는 장차 사방의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받고, 백성들에게 재앙을 끼쳐서, 자리를 차지하고 녹만 먹는다는 비난이 진실로 미천한 신에게 미치게 될 것이며,
이 혹 성상의 혜안에서 손상을 입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삼가 바라건대 앞의 의론을 다시 따르시고 신의 어리석은 정성을 굽어 살피시어, 다시 네 사람 가운데서 선택하여 가장 뛰어난 자를 취하십시오. 그렇게 하신다면 중망衆望에 부응하여 조정의 법도가 문란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배연령은
망탄妄誕한
소인小人이라서 그에게 맡기면 듣는 사람들이 서로 해괴하게 여길 것입니다. 신은 비록 그 불가함을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소견이
주밀周密하지 못할까 염려하오니,
후일에 곧 휴가가 만료될 것이니, 그가
조알朝謁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다시 상세히 살피시기를 청합니다.
그리하여 사악한 자를 제거하길 의심하지 않으신다면 천하에 매우 다행일 것입니다. 삼가 아룁니다.
【평설評說】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9년 계해(1503) 2월 13일(경술) 기록을 보면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강하다가 ‘배연령이 함양咸陽의 갈대밭 몇 묘畝를 방죽 수백 경頃이라고 속여서 말했는데, 덕종은 그 속임수를 알고도 죄를 과科하지 않았다.’는 대목에 이르러, 연산군이 신하들에게 “알고도 죄를 과하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인가?” 물은 기사가 있다. 당시 영경연사領經筵事 이극균李克均은 “옛사람은 이르기를 ‘말이 네 마음에 거슬림이 있거든 그 말을 도道에 꼭 비추어보고, 말이 네 뜻에 순함이 있거든 그 말이 도道 아닌가 꼭 비추어보라.’고 하였는데, 덕종이 배연령의 속임을 알고도 죄를 가하지 못한 것은 이 역시 평소에 미혹됨이 깊었기 때문이니, 이와 같은 등류는 군주가 진실로 마땅히 날마다 유의하고 자세히 살펴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또한 육지陸贄가 ‘부세賦稅를 고르게 하기를 논하며 부세의 감수減數의 다소多少로 고과考課를 삼자.’고 한 대목에 이르러, 연산군은 “육지가 상주한 일이 현 시대의 폐단과 합한 것인가?”하니, 특진관特進官 박숭질朴崇質이 “호조戶曹가 인납引納한 수량이 많으니 명목은 비록 다르지만 실상은 부세가 가중된 것입니다. 호조에서도 또한 마지못해서 이와 같이 하는 것이니, 국가에서는 모름지기 이런 폐단을 염려하여, 재물의 용도를 힘써 절약한 뒤에라야 백성들이 그 혜택을 입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극균은 “육지의 말은 지극한 의논이라고 할 만합니다. 용도를 절약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일이 정치하는 선무先務인데, 덕종이 우매한 군주여서 그 말을 듣지 않고 도리어 죄를 과했으니, 애석한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정조正祖는 육지가 배연령을 배격한 사실을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일득록日得錄〉에서 정조는 “배연령이 국가에 해를 끼치는 것에 대해 논한 글[論裴延齡姦蠹書]’은 미워하기를 너무 심하게 한 경우라고 할 만한데, 주자朱子가 당중우唐仲友를 탄핵했던 글도 그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다.” 하였다.(≪홍재전서弘齋全書≫ 제165권 〈일득록日得錄〉 5 문학文學 5) 또 정조는 “육선공이 배연령의 죄를 논한 것에 대해서 미워하기를 너무 심하게 한 경우가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또한 강직한 기운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라고 하였다.(≪홍재전서≫ 제165권 〈일득록〉 5 문학 5) 육지는 결국 덕종에게 배연령을 멀리할 것을 청했으나, 거꾸로 덕종은 육지를 멀리하고 배연령을 총애했다. 이에 대해서는 진덕수眞德秀의 ≪대학연의大學衍義≫에도 자세히 나와 있어, 조선 초부터 경연經筵에서 이 문제가 다루어졌다. 즉, 이현일李玄逸(1627~1704)의 ≪갈암집葛庵集≫ 제7권에 실린 〈경연강의經筵講義〉의 숙종 19년(1693년, 계유) 11월 12일(신해) 기록에 보면, ≪대학연의≫의 해당 내용과 관련하여 이현일은 다음과 같이 진언했다.
덕종이 초년에는 육지를 애지중지하여 말하면 다 들어주었기에 육지는 세상에 드물게 자신을 알아주는 임금을 만났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흥원興元 이래로, 그가 간절하게 주달한 것이 모두가 임금을 높이고 백성들을 비호하는 계책이었으니 덕종이 그의 충성스럽고 진실됨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도 끝내 그를 멀리 쫓아내기에 이르렀으며, 배연령은 간사하고 속임수를 쓰며 비방과 사특함을 마구 부렸으니 덕종이 그의 허탄하고 망녕됨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도 시종일관 그를 친애하고 후대厚待하였습니다. 이는 대개 군자의 마음은 오직 자기 임금이 과실이 있을까 염려하여 막고 재제裁制하여 의義를 따르고 욕欲을 따르지 않는 반면, 소인의 품성은 봉영逢迎하고 종용하여 인주人主의 욕구를 맞추지 못할까 염려해서이니, 이것이 친소親疎와 애증愛憎이 다르게 되는 까닭입니다. 성상께서는 더욱 살피소서.
숙종은 “이는 이윤伊尹이 말한 ‘도에 맞는 것인지 찾아보고 도에 어긋나는 것이나 아닌지 찾아보라.’라는 뜻이다. 내가 앞으로 유념하겠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