右賊泚稽誅하여 保聚宮苑하나 勢窮援絶하여 引日偸生하니
懷光이 総仗順之師하고 乘制勝之氣하여 鼓行芟翦하면 易若摧枯어늘
而乃寇奔不追
하며 師老不用
하여 諸帥
가 每欲進取
에 懷光
이 輒沮其謀
注+① 本傳云 “懷光爲朔方節度使. 帝狩奉天, 懷光率所部奔命, 自蒲津絶河, 敗朱泚軍於醴泉. 將扺奉天, 又敗之於 泚解圍去, 加中書令. 懷光爲人疏而愎, 誦言欲見上, 請誅宰相盧杞等. 杞說帝 ‘令懷光乘勝滅賊, 未可入朝.’ 帝從之, 詔懷光進討. 懷光自以徑千里赴難, 爲奸臣所隔不得朝, 恚悵, 去屯咸陽, 堅壁八旬不出戰, 屢詔使進軍, 以伺釁爲解, 陰連朱泚.”하니
據玆事情컨대 殊不可解어늘 陛下가 意在全護하사 委曲聽從하시나 觀其所爲컨대 亦未知感하니
若不別務規略하여 漸相制持하고 唯以姑息求安하면 終恐變故難測하노니
5. 봉천奉天에서 이성李晟이 관할하는 병마兵馬에 대해 논하는 주장奏狀
4-5-1 역적 주자朱泚가 잠시 주벌되는 것을 모면하여 장안의 궁원宮苑에 무리를 모아 지키고 있으나, 형세가 궁하고 원조가 끊어져서, 날짜를 질질 끌며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고 있습니다.
은
조정朝廷의 명을 따르는 군사를 총괄하고 승세를 타서 북을 울리며 행군하여 적을 제거하면, 마른 나무를 꺾듯이 쉬울 터인데,
역적이 도망하는데도 추격하지 않고 군사가 피로하다고 쓰지 않아서, 모든
장수將帥들이 나아가려고 할 때마다 이회광이 번번이 그 모책을 저지하였습니다.
注+① 懷光輒沮其謀:≪新唐書≫ 〈李懷光傳〉에 “李懷光은 朔方節度使가 되었다. 德宗이 奉天에 파천하자, 이회광은 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왕명을 받고 달려가서, 蒲津에서 황하를 건너 朱泚의 군사를 醴泉에서 패배시켰다. 이회광이 봉천에 도착할 적에 다시 주자의 군사를 魯店에서 패배시켜, 주자가 봉천의 포위를 풀고 떠나갔으므로, 이회광에게 中書令을 더하였다. 이회광은 사람됨이 거칠고 괴팍하였다. 입버릇처럼 황제를 알현하여 재상 盧杞 등을 주살하라고 청하겠다고 하였는데, 노기는 황제를 설득하기를 ‘이회광에게 명하여 승기를 타서 적을 섬멸하게 하고 입조를 허가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황제가 그 말을 따라서, 이회광에게 조칙을 내려 앞으로 나아가 토벌을 하라고 명하였다. 이회광은 스스로 생각하길, 천 리를 곧장 달려 난리를 평정하러 왔거늘 간신에게 막혀서 조회를 할 수 없다고 여겨, 상당히 분해하고 서글퍼하여서, 떠나가서 咸陽에 주둔하고는, 성벽을 굳게 지켜 80일간 나가 전투하지를 않았다. 거듭 조칙을 내려 군사를 진격하도록 하였는데, 이때마다 적의 틈을 엿보고 있다고 변명하고서 몰래 주자와 연합하였다.”고 하였다.
이러한 사정에 근거하여 보면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폐하께서는 군대를 보전하는 데 뜻을 두시어, 자상하게 들어주어 따르시지만, 그가 하는 짓을 보건대 역시 감사할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만일 별도로 계책을 강구하여 점차 그를 견제하지 않고 오로지 고식姑息하여 편안함을 구하면, 끝내 어떤 변고가 일어날지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이는 정말로
사기事機가 위태롭고 급박한 때이어서, 정말로 심상하고 용이한 일로 넘겨서는 안 됩니다.
李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