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설評說】
육지陸贄는 이 〈
논좌강관준사합량이사장論左降官準赦合量移事狀〉을 올린 뒤에 2편의 〈
양이관장量移官狀〉을 더 올렸다. 이 3편에 대해 조선본은 각각 제목을 별도로 두었으나 ≪
전당문全唐文≫에서는 둘째 편 이하를 〈
이주양이관장二奏量移官狀〉와 〈
삼주양이관장三奏量移官狀〉로 하였다. 이 세 편은 모두 기조가 같아서, 형벌보다는
덕령德令을 먼저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조극선趙克善(1595~1658)은 하사받은
세찬歲饌과
시탄柴炭을 사양하여 〈
진시사陳時事 겸사세찬소兼辭歲饌疏〉(≪
야곡집冶谷集≫ 권2)를 올리면서, 사면 대상을 확대할 것, 삭출된 신하들을 서용할 것, 백성의 부담을 경감할 것 등을 청하였다. 그런데 조극선은 ‘사면 대상을 확대하고 삭출된 관리들을 서용할 것’을 청하는 내용에서, 육지의 이
주장奏狀 3편을 입론의 근거로 삼아, 원래의 글을 발췌하여 직접 인용하였다.
지난날
덕종德宗이
교사郊祀에서
을 할 때,
좌강관左降官의
양이量移에 인색하였습니다. 이때 재상
육지陸贄는 세 번
상주上奏하여 힘껏 간청하였습니다. 그 상주문에, “폄직하여 밖으로 내쫓아보낸 무리가 모두 멀고 궁벽한 곳에 있어서 혹은 늘그막에 임박하여 자신을 돌아보며 돌아갈 것을 생각하며, 혹은
장독瘴毒에 고초를 겪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옮겨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미 사면하는 은택에 관계되어 모두 은택을 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위엄을 가하면 징계가 되고 용서하면 이에 감화하여, 징계해서 잘 다스리고 감화시켜 화합을 가져옵니다. 잘 다스리면 백성들이 존경하게 되고 화합을 가져오면 백성들이 사랑하게 됩니다. 백성들의 부모가 되시는 것은 그 둘을 아울러 행하는데 달려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또한 폄출된 사례 중에는 실상이 각각 달라, 범법에 가볍고 무거운 차이가 있고 책망에 옅고 깊은 차등이 있습니다.”라고 하고, “왕이 된 분의 도리는 사람을 대하길 정성으로 하여서, 책망하여 분노하되 시기하거나 의심함이 있어서는 안 되고, 징계하고 저지하되 원망하거나 기피함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배척하여 멀리 보냄으로서
각수恪守하지 않음을 경계하고,
견별甄別하여 용서함으로써 스스로 쇄신할 것을 권면해야 합니다. 경계하지 않으면 차츰차츰 엄한 형벌을 받게 하고, 권면하지 않으면 다시
출삭黜削을 더합니다.”라고 하며, “만일 폄출한 것을 가지고, 곧바로
간흉奸凶이
방한防閑의 속에 늘 있고
빈기擯棄의 예를 영구히 따른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지난 과실을 후회하는 자가 스스로를 보완할 길이 없고, 재주를 온축한 자가 끝내 뻗어나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라 하고, “일반적인 왕이 흉금을 열어 신하의 잘못을 품어주는
대체大體가 아니며, 성스런 철인이 인민을 유도하여
선善으로 옮아가게 만드는 좋은 계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정말로
지론至論입니다.
조극선은 이 글에서 육지의 〈논좌강관준사합량이사장〉에서 첫 구절을 따오고, 다음으로 〈양이관장〉 제2에서 글을 따왔으며, 마지막으로 〈양이관장〉 제3에서 상당히 긴 부분을 초록하였다. 육지의
주장奏狀이 조선시대의
상주문上奏文에 깊은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주는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