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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3)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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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7. 한유韓愈에 대한
前後數段 各自爲說이로되 而綱目整然하니라
앞뒤 몇 단락을 각각 따로 말하였으나 강령綱領조목條目이 정연하다.
聖人之道 有趍其名而好之者하고 有安其實而樂之者
성인聖人를 그 이름만 따라 좋아하는 자가 있고, 그 실제[]를 편안히 여겨서 즐거워하는 자가 있다.
珠璣象犀 天下莫不好하야 奔走出力하야 爭鬪奪取하니 其好之不可謂不至也
진주와 구슬과 상아象牙서각犀角을 천하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이가 없어서 분주히 힘을 다해 다투고 빼앗아 취하니, 그 좋아함이 지극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나 不知其所以好之之實이요 至於粟米蔬肉桑麻布帛하야는 天下之人 內之於口하야 而知其所以爲美하고 被之於身하야 而知其所以爲安하니 非有所役乎其名也
그러나 그 좋아하는 바의 실제는 알지 못하며, 곡식과 쌀, 채소와 고기, 뽕나무와 삼베와 명주베에 이르러서는 천하 사람들이 이것을 입에 넣어서 아름다운 음식이 되는 것을 알고 몸에 입어서 편안함이 됨을 아니, 이것은 실제를 따르는 것이요 그 이름[]에 힘쓰는 것이 아니다.
韓愈之於聖人之道 蓋亦知好其名矣 而未能樂其實하니 何者
한유韓愈성인聖人에 있어서 또한 그 이름만을 좋아할 줄 알고 그 실제를 좋아하지는 못했으니, 이는 어째서인가?
其爲論甚高하야 其待孔子, 孟軻甚尊이요 而拒楊, 墨, 佛, 老甚嚴하니 此其用力 亦不可謂不至也
그가 논한 것이 매우 높아서 공자孔子맹자孟子를 대한 것은 매우 높았고, 양주楊朱묵적墨翟, 불교佛敎노장老莊을 배척한 것은 매우 엄격하였으니, 이 또한 그가 힘쓴 것이 지극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나 其論 至於理而不精하고 支離蕩佚하야 往往自叛其說而不知하니라
그러나 그 의논이 이치를 말함에 있어서는 정밀하지 못하며 지리하고 방탕하여 왕왕 스스로 자기 주장에 위배되면서도 알지 못하였다.
옛날 재아宰我자공子貢유약有若은 번갈아 스승(공자孔子)을 칭송하여, 생민生民이 있은 이래로 부자夫子(공자孔子)처럼 성대盛大한 분은 있지 않다고 말하여, 비록 의 어짊으로도 또한 미치지 못하는 바라고 하였으니, 공자孔子를 높이고 배우기를 좋아함이 또한 이미 지극하였다.
然而君子不以爲貴하야라하니라
그러나 군자들이 이것을 귀하게 여기지 아니하여 말하기를 “재아宰我자공子貢유약有若은 그 지혜가 성인聖人의 낮은 경지만을 알기에 충분할 뿐이었다.”라고 하였다.
안연顔淵으로 말하면 어찌 또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겠는가?
蓋亦曰 夫子循循焉善誘人이라하니 由此觀之하면 聖人之道 果不在於張而大之也니라
안연顔淵은 말하기를 “부자夫子께서는 차근차근히 사람을 잘 이끄셨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가지고 관찰하면 성인聖人는 과연 과장하여 크게 하는 데 달려 있지 않은 것이다.
韓愈者 知好其名이요 而未能樂其實者也
한유韓愈란 자는 그 이름만을 좋아할 줄 알고 그 실제는 즐거워하지 못한 자이다.
한유韓愈의 〈원인原人〉에 이르기를 “하늘은 해와 달과 성신星辰의 주인이고, 땅은 산천山川초목草木의 주인이고, 사람은 이적夷狄금수禽獸의 주인이니, 주인으로서 이적夷狄금수禽獸를 포악하게 하면 주인 된 도리를 못하는 것이다.
是故 聖人 一視而同仁하고 篤近而擧遠이라하니라
이 때문에 성인聖人이 한결같이 보아 똑같이 사랑하고 가까운 사람을 돈독히 하면서도 먼 사람을 드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夫聖人之所爲異乎墨者 以其有別焉耳어늘 今愈之言曰 一視而同仁이라하니
성인聖人묵적墨翟과 다른 까닭은 그 분별이 있기 때문인데, 지금 한유韓愈의 말에 이르기를 “한결같이 보아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則是 以待人之道 待夷狄하고 待夷狄之道 待禽獸也 而可乎
이는 사람을 대하는 를 가지고 이적夷狄을 대하는 것이고, 이적夷狄을 대하는 를 가지고 금수禽獸를 대하는 것이니, 이것이 옳겠는가?
