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之所謂智者는 知天下之利害하고 而審乎計之得失이니 如斯而已矣면 此其爲智 猶有所窮이라
唯見天下之利而爲之하고 唯其害而不爲면 則是有時而窮焉하야 亦不能盡天下之利하나니라
古之所謂大智者는 知天下利害得失之計하고 而權之以人이라
是故로 有所犯天下之至危로되 而卒以成大功者하니 此는 以其人權之일새니라
天下未嘗有百全之利也니 擧事而待其百全이면 則必有所格이라
是故로 知吾之所以勝人하고 而人不知其所以勝我者는 天下莫能敵之니라
此三者는 皆危道也어늘 而直犯之하니 彼不知用其所長하고 又不知出吾之所忌라
自三代之亡으로 天下以詐力相幷하야 其道術政敎 無以相過하야 而能者得之라
爭爲彊暴
하고 而
하니 其用兵制勝
이 固不足以敵曹氏
라
然이나 天下終於分裂하야訖魏之世토록 而不能一하니라
是故로 有所重發而喪其功하고 有所輕爲而至於敗하니라
且夫劉備
는 可以急取
요 而不可以緩圖
니 方其危疑之間
하야 卷甲而趨之
는 며
孫權者
는 可以計取
요 而不可以勢破也
어늘 而欲以
로 乘勝而取之
하니
彼非不知其難
이요 特欲僥倖於權之不敢抗也
니 此
는 用之於
이라야 乃可以逞
이라
故로 夫魏武重發於劉備而喪其功하고 輕爲於孫權而至於敗하니 此不亦長於料事하고 而不長於料人之過歟아
事之利害와 計之得失을 天下之能者擧知之로되 而不能權之以人이면 則亦紛紛焉或勝或負하야 爭爲雄彊하야 而未見其能一也니라
古之起自匹夫
하야 而取天下者
는 蓋必其身
이 有定天下之略
이요 而非沾沾以割據四方爲謀者
니 漢, 唐, 宋
이 是也
라
魏武帝雖稱奸雄이나 其始也에 輒以傾漢室而代之爲謀라
故로 其劫天子하고 誅强國하야 竝創心割據하니 而二袁呂布는 非其敵者니 爲其所屛耳라
使魏武力獎王室하야 以身下備與權이면 則漢之桓靈之業이 未必不復振이요 而魏武且爲元勳也리니 其去三分天下하야 僅三世而亡하면 相去豈特尺寸哉리오
행문行文한 것이 《전국책戰國策》으로부터 온 듯하나, 자신의 본색으로 한껏 담갔다.
그러므로 여운이 길고 유려한 부분이 많은 것이다.
세상에 이른바 ‘지혜로운 자’라는 것은 천하의 이해利害를 알고 계책의 득실得失을 살핌을 말하니, 이와 같을 뿐이라면 이는 그 지혜로움이 오히려 부족한 바가 있는 것이다.
오직 천하에 자신에게 이로운 것을 보아 이것만을 행하고 자신에게 해로운 것은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때로 지혜가 부족한 경우가 있어서 이 또한 천하의 이로움을 다하지 못한다.
옛날의 이른바 ‘크게 지혜로운 자’라는 것은 천하의 이해利害와 계책의 득실得失을 알고 또 사람으로써 저울질을 하였다.
이 때문에 천하의 지극한 위태로움을 범하면서도 끝내 큰 공을 이룬 자가 있었으니, 이는 사람을 가지고 저울질을 했기 때문이다.
적을 가볍게 여기는 자는 패망하고 적을 두려워해서 너무 신중히 하는 행동은 성공하지 못한다.
천하에 빈틈없이 완전한 이익은 있지 않으니, 거사擧事를 하면서 빈틈없이 완전하기를 기다린다면 반드시 막히는 바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신은 상대방을 이기는 방법을 알고 상대방은 자신을 이기는 방법을 모르는 경우에는, 천하가 능히 자신을 대적하지 못하는 것이다.
옛날에 진晉나라 순식荀息은 우공虞公이 반드시 궁지기宮之奇의 계책을 쓰지 못할 것을 알았고, 제齊나라 포숙鮑叔은 노魯나라 군주가 반드시 시백施伯의 말을 따르지 못할 것을 알았고, 설공薛公은 경포黥布가 반드시 상책上策으로 나오지 못할 것을 알았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상대방이 자신의 예측대로 하지 않을 수도 있는〉 위험한 방법이었는데도 곧바로 이를 범하고 실행하였으니, 저들은 자신의 장점을 쓸 줄 모르고 또 상대방이 자신이 꺼리는 바로 나올 줄을 알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모험을 하면서 이로운 쪽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삼대시대三代時代가 망함으로부터 천하가 속임수와 무력을 가지고 서로 겸병하여, 도술道術과 정교政敎가 서로간에 나을 것이 없어서 재능이 있는 자가 천하를 얻었다.
한漢나라가 쇠망할 때를 당하여 호걸들이 함께 일어나 천하를 도모하였다.
