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得罪於巨室이니 巨室之所慕를 一國慕之하고 一國之所慕를 天下慕之라하시니라
夫所謂世臣者 豈特世祿之人이며 而巨室者 豈特侈富之家也哉리오
蓋功烈已著於時
하고 德望已信於人
하니 譬之喬木
하면 封殖愛養
하야 라
平居無事
에 商功利
하고 는 誠不如新進之士
어니와 至於緩急之際
하야 決大策
하고 安大衆
하야 呼之則來
하고 麾之則散者
는 惟世臣巨室爲能
이라
方是時
하야 虜大擧犯邊
이어늘 전운사轉運使攝帥事
하야 與
부총관副總管議不合
하야 軍無紀律
하니 邊人
이 大恐
하야 聲搖
라
及聞公來에 吏士踊躍傳呼하야 旗幟精明하고 鼓角讙亮한대 虜卽日解去어늘
余然後
에 知老臣宿將
의 其功用
이 蓋如此
하니 使新進之士當之
면 雖有
과 라도 豈能坐勝黙成
을 如此之捷乎
아
四年秋
에 余將往
전당錢塘할새 見公於私第
일로당佚老堂하야 飮酒至暮
러니 論及當世事
하야 曰 吾
일로당老矣
라
旣去二年에 而公薨하고 又六年에 乃作公之眞贊하야 以遺其子공鞏하노라
위공魏公在朝
에 百度維正
하고 의민공懿敏在外
에 이라
高明廣大하야 宜公宜相하니 如木百圍 宜宮宜堂이라
天旣厚之하고 又貴富之하니 如태산山如황하河하야 維安有之라
彼窶人子는 旣陋且寒하니 終勞永憂하야 莫知其賢이라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른바 고국故國이라는 것은 교목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세신世臣이 있음을 말한다.”라고 하셨고, 또 이르시기를 “정사政事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거실巨室에게 죄를 얻지 않아야 하니, 거실巨室이 사모하는 바를 온 나라가 사모하고, 한 나라가 사모하는 바를 온 천하가 사모한다.”라고 하셨다.
이른바 세신世臣이란 것이 어찌 다만 대대로 녹祿을 먹는 사람이며, 거실巨室이란 것이 어찌 다만 사치하고 부유한 집안이겠는가?
세신世臣과 거실巨室은 공렬功烈이 당시에 드러나고 덕망德望이 사람들에게 믿어진 것이니, 이것을 교목喬木에 비유하면, 북돋우어 가꾸고 사랑하여 길러서 한 줌의 나무로부터 한 아름의 나무에 이르는 것이 하루아침의 연고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평소 일이 없을 적에 공리功利를 헤아리고 전최殿最를 고과하는 것은 세신世臣과 거실巨室이 진실로 신진新進의 선비만 못하지만, 위급한 즈음에 이르러 큰 계책을 결단하고 대중을 편안하게 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부르면 오고 손을 흔들면 흩어지게 하는 것은 오직 세신世臣과 거실巨室만이 가능한 것이다.
내가 가우嘉祐 연간에 처음 의민 왕공懿敏 王公(왕소王素)을 성도成都에서 알았는데, 그 뒤에 기산岐山에서 종사할 적에 공公이 허주許州로부터 평량진平涼鎭으로 옮겨왔다.
이때를 당하여 오랑캐가 크게 군대를 일으켜 변경을 침범하였는데, 전운사轉運使가 절도사節度使의 일을 대행하면서 부총관副總管과 의견이 맞지 않아서 군사들이 기율紀律이 없으니, 변방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여 적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삼보三輔 지방을 진동하였다.
그러다가 공公이 부임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관리와 군사들이 기뻐서 날뛰며 전하여 고함쳐서 기치旗幟가 더 깨끗해지고 고각鼓角 소리가 더 커지고 맑아지자, 오랑캐들이 당일로 해산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공公은 도착하여 장수와 보좌관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위로할 뿐이었다.
나는 그제야 늙은 신하와 오래된 장수의 공용功用이 이와 같음을 알았으니, 만일 신진新進의 선비가 이 일을 당했더라면 비록 한신韓信․백기白起의 용맹과 장량張良․진평陳平의 기지가 있더라도 어찌 앉아서 묵묵히 승리하여 성공하기를 이처럼 빨리할 수 있겠는가?
희령熙寧 4년(1071) 가을에 내가 장차 전당錢塘으로 부임하려 할 적에 공公을 사제私第인 일로당佚老堂에서 뵙고 저녁까지 술을 마셨는데, 당세當世의 일을 논하면서 말씀하기를 “내 늙었다.
다시 자네를 만나보지 못할 듯하니, 자네는 부디 스스로를 아껴서 나의 말을 잊지 말라.”고 하였다.
내가 떠나온 지 2년 만에 공公이 별세하였고, 또 6년 만에 마침내 공公의 화상畫像에 찬贊을 지어서 아들 공鞏에게 주었다.
소조召祖(소공 석召公 奭)와 천명天命을 짝하였고, 영명英明하고 진실한 의민공懿敏公이여!
위공魏公이 조정에 있으니 온갖 법도가 바루어지고, 의민공懿敏公이 밖에 있으니 군대가 출동한다는 소문만 있고 떠드는 소리는 없었네.
고명高明하고 광대廣大하여 삼공三公의 지위에도 마땅하고 정승의 지위에도 마땅하니, 마치 백 아름 되는 나무가 궁宮에도 마땅하고 당堂에도 마땅한 것과 같았네.
하늘이 아름다운 재질을 많이 내리고 또 부귀하게 하니, 태산泰山과 같고 황하黃河와 같아서 편안히 이것을 소유하였네.
저 가난한 사람의 자식들은 누추하고 또 빈한하니, 끝내 수고롭고 길이 근심해서 그 어짊을 알지 못하네.
패옥佩玉과 검劍과 신을 신고 있으니, 공公은 바로 진공晉公(왕호王祜)의 손자요 위공魏公의 아들이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