尙恐議者曰 時異事殊라할새 臣請復爲陛下하여 粗擧近效之尤章章者하여 以辨焉하리이다
太宗文皇帝가 以天縱之才로 有神器之重하사 武定禍亂하고 文致太平하여 威行如雷霆하고 明照侔日月하여
英略施於百勝
하고 聖功被於九歌
하시니 固非庶品之所度量
하며 常情之所
이로되
然猶兢兢畏愼하사 懼失人心하사 每戒臣下獻規하여 恒以危亡爲慮하시고 夙興聽理하사 日旰忘勞하시니
公卿迭趨하여 庭奏庶務어든 評議得失하사 與衆共之하시니 下無滯情하고 上無私斷호되
退朝之暇에 宴接侍臣하사 諮訪謀猷하시며 詢求過闕하사 或論往古成敗하시고 或問人間事情하사
每言及暗主亂朝 則省懼自戒하시고 言及賢君理代 則企竦思齊하시며
言及稼穡艱難 則上下相匡하여 務遵勤儉하고 言及閭閻疾苦 則君臣同慮하여 議息征徭하여 懋德懲違하여 觸類滋長호되
2-3-8 그럼에도 의논하는 자는 “시절이 다르고 일도 다르다.”라고 말할지 모릅니다. 신은 청컨대 다시 폐하를 위하여 근래의 효과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 것을 얼추 열거하여 변론하고자 합니다.
태종문황제太宗文皇帝(이세민李世民)는 천부적 재주로 천자의 지위에 있으시면서 무武로써 화란禍亂을 평정하고 문文으로써 태평太平을 가져와, 위엄은 번개와 벼락과도 같았고, 명찰함은 해와 달과 짝하셨습니다.
성스러운 공덕은
에 노래 불렸습니다. 정말로 일반 사람이 헤아려 짐작할 수 있는 바가 아니고,
상정常情이 깊이 살필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태종께서는 매우 두려워하고 신중하시어 인심人心을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염려하였습니다. 이에 매번 신하들에게 잘못을 바로잡는 말을 올릴 것을 명하여 항상 위망危亡을 염려하셨으며,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정사를 행하시고 날이 늦도록 수고로움을 잊으셨습니다.
그리하여 공경公卿이 교대로 종종걸음으로 나와서 조정에서 서무를 상주하면 득실을 의논하여 여러 신하들과 함께 다스렸습니다. 이에 아래에는 실정이 막힌 것이 없었고 위에는 사사로운 논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조정에서 물러나 쉬시는 여가에 시종신을 연회에서 만나서 모책을 자문하고 과오를 물으셨습니다. 혹은 옛날의 성패를 논하기도 하고 혹은 민간의 사정을 묻기도 하셨습니다.
신하들이 매번 사리에 어두운 군주와 어지러운 조정에 대해 언급할 때면 반성하고 두려워하여 스스로를 경계하셨습니다. 현명한 군주와 잘 다스려진 시대에 대해 언급할 때면 현군賢君과 같아지길 간절히 바라셨습니다.
농사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언급하면, 위와 아래가 서로 바로잡고 절약을 힘써 준수하셨습니다. 여염의 괴로운 상황에 대해 언급하면, 군주와 신하가 함께 염려하고 조세와 요역을 그칠 것을 의논하셨습니다.
덕德을 크게 하고 과오를 바로잡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