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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陸宣公奏議(1)

당육선공주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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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육선공주의(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夫國家作事 以公共爲心者 人必樂而從之하고 以私奉爲心者 人必咈而叛之하나니
故燕昭築金臺어늘 天下稱其賢注+① 韻語陽秋云 “李白古風有燕昭延郭隗, 遂築黃金臺之句. 予考史記不載黃金臺, 云 ‘昭王爲郭隗改築宮而師事之.’”하고 殷紂作玉杯어늘 百代傳其惡注+② 韓子 “紂爲象箸, 箕子懼, 以必不加於土鉶, 必將爲犀玉之杯.하니 蓋爲人與爲己 殊也일새요
周文之囿 百里로되 時患其尙小하고 齊宣之囿 四十里로되 時病其太大하니 蓋同利與專利 異也니이다
爲人上者 當辨察玆理하여 洒濯其心注+③ 左襄二十一年 “臧武仲謂季孫曰 ‘紇也聞之, 在上位者, 洒濯其心, 一以待人. 而後可以治人’”하여 奉三無私注+④ 禮記孔子閒居篇云.하여 以壹有衆호되 人或不率이어든 於是用刑하나니
然則宣其利而禁其私 天子所恃以理天下之具也
捨此不務하고 而壅利行私 欲人無貪이라도 不可得已니이다


4-2-6 나라에서 정사를 행할 적에 공공을 위해 마음을 쓰는 자는 사람들이 필시 즐겁게 따르고 사사로이 자기를 위해 마음을 쓰는 자는 사람들이 필시 거역하여 배반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하가 그 현명함을 칭송하였고,注+① 天下稱其賢:≪에 “李白의 〈古風〉에 ‘燕 昭王이 郭隗를 영접하여, 마침내 黃金臺를 쌓았다.’라는 구가 있다. 내가 ≪史記≫를 고찰해보니, 황금대의 일은 실려 있지 않고 ‘昭王이 郭隗를 위해 궁전을 개축하고 스승으로 섬겼다.’라고 하였다.” 하였다. 백대토록 그 악행을 전하였습니다.注+② 殷紂作玉杯 百代傳其惡:≪韓非子≫에 “紂가 상아 젓가락을 만들자, 箕子가 두려워하여, 상아 젓가락은 필시 흙으로 만든 그릇에는 사용할 수 없으니, 무소뿔이나 옥으로 만든 잔을 만들 것이다.” 하였다. 이는 남을 위해서 하느냐 자기를 위해서 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임금이 마땅히 이 이치를 변별하여 살펴서, 그 마음을 깨끗이 하여注+③ 爲人上者……洒濯其心:≪春秋左氏傳≫ 襄公 21년에 “이 季孫에게 이르기를 ‘나는 듣건대,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마음을 깨끗이 가지고서 誠實한 마음으로 사람을 待遇하고 나서 사람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하였다.” 하였다.
사사로움이 없는 하늘과 땅 그리고 일월日月을 받들어注+④ 奉三無私:≪禮記≫ 〈孔子閒居〉편에 나온다.
백성들을 하나로 만들고 그중에 혹 따르지 않는 자가 있거든 이에 형벌을 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백성에게 이익을 베풀고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금하는 것은 천자가 의지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도구입니다.
이것을 버려두고 힘쓰지 않고서 백성의 이익을 막고 사사로운 욕심을 채운다면, 사람들에게 탐욕이 없게 하고자 하여도 할 수 없습니다.


