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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1)

당송팔대가문초 소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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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6. 등보滕甫를 대신하여 비방을 변명하고 군직郡職을 맡을 것을 청한 글
悲切이라
비통함이 간절하다
臣聞人情 不問賢愚하고 莫不畏天而嚴父 然而疾痛則呼父하고 窮窘則號天이라하니
이 듣건대 “사람의 심정心情은 어질고 어리석음을 불문하고, 하늘을 두려워하고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는 이가 없으나, 병들어 아프면 아버지를 부르고 곤궁하면 하늘에 호소한다.”고 하였습니다.
蓋情發於中하야 言無所擇이니 豈以號呼之故 謂無嚴畏之心이릿고
이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나와서 말을 가릴 겨를이 없어서이니, 어찌 하늘에 부르짖고 아버지를 불렀다고 해서 하늘을 두려워하고 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今臣之所患 不止於疾痛이요 而所憂有甚於窮窘하니 若不號呼於君父 更將趨赴於何人이릿고
지금 이 걱정하는 바는 질통疾痛에 그치지 않고 근심하는 바는 곤궁보다 더 심함이 있으니, 만약 군부君父에게 호소하고 하소연하지 않는다면 다시 장차 누구에게 달려가겠습니까?
伏望聖慈 少加憐察하소서
엎드려 바라건대 성자聖慈하신 폐하께서는 다소나마 가엾게 여기고 살펴주소서.
本無學術하고 亦無材能이나 惟有忠義之心 生而自許하니이다
은 본래 학식이 없고 재능 또한 없으나 오직 충의로운 마음만은 태어나면서부터 타고났다고 자부하였습니다.
옛날 계손씨季孫氏가 말하기를 “군주에게 가 있는 자를 보면 내가 그를 섬기기를 효자가 부모를 공양하듯이 하고, 군주에게 무례하게 구는 자를 보면 내가 그를 주벌하기를 매와 새매가 참새들을 쫓는 것처럼 하겠다.”라고 하였으니,
臣雖不肖 允蹈斯言하니이다
이 비록 불초하나 진실로 이 말을 실천하였습니다.
但信道直前하야 謂人如己 旣蒙深知於聖主하니 肯復借交於衆人이리오
다만 를 믿고 곧장 앞으로 나아가면서 남들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이미 성주聖主에게 깊이 인정을 받았으니, 어찌 다시 중인衆人에게 교분을 빌리고자 하였겠습니까?
任其憃愚하야 積成仇怨하니이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대로 행동하여 이것이 쌓여 원한이 되었습니다.
一自離去左右 十有二年이니 何所不有리오
이 한번 황상皇上의 좌우를 떠난 지 12년이 되었으니, 서서히 적셔드는 참소가 어느 곳인들 있지 않겠습니까?
至謂이라하니 若依斯言이면 死未塞責이니이다
심지어는 ‘이 은밀히 반역자와 한 도당이 되어서 고의로 죄인을 풀어주었다.’고까지 말하니, 만약 이 말대로라면 은 죽어도 그 죄책을 다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竊伏思 宣帝 漢之英主也로되하고 太宗 唐之興王也로되하니 自古忠臣烈士 遭時得君이로되 而不免於禍者 何可勝數리오
엎드려 생각하건대, 선제宣帝나라의 영명英明한 군주였으나 한마디 말 때문에 양운楊惲을 죽였고, 태종太宗나라를 일으킨 현군賢君이었으나 한마디 말 때문에 유계劉洎를 죽였으니, 예로부터 충신忠臣열사烈士가 좋은 때를 만나고 군주의 신임을 얻었으나 화를 면치 못한 경우를 어찌 다 셀 수 있겠습니까?
而臣 獨蒙皇帝陛下始終照察하야 愛惜保全하시니 則陛下聖度 已過於宣帝太宗이요 而臣之遭逢 亦古人所未有니이다
그런데 은 유독 황제폐하께서 시종 굽어 살피시어 아껴주고 보존해주시는 은혜를 입고 있으니, 폐하의 성스러운 도량이 이미 나라 선제宣帝나라 태종太宗보다 뛰어나고, 지우知遇를 입은 것이 또한 옛사람에게 일찍이 없었던 바입니다.
日月在上하니 更何憂虞리오마는 但念世之憎臣者多하고 而臣之賦命至薄하야 積毁消骨하고 巧言鑠金이라
해와 달처럼 밝으신 군주가 위에 계시니 이 다시 무엇을 근심하겠습니까마는 다만 생각하건대, 세상에 을 미워하는 자들이 많고 의 타고난 운명이 지극히 기박하여 훼방이 쌓여서 뼈를 녹이고 공교로운 참언讒言이 쇠를 녹이고 있습니다.
