軾聞之호니 將有求於人而其說不誠이면 則難以望其有合矣라하니이다
世之奇特之士는 其處也에 莫不爲異衆之行하고 而其出也에 莫不爲怪詭之詞하야 比物引類하야 以搖撼當世호되 理不可化면 則欲以勢劫之하야 將以術售其身하니이다
雖其貴賤之闊絶이나 而其相須之急이 不啻若左右手라하니이다
嗚呼라 果其用是說也인댄 則夫世之君子所爲老死而不遇者를 無足怪矣니이다
今夫扣之者急이면 則應之者疑하고 其辭夸하면 則其實必有所不副라
今吾以爲王公大人이 不可以一日而無吾也라하면 彼將退而考其實인댄 則亦無乃未至於此耶잇가
昔者
에 나 而不失爲明君
하고 나 而不失爲賢公卿
하니
吾將以吾之說하고 而彼將以彼之說하야 彼是相拒하야 而不得其歡心이라
故로 貴賤之間이 終不可以合하야 而道終不可以行하나니
觀者歎息에 而主人無言焉하나니 非不能言이요 知言之無加也니이다
今也에 不幸而坐於五達之衢하고 又呶呶焉自以爲希(稀)世之珍이라호되 過者不顧어든 執其裾而强觀之하면 則其所鬻者를 可知矣니이다
王公大人이 其無意於天下後世者는 亦安以求爲也리오
苟其不然이면 則士之過於其前而有動於其目者를 彼將褰裳疾行而摟取之라
昔者
에 嘗聞明公之風矣
로니 하야 才足以過人
이로되 而自視缺然
하야 常若不足
하고 安於小官而樂於恬淡
이니이다
方其在太學之中
에 衣繒飯糗
하야 若將終身
이러니 至於德發而不可掩
하고 名高而不可抑
하야 貴爲
로되 而其自視 不加於其舊之
라하니이다
其度量宏達이 至於如此하니 此其尤不可以夸辭而急扣者也니이다
以爲凡學之難者는 難於無私요 無私之難者는 難於通萬物之理라
己好則好之하고 己惡則惡之하야 以是自信則惑也라하노이다
是故로 幽居黙處하야 而觀萬物之變하고 盡其自然之理하야 而斷之於中호되 其所不然者는 雖古之所謂賢人之說이라도 亦有所不取하니 雖以此自信이나 而亦以此自知其不悅於世也라
今也에 天子擧直諫之士하시니 而兩制過聽하야 謬以其名聞이라
故로 亦敢獻其文凡十篇호되 而書爲之先하오니 惟所裁擇이면 幸甚이리이다
此文은 與說富相公文同意하니 皆欲以無意中之하니라
자첨子瞻이 집정대신에게 올린 글은 그 스스로 지킨 바가 아주 엄격하다.
제가 들으니 “장차 남에게 요구함이 있으면서 그 말이 성실하지 못하면 뜻이 합하기를 바라기 어렵다.”라고 하였습니다.
세상에 기이하고 특출한 선비들은 은둔해 있을 적에는 여러 사람들과 다른 행실을 하지 않음이 없고, 등용되었을 적에는 괴이한 말을 하지 않음이 없어서 사물을 비유하고 또 같은 종류를 끌어와서 당세 사람들을 동요시키되, 이치로 교화할 수 없으면 세력으로 위협하여 장차 술책을 써서 자신의 계책을 써먹으려고 합니다.
옛날의 군자 중에 한자韓子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말하기를 “왕공王公과 대인大人은 빈천한 선비가 자신의 아래에 있으면서 그 뒤를 밀어주어 명성을 크게 드날리게 하고 오래도록 전해지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비록 신분의 귀천貴賤이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하더라도 서로 시급하게 필요로 하는 것은 좌우의 손과 같을 뿐만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아, 과연 이 말을 따른다면 세상의 군자들이 늙어 죽도록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것을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습니다.
지금 문을 두드리기를 급하게 하면 응하는 자가 의심하고, 하는 말이 과장되면 실제가 반드시 부응하지 못하게 됩니다.
지금 스스로 말하기를 “왕공王公과 대인大人은 단 하루도 내가 없어서는 안 된다.”라고 하면, 저 왕공王公과 대인大人은 장차 물러가서 그 실제를 고찰할 것이니, 그러면 또한 자신의 과장된 말이 그 높은 경지에 못 이르지 않겠습니까?