역주
역주1 燕……쌓자 : 전국시대 燕나라 昭王이 郭隗에게 인재를 추천하게 하자, 곽외가 “옛날에 어떤 임금이 內官에게 천금을 주어 천리마를 구해오게 하였는데, 말이 이미 죽고 없으므로 500금을 주고 말의 뼈를 사서 돌아오니 그 임금이 크게 노하였습니다. 그러자 내관이 ‘죽은 말의 뼈도 사왔는데 하물며 산 말이겠습니까. 머잖아 천리마가 이를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1년이 되지 않아 천리마가 세 마리나 왔다고 합니다. 지금 반드시 인재를 오게 하려면 저부터 등용하십시오. 그러면 저보다 어진 사람이 어찌 천 리를 멀리 여기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연 소왕이 황금대를 세우고 곽외를 스승으로 섬기니 천하의 인재들이 다투어 연나라로 모여들었다고 한다.(≪戰國策≫ 〈燕策1〉)
역주2 殷나라……만들자 : 殷나라 紂王이 상아 젓가락을 만들자, 箕子가 탄식하기를 “저 사람이 상아 젓가락을 만드니, 반드시 玉杯도 만들 것이다. 옥배를 만들면 반드시 먼 지방에서 생산하는 진귀한 물건을 구하여 사용할 것이니, 輿馬와 宮室을 사치하게 할 조짐이 이 상아 젓가락에서 시작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 뒤에 瓊宮과 瑤臺를 만들어놓고 荒淫을 즐기다가 나라를 망쳤다.(≪史記≫ 권38 〈宋微子世家〉)
역주3 周나라……걱정하였고 : 周나라 文王의 靈囿는 사방 70리라고 한다. 齊 宣王이 “문왕의 囿는 사방 70리나 되었다는데, 사실입니까?” 하고 묻자, 孟子가 “古書에 그런 기록이 있습니다.” 하였다. 제 선왕이 “그렇게도 컸습니까?” 하니, 맹자가 “백성들은 오히려 작다고 여겼습니다.” 하였다.(≪孟子≫ 〈梁惠王 下〉)
역주4 齊나라……걱정하였으니 : 齊 宣王이 “과인의 囿는 사방 40리인데도 백성들이 오히려 크다고 여기는 것은 어째서입니까?” 하자, 孟子가 “文王의 囿는 사방 70리이지만, 꼴 베고 땔나무하는 사람도 그곳에 가고 꿩과 토끼를 잡는 사람도 그곳에 가서 백성들과 함께하였으니, 백성들이 작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신이 들으니 郊關 안에 사방 40리 크기의 囿가 있는데 이곳의 사슴을 죽이면 사람을 죽인 것과 죄가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나라 안에 사방 40리 되는 함정을 파놓은 것이니, 백성들이 크다고 여기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孟子≫ 〈梁惠王 下〉)
역주5 사사로움이……받들어 : ≪禮記≫ 〈孔子閒居〉에 “子夏가 묻기를 ‘三王(禹․湯․文王․武王)의 덕은 천지에 참여하였다고 하는데, 감히 여쭙습니다만 천지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라고 하자, 孔子는 ‘〈하늘은 사사로이 덮음이 없고, 땅은 사사로이 실음이 없고 해와 달은 사사로이 비침이 없는 것이니〉 이 세 가지를 받들어 천하 사람들을 위로하니 이를 「사사로움이 없는 세 가지」라고 한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역주6 韻語陽秋 : 南宋의 시인 葛立方(?~1164)이 지은 詩話集으로 모두 20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漢․魏부터 宋나라까지의 시에 대해 논평하였다.
역주7 (謂)[爲] : 저본에는 ‘謂’라고 되어 있으나, ≪韓非子≫ 〈喩老〉에 의거하여 ‘爲’로 바로잡았다.
역주8 (著)[箸] : 저본에는 ‘著’라고 되어 있으나, ≪韓非子≫ 〈喩老〉에 의거하여 ‘箸’로 바로잡았다.
역주9 臧武仲 : 춘추시대 魯나라 대부 臧孫紇이다. 이때에 魯나라에는 도둑이 많았는데 노나라 실권자였던 季孫, 즉 季孫宿(季武子)이 臧武仲에게 이르기를 “자네는 왜 도둑을 잡지 않느냐?”라고 하자, 장무중이 대답하기를 “자네가 외국 도둑을 불러들여서 큰 대우를 하는데 어찌 우리나라 도둑을 그만두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면서 도둑을 잡지 않았다. 당시 邾나라 大夫 庶其가 漆閭丘에서 자신이 관할하고 있던 땅을 바치면서 노나라로 도망쳐 오자, 계무자가 그에게 魯 襄公의 고모를 아내로 삼도록 하고, 그를 따라 온 자에게도 모두 물품을 하사하였다.

당육선공주의(1) 책은 2023.01.1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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