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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4)

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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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 막히고 가린 것을 터놓아야 한다
省事勵精二者 亦切中今日之情하니라
일을 줄이는 것과 정신을 가다듬어 집중하는 것 두 가지는 지금 실정에 매우 맞는다.
所貴乎朝廷淸明而天下治平者 何也
조정朝廷이 깨끗하고 천하天下치평治平함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어째서입니까?
天下不訴而無冤하고 不謁而得其所欲이니 堯舜之盛也
천하天下 사람들이 하소연하지 않아도 억울한 일이 없고 소청訴請하지 않아도 자기 소원을 얻게 하는 것이니, 이것은 순시대舜時代의 훌륭한 일입니다.
其次 不能無訴 訴而必見察하고 不能無謁이나 謁而必見省하야 使遠方之賤吏 不知朝廷之高하고 而一介之小民으로 不識官府之難이니 而後 天下治리이다
그 다음은 하소연이 없지는 않으나 하소연하면 반드시 살펴주고, 소청이 없지는 않으나 소청하면 반드시 살펴주어서, 먼 지방의 낮은 관리로 하여금 조정이 높은 줄을 알지 못하고, 한 명의 일반 백성으로 하여금 관부官府에 가서 소청하고 하소연하는 어려움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이렇게 한 뒤에야 천하天下가 제대로 다스려질 것입니다.
今夫一人之身 有一心兩手而已
지금 한 사람의 몸에는 한 마음과 두 손이 있을 뿐입니다.
疾痛痾癢 動於百體之中이면 雖其甚微하야 不足以爲患이로되 而手隨至하나니 夫手之至 豈其一一而聽之心哉잇가
병으로 아프고 피부가 가려운 증상이 온몸의 여러 곳에 나타나면 비록 매우 작아서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라도 손이 즉시 가니, 손이 갈 적에 어찌 일일이 마음에게 명령을 듣겠습니까?
心之所以素愛其身者深하고 而手之所以素聽於心者熟이라 是故 不待使令하고 而卒然以自至하나니 聖人之治天下 亦如此而已니이다
마음이 평소 자기 몸을 아끼는 것이 지극하고 손이 평소 마음에게 명령을 듣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에 마음이 부리고 명령하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도 손이 대번에 저절로 가는 것이니, 성인聖人천하天下를 다스리는 것도 또한 이와 같을 뿐입니다.
百官之衆 四海之廣 使其關節脈理相通爲一하야 叩之而必聞하고 觸之而必應하니 夫是以 天下可使爲一身이요 天子之貴 士民之賤 可使相愛하야 憂患 可使同하고 緩急 可使救니이다
많은 백관百官과 넓은 사해四海를 그 관절과 맥락이 서로 통하여 하나가 되게 해서 두드리면 반드시 듣고 저촉하면 반드시 응하게 하니, 이 때문에 천하天下 사람들로 하여금 한 몸이 되게 할 수 있고, 귀한 천자天子와 천한 사민士民들로 하여금 서로 사랑하게 해서 우환이 있을 경우 함께 대처하고 위급한 일이 있을 경우 서로 구원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今也不然하야 天下有不幸而訴其冤이면 如訴之於天하고 有不得已而謁其所欲이면 如謁之於鬼神이라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천하天下 사람 중에 불행한 일이 있어서 억울함을 하소연하려면 마치 하늘에 하소연하는 것처럼 어렵고, 부득이한 일이 있어서 원하는 바를 소청하려면 마치 귀신에게 소청하는 것처럼 시행되기 어렵습니다.
公卿大臣 不能究其詳悉하고 而付之於胥吏
그런데 공경公卿대신大臣들이 그 자세한 내용을 살피지 못하고 이것을 서리胥吏에게 맡깁니다.
凡賄賂先至者 朝請而夕得하고 徒手而來者 終年而不獲하며 至於故常之事 人之所當得而無疑者하야도 莫不務爲留滯以待請屬하야
그러므로 무릇 먼저 뇌물을 바친 자는 아침에 청하면 저녁에 원하는 바를 얻고, 맨손으로 온 자는 한 해가 마치도록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며, 예전부터 항상 있었던 일로 사람들이 의심할 것 없이 당연히 얻어야 할 일에 이르러서도 되도록 보류하고 지체하여 소청을 기다리지 않음이 없습니다.
擧天下一毫之事 非金錢이면 無以行之니이다
그리하여 온 천하에 털끝만 한 일도 금전이 아니면 시행되지 못합니다.