敎之使有能하고 化之使有知 是待人之仁也
사람을 가르쳐서 그로 하여금 능함이 있게 하고, 사람을 교화해서 그로 하여금 앎이 있게 하는 것은, 이는 사람을 대하는 이다.
不薄其禮而致其情하고 不責其去而厚其來 是待夷狄之仁也
를 박하지 않게 하고 그 을 지극히 하며, 가는 것을 꾸짖지 않고 오는 것을 후대함은, 이는 이적夷狄을 대하는 이다.
殺之(有)[以]時하고 而用之有節 是待禽獸之仁也
죽이는 데에 때가 있고 쓰는 데에 절도가 있는 것은, 이는 금수禽獸를 대하는 이다.
若之何其一之리오
그러니 어떻게 똑같이 할 수 있겠는가?
儒墨之相戾 不啻若胡越이로되 而其疑似之間 相去不能以髮이니 宜乎愈之以爲一也니라
유자儒子묵자墨子가 서로 다른 것이 북쪽의 오랑캐와 남쪽의 지방과 같을 뿐만이 아니나, 그 비슷한 사이에 서로의 차이는 털끝 하나도 되지 못하니, 한유韓愈가 이것을 똑같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 것은 당연한 듯하다.
이라하시니 仁者之爲親이면 則是孔子不兼愛也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인자仁者를 친근히 해야 한다.”라고 하셨으니, 인자仁者를 친근히 해야 한다면 이것은 공자께서 겸애兼愛하지 않은 것이요,
선조先祖를 제사할 적에는 선조先祖가 계신 것처럼 하셨고 귀신鬼神을 제사할 적에는 귀신鬼神이 계신 것처럼 하셨으니,
神不可知어늘 而祭者之心 以爲如其存焉이면 則是孔子不明鬼也시니라
귀신鬼神은 알 수 없는데 제사하는 자의 마음에 귀신鬼神이 계신 것처럼 여긴다면, 이는 공자孔子께서 귀신鬼神을 밝히지 않으신 것이다.
儒者之患 患在於論性하야 以爲喜怒哀樂 皆出於情이요 而非性之所有니라
유자儒者의 병통은 을 논하여 이르기를 “, , , 은 모두 에서 나오고 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는 데에 있는 것이다.
夫有喜有怒而後 有仁義하고 有哀有樂而後 有禮樂하니 以爲仁義禮樂 皆出於情而非性이라하면 則是相率而叛聖人之敎也니라
기쁨이 있고 노여움이 있은 이후에 인의仁義가 있고, 슬픔이 있고 즐거움이 있은 이후에 예악禮樂이 있으니, 인의仁義예악禮樂이 모두 에서 나오고 이 본래 소유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것은 사람들을 서로 이끌고 성인聖人의 가르침을 배반하는 행위이다.
아하니 喜怒哀樂 苟不出乎性而出乎情이면 則是相率而爲老子之嬰兒也니라
노자老子가 말하기를 “능히 갓난아기와 같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 , , 이 만일 에서 나오지 않고 에서 나온다면, 이는 사람들을 서로 이끌고 노자老子의 갓난아기가 되게 하는 것이다.
儒者或曰 老易이라하니 夫易豈老子之徒歟
그런데 유자儒者 중에 혹자는 말하기를 “노역老易이다.”라고 하니, 《주역周易》이 어찌 노자老子의 무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하니 則是離性以爲情者 其弊固至此也니라
그런데도 유자儒者들이 심지어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을 가지고 《주역周易》을 설명하기까지 하니, 이것은 을 분리하여 으로 삼는 것이니, 그 병폐가 진실로 여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嗟夫
아!
君子之爲學 知其人之所長하고 而不知其弊하면 豈可謂善學耶리오
군자가 학문을 할 적에 그 사람의 장점만을 알고 그 병폐를 알지 못한다면, 어찌 이것을 잘 배운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唐荊川曰 此文 截然四段이로되 而綱整目亂하니라
당형천唐荊川이 말하기를 “이 문장은 분명히 네 단락인데, 강령綱領은 정돈되었으나 조목條目은 혼란스럽다.
