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蘇軾(5)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범례 |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구양문충공歐陽文忠公에게 올린 제문祭文
歐陽文忠公 知子瞻最深이러니 而子瞻爲此文以祭之하니 涕入九原矣니라
구양문충공歐陽文忠公자첨子瞻을 가장 깊이 인정하였는데, 자첨子瞻이 이 글을 지어 을 제사하였으니, 눈물이 구원九原(지하地下)에 들어간다.
嗚乎哀哉
아! 슬픕니다.
公之生於世 六十有六年이라
이 세상에 태어난 지 66년이 되었습니다.
民有父母하고 하며 하고 學者有師하며 君子有所恃而不恐하고 小人有所畏而不爲하니 譬如大川喬嶽 不見其運動이나 而功利之及於物者 蓋不可以數計而周知니이다
백성들은 부모처럼 사랑해주는 분이 있고 나라에는 의심스러운 일을 해결해주는 시귀蓍龜가 있으며, 사문斯文에는 전함이 있고 배우는 자들은 스승이 있으며, 군자君子들은 믿는 바가 있어 두려워하지 않고 소인小人들은 두려워하는 바가 있어 나쁜 짓을 하지 못하였으니, 비유하면 큰 내와 큰 산악이 비록 그 움직임을 볼 수 없으나 물건에 미치는 공덕功德과 이익을 숫자로 계산하여 다 알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今公之沒也 赤子無所仰芘(庇)하고 朝廷無所稽疑하며 하며 君子以爲無(爲)[與]爲善하고 而小人沛然自以爲得時하니 譬如深(淵)[山]大澤 龍亡而虎逝 則變怪(雜)[百]出하야 니이다
이제 이 별세함에 적자赤子들은 우러러 비호받을 곳이 없고 조정은 의심스러운 것을 상고할 곳이 없으며, 사문斯文이 변하여 이단異端이 되고 배우는 자들이 오랑캐 법을 씀에 이르렀으며, 군자君子들은 더불어 을 할 사람이 없고 소인小人들은 거침없이 스스로 때를 만났다고 여기니, 비유하면 깊은 산과 큰 못에 용이 없어지고 범이 떠나가면, 변괴가 백 가지로 나와서 미꾸라지와 드렁허리가 춤을 추고 여우와 살쾡이가 울부짖는 것과 같습니다.
昔其未用也 天下以爲病하고 則又以爲遲하고 莫不冀其復用하고 莫不惆悵失望이로되 而猶庶幾於萬一者 幸公之未衰러니 孰謂公無復有意於斯世也하야 奄一去而莫予追
옛날에 이 아직 등용되기 전에는 천하가 이것을 병통으로 여겼고, 등용되고 나서는 또 늦다고 여겼으며, 지위를 내놓고 떠남에 미쳐서는 다시 등용되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었고, 치사致仕할 것을 청하고 돌아감에 이르러는 서글피 실망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그래도 만에 하나 바라는 것은 다행히 이 노쇠하지 않은 것이었는데, 그 누가 이 이 세상에 뜻이 없어서 갑자기 끝내 떠나가시어, 우리들이 따라갈 수 없게 될 줄을 생각하였겠습니까?
豈厭世溷濁하야 潔身而逝乎잇가
아마도 세상의 혼탁함을 싫어하여 몸을 깨끗이 하려고 떠나가셨나 봅니다.
將民之無祿하야 而天莫之遺잇가
아니면 우리 인민人民들이 복이 없어서 하늘이 을 남겨놓지 않은 것입니까?
因緣出入하야 受敎於門下者 十有六年於玆
옛날 저의 선군先君(소순蘇洵)께서 재능을 품고 은둔하고 계실 적에 이 아니었으면 초치하지 못했을 것이요, 불초 무상한 저도 이 인연으로 출입하여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은 지 이에 16년이 되었습니다.
聞公之喪 어늘 而懷祿不去하니 愧古人以忸怩
그렇다면 을 듣고 의리상 마땅히 달려가서 조문하여야 할 것인데, 祿을 생각하고 떠나가지 못하니, 고인古人에게 부끄럽습니다.