昔者漢唐之弊 患法不明而用之不密하야 使吏得以空虛無據之法으로 而繩天下
옛날 나라와 나라의 병폐는 법이 분명하지 못하고 법의 적용이 치밀하지 못해서, 관리들로 하여금 공허하여 근거 없는 법을 가지고 천하天下를 다스리게 한 것이었습니다.
小人以無法爲姦이러니
그러므로 소인小人들이 법이 없는 것을 가지고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今也 法令明具하고 而用之至密하야 擧天下惟法之知
그런데 지금은 법령이 분명히 갖춰져 있고 법의 적용이 지극히 치밀하여 온 천하가 오직 법만 압니다.
所欲排者 有小不如法이면 而可指以爲瑕하고 所欲與者 雖有所乖戾 而可借法以爲解
그래서 배척하고자 하는 자에게는 조금만 법대로 하지 않으면 지적하여 하자로 삼아 들어주지 않고, 도와주고자 하는 자에게는 비록 법에 어긋나는 것이 있더라도 법을 빌어서 해결해줍니다.
小人以法爲姦이니이다
그러므로 소인小人들이 법을 가지고 부정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今夫天下所爲多事者 豈事之誠多耶잇가
지금 천하天下에 일이 많은 것은 어찌 참으로 일이 많기 때문이겠습니까?
吏欲有所鬻而未得이면 則新故相仍하야 紛然而不決하니 此王化之所以壅遏而不行也니이다
관리들이 부정을 저지르고자 하는데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하면 옛것과 새로운 것이 연이어 쌓여서 분분하여 해결하지 못하니, 이것이 조정의 교화가 막혀서 행해지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昔桓文之霸 百官承職하야 不待敎令而辦하고 四方之賓至 不求有司하며
옛날 제 환공齊 桓公진 문공晉 文公패자霸者가 되었을 적에는 백관百官들이 직책을 받들어 시행해서 상부의 지시와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도 일을 잘 처리하였고, 사방의 손님(외교사신)이 올 적에 굳이 유사有司를 찾지 않았습니다.
之治秦 事至纖悉 莫不盡擧로되 而人不以爲煩하니이다
왕맹王猛나라(전진前秦)를 다스릴 적에는 작은 일에 이르기까지 다 거행되지 않는 것이 없었으나 사람들이 번거롭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蓋史之所記 할새 請於猛한대 猛曰 速裝行矣
역사책의 기록을 보면 마사麻思기주冀州로 돌아가고자 하여 왕맹王猛에게 요청하자, 왕맹王猛이 말하기를 “속히 행장을 차려 떠나라.”고 하였습니다.
至暮而符下러니 及出關 郡縣皆已被符하니 其令行禁止而無留事者 至於纖悉 莫不皆然하니이다
그래서 저녁에 (신표)가 내려졌는데, 마사麻思가 관문을 나갈 적에 군현郡縣이 모두 이미 가 내려졌다는 을 받아 관문을 열어주었으니, 명령하면 행해지고 금하면 그쳐져서 지체되지 않은 것이 작은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렇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부견苻堅이 오랑캐의 종자로서 패왕霸王이 되기까지 하여 군대가 강하고 나라가 부유해서 태평성세에 이르게 되었던 것은 참으로 왕맹王猛의 다스림 덕분이었습니다.
今天下治安하고 大吏奉法하야 不敢顧私로되
지금 천하天下가 편안히 다스려지고 높은 관리들이 법을 잘 받들어서 감히 사사로움을 돌보지 않습니다.
而府史之屬 招權鬻法이어늘 長吏心知而不問하야 以爲當然하니 此其弊有二而已니이다
그런데도 부사府史의 낮은 관리들이 권력을 농간하고 옥송獄訟을 부정하게 처리하는데, 장관이 마음속으로 이것을 알면서도 따지지 아니하여 당연하게 여기니, 여기에는 그 병폐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事繁而官不勤이라 權在胥吏하니
사무가 너무 많고 관원들이 부지런히 일하지 않으므로 권한이 서리胥吏에게 있는 것입니다.
