臣이 聞禍或生福하고 福亦生禍라 喪者 得之理요 得者 喪之端이니
故晉勝鄢陵
에 范燮祈死
注+① 左成十六年 “晉․楚遇於鄢陵, 范文子不欲戰, 郤至不從, 楚師敗績. 曰 ‘君驕侈而克敵, 是天益其疾也. 愛我者唯祝我速死, 無及於難, 范氏之福也.’ 七年六月, 土燮卒.” 不及一年, 三郤誅, 厲公弑, 胥童死, 果如文子之言.하고 吳克勁越
에 夫差啟殃
注+② 史吳世家 “吳王夫差旣破越, 北會諸侯於黃池. 六月, 越王句踐伐吳, 虜吳太子友. 其後累爲越所敗, 夫差遂自剄死.하니
居福而慮禍면 則其福可保요 見得而忘喪이면 則其喪必臻하리니
臣
은 竊懼諂諛希旨之徒
와 險躁生事之輩
가 幸兇醜覆亡之會
하고 揣英主削平之心
하여 必將競效甘言
하여 誘開利欲
하여 謂王師
가 所向莫敵
이라하며 謂餘孽
을 指顧可平
이라하여 請迴蒲坂之戈
하여 復起淮沂之役
注+③ 謂欲以平李懷光之師, 卽爲討李希烈之計.하리니
斯議一啟면 必有亂階일새 故微臣은 姑以生禍爲憂하고 而未敢以獲福爲賀也하노이다
6-9-3 신臣은 듣건대, 화禍는 혹 복福을 낳고 복福은 또한 화禍를 낳는다고 하니, 상실함은 획득하는 이치이고 획득함은 상실하는 단서입니다.
그러므로
진晉나라가
언릉鄢陵에서 승리하자
은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으며,
注+① 晉勝鄢陵 范燮祈死:≪春秋左氏傳≫ 成公 16년에 “晉나라와 楚나라가 鄢陵에서 合戰을 하게 되었으나, 范文子는 전투를 하려 하지 않았다. 郤至는 범문자의 뜻을 따르지 않았는데, 楚나라 군사가 패배하였다. 범문자는 祝宗에게 자기가 죽도록 기도하여 달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군주가 교만하고 사치스러운데 적을 이겼으니, 이것은 하늘이 그 질병을 더욱 보태주는 것이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부디 나를 위해 축원하여 나로 하여금 속히 죽도록 만들어, 난에 미치지 않도록 해주시오. 그것이 범씨의 복이오.’ 성공 17년 6월, 范燮이 卒하였다.” 하였다. 한 해가 못 되어 이 주살되고, 胥童이 죽었으니, 과연 범문자의 말과 같이 되었다. 오吳나라가 강한
월越나라를 이긴 것이
부차夫差에게는 재앙을 연 것이었습니다.
注+② 吳克勁越 夫差啟殃:≪史記≫ 〈吳世家〉에 “吳王 夫差는 越나라를 격파한 후, 북쪽으로 黃池에서 제후들을 회합하게 하였다. 6월에 越王 句踐이 吳나라를 정벌하여 오나라 태자 友를 포로로 잡았다. 그 후 오나라는 거듭하여 월나라에게 패배하여, 부차는 마침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이는 복福을 오래도록 요행으로 바랄 수 없으며, 획득함을 항상 분수에 지나치게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福에 거하면서 앙화를 염려하면 그 복福은 보전할 수가 있지만, 획득함을 보고 상실할 것을 잊어버린다면 그 상실함이 반드시 이를 것입니다.
신臣은, 아첨하고 영합하는 무리와 경박하고 성급하게 일 만드는 무리들이 흉수들이 나라를
복망覆亡시키는 때를 요행으로 여기고
영주英主께서 역적을 평정하려는 마음을 헤아려서, 반드시 장차
감언甘言을 다투어 올리고
이욕利欲을 계도하면서 ‘
왕사王師가 향하는 곳마다 대적할 자가 없다.’고 하고 ‘남은 역적들은 잠깐이면 평정할 수 있다.’고 하여
으로 향한 창끝을 돌려서 다시
회수淮水와
기수沂水에서 전쟁을 일으킬 것을
注+③ 請迴蒲坂之戈 復起淮沂之役:李懷光을 평정한 군사를 가지고 즉시 李希烈을 토벌할 계책으로 삼으려 함을 이른 것이다. 청할까 걱정됩니다.
의론이 한번 계달되면 반드시 난리의 계제가 있을 것이므로 미천한 신臣은 우선 앙화를 낳을 것을 우려하여 감히 〈이회광李懷光을 평정하여〉 복을 얻은 것을 경하할 수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