그리하여 원소袁紹와 원술袁術과 동탁董卓과 여포呂布가 다투어 강포한 짓을 자행하였고, 손권孫權과 유비劉備가 또 한 구석에서 구구하게 있었는데, 군대를 운용하여 승리하는 것은 진실로 조씨曹氏(조조曹操)를 상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천하는 끝내 분열되어 위魏나라의 세상이 끝나도록 통일되지 못하였다.
위 무제魏 武帝는 일을 헤아리는 데에는 뛰어났으나, 사람을 헤아리는 데는 뛰어나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너무 신중하게 행동하여 뒤늦게 발동해서 공功을 잃은 경우가 있었고, 너무 가볍게 행동하여 패전함에 이른 경우가 있었다.
유비劉備는 세상을 뒤덮는 뛰어난 재주가 있었으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응하는 기지機智는 없었다.
그가 새로이 촉蜀의 유장劉璋을 격파하자 촉蜀 지방 사람들이 따르지 아니하여 하루에도 너덧 차례 소란이 일어나서, 소란을 일으킨 자들을 목 베어도 금지하지 못하였는데, 위 무제魏 武帝가 이때를 버려두고 유비를 취하지 않았다가 마침내 자신이 죽을 때까지 무력을 가하지 못하였다.
손권孫權은 용맹하고 지모가 있었으니, 이것은 성세聲勢와 공갈로 취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위 무제魏 武帝가 중원中原의 장기長技인 기병騎兵을 쓰지 않고 배와 노의 사이에서 〈수전水戰으로〉 손권孫權과 싸우고, 하루 동안에 3백 리를 행군하여 이익을 다투었으니, 이는 두 가지 패착을 범한 채 손권孫權을 공격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적벽강赤壁江에서 패전하여 군대를 잃고 오吳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어주었다.
또 유비劉備는 급히 공격하여 점령해야 하고 느슨히 도모해서는 안 되니, 유비劉備가 한창 위태롭고 의심스런 처지에 처했을 적에, 비록 병법에서 꺼리는 바이지만 위 무제魏 武帝가 갑옷을 벗어던지고 급히 행군하여 달려갔으면 뜻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반면에 손권孫權은 계략으로써 취할 수는 있으나 형세形勢로는 격파할 수가 없었는데, 위 무제魏 武帝는 형주荊州에서 새로 거둔 병졸을 거느리고 승세를 타 오吳나라를 점령하고자 하였다.
위 무제魏 武帝는 그 어려움을 모른 것이 아니요, 다만 손권孫權이 감히 항거하지 못하고 항복하는 요행을 바란 것이었으니, 이것은 새로이 나라를 세운 촉蜀에서나 써야 비로소 뜻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러므로 위 무제魏 武帝는 유비劉備에게는 너무 신중하게 행동하다가 지체하여 그 공을 상실하였고, 손권孫權에게는 가볍게 행동하여 패전함에 이르렀으니, 이것은 일을 헤아리는 데에는 뛰어났으나 사람을 헤아리는 데에는 그렇지 못한 잘못이 아니겠는가?
천하의 유능한 자가 일의 이해利害와 계책의 득실得失을 모두 알면서도 사람으로써 저울질하지 못한다면, 또한 분분紛紛하게 승리하기도 하고 패배하기도 하면서 자웅雌雄과 강약强弱을 다툴 뿐 천하를 통일하는 것은 보지 못한다.
옛날 항오行伍에서 필부匹夫의 신분으로 발신發身하여 천하를 취한 자들은 반드시 그 몸에 천하를 평정할 수 있는 지략智略을 가진 자들로 구구하게 사방에 할거하는 것을 도모한 자가 아니었으니, 한漢나라와 당唐나라와 송宋나라가 이 경우이다.
위 무제魏 武帝는 비록 간웅奸雄이라 일컬어졌으나, 그는 처음부터 곧바로 한漢나라 황실을 쓰러뜨리고 자신이 대신할 계책을 세웠다.
그러므로 천자天子를 협박하고 강력한 제후諸侯들을 주벌誅罰하여, 한 지방을 할거割據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을 모두 징계하였으니, 원소袁紹와 원술袁術, 여포呂布는 그의 적수가 아니어서 그에게 물리침을 당하였다.
그리고 종실宗室 중에 영웅스럽기가 유비劉備와 같고 번신藩臣 중에 영걸로 일어나기를 손권孫權과 같이 한 자를 어찌 자신의 아래가 되게 할 수 있었겠는가?
만일 위 무제魏 武帝가 힘써 황실을 도와 자신을 유비劉備와 손권孫權에게 낮추었더라면, 한漢나라의 환제桓帝와 영제靈帝의 기업이 다시 떨쳐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요, 위 무제魏 武帝도 나라의 원훈元勳(큰 공신功臣)이 되었을 것이니,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그 하나를 차지하다가 겨우 삼대三代에 망한 것에 비한다면 그 거리가 어찌 다만 한 자 한 치뿐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