細觀此文體하면 乃絶是模擬爲之 坡翁之滑稽若此하니라
이 문체를 자세히 관찰하면 바로 〈원도原道〉를 크게 모의模擬하여 지은 것이니, 동파옹東坡翁의 익살스러움이 이와 같다.”라고 하였다.
予竊以愈之闢佛老也 特其門戶之間이어늘 而東坡所論 亦猶이니라
나는 생각하건대 한유韓愈를 배척한 것은 다만 그 문호門戶의 사이일 뿐인데, 동파東坡가 논한 것도 여전히 그 을 얻지 못하고서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韓愈論 : 이 글은 젊은 시절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韓愈(768~824)는 唐나라의 대문호이자 정치가로 字는 退之이고 昌黎伯에 봉해져 韓昌黎라 하였으며, 諡號는 文이다.
역주2 昔者宰我子貢有若……亦所不及 : 宰我(B.C. 522~B.C. 458)는 孔子의 제자로 이름이 予이며, 子貢(B.C. 520~?)은 성이 端木이고 이름이 賜인데, 두 사람은 모두 말을 잘하여 孔門十哲의 言語科에 들었다. 有若은 字가 子有이며 魯나라 사람이다.
《孟子》 〈公孫丑 上〉에 “宰我가 말하기를 ‘나로서 夫子(孔子)를 관찰하건대 堯․舜보다 훨씬 더 나으시다.’라고 하였다.
子貢이 말하기를 ‘禮를 보면 그 나라의 政事를 알 수 있고 音樂을 들으면 그 君主의 德을 알 수 있으니, 百世의 뒤에서 百世의 王들을 차등해 보건대 이것을 도피할 자가 없는데, 生民이 있은 이래로 夫子와 같은 분은 계시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有若이 말하기를 ‘어찌 다만 사람뿐이겠는가. 기린이 달리는 짐승에 있어서와, 봉황새가 나는 새에 있어서와, 태산이 언덕과 개밋둑에 있어서와, 河海가 길바닥에 고인 장마물에 있어서와 똑같으며, 聖人이 일반인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것이다. 그 종류 중에서 빼어나며 그 모인 것 중에서 높이 솟아났으나, 生民이 있은 이래로 孔子보다 더 훌륭한 분은 계시지 않다.’ 하였다.”라고 보인다.
역주3 宰我子貢有若 智足以知聖人之汚而已矣 : 이 내용 역시 《孟子》 〈公孫丑 上〉에 ‘宰我子貢有若智足以知聖人汚不至阿其所好’라고 보이는데, 이것을 蘇軾은 ‘汚’를 ‘聖人’에 붙여 “宰我와 子貢과 有若은 지혜가 충분히 聖人의 낮은 경지를 알아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첨하는 데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해석한 것이다.
그러나 朱子는 《論語集註》에서 ‘汚’를 아래에 붙여 “宰我와 子貢과 有若은 지혜가 충분히 聖人을 알 수 있었으니, 최소한 자신들이 좋아하는 분에게 아첨하는 데에는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해석하여 汚를 ‘최소한’의 뜻으로 보았다.
역주4 顔淵豈亦云爾哉……夫子循循焉善誘人 : 顔淵(B.C. 521~B.C. 490)은 이름이 回이고 字가 子淵인데 顔淵으로 많이 칭하였는바, 德行에 뛰어났다.
《論語》 〈子罕〉에 “顔淵이 크게 탄식하며 ‘〈夫子의 道는〉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며, 바라봄에 앞에 있더니 갑자기 뒤에 있도다. 夫子께서 차근차근히 사람을 잘 이끄시어, 文으로써 나의 지식을 넓혀주시고, 禮로써 나의 행실을 요약하게(묶게) 해주셨다. 〈공부를〉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 없어 이미 나의 재주를 다하니, 〈夫子의 道가〉 마치 내 앞에 우뚝 서 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비록 이것을 따르고자 하나 말미암을 데가 없도다.’라고 했다.[顔淵喟然歎曰 仰之彌高 鑽之彌堅 瞻之在前 忽焉在後 夫子循循然善誘人 博我以文 約我以禮 欲罷不能 旣竭吾才 如有所立卓爾 雖欲從之 末由也已]” 하였다.
역주5 天者……篤近而擧遠 : 이 내용은 韓愈의 〈原人〉에 보이는데, 全文은 아래와 같다.