緘詞千里하야 以寓一哀而已矣 蓋上以爲天下慟이요 而下以哭니이다
조사弔辭를 천 리 먼 길에 봉함하여 슬픈 마음을 부칠 뿐이니, 위로는 천하를 위하여 애통하고 아래로는 저의 사사로운 정 때문에 곡합니다.
嗚呼哀哉
아! 슬픕니다.
尙享하소서
부디 흠향하소서.
역주
역주1 祭歐陽文忠公文 : 이 글은 東坡가 歐陽脩가 죽은 뒤에 지은 제문으로, 歐陽脩가 죽은 熙寧 5년(1072)에 쓰였다. 歐陽脩(1007~1072)는 字가 永叔이고 自號가 六一居士이며 吉州 廬陵(지금의 江西省 永豐縣) 사람으로 시호는 文忠이다. 唐宋八大家 중의 한 사람으로 韓愈와 함께 古文運動의 영수로 꼽히며 벼슬이 參知政事에 이르렀다.
東坡가 급제한 嘉祐 2년(1056)의 과거에서 禮部侍郞으로 知貢擧(과거시험 위원장)의 직책을 맡았다. 옛날에는 과거에 급제한 자들이 자신을 급제시킨 知貢擧를 스승으로 삼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인연으로 蘇軾은 평생 歐陽脩를 스승으로 섬겼다.
역주2 國有蓍龜 : 蓍는 시초점이고 龜는 거북점이다. 옛날에 의심스러운 일이 있을 경우 蓍草로 《周易》 占을 치고 거북 껍질로 거북점을 쳐서 일을 결정하므로, 뛰어난 식견과 판단력이 있어 국가의 어려운 일이 있을 경우 군주가 자문하여 일을 결정지을 수 있는 大臣을 이렇게 말한 것이다. 《唐宋八大家文鈔 校注集評》에는 蓍龜를 德이 높고 名望이 重한 사람으로 보았으나 적절하지 않은 듯하다.
역주3 斯文有傳 : 斯文은 儒學을 이르는데, 곧 儒學의 道가 전해짐을 이른다.
역주4 斯文化爲異端 而學者至於用夷 : 異端은 儒學이 아닌 異敎를 이르는데 여기서는 王安石의 新學을 염두에 두고 말한 듯하다. 儒敎 經典의 실용적인 응용을 중시한 王安石은 《詩經》․《書經》․《周禮》를 새로 해석한 《三經新義》를 저술하여 전국의 學官에 이를 반포하였으며, 또 《字說》 24권을 지었는데, 당대의 식자들이 이것을 비판하여 王氏新學이라고 칭하였다.
역주5 舞鰌鱓(추선)而號狐狸 : 鰌는 미꾸라지이고 鱓은 드렁허리이며 狐는 여우이고 狸는 살쾡이인데, 위의 龍과 범은 大人을 비유하고 鰌․鱓과 狐․狸는 小人을 비유하여, 大人이 죽으면 小人들이 춤을 추고 고함을 치며 날뜀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6 其旣用也 : 歐陽脩가 仁宗 嘉祐 6년(1062)에 參知政事로 등용됨을 말한 것이다.
역주7 及其釋位而去也 : 歐陽脩가 英宗 治平 4년(1067)에 재상의 지위에서 파직됨을 말한 것이다.
역주8 至於請老而歸也 : 歐陽脩가 神宗 熙寧 4년(1071)에 告老하여 황제의 허락을 받고 돌아감을 말한 것이다.
역주9 昔我先君……非公則莫能致 : 先君은 先親으로 東坡의 아버지인 蘇洵을 이르고, 懷寶는 훌륭한 재주를 지니고 있음을 비유하는바, 蘇洵이 일찍이 歐陽脩에게 인정받아 秘書省校書郞에 임용되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10 不肖無狀 : 無狀은 잘하는 것이 없는 것으로 不肖와 같은 뜻인데, 不肖함을 지극히 표현할 적에 이처럼 연결하여 사용한다.
역주11 義當匍匐往救 : 匍匐은 손과 발을 모두 움직여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으로 급히 달려감을 비유한다. 《詩經》 〈邶風 谷風〉에 “모든 사람이 喪이 있으면 포복하여 구원하였다.[凡民有喪 匍匐救之]”라고 하였으므로, 후세에 남의 喪에 달려감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역주12 : 一本에는 吾로 표기되어 있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