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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2)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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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9. 이방숙李方叔에게 준 글
詞旨瀟灑하야 可誦이라
글 뜻이 맑고 깨끗하여 읽을 만하다.
屢獲來敎로되 因循不一裁答하니 悚息不已
보내준 편지를 여러 번 받았으나 그럭저럭 한 번도 답장을 못하였으니, 송구한 마음 그지없소.
比日履玆秋暑 起居佳勝이닛가
요즘 가을 더위에 기거起居는 아름답고 건승健勝하오?
錄示 及數詩 辭意整暇하야 有加於前하니 得之極喜慰
써서 보내준 자준子駿행장行狀과 몇 수의 는 글 뜻이 정돈되고 여유가 있어서 예전보다 훨씬 나으니, 이것을 얻음에 몹시 기쁘고 위로가 되오.
累書 見責以不相薦引하니 讀之甚愧
족하足下는 몇 번의 편지에서 “아는 사람을 천거하고 이끌어주지 않는다.”고 나를 책망하니, 편지를 읽고 매우 부끄럽소.
이나 其說 不可不盡이로라 君子之知人 務相勉於道 不務相引於利也
그러나 그 이유를 다 말하지 않을 수 없으니, 군자가 사람을 아는 것은 서로 를 권면하는 것에 힘쓰고 서로 이익으로 이끌어주는 것에 힘쓰지 않는 법이오.
足下之文 過人處不少하니 及子駿行狀之類 筆勢翩翩하야 有可以追古作者之道
족하足下의 문장은 남보다 뛰어난 부분이 적지 않으니, 이씨李氏묘표墓表자준子駿행장行狀 같은 것은 필세가 훨훨 날아가는 듯해서 옛 작자들을 따라갈 수 있는 방도가 있소.
至若前所示하야는 則讀之終篇 莫知所謂하니 意者컨대 足下未甚有得於中而張其外者리라
그러나 예전에 보여주었던 《병감兵鑑》에 있어서는 끝까지 다 읽어보았으나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으니, 짐작하건대 족하足下가 마음속에 얻은 것이 깊지 못하면서 겉으로만 펼쳐낸 듯하오.
不然이면 則老病昏惑하야 不識其趣也리라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내가 늙고 병들고 어리석고 미혹되어서 그 취지를 알지 못하는 것일 것이오.
以此 私意猶冀足下積學不倦하야 落其華而成其實하노니 深願足下爲禮義君子 不願足下豊於財而廉於德也로라
이로써 나의 사사로운 생각에는 아직도 족하足下가 학문을 쌓음에 게으르지 않아서 화려함을 떨쳐버리고 진실함을 이루기를 바라는 것이니, 나는 족하足下예의禮義군자君子가 되기를 깊이 원하고 족하足下가 재물에는 풍족하나 에는 부족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오.
若進退之際 不甚愼靜이면 則於 不能有毫髮增益하고 而於道德 有丘山之損矣리라
만약 나가고 물러가는 즈음에 심히 신중히 하고 고요히 하지 않으면 천명을 보존함에 있어서는 터럭만큼도 보탬이 되지 못하고, 도덕道德에 있어서는 언덕이나 산처럼 큰 손실이 있을 것이오.
古之君子 貴賤相因하고 先後相援 固多矣 軾非敢廢此道
옛날 군자들은 귀하든 천하든 간에 서로 이용하고 선후배 간에 서로 원조한 것이 진실로 많았으니, 내가 감히 이 도리를 폐하려는 것이 아니오.
平生相知心 所謂賢者 則於稠人中譽之하니
평소에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자 가운데에 이른바 현자賢者가 있으면 나는 여러 사람 가운데에 그를 칭찬하오.
或因其言하야 以考其實하야 實至則名隨之하나니 名不可掩하야 其自爲世用 理勢固然이니 非力致也
이는 혹 나의 말로 인하여 그 실제를 고찰해서 실제가 지극하면 명성이 따르게 되니, 명성은 가릴 수가 없어서 저절로 세상에 쓰여지는바, 이는 이치와 형세상 당연한 것이니, 힘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오.