하고 하니 儻因疑似하야 復至人言이면 至時 雖欲自明이나 陛下亦難屢赦
시장市場의 호랑이가 세 사람의 말로 이루어지고, 베 짜던 북을 던지고 도망한 것이 같은 말이 여러 번 반복됨에서 일어났으니, 혹시라도 의심하고 있는 터에 다시 비방하는 말이 이르게 된다면 그때에 가서 비록 스스로 해명하고자 한들 폐하께서 또한 번번이 사면赦免하시기가 어려우실 것입니다.
是以 及今無事之日하야 少陳危苦之詞하노이다
은 이 때문에 지금 무사할 때에 위태롭고 괴로운 말씀을 다소나마 아뢰는 것입니다.
乃王敦之弟也로되 而不害其爲元臣하고 源休之甥也로되 而不廢其爲宰相하니이다
나라 왕도王導는 바로 왕돈王敦종제從弟였으나 큰 공신이 됨에 무방하였고, 최조崔造원휴源休의 생질이었으나 재상이 되는 데에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臣與反者 이어늘 獨於寬大之朝 爲臣終身之累하니 亦可悲矣니이다
은 반역한 자와의 정의情誼가 길 가는 사람처럼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유독 이 관대한 조정에서 종신終身로 삼고 있으니, 또한 슬플 만합니다.
凡今游宦之士 稍與貴近之人으로 하면 則所至 便蒙異待하고 人亦不敢交攻이니이다
지금 모든 벼슬하는 선비들은 신분이 높은 분이나 근신近臣들과 조금이라도 연척連戚이 되고 약간의 구면舊面만 있으면 이르는 곳마다 곧바로 특별한 대우를 받고 사람들도 감히 공격하지 못합니다.
況臣 受知於陛下中興之初하야 效力於衆人未遇之日이어늘 而乃毁訾不忌하고 踐踏無嚴하니이다
더구나 은 폐하께서 중흥中興하는 초기에 지우知遇를 받아서 다른 사람들이 폐하를 만나기 전에 힘을 다 바쳤는데도 거리낌 없이 을 헐뜯고 비방하며 무엄無嚴하게 짓밟고 있습니다.
臣何足言이리오마는 有辱天眷하니 此臣所以涕泣而自傷者也니이다
미천한 이야 어찌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마는 성상聖上의 돌보심에 가 되고 있으니, 이 때문에 이 눈물을 흘리면서 스스로 서글퍼하는 것입니다.
今臣 旣安하고 又忝하니 非敢別有僥求하야 更思錄用이니이다
지금 은 이미 좋은 지방을 편안히 여기고 또 청반淸班에 올랐으니, 감히 별도로 요행히 바라는 것이 있어서 다시 녹용錄用되기를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但患難之後 積憂傷心하고 風波之間 怖畏成疾하니 敢望陛下憫餘生之無幾하시고 究前日之異恩하사 或乞移臣淮浙間一小郡하야 稍近墳墓하고 漸謀歸休하시면 異日 復得以枯朽之餘 仰瞻하리니
다만 환란을 겪은 뒤에 근심이 쌓여서 마음이 상하고 풍파를 겪는 사이에 두려워서 병이 되었으니, 감히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가엾게 여기시고 지난날의 특별한 은혜를 끝까지 내리셔서, 혹 회하淮河절강浙江 사이의 한 작은 으로 옮기셔서 다소나마 고향의 선영先塋에 가깝게 하고 점차 고향으로 돌아가 쉴 것을 도모할 수 있게 하여주신다면, 후일 다시 마르고 늙은 몸으로 천일天日의표儀表를 우러러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然後 退伏田野하야 自稱老臣하야 追敍始終之遭逢하야 以(託)[詫]鄕隣之父老하면 區區志願 永畢於斯리이다
이런 뒤에 전야田野에 물러나 있으면서 스스로 노신老臣이라고 칭하며 시종 훌륭한 군주를 만났던 지난 일을 말하고 이웃의 부로父老들에게 자랑한다면, 구구區區한 소원이 영원히 여기에서 다할 것입니다.
伏願陛下憐其志하고 察其愚하사 而赦其罪하소서
엎드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저의 마음을 가엾게 여기시고 저의 어리석음을 살피셔서 그 죄를 용서하소서.
臣無任感恩知罪하야 激切屛營之至하노이다
신은 은혜에 감사하고 죄를 알아서 격절激切하고 두려워하는 지극한 마음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予觀 子瞻一生所橫被讒搆處하야 往往痛心矣
내가 살펴보건대 자첨子瞻은 일생 동안 억울하게 참소와 모함을 받아 왕왕 가슴이 아팠었다.
