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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1)

당육선공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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臣愚 不任懇悃之至하여 輒以私懷忖度하여 謹冒昧以聞하노이다 謹奏


6-1-10 어리석은 신하는 지극히 간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곧바로 사사로운 마음에서 헤아려서 삼가 우매함을 무릅쓰고 아룁니다. 삼가 아룁니다.
평설評說】 처음에 토번吐蕃의 재상 상결찬尙結贊이성李晟마수馬燧혼감渾瑊을 제거하면 나라를 도모할 수 있다고 여겼다. 상결찬은 나라 조정과 이성의 사이를 이간질하고 마수를 이용하여 당나라에 화친을 요구하였으며, 혼감을 사로잡아 마수를 속여서 그들로 하여금 모두 죄를 얻게 하고는 군대를 풀어 곧바로 장안長安을 침범하고자 계획하였다. 하지만 혼감을 놓치고는 이 계획을 중지한 바 있다. 상결찬은 혼감과 함께 장안長安을 취하자고 거듭 약속하고는 기일이 되어도 오지 않았다. 그리고 군사들이 전염병에 걸렸다고 하면서 군사를 이끌고 돌아갔다. 덕종은 이성과 혼감의 병사가 적으므로 토번에 의지하여 경성을 수복하려고 하였던 것이었으므로 대단히 근심하여 육지에게 이 문제를 물었다. 육지는 상결찬이 몰래 간악한 계책을 비축하여 조정이 파월播越을 하게 되고 주자朱泚가 위축될 때에 근교近郊를 범하고 만약 도읍이 빈 틈새를 타서 무위武威를 과시하여 겉으로는 국가를 받들면서 안으로는 흉역의 무리와 통하여 전쟁을 방관하다가 관군의 세력이 약하게 되는 틈을 노린다면, 결국 관군이 반군을 정벌하려다가 군세가 고갈하여 기전畿甸을 빼앗기게 될지 모른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가상을 근거로, 상결찬은 탐욕스럽고 교활하여 해만 있지 이익이 없으므로 그가 인퇴하여 떠난 것은 실로 ‘사직社稷하복遐福’이라고까지 말하였다. 그리고 다음 계책으로는, 이성李晟혼감渾瑊대휴안戴休顔한유괴韓遊瓌를 거느리고 서북 방면의 틈을 타고, 이성李晟낙원광駱元光상가고尙可孤를 인솔하여 그 동남 방면을 공격하여, 같은 병이 있는 사람끼리 서로 도움을 주듯이 힘을 합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육지는 외부 이민족의 힘을 빌릴 것이 아니라. 관군을 위무慰撫하고 접대接待하여 충용忠勇의 마음을 분기奮起시키고 면려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 글에 대해 종성種惺은 다음과 같이 논평했다. “춘추시대 나라가 일찍이 백적白狄과 더불어 나라를 정벌하자 나라도 역시 백적과 더불어 나라를 쳤으므로 ≪춘추春秋≫는 그들을 기롱하여, ‘시랑豺狼을 끌어들여 봄 동산에 집어넣었다.’라고 하였다. 안녹산과 사사명이 난리를 시작하여 하삭河朔윤망淪亡하자 바깥으로 회흘回紇을 불러다가 함께 대난大難을 제거하였다. 하지만 그 물릴 줄 모르는 요구와 패려궂은 성격은 사람의 뼈를 양식으로 삼고 사람의 피를 漿으로 삼아, 일반 백성들이 그들에게 씹어 먹히는 것이 참혹하였다. 소릉少陵 두보杜甫는 ‘화문花門(회흘回紇)이 반드시 남아야 한다면 들판은 도리어 쓸쓸하리라.[花門旣須留 原野轉蕭瑟]”라고 읊었다.



당육선공주의(1)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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