議者가 若曰 河朔群盜가 尙未殲夷하니 儻又減兵하면 必更生患이라하나니 此蓋好異不思之說耳라
臣請有以詰之호리니 前歲伐叛之初에 唯馬燧抱眞李芃三帥而已로되 以攻必剋하고 以戰必彊하니 是則力非不足이 明矣라
洎遲留不進
하여 乃請益師
어늘 於是
에 選神策銳卒
하여 以繼之
하여 而李晟
이 往矣
注+① 本傳云 “建中二年, 魏博․田悅反, 以晟爲神策先鋒, 合兵攻悅, 悅大敗.”요
猶曰未足
이라하여 復請益師
어늘 於是
에 徵朔方全軍
하여 以赴之
하여 而懷光
이 往矣
注+② 本傳云 “時馬燧․李抱眞討田悅, 未克, 詔李懷光以朔方兵萬五千幷力討悅.”니
幾遣加半之戍호되 竟無分寸之功하니 是則師不在衆이 又明矣라
1-1-19 논하는 자가 만약에 ‘하삭河朔의 도적 떼가 아직 섬멸되지 않았으니, 만일 병력을 줄이면 반드시 재차 환란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괴이한 것을 좋아하여 깊이 생각해보지 않는 데에서 나온 주장에 불과합니다.
신이 청컨대 그 점에 대해 반박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년에 반란을 토벌하던 초기에는 마수馬燧, 이포진李抱眞, 이봉李芃 세 장수만 있었지만 공격하면 반드시 이겼고 교전을 벌이면 반드시 힘껏 싸웠으니, 이는 곧 힘이 부족한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머뭇거리고 나아가지 않고서 이에 군사를 보태어 달라고 요청함에 따라
신책군神策軍의 정병을 뽑아 지원하게 하여
이성李晟이 갔습니다.
注+① 選神策銳卒 以繼之而李晟往矣:≪新唐書≫ 〈李晟傳〉에 “建中 2년(781)에 魏博의 田悅이 모반하자 李晟을 神策軍의 先鋒으로 삼아서 〈馬燧, 李抱眞의〉 병력과 합쳐 전열을 공격하니, 전열이 대패하였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여전히 부족하다고 하며 다시 군사를 보태어 달라고 요청하기에
삭방군朔方軍의
전군全軍을 징발해서 나아가게 하여
이회광李懷光이 갔습니다.
注+② 徵朔方全軍 以赴之而懷光往矣:≪新唐書≫ 〈李懷光傳〉에 “당시 馬燧와 李抱眞이 田悅을 토벌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자, 李懷光에게 조서를 내려 朔方軍의 병력 1만 5천으로 힘을 합쳐 전열을 토벌케 하였다.”라고 하였다.
여러 번 절반이나 되는 병력을 보내었지만 결국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하였으니, 이는 곧 군사는 숫자가 많은 것에 달려 있지 않음이 또한 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