承以元功하고 正位兵府하야 備物典冊하야 首冠三公하시니이다
有自京師來
하야 轉示所賜書敎一通
하니 行草爛然
하야 使
로 復增
之重
이니이다
軾은 始得罪하고 倉皇出獄하니 死生未分이요 六親不相保라
然이나 私心所念은 不暇及他요 但顧 平生所存이 名義至重하니 不知今日所犯이 爲已見絶於聖賢하야 不得復爲君子乎아 抑雖有罪不可赦나 而猶可改也니이다
輒復强顔忍恥하야 飾鄙陋之詞하고 道疇昔之眷하야 以卜於左右러니 遽辱還答하야 恩禮有加하시니
豈非察其無他하고 而恕其不及을 亦如聖天子所以貸而不殺之意乎잇가
知其不肖之軀 未死之間
에 猶可以洗濯磨治
하야 復入於道德之場
하야 니이다
軾
이 始就逮赴獄
할새 有
稍長
이러니 徒步相隨
하고 其餘守舍
는 皆婦女幼稚
라
至宿州
에 하야 就家取文書
한대 州郡望風
하야 遣吏發卒
하야 圍船搜取
하니 老幼幾怖死
라
旣去
에 恚罵曰 是好著書
러니 書成何所得
이완대 而怖我如此
오하고 悉取燒之
라
到黃州하야 無所用心일새 輒復覃思於易論語하야 端居深念하니 若有所得이라
遂因先子之學하야 作易傳九卷하고 又自以意로 作論語說五卷하니이다
窮苦多難하야 壽命不可期하니 恐此書一旦復淪沒不傳이라
意欲寫數本하야 留人間이나 念新以文字得罪하니 人必以爲凶衰不祥之書라하야 莫肯收藏이요 又自思호니 非一代偉人이면 不足託以必傳者하니 莫若獻之明公이니이다
而易傳은 文多하야 未有力裝寫하고 獨致論語說五卷하오니 公退閒暇에 一爲讀之하시면 就使無取라도 亦足見其窮不忘道하야 老而能學也하시리이다
軾在徐州時에 見諸郡盜賊爲患하고 而察其人하니 多凶俠不遜이라
家所藏書 旣多亡軼(佚)
이나 而
는 本以爲故紙糊籠篋
하야 獨得不燒
라
軾이 廢逐至此하니 豈敢復言天下事리오마는 但惜此事粗有益於世어늘 旣不復施行이나 猶欲公知之하니 此則宿昔之心이 掃除未盡者也니이다
旣未得去요 去亦無所歸라 必老於此하야 拜見無期하리니 臨紙於邑(悒)이니이다
오열하는 듯하고 또한 정성스러운 정이 간곡하다.
점점 더워지는 맹하孟夏에 공손히 생각하건대 유수 태위집사留守 太尉執事께서는 태후台候가 만복하신지요?
큰 공을 세우시고 병부兵府의 최고 지위에 올라 온갖 물건을 구비해서 책명冊命하여 삼공三公의 으뜸이 되셨습니다.
비록 증손曾孫을 만난 일을 입을 닫고 말하지 않았으나 〈금등金縢〉의 글이 다른 일로 인하여 스스로 드러났으니, 진실로 고금의 기이한 일이요 성조聖朝의 영광입니다.
경사京師에서 인편이 와서 보내주신 서교書敎 한 통을 전달하니, 행초서行草書가 찬란하여 깨진 시루와 해진 빗자루와 같은 저에게 다시 구정九鼎의 중함을 더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처음 죄를 얻고 창황히 감옥을 나오니, 사생死生을 구분하지 못하고 육친六親들이 서로 돌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사로운 마음에 염려하는 바는 딴 일에 미칠 겨를이 없고, 오직 돌아보건대 평생 동안 보존하여 지극히 소중하게 여긴 것이 명분과 의리인데, 오늘날 범한 죄로 이미 성현聖賢들에게 절교를 당해서 다시는 군자가 될 수 없는지, 아니면 비록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었으나 아직은 고칠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엎드려 5, 6일 동안 생각하여 열흘과 한 철에 이르렀으나 끝내 결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에 다시 뻔뻔스런 얼굴로 부끄러움을 참고서 비루한 말을 꾸미고 지난날에 베풀어주신 사랑을 말씀드려서 좌우(태위집사太尉執事)의 뜻을 헤아려보고자 하였는데, 집사(태위집사太尉執事)께서는 은혜와 예우를 더하시어 급히 답서를 보내주셨습니다.