居都下逾年 未嘗一至貴人之門하고 欲一見호되 終不可得이러니 薦之하고 軾亦掛名其間이러니 會朝廷多知履常者 得一官이라
진리상陳履常도하都下에 산 지가 1년이 넘었는데도 일찍이 한 번도 귀한 사람의 문에 이르지 않았고, 장자후章子厚가 한 번 만나보려 하였으나 끝내 만나볼 수가 없었는데, 중승中丞부흠지傅欽之시랑侍郞손신로孫莘老가 그를 천거하였고 나 또한 그 사이에 이름을 걸었는데, 마침 조정에 진리상陳履常을 아는 자가 많았기 때문에 벼슬을 얻은 것이오.
孤立言輕하야 未嘗獨薦人也로라
나는 고립되어 있고 말이 가벼워서 일찍이 홀로 사람을 천거한 적이 없다오.
爵祿 乃人主所專이라 宰相 猶不敢必이어늘 而欲責於軾이면 可乎
작록爵祿은 바로 인주人主가 마음대로 내려주는 것이어서 재상도 감히 기필할 수가 없는데, 나에게 이것을 요구한다면 되겠소?
非古也 殆似하니 當得罪於孔門矣리라
동한시대東漢時代처사處士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시호諡號를 지어준 것은 옛 법이 아니니, 이는 아마도 좌구명左丘明소신素臣이라 한 것이 마땅히 공자孔子문하門下에 죄가 되는 것과 같을 것이오.
蓋亦蹈襲流弊하니 不足法이어늘 而況近相名字者乎
맹생孟生(맹교孟郊)이 정요貞曜라는 시호를 받은 것 또한 유폐流弊를 답습한 것이니 족히 본받을 것이 없는데, 더구나 근일에 서로 이름을 불러주고 를 붙여주는 자에 있어서이겠소?
甚不願足下此等也로라
나는 족하足下가 이러한 일을 하는 것을 깊이 바라지 않소.
軾於足下 非愛之深, 期之遠이면 定不及此하리니 猶能察其意否
내가 족하足下를 깊이 사랑하고 크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면 참으로 이것을 언급하지 않을 것이니, 그런데도 나의 뜻을 살피지 못하겠소?
有書來 亦論足下近文益奇라하니
근간에 진소유秦少游가 편지를 보내왔는데 또한 족하足下가 지은 최근의 문장이 더욱 기이하다고 논하였소.
明主求人 如不及하시니 豈有終汨沒之理리오
명주明主께서 인재를 구하시기를 미치지 못할 듯이 하시는데 어찌 끝내 묻혀 지낼 리가 있겠소?
足下但信道自守 當不求自至리니 若不深自重이면 恐喪失所有
족하足下가 다만 를 믿고 스스로 지조를 지킨다면 작록爵祿은 구하지 않아도 마땅히 스스로 올 것이니, 만약 깊이 자중하지 않는다면 간직하고 있는 것을 상실할까 두렵소.
言切而盡하니 臨紙悚息이라
말이 간절하고 곡진하니 편지를 대함에 송구하오.
未卽會見하니 千萬保愛하라
곧바로 만나볼 수가 없으니, 천 번 만 번 보중하고 자애하시오.
近夜眼昏하야 不一不一하노라
밤이 가까워 눈이 어두워져서 일일이 쓰지 못하오.
역주
역주1 與李方叔書 : 이 글은, 元祐 3년(1088) 蘇軾이 知貢擧로 있었는데, 李廌가 낙방하고 자신을 천거해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자 그를 위로하기 위해 보낸 것이다. 方叔은 李廌의 字이다. 李廌는 陽翟 사람으로 蘇軾과 從遊하여 ‘蘇門六君子’의 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蘇門六君子는 黃庭堅․秦觀․張耒․晁補之의 四學士에 陳師道와 李廌를 더하여 붙인 이름이다.
역주2 子駿行狀 : 子駿은 鮮于侁의 字이다. 그가 元祐 2년(1087)에 죽자, 李廌가 그를 위하여 行狀을 지은 것이다.
역주3 李氏墓表 : 李氏는 누구인지 자세하지 않다.
