蠢玆昆夷
가 猶肆毒蠚
注+① 漢田儋傳云 “蝮蠚手則斬手, 蠚足則斬足.” 註云 “蠚, 螫也, 火各切.”하여 擧國來寇
하여 志呑岷梁
러니 貪冒旣深
에 覆亡幾盡
이라 遂求通好
하여 少息交侵
하나
蓋緣馬喪兵疲하여 務以計謀相緩이요 固非畏威懷德하여 必欲守信結和라
所以歷年優柔
호되 竟未堅定要約
注+② 吐蕃每入寇, 或擁兵十萬, 後合南詔共二十萬, 攻茂州, 屢爲郭子儀․崔寧․常謙光等所摧敗, 故虜使數至, 輒留不遣. 德宗卽位, 兩遣太常少卿韋歸其俘, 吐蕃卽遣使者隨(論)[倫]入朝. 明年, 殿中少監崔漢衡往使, 遂議和好. 德宗命宰相․尙書與虜使盟長安, 而淸水之約, 疆埸不定, 復令崔漢衡往決於贊普.하니
息兵稍久
에 育馬漸蕃
하면 必假小事忿爭
하여 因復大肆侵掠
이요 張光晟
이 又於振武
에 誘殺群胡
注+③ “建中元年八月甲午, 振武留後張光晟殺回紇使者等九百餘人. 先是代宗之世, 九姓胡常冒回紇之名, 雜居京師, 殖貨縱暴, 與回紇共爲公私之患. 德宗卽位, 命(董突)[突董]盡帥其徒歸國. 至振武, 留數月, 厚求資給. 光晟欲誅之, 未敢發. 九姓胡聞其種族爲新可汗所誅, 乃密獻策於光晟, 請殺回紇. 光晟凡三奏, 德宗不許. 乃使副將過其館門, 故不爲禮, (董突)[突董]怒, 執而鞭之數十. 光晟勒兵掩擊, 竝群胡盡殺之, 聚爲京觀. 回紇請得專殺者以復讐, 德宗貶光晟爲睦王傅, 以慰其意.”라
自爾已來로 絶無虜使하니 其爲嫌怨을 足可明徵이라
1-2-10 폐하께서 보위를 이어받으시어 오랑캐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였습니다.
그러함에도 준동하던
곤이昆夷(
토번吐蕃)가 오히려 독을 쏘듯 해악을 부려
注+① 蠚:≪漢書≫ 〈田儋傳〉에 이르기를 “살무사가 손을 물면 손을 잘라야 하고 발을 물면 발을 잘라야 한다.” 하였는데 註에 이르기를 “蠚은 독을 쏜다는 뜻이니, 火와 各의 반절이다.”라고 하였다. 온 나라 사람이 침입하여
민岷과
양梁을 집어삼키고자 하였다가 탐욕이 이미 심해져서 거의 패망하게 되자 마침내 화친을 맺기를 요구하여 침략이 잠시 잠잠해졌습니다.
그러나 대개 말은 잃고 병사들은 지친 것에 연유하여 위급한 상황을 늦출 계책에 힘썼던 것이지 진실로 위험을 두려워하고 은덕을 그리워하여 반드시 신의를 지켜서 화친을 맺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해 동안 관대하게 대해주었음에도 끝내 약속을 굳건히 지키지 않았습니다.
注+② 竟未堅定要約:吐蕃이 매번 침입해 들어왔다. 어떤 때는 군사 십만을 거느리고 온 뒤 의 군사까지 합친 이십만의 병력으로 茂州를 공격하기도 하였는데, 누차 郭子儀, 崔寧, 常謙光 등에게 패배를 당하였다. 그러므로 오랑캐의 사신이 여러 차례 이르렀지만 번번이 잡아둔 채 보내지 않았다. 德宗이 즉위하자 太常少卿 韋倫을 두 차례 파견하여 사로잡았던 사신들을 돌려보내자 토번이 곧장 사신을 파견하여 위륜을 따라 입조하였다. 이듬해에 殿中少監 崔漢衡이 사신으로 가서 마침내 화친을 논의하였다. 덕종이 재상과 상서에게 명하여 오랑캐의 사신과 장안에서 맹약을 하게 하였으나 이전 淸水에서 맹약하였던 강역이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다시 최한형에게 명하여 와 결판하게 하였다.
싸움을 멈춘 지 조금 지나고 기르는 말들이 점차 불어나기만 하면 반드시 작은 일을 빌미삼아 분쟁을 일으키고 이를 기회로 다시금 함부로 침략을 하였으니,
장광성張光晟이 또한
진무振武에서 오랑캐들을 유인하여 죽인 적도 있습니다.
注+③ 張光晟……誘殺群胡:≪資治通鑑≫에 “建中 원년(780) 8월 갑오일에 振武留後 張光晟이 回紇의 사신 突董 등 900여 명을 죽였다. 이전에 代宗 때에 가 늘 회흘의 이름을 빌려 써서 京師에 섞여 살며 장사하여 재물을 불리고 방종하며 횡포를 부리니, 회흘과 함께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골칫거리가 되었다. 德宗이 즉위하여 돌동에게 그 무리를 모두 거느리고 나라로 돌아갈 것을 명했는데, 振武에 이르러 몇 달을 머물며 자급을 지나치게 요구했다. 장광성이 그를 죽이고자 했지만 감히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九姓胡들이 그들의 종족이 회흘의 새로운 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 몰래 장광성에게 계책을 올려 회흘을 죽이기를 요청했다. 장광성이 모두 세 번을 상주하였으나 덕종이 윤허하지 않았다. 이에 副將으로 하여금 그들이 지내는 관사의 문 앞을 지나가게 하며 일부러 예의를 갖추지 않도록 하자 돌동이 노하여 붙잡아 수십 번을 채찍질하였다. 장광성이 군대를 이끌고 습격하여 여러 오랑캐 무리들을 아울러 모두 죽이고 시체를 모아서 으로 삼았다. 회흘이 제멋대로 살해한 자에게 원수를 갚기를 요청하니, 덕종이 장광성을 睦王傅로 폄직하여 그 마음을 달래주었다.” 하였다.
그 이후로 오랑캐의 사신이 전혀 없었으니 그들이 미워하고 원망함을 분명히 증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