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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5)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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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1. 왕중의王仲儀에 대한 진찬眞贊
先於小序中點次
먼저 작은 서문 가운데에 자세히 열거하였다.
贊文特爽하니라
그러므로 찬문贊文이 특별히 상쾌한 것이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른바 고국故國이라는 것은 교목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요, 세신世臣이 있음을 말한다.”라고 하셨고, 또 이르시기를 “정사政事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不得罪於巨室이니 巨室之所慕 一國慕之하고 一國之所慕 天下慕之라하시니라
거실巨室에게 죄를 얻지 않아야 하니, 거실巨室이 사모하는 바를 온 나라가 사모하고, 한 나라가 사모하는 바를 온 천하가 사모한다.”라고 하셨다.
夫所謂世臣者 豈特世祿之人이며 而巨室者 豈特侈富之家也哉리오
이른바 세신世臣이란 것이 어찌 다만 대대로 祿을 먹는 사람이며, 거실巨室이란 것이 어찌 다만 사치하고 부유한 집안이겠는가?
蓋功烈已著於時하고 德望已信於人하니 譬之喬木하면 封殖愛養하야
세신世臣거실巨室공렬功烈이 당시에 드러나고 덕망德望이 사람들에게 믿어진 것이니, 이것을 교목喬木에 비유하면, 북돋우어 가꾸고 사랑하여 길러서 한 줌의 나무로부터 한 아름의 나무에 이르는 것이 하루아침의 연고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平居無事 商功利하고 誠不如新進之士어니와 至於緩急之際하야 決大策하고 安大衆하야 呼之則來하고 麾之則散者 惟世臣巨室爲能이라
평소 일이 없을 적에 공리功利를 헤아리고 전최殿最를 고과하는 것은 세신世臣거실巨室이 진실로 신진新進의 선비만 못하지만, 위급한 즈음에 이르러 큰 계책을 결단하고 대중을 편안하게 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부르면 오고 손을 흔들면 흩어지게 하는 것은 오직 세신世臣거실巨室만이 가능한 것이다.
내가 가우嘉祐 연간에 처음 의민 왕공懿敏 王公(왕소王素)을 성도成都에서 알았는데, 그 뒤에 기산岐山에서 종사할 적에 허주許州로부터 평량진平涼鎭으로 옮겨왔다.
方是時하야 虜大擧犯邊이어늘 轉運使攝帥事하야 與副總管議不合하야 軍無紀律하니 邊人 大恐하야 聲搖
이때를 당하여 오랑캐가 크게 군대를 일으켜 변경을 침범하였는데, 전운사轉運使절도사節度使의 일을 대행하면서 부총관副總管과 의견이 맞지 않아서 군사들이 기율紀律이 없으니, 변방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여 적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삼보三輔 지방을 진동하였다.
及聞公來 吏士踊躍傳呼하야 旗幟精明하고 鼓角讙亮한대 虜卽日解去어늘
그러다가 이 부임해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관리와 군사들이 기뻐서 날뛰며 전하여 고함쳐서 기치旗幟가 더 깨끗해지고 고각鼓角 소리가 더 커지고 맑아지자, 오랑캐들이 당일로 해산하고 돌아갔다.
公至 燕勞將佐而已
그런데 은 도착하여 장수와 보좌관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위로할 뿐이었다.
余然後 知老臣宿將 其功用 蓋如此하니 使新進之士當之 雖有 라도 豈能坐勝黙成 如此之捷乎
나는 그제야 늙은 신하와 오래된 장수의 공용功用이 이와 같음을 알았으니, 만일 신진新進의 선비가 이 일을 당했더라면 비록 한신韓信백기白起의 용맹과 장량張良진평陳平의 기지가 있더라도 어찌 앉아서 묵묵히 승리하여 성공하기를 이처럼 빨리할 수 있겠는가?