欲去其弊也인댄 莫如省事而厲精이니 省事 莫如任人이요 厲精 莫如自上率之니이다
이 병폐를 제거하고자 한다면 일을 줄이고 온 정신을 가다듬어 여기에 집중하는 것만 한 것이 없으니, 일을 줄이는 것은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좋고, 정신을 가다듬어 한 일에 집중하는 것은 윗사람이 솔선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今之所謂至繁하야 天下之事 關於其中하야 訴者之多하고 而謁者之衆 莫如하니이다
지금에 이른바 사무가 지극히 많아 천하天下의 일이 모두 그 안에 관련되어 있어서 하소연하는 자가 많고 청하는 자가 많기로는 중서성中書省삼사三司만 한 곳이 없습니다.
天下之事 分於百官하야 而中書 聽其治要하고 郡縣錢幣 制於轉運使하야 而三司 受其會計 此宜若不至於繁多니이다
천하天下의 일(사무)을 백관들에게 나누어주고서 중서성中書省에서는 중요한 사무만을 다스리며, 군현郡縣금전金錢폐백幣帛전운사轉運使에게 통제하게 하여 삼사三司에서는 그 회계會計만을 받게 한다면 마땅히 번다함에 이르지 않을 듯합니다.
이나 中書不待奏課以定其黜陟하고 而關與其事하니 則是不任有司也
그러나 지금 중서성中書省에서는 관련 부서에서 고과考課를 상주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관리의 출척黜陟을 정하여 그 일에 직접 관여하니, 이는 유사有司에게 맡기지 않는 것입니다.
三司之吏 推析贏虛하야 至於毫毛하야 以繩郡縣하니 則是不任轉運使也
그리고 삼사三司의 관리가 군현의 재정이 남고 부족한 것을 털끝만 한 것까지 추산하여 군현郡縣을 다스리고 있으니 이는 전운사轉運使에게 맡기지 않는 것입니다.
曰 省事莫如任人이라하노이다
그러므로 은 말하기를 ‘일을 줄이는 것은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좋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古之聖王 愛日以求治하야 辨色而視朝하니 苟少安焉하야 而至於日出이면 則終日爲之不給이라
옛날 성왕聖王들은 날짜를 아끼면서 부지런히 힘써 나라가 잘 다스려지기를 바라서 먼동이 터 하늘빛이 밝아지면 조회朝會를 보았으니, 만일 조금 편안하고자 하여 해가 나온 후에 조회를 보면 종일토록 일을 하여도 부족하였습니다.
以少而言之하면 一日而廢一事인댄 一月則可知也 一歲則事之積者 不可勝數矣
적은 것을 가지고 말하면, 하루에 한 가지 일을 하지 못할 경우 한 달이면 30가지가 지체됨을 알 수 있고, 1년이면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쌓입니다.
欲事之無繁인댄 則必勞於始而逸於終하야 晨興而晏罷
일이 번거롭지 않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처음에 수고롭고 끝에 편안하게 해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 정무政務를 보고 늦게 정무政務를 파해야 합니다.
天子未退 則宰相不敢歸安於私第 宰相日昃而不退 則百官莫不震悚盡力於王事하야 而不敢宴游하리니 如此 則纖悉隱微 莫不擧矣리이다
천자天子가 퇴청하지 않으면 재상宰相이 감히 사제私第로 돌아가서 편안히 있지 못하고, 재상이 해가 기우는데도 퇴청하지 않으면 백관들이 두려워하여 국사國事에 힘을 다하지 않는 이가 없어서 감히 편안히 놀지 못할 것이니, 이와 같으면 작은 일과 은미隱微한 일도 거행되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天子求治之勤 過於先王이어시늘 而議者不稱하고 而稱하며 不論하고 而論하니 此何以率天下之怠耶잇가
천자天子께서 나라가 잘 다스려지기를 바라시는 부지런함이 선왕先王보다도 더하신데, 의논하는 자들이 왕계王季가 늦게까지 조회본 것을 말하지 않고 임금의 무위無爲만을 말하며, 문왕文王이 해가 기울도록 일하신 것을 논하지 않고 진 시황秦 始皇이 문서를 저울로 달아서 처리한 것만을 논하니, 이러고서야 어떻게 천하天下의 태만한 사람들을 통솔할 수 있겠습니까?
曰 厲精 莫如自上率之라하니 則壅蔽決矣리이다
은 그러므로 “정신을 가다듬어 한 일에 집중하는 것은 윗사람들이 솔선하는 것이 가장 좋다.”라고 하는 것이니, 이렇게 하면 막히고 가린 것이 해결될 것입니다.
唐荊川曰
당형천唐荊川이 말하였다.