이는 집사께서 저에게 딴 마음이 없음을 살피시고 미치지 못함을 용서하시기를, 어찌 또한 성聖스러운 천자께서 용서하고 죽이지 않은 뜻과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불초한 이 몸이 죽지 않은 동안에 아직도 더러움을 깨끗이 씻고 잘못을 고치고 다스려, 다시 도덕의 마당에 들어가서 신도가申徒嘉를 따라 자산子産을 사절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체포되어 감옥에 나아갈 적에 약간 장성한 자식이 있어 도보로 따라왔고, 그 나머지 집을 지킨 자들은 모두 부녀자와 어린아이였습니다.
숙주宿州에 이르러, 어사대御史臺의 비문秘文이 내려져 집에 가서 문서를 가져오게 하자, 주군州郡에서는 어사대御史臺의 뜻을 받들어 아전을 보내고 병졸을 출동시켜 배를 포위하고 수색하니, 노인과 어린이들이 거의 공포에 떨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떠난 다음 부인이 화를 내며 꾸짖기를 “이는 글을 짓기를 좋아해서이니, 글이 이루어진들 무슨 소득이 있기에 우리를 이처럼 공포에 떨게 하십니까.”라고 하고는 책을 모두 가져다가 불태웠습니다.
일이 진정되자 다시 문고文稿를 찾아보니, 열 가운데 일고여덟이 없어졌습니다.
황주黃州에 이르게 되자 마음 쓸 곳이 없으므로 다시 《주역周易》과 《논어論語》를 깊이 연구하여 단정히 앉아 깊이 생각해보니, 마치 터득한 바가 있는 듯하였습니다.
마침내 선친의 학문을 이어서 《역전易傳》 9권을 지었고, 또 제 뜻으로 《논어설論語說》 5권을 지었습니다.
이제 곤궁하고 어려움이 많아서 수명을 기약할 수 없으니, 이 책이 하루아침에 없어져서 세상에 전해지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마음속에 몇 부를 등사하여 세상에 남기고 싶으나 생각해보니 지금 막 문자로 죄를 얻었으니, 사람들이 반드시 흉하고 쇠망하며 불길한 책이라고 여겨서 즐겨 수장하지 않을 것이요, 또 생각해보니 한 시대의 위인이 아니면 의탁하여 전할 수 없으니 이것을 명공明公에게 바치는 것만 못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역전易傳》은 글이 많기 때문에 여력이 없어 장정과 등사를 못하였고 다만 《논어설論語說》 5권을 바치오니, 공무에서 물러나 한가로운 여가에 한번 읽어보시면 가령 취할 점이 없더라도 제가 곤궁한 가운데에도 도道를 잊지 아니하여 늙어서도 학문한 것을 아실 것입니다.
제가 서주徐州에 있을 적에 여러 고을의 도적들이 화를 일으키는 것을 보고 그들을 살펴보니, 대부분 흉악하고 협기俠氣가 있고 불손한 자들이었습니다.
여기에 기근이 겹친다면 그 우환이 도둑질하고 노략질하고 죽이는 데 그치지 않을까 염려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일을 자세히 올리려고 초草하였는데, 마침 호주湖州로 이임하라는 명령이 있어서 그만두었습니다.
집에 보관한 글들은 이미 없어진 것이 많으나 이 글은 본래 폐지(휴지)라고 여기고 이 종이로 농과 상자를 발라서 유독 불태워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농을 깨고 바른 종이를 떼어내어 보니 저도 모르게 아득하여 꿈속의 일만 같았습니다.
저는 폐출당하여 쫓겨나 여기에 이르렀으니, 어찌 감히 다시 천하의 일을 말하겠습니까마는, 다만 이 일이 다소나마 세상에 유익한데, 이제 다시 시행할 수는 없으나 그래도 공公께서 아시기를 바라는 것이니, 이는 예전의 마음이 완전히 없어지지 못한 것입니다.
공公께서 한번 읽어보신 다음에 즉시 불태우시면 될 것입니다.
이곳 황주黃州는 음식물 값이 싸고 풍토가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이미 갈 수도 없고 가도 또한 돌아갈 곳이 없어서 반드시 이곳에서 늙을 것이라 배알할 기약이 없으니, 종이를 앞에 놓고 서글퍼합니다.
오직 바라건대 철따라 나라를 위해서 자중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