四年秋 余將往錢塘할새 見公於私第佚老堂하야 飮酒至暮러니 論及當世事하야 曰 吾老矣
희령熙寧 4년(1071) 가을에 내가 장차 전당錢塘으로 부임하려 할 적에 사제私第일로당佚老堂에서 뵙고 저녁까지 술을 마셨는데, 당세當世의 일을 논하면서 말씀하기를 “내 늙었다.
恐不復見하니 子厚自愛하야 無忘吾言하라하더니
다시 자네를 만나보지 못할 듯하니, 자네는 부디 스스로를 아껴서 나의 말을 잊지 말라.”고 하였다.
旣去二年 而公薨하고 又六年 乃作公之眞贊하야 以遺其子鞏하노라
내가 떠나온 지 2년 만에 이 별세하였고, 또 6년 만에 마침내 화상畫像을 지어서 아들 에게 주었다.
詞曰
은 다음과 같다.
당당하신 위공魏公(왕단王旦)이여!
配命召祖하고
소조召祖(소공 석召公 奭)와 천명天命을 짝하였고, 영명英明하고 진실한 의민공懿敏公이여!
維周之虎로다
나라의 소호召虎로다.
魏公在朝 百度維正하고 懿敏在外 이라
위공魏公이 조정에 있으니 온갖 법도가 바루어지고, 의민공懿敏公이 밖에 있으니 군대가 출동한다는 소문만 있고 떠드는 소리는 없었네.
高明廣大하야 宜公宜相하니 如木百圍 宜宮宜堂이라
고명高明하고 광대廣大하여 삼공三公의 지위에도 마땅하고 정승의 지위에도 마땅하니, 마치 백 아름 되는 나무가 에도 마땅하고 에도 마땅한 것과 같았네.
天旣厚之하고 又貴富之하니 如山如河하야 維安有之
하늘이 아름다운 재질을 많이 내리고 또 부귀하게 하니, 태산泰山과 같고 황하黃河와 같아서 편안히 이것을 소유하였네.
彼窶人子 旣陋且寒하니 終勞永憂하야 莫知其賢이라
저 가난한 사람의 자식들은 누추하고 또 빈한하니, 끝내 수고롭고 길이 근심해서 그 어짊을 알지 못하네.
曷不觀此
어찌 이 을 살펴보지 않는가.
佩玉劍履하니 이요 魏公之子로라
패옥佩玉과 신을 신고 있으니, 은 바로 진공晉公(왕호王祜)의 손자요 위공魏公의 아들이었네.
역주
역주1 王仲儀眞贊 : 王文誥의 《蘇文忠公詩編注集成總案》 18권에 “東坡가 元豐 2년(1079) 정월 15일 王素를 위하여 眞贊을 지었다.”고 하였다. 王素는 太尉 王旦의 작은아들인데, 字가 仲儀이고 進士出身으로 출사하여 屯田員外郞을 지내고 定州와 成都府를 맡았으며 端明殿學士에 제수되었다. 시호는 懿敏으로 《宋史》에 傳이 있다. 眞贊은 畫像의 찬이다.
역주2 孟子曰……有世臣之謂也 : 이 내용은 《孟子》 〈梁惠王 下〉에 보이는데, 故國은 건국한 지 오래되어 전통이 있는 나라이고, 世臣은 누대에 걸처 국가에 공훈이 있는 신하이다.
朱子의 《孟子集註》에 “喬木과 世臣은 모두 故國에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나, 故國이 되는 이유는 이 世臣에 있고 저 喬木에 있지 않다.[喬木世臣 皆故國所宜有 然所以爲故國者 則在此而不在彼也]”라고 注하였다.
역주3 又曰……天下慕之 : 이 내용은 《孟子》 〈離婁 上〉에 보이는데, 巨室은 世臣의 大家이며, 得罪는 군주 자신이 올바르지 못하여 巨室에게 원망과 노여움을 얻는 것이다.
역주4 自拱把……非一日之故也 : 拱은 두 손으로 에워싸는 것이고 把는 한 손으로 잡는 것이며 合抱는 한 아름을 이르는바, 나무가 점점 자라서 몇 아름이 되는 것은 사람의 수많은 공력이 있어서이니, 世臣과 巨室 역시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다.