前半 言壅蔽之當決하고 言所以決之之道하니라
“전반부에는 막히고 가린 바를 마땅히 해결해야 함을 말하였고, 후반부에는 이것을 해결하는 방도를 말하였다.”
역주
역주1 決壅蔽 : 이 글은 〈策別 課百官〉의 세 번째 편으로 본래의 제목은 〈策別 課百官 三〉이다. 本集에는 편 머리에 ‘其三曰決壅蔽’라고 표기되어 있다.
역주2 王猛 : 五胡十六國時代 前秦의 명재상으로 字가 景略이며 青州 北海郡 劇縣 사람이다. 前秦의 황제 苻堅을 도와 前秦을 당대 최강의 국가로 만들었다.
역주3 麻思還冀州 : 麻思는 王猛의 부장으로 關西 지방에 우거하고 있었는데, 이때 冀州에 있는 어머니가 별세하자 장례를 지내기 위하여 돌아간 것이다. 《晉書 王猛傳》
역주4 苻堅以戎狄之種……垂及升平者 : 苻堅은 前秦의 황제로 원래 氐族 출신이기 때문에 ‘戎狄之種’이라고 한 것이다. 升平은 昇平으로도 표기하는데 태평성세를 이르는바, 苻堅의 前秦이 五胡十六國 가운데 가장 강성하였고 국가가 잘 다스려졌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5 中書與三司 : 中書는 中書省인데 國政의 최고기관으로 政務를 관장하여 모든 政令이 이곳에서 나왔다. 三司는 나라의 財政을 맡은 鹽鐵司, 度支司, 戶部司로 計省이라고도 칭하였는데, 王安石이 執政한 뒤에는 三司條例司로 통합되었다.
역주6 王季之晏朝 : 王季는 周나라 文王의 아버지이고 晏朝는 늦게까지 조회를 열어 國事에 부지런히 종사함을 이른다. 이 내용은 《史記》 〈周本紀〉에 “公季는 古公이 남겨준 道를 닦아서 더욱 독실하게 義를 행하여 제후들이 순종하였다.[公季修古公遺道 篤於行義 諸侯順之]”라고 보이는데, 이를 원용하여 蘇軾이 이렇게 말한 것이다. 公季는 뒤에 王季로 추존되었으며, 古公은 古公亶父로 뒤에 太王으로 추존되었다.
역주7 舜之無爲 : 無爲는 無爲而治로 《論語》 〈衛靈公〉에 “無爲로(저절로) 다스리신 자는 舜임금이실 것이다. 무엇을 하셨겠는가? 몸을 공손히 하고 바르게 南面을 하셨을 뿐이었다.[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面而已矣]”라고 보인다.
東坡는 당시 관리들이 無事安逸에 빠져 舜임금의 無爲而治만을 부르짖고 王季가 해가 기울 때까지 政務를 보아 부지런하였음을 말하지 않는 것을 비판한 것이다.
역주8 文王之日昃 : 日昃은 해가 기우는 것으로 《書經》 〈周書 無逸〉에 “文王은 아침부터 해가 중천에 뜰 때와 해가 기울 때에 이르도록 한가롭게 밥 먹을 겨를도 없으시어 萬民들을 모두 화합하게 하셨습니다.[自朝至于日中昃 不遑暇食 用咸化萬民]”라고 보인다.
역주9 始皇之量書 : 量書는 황제가 처리해야 할 文書를 헤아리는 것으로 《史記》 〈秦始皇本紀〉에 “侯生과 盧生이 만나 서로 상의하였다.……天下의 크고 작은 일들이 모두 황상의 결정에 달려 있어서, 심지어는 저울로 문서의 무게를 달아 매일 밤마다 읽어야 할 문서의 무게를 정해놓고 그 정해진 무게에 도달하지 못하면 휴식을 취할 수가 없다. 황제가 권세를 탐하기를 이와 같이 하니, 우리는 仙藥을 구해다 주면 안 될 것이다.[侯生盧生相與謀曰……天下之事無小大皆決於上 上至以衡石量書 日夜有程 不中程 不得休息 貪於權勢至如此 未可爲求仙藥]”라고 보인다.
저울로 문서의 무게를 달았다는 것은 당시의 문서가 대부분 竹簡이나 木簡으로 되어 있어서 문서의 양을 무게로 측정하였기 때문에 말한 것이다. 文王이 政事에 부지런한 것을 秦 始皇의 이 일에 비해서는 안 됨을 말한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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