“위에 형체가 있는 것을 하늘이라 이르고, 아래에 형체가 있는 것을 땅이라 이르고, 그 둘 사이에 命을 받은 것을 사람이라 이르니, 위에 형체가 있는 것은 日․月․星辰이 모두 하늘이요, 아래에 형체가 있는 것은 草․木과 山․川이 모두 땅이요, 그 둘 사이에서 命을 받은 것은 夷狄과 禽獸가 모두 사람이다.
그렇다면 내가 금수를 일러 사람이라 하여도 되겠는가. 아니다. 산을 가리켜 ‘산인가?’ 하고 물으면 산이라고 대답하는 것은 可하니, 산에 있는 초목과 금수를 모두 든 것이다. 그러나 산의 풀 한 포기를 가리키면서 ‘산인가?’ 하고 물으면 산이라고 대답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그러므로 天道가 혼란함에 日․月․星辰이 그 운행을 얻지 못하고, 地道가 혼란함에 草․木과 山․川이 그 평함을 얻지 못하고, 人道가 혼란함에 夷狄과 禽獸가 그 실정을 얻지 못하니, 하늘은 日․月․星辰의 주인이요, 땅은 草․木과 山․川의 주인이요, 사람은 夷狄과 禽獸의 주인이니, 주인으로서 포악하게 하면 주인 된 도리를 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聖人은 한결같이 보아 똑같이 사랑하고 가까운 것을 돈독히 하면서도 먼 것을 드는 것이다.[形於上者 謂之天 形於下者 謂之地 命於其兩間者 謂之人 形於上 日月星辰皆天也 形於下 草木山川皆地也 命於其兩間 夷狄禽獸皆人也 曰 然則吾謂禽獸曰人可乎 曰 非也 指山而問焉曰山乎 曰山可也 山有草木禽獸皆擧之矣 指山之一草而問焉曰山乎 曰山則不可 故天道亂 而日月星辰不得其行 地道亂 而草木山川不得其平 人道亂 而夷狄禽獸不得其情 天者日月星辰之主也 地者草木山川之主也 人者夷狄禽獸之主也 主而暴之 不得其爲主之道矣 是故聖人一視而同仁 篤近而擧遠]”
역주6 孔子曰 泛愛衆而親仁 : 《論語》 〈學而〉에 “孔子께서 ‘자제들이 들어가서는 효도하고 나와서는 공손하며, 행실을 삼가고 말을 성실하게 하며, 널리 사람들을 사랑하되 仁한 자를 친근히 해야 하니, 이것을 행하고 餘力(餘暇)이 있으면 여가를 이용하여 글을 배워야 한다.’라고 하셨다.[子曰 弟子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 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라고 보이는데, 蘇軾은 이것을 인용하여 墨翟의 兼愛說과 韓愈의 ‘一視同仁’을 비판한 것이다.
역주7 祭如在 祭神如神在 : 《論語》 〈八佾〉에 보이는 孔子의 말씀인데, 程伊川은 해석하기를 “祭는 先祖에게 제사함이요, 祭神은 外神(先祖 이외의 神)에게 제사함이다. 先祖를 제사함은 孝를 위주로 하고, 神을 제사함은 敬을 위주로 한다.”라고 하였다.
墨翟의 《墨子》에 上․中․下 세 편의 〈明鬼〉가 있는데, 이는 귀신이 실제로 있음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蘇軾은 孔子의 일을 인용하여 墨翟의 〈明鬼〉가 옳지 않음을 비판한 것이다.
역주8 老子曰 能嬰兒乎 : 이 내용은 《道德經》에 “기운을 오롯히 하고 부드러움을 지극히 해서 능히 갓난아기와 같을 수 있겠는가?[專氣致柔 能嬰兒乎]”라고 보인다.  
역주9 儒者至有以老子說易 : 王弼의 《周易注》가 바로 여기에 해당된다고 한다.
역주10 原道 : 韓愈가 지은 글의 편명인데, 여기에는 孔子와 孟子의 儒道를 높이고, 楊朱와 墨翟, 老莊과 佛家를 크게 비판하였다.
역주11 不得乎其門而爲之言 : 門은 집에 들어가는 첫 번째 요소이므로 중요한 관건이나 기본적인 소양을 비유하여 ‘入道之門’, ‘入德之門’이라 하고, 또 이것을 줄여 ‘入門’이라 하기도 한다. 茅坤과 唐順之 등은 程伊川과 朱子의 性理學을 신봉하여 程․朱 이전에 나온 性理說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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