역주4 兵鑑 : 李廌가 戰爭과 用兵에 귀감이 될 만한 내용을 뽑아 모아 지은 책으로 추측된다.
역주5 定命 : 天命을 온전히 보전함을 이르는데, 《唐宋八大家文鈔 校注集評》에는 ‘運命’으로 표기되어 있다.
역주6 陳履常 : 履常은 陳師道(1053~1102)의 字이다. 또 다른 字는 無己이고 號는 后山居士이다. 曾鞏의 門人으로 志節이 높아 일체 청탁을 하지 않았으며, 초겨울에 얇은 옷을 입고 郊祭에 참여하였다가 얼어 죽었다. 蘇軾과도 從遊하였으나 門人이 되라는 권고를 거절하고 오직 曾鞏의 門人으로 행세하였다.
역주7 章子厚 : 子厚는 章惇의 字이다. 北宋의 大臣으로 王安石의 新法에 붙어 不法을 자행하였으며, 결국 王安石을 실각시키고 권력을 독단하였다. 蘇軾과도 처음에는 친했으나 뒤에는 사이가 나빠졌다.
역주8 中丞傅欽之 : 中丞은 御史中丞이며, 欽之는 傅堯兪의 字이다. 元祐 초년(1086) 御史中丞으로 있었으며, 元祐 4년(1089) 中書侍郞에 제수되었다.
역주9 侍郞孫莘老 : 莘老는 孫覺의 字로, 元祐 초년에 吏部侍郞으로 있었다.
역주10 東漢處士 私相諡 : 東漢時代에는 명망 있는 선비가 죽으면 處士들끼리 상의하여 號를 붙여주고 이를 私諡라 하였다.
역주11 丘明爲素臣 : 丘明은 《春秋左氏傳》을 지었다는 左丘明을 가리킨다. 杜預의 〈春秋左氏傳序〉에 “左丘明이 《春秋經》을 孔子에게서 전수받았다.”라고 하였다. 또 “혹자는 孔子가 《春秋經》을 지은 것에 대해 《春秋左氏傳》과 《春秋公羊傳》에는 분명한 글이 없는데, 《春秋左氏傳》을 해설한 자는 ‘仲尼가 衛나라로부터 魯나라로 돌아와서 《春秋經》을 편수하여 素王이 되고, 左丘明이 《春秋左氏傳》을 지어 素臣이 되었다.’라고 하였고, 《春秋公羊傳》을 해설한 자도 ‘孔子가 《春秋經》에서 周나라를 내치고 魯나라를 王(天子)으로 여겼기 때문에 행동은 준엄히 하였으나 말씀은 겸손히 하여 당시의 禍를 피하려 하였다. 그러므로 그 文辭를 간략하게 만들어 그 뜻을 숨긴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春秋公羊傳》에는 ‘經文이 ‘獲麟’에서 끝났는데 《春秋左氏傳》은 ‘孔丘卒’에서 끝났으니, 감히 묻건대 그대는 어느 說을 옳다고 여기는가?’라고 하였는데, 그 註에 ‘素는 空의 뜻이니, 帝王의 지위는 차지하지 못했으나 帝王의 德을 갖추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麒麟은 王者를 위해 나오는 상서로운 짐승인데, 지금 孔子를 위해 나왔기 때문에 孔子가 素王이 된 것이다. 그리고 孔子가 《春秋經》을 편수하여 素王이 되었기 때문에 《春秋左氏傳》을 지은 左丘明이 素臣이 된 것이다.’라고 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東漢의 處士들이 멋대로 私諡를 지어준 것은 孔子를 素王이라 칭하고 左丘明을 素臣으로 칭한 것과 유사하여, 素王과 素臣의 칭호를 붙인 자들은 孔門의 忠臣이 아니요, 도리어 孔門의 죄인임을 말한 것이다.
역주12 孟生貞曜 : 孟生은 唐나라 때의 孟郊(751~814)를 가리키는바, 그가 64세로 죽자, 친구인 張籍이 貞曜先生이라는 私諡를 붙여주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13 秦少游 : 少游는 秦觀의 字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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