所代滕甫辯謗處에도 亦種種刺骨하야 嗚咽涕洟하니라
그러므로 등보滕甫를 대신해서 비방을 변명한 글에서도 또한 종종 뼈에 사무친 내용이 있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오열하며 눈물, 콧물을 흘리게 하는 것이다.
역주
역주1 代滕甫辯謗乞郡書 : 本集에는 제목이 〈代滕甫辯謗乞郡狀〉으로 되어 있다. 辯謗은 남의 비방을 변명하는 것이며, 乞郡은 外職으로 郡을 맡는 것을 청하는 것이데, 郡을 맡는다는 것은 宋나라 때에는 知州事로 제수됨을 의미한다. 《總案》에 의하면 “神宗 元豐 7년(1084) 2월에 滕甫가 李逢의 반역으로 筠州에 安置되자, ‘辯謗引疾疏’를 지어 가지고 와서 보여주므로 蘇軾이 이 글로 고쳐주었다.”라고 하였다. 引疾은 신병을 이유로 벼슬에서 물러남을 이른다.
역주2 季孫有言……如鷹鸇之逐鳥雀也 : 季孫은 春秋時代 魯나라의 大夫로 이름은 行文이며 諡號는 文子인데,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文公 18년조에 보인다.
역주3 浸潤之言 : 참소하는 말이 마치 물이 서서히 젖어드는 듯하여 듣는 자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말에 빠져듦을 이른다. 《論語》 〈顔淵〉에 ‘浸潤之譖’이라고 보이는데, 朱子의 注에 이르기를 “浸潤은 물이 스며들고 적셔져서 점점 번지고 갑자기 하지 않음과 같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4 臣陰黨反者하야 故縱罪人 : 反者는 반역한 자로 滕甫의 처족 李逢의 반역을 이르며, 故縱罪人은 故意로 죄인을 풀어줌을 이른다.
역주5 片言而誅楊惲 : 楊惲은 漢나라 宣帝 때의 문신이다. 字는 子幼이고 司馬遷의 외손으로 《史記》를 후대에 전하였다. 청렴하고 사사로움이 없었으나 자신의 행실과 재능을 자랑하고 또 성질이 각박하여 조정에 원망하는 사람이 많았다. 太僕인 戴長樂의 상소로 작위를 잃고 廢庶人이 된 후 재물을 늘리는 것을 스스로 즐거움으로 삼자, 친구인 安定太守 孫會宗이 이를 경계하였는데, 孫會宗에게 답서를 보내면서 조정을 원망하고 비판하였다. 마침 日食의 변고가 있자, 騶馬猥의 佐인 成이 상서하여 고발하기를 “楊惲이 교만하고 사치하여 잘못을 뉘우치지 않으니, 日食의 재앙은 이 사람이 부른 것입니다.”라고 하자, 宣帝는 그를 廷尉에게 내려 조사하게 하여 孫會宗에게 회답한 편지를 찾아내었다. 宣帝가 이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大逆無道罪로 腰斬刑에 처하였다. 《漢書 楊惲傳》 騶馬猥는 말을 먹이는 하급관리이다.
역주6 單詞而殺劉洎 : 單詞는 한마디 말이며, 劉洎는 字가 思道이고 荊州 사람인데 성격이 곧고 강직하여 諫言을 잘하였다. 太宗이 遼東을 정벌할 적에 劉洎에게 명을 내려 太子가 監國하는 것을 돕게 하였는데, 이때 褚遂良과 서로 사이가 좋지 못하였다. 遼東征伐에서 돌아온 太宗의 병이 악화되자 劉洎가 문안하였는데, 褚遂良이 이 일과 연관지어, “劉洎가 ‘국가의 일은 굳이 근심할 것이 없으니, 다만 어린 군주를 보좌하여 商나라 伊尹과 漢나라 霍光의 고사를 행하고 大臣 중에 두 마음을 품은 자를 주벌해야 한다.’고 했습니다.”라고 무고하였다. 太宗이 완쾌된 후 이를 조사하도록 명하여 결백함이 밝혀졌으나, 太宗은 끝내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賜死하였다. 《舊唐書 劉洎傳》 伊尹은 商王 太甲을 폐출하였다가 다시 복위시켰으며, 霍光은 昌邑王 劉賀를 漢나라 황제로 옹립하였다가 부도덕한 일을 자행하자 폐위하고 宣帝를 다시 옹립한 權臣이다.