역주5 課殿最 : 課는 考課이고 殿最는 관리의 성적을 考課하여 등급을 매기는 것으로, 殿은 최하등이고 最은 최상등이다.
역주6 嘉祐 : 仁宗의 연호로 1056년부터 1063년까지이다.
역주7 始識懿敏王公於成都 : 懿敏 王公은 王素를 가리킨 것으로 懿敏은 그의 시호이다. 王素는 嘉祐 3년부터 5년까지 知成都事로 있었으며, 嘉祐 2년 東坡는 모친상을 당하여 蜀으로 돌아와 居喪하였는바, 이때 서로 만난 것으로 보인다.
역주8 從事於岐 : 岐는 鳳翔府를 가리키는데, 東坡는 嘉祐 6년(1061)부터 英宗 治平 2년(1065)까지 鳳翔府 簽書判官으로 있었다.
역주9 公自許州 移鎭平涼 : 王素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으나 낮은 관직에 있게 되자 이를 불평하다가 知許州事로 나갔으며, 治平 초기 西夏에서 靜邊鎭을 침략하자 다시 知渭州事가 되었다. 渭州는 바로 平涼으로 지금의 甘肅省 涼縣이다.
역주10 三輔 : 漢나라 때에 長安의 주위를 京兆․馮翊․扶風 세 구역으로 나누고 三輔라 하였는데, 이후 都城의 좌우에 있는 큰 고을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역주11 韓白之勇 : 韓白은 韓信과 白起를 가리킨다. 韓信은 용맹과 지략이 뛰어나 秦나라 말기 봉기한 劉邦의 장수가 되어 여러 제후들을 차례로 평정하고, 垓下의 一戰으로 楚나라의 項羽를 멸망시키고 漢나라 帝國을 만들어 張良과 함께 開國三傑에 올랐다. 白起는 전국시대 秦나라의 장수로 역시 수많은 전공을 세운 인물이다.
역주12 良平之奇 : 良․平은 張良과 陳平으로 모두 漢 高祖(劉邦)의 謀士들인데, 지혜가 뛰어나 기이한 계책을 내어 漢나라의 開國에 많은 공을 세운 자들이다.
역주13 熙寧 : 神宗의 연호로 1068년부터 1077년까지이다.
역주14 堂堂魏公 配命召祖 : 魏公은 魏國公에 봉해진 王旦으로 王素의 아버지이다. 召祖는 周나라 초기의 명재상인 召公 奭으로 姓은 姬인데, 文王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文王의 친족이라고도 한다. 이는 위풍당당한 王旦의 모습이 召公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15 顯允懿敏 維周之虎 : 虎는 召虎로 周 宣王 때의 名臣인데 文武를 겸전한 인물이며 召公의 후손이므로, 懿敏公 王素가 召虎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16 有聞無聲 : 出兵한다는 소문만 있고 군사들이 출동하는 소리는 없음을 이른다.
《詩經》 〈小雅 車攻〉에 “之子가 출정하니 출정한다는 소문만 있고 출정하는 소리는 없네.[之子于征 有聞無聲]”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軍律이 지극히 엄숙하여 군사들이 출동하면서도 떠들지 않아 행군이 조용함을 말한 것이다.
周나라 왕실이 이미 쇠퇴하여 오랫동안 東都에서 諸侯들에게 조회를 받는 禮를 폐하였다가, 宣王에 이르러 안으로 政事를 닦고 밖으로 夷狄을 물리쳐 文王․武王의 옛 영토를 회복하였으며, 車馬를 수리하고 器械를 갖추어 다시 諸侯들을 東都에 모으고, 田獵을 통해서 車御와 步兵을 뽑았다. 이에 詩人이 〈車攻〉을 지어 찬미하였다고 한다. 之子는 有司로 담당 관원을 이른다.
역주17 晉公之孫 : 晉公은 晉國公에 봉해진 王祜로 王素는 王祜의 손자인데, 본서 27권 〈三槐堂銘〉에 자세히 보인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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