옛날에 한漢나라 고조高祖는 일찍이 선비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현명한 군주가 되었고,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은 일찍이 선비를 천거하지 않았으나 어진 공경公卿이 되었습니다.
‘나는 장차 나의 말을 따르고 저들은 장차 저들의 말을 따른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피차가 서로 대립하여 환심歡心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한 사람과 천한 사람이 끝내 합하지 못하여 도道가 끝내 행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문을 두드리기를 너무 급하게 하고, 하는 말이 너무 과장되기 때문입니다.
천금의 벽옥碧玉을 파는 자는 벽옥碧玉을 가게에 진열하지 않아도, 구경하기를 원하는 자들이 문에 꽉 차 있습니다.
벽옥碧玉을 구경한 자들이 감탄하는데도 주인은 말을 하지 않으니, 이는 주인이 말하지 못해서가 아니요, 말하는 것이 보탬이 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 불행히도 보물을 가지고 사통오달의 길거리에 앉고 또 스스로 세상에 드문 보배라고 시끄럽게 떠드나, 지나가는 자들이 거들떠보지 않아서 그들의 소매를 붙잡고 억지로 이것을 보게 한다면, 물건이 팔리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왕공王公과 대인大人 중에 천하와 후세에 뜻이 없는 자라면 또한 어찌 선비를 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눈에 확 뜨이는 선비가 자기 앞을 지나갈 경우 저 왕공王公과 대인大人들은 옷자락을 걷어붙이고 서둘러 달려가서 선비를 취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릇 황망해하고 급급해하는 것은 모두 왕공王公과 대인大人의 일이요, 선비인 저의 일이 아닙니다.
옛날에 일찍이 명공明公의 풍모를 들었는데, 명공明公께서는 대신의 자손으로 과거科擧에 높은 등급으로 급제하여 재주가 남보다 뛰어난데도, 자신을 보기를 하찮게 생각하여 항상 부족함이 있는 듯이 여기시고, 낮은 벼슬을 편안히 여겨 편안하고 담박함을 즐거워하신다 하였습니다.
태학太學에 계실 적에는 거친 명주베로 만든 옷을 입고 마른밥을 먹으면서 장차 이대로 몸을 마칠 듯이 하였는데, 덕이 드러나 가릴 수가 없고 명성이 높아져 억누를 수 없게 되어서는 귀함이 천자의 소재少宰가 되었으나 자신을 보는 것이 예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였습니다.
그 도량의 크고 통달함이 이와 같음에 이르렀으니, 이 때문에 제가 더욱 과장되게 말씀드리고 급하게 문을 두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불초한 저는 학문을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기까지 15년이 되었습니다.
생각하건대 ‘무릇 학문의 어려움은 사私가 없기가 어려운 것이고, 사私가 없기 어려움은 만물의 이치를 통달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물의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면 비록 사私가 없고자 하나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만물의 이치를 통달하지 못해서〉 자기가 좋으면 좋아하고 자기가 싫으면 싫어하여 이것으로써 스스로 믿는다면 미혹된 것입니다.’라고 여겼습니다.
이 때문에 그윽하고 묵묵히 거처하여 만물의 변화를 관찰하고 자연의 이치를 다하여 마음속으로 결단하되 옳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비록 옛날 이른바 현인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또한 취하지 않는 바가 있었으니, 비록 이 때문에 스스로를 믿으나 또한 이 때문에 세상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압니다.
그러므로 저의 언어와 문장이 일찍이 한 번도 공상公相의 문에 이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천자께서 직간하는 선비를 등용하려 하시니, 양제兩制에서 잘못 듣고서 제 이름을 임금께 잘못 아뢰었습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여기에 참여된 자들은 모두 우리 군주와 정승에게 바람이 있는 자들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또한 감히 제가 지은 글 10편을 바치면서 먼저 편지를 올리는 것이오니, 행여 채택해주신다면 매우 다행이겠습니다.
“이 글은 부상공富相公(부필富弼)을 설득한 글과 뜻이 같으니, 두 편 모두 의도함이 없는 것으로 상대방의 뜻을 적중시키고자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