역주7 市虎成於三人 : 허무맹랑한 말도 여러 번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믿게 됨을 비유하는 말이다. 戰國時代 魏나라 龐蔥이 太子와 함께 邯鄲에 볼모로 가면서 魏王에게 말하기를 “지금 한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왕께서 믿으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왕이 “믿지 않는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어 말하기를 “두 번째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믿으시겠습니까?”라고 하자, 왕이 “의심하겠다.”라고 대답하였다. 龐蔥이 “그렇다면 세 번째 사람이 시장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왕께서 믿으시겠습니까?”라고 하니, 왕이 “과인도 믿겠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龐蔥이 “시장에 호랑이가 없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세 사람의 말이 호랑이를 만드는 것입니다.”라고 하여 자신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을 믿지 말 것을 諷諫하였다. 《戰國策 魏策》
역주8 投杼起於屢至 : 投杼는 베 짜던 북을 던지고 도망함을 이르는데, 이는 아무리 헛소문이라도 계속 듣게 되면 이를 믿게 된다는 말이다. 春秋時代 魯나라의 曾參은 孔子의 제자로 효성이 지극하고 인자하여 曾子로 추앙을 받은 인물이다. 그런데 그와 이름이 같은 또 다른 曾參이란 자가 살인을 하자, 사람들이 曾子가 살인한 줄 잘못 알고 曾子의 어머니에게 찾아가서 “曾參이 사람을 죽였다.”라고 고하였다. 曾子의 어머니는 두 번째까지는 “내 아들이 사람을 죽일 리가 없다.”라고 하며 태연하게 베를 짰으나, 세 번째 사람이 와서 또다시 이렇게 말하자 화가 자신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베 짜던 북을 던지고 담장을 넘어 달아났다. 《戰國策 秦策》
역주9 王導 : 晉나라의 명재상으로, 臨沂 사람이며 字는 茂弘이고 諡號는 文獻이다. 元帝 때에 그의 從兄 王敦이 江東을 진압하여 征南大將軍이 되어 공을 믿고 권력을 전횡하다가 武昌의 난을 일으켜 王氏가 멸족당할 위기에 처해지자, 王導는 일족 20여 명을 거느리고 매일같이 待罪하였다. 그리하여 元帝의 신임을 다시 얻어 큰 공신이 되었다. 《晉書 王導傳》
역주10 崔造 : 唐나라 代宗‧德宗 때의 문신으로, 字는 玄宰이며 博陵 安平 사람이다. 建中 4년(783) 朱泚의 난이 일어났을 적에 그는 建州刺史로 있었는데 휘하의 군대를 이끌고 德宗을 도와 난을 진압하고자 하였다. 이에 德宗이 가상히 여겨 京師로 소환하였는데, 마침 외삼촌 源休가 朱泚에게 가담하였다가 주벌을 당하자, 疏를 올려 죄를 청하고 감히 대궐로 들어가지 못하였다. 德宗이 禮를 안다고 칭찬하며 給事中의 벼슬을 내렸다가 貞元 2년(786)에 마침내 재상으로 임명하였다.
역주11 義同路人 : 義는 情誼이며, 路人은 길 가는 행인으로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이른다. 滕甫가 원래 반역자들과 전혀 관계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12 葭莩之親 : 아주 먼 친척을 비유하는 말이다. 葭莩는 갈대의 줄기에 붙어 있는 얇고 흰 膜으로 인척을 의미한다.
역주13 半面之舊 : 겨우 얼굴이나 아는 정도로 교분이 깊지 못한 사이를 이른다. 後漢의 應奉이 20세에 袁賀를 찾아갔을 적에, 수레를 만드는 匠人이 부채로 얼굴을 가려 半面만 내보이면서 袁賀가 출타 중이라고 알려주었으므로 곧장 발길을 돌렸는데, 수십 년이 지난 뒤에 應奉이 거리에서 그 장인을 알아보고 반갑게 불렀다는 고사가 전한다. 《後漢書 應奉列傳》
역주14 善地 : 좋은 땅이란 뜻으로, 당시 滕甫가 安置되어 있던 筠州를 가리킨 것이다.
역주15 淸班 : 관직 가운데 깨끗한 반열로 학식이 높고 가문이 훌륭한 사람으로만 임명하는 중요한 관직을 말하는데, 주로 임금의 측근에서 근무하는 侍從의 신하를 가리킨다. 蘇軾은 한때 官告院의 副職인 判院으로 근무한 적이 있어 이렇게 말한 듯하다.
역주16 天日之表 : 天日은 하늘의 태양으로 임금을 상징하며, 表는 儀表로 임금의 훌륭한 儀表란 뜻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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