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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5)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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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6. 영벽 장씨靈壁 張氏원정園亭에 대한 기문記文
無他超遠卓犖之識이로되 而風神 亦自典刑이니라
달리 뛰어나고 드높은 식견이 없으나, 풍신風神은 저절로 전형典刑()에 맞는다.
而東하야 水浮濁流하고 陸走黃塵하야 陂田蒼莽 行者勌(倦)厭하야 凡八百里 始得靈壁張氏之園於汴之陽이라
경사京師에서 동쪽으로 출발하여, 수로로는 탁류에 배를 띄우고 육로로는 누런 먼지가 이는 길을 달려가서, 논두렁이 끝없이 이어져서 길 가는 자들이 지치고 싫증을 내면서 모두 8백 리를 가면, 비로소 변수汴水의 북쪽에서 영벽 장씨靈壁 張氏장원莊園을 만나게 된다.
其外 修竹 森然以高하고 喬木 蓊然以深하며 其中 因汴之餘浸하야 以爲陂池하고 取山之怪石하야 以爲巖阜하며 蒲葦蓮芡 有江湖之思하고 椅桐檜柏 有山林之氣하며 奇花美草 有京洛之態하고 華堂厦屋 有吳蜀之巧하야
그 바깥은 큰 대나무들이 빽빽하게 높이 솟아 있고 교목들이 울창하여 깊으며, 그 가운데에는 변수汴水의 스며든 물로 못을 만들고 산의 괴이한 돌을 채취하여 바위와 언덕을 만들었으며, 부들과 갈대, 연꽃과 가시연은 강호江湖의 생각이 있게 하고, 의나무와 오동나무와 회나무와 측백나무는 산림山林의 기운이 있으며, 기이한 꽃과 아름다운 화초는 서울의 자태가 있고, 화려하고 큰 집은 지방의 공교한 솜씨가 잘 나타나 있다.
其深可以隱이요 其富可以養이며 果蔬可以飽隣里 魚鼈筍茹 可以餽四方之賓客이라
그리하여 그 깊숙함은 은둔할 수 있고, 그 부유함은 양생養生할 수 있으며, 과일과 채소는 이웃 마을 사람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고, 물고기와 자라와 죽순과 나물은 사방의 빈객들을 먹일 수 있다.
할새 由宋登舟하야 三宿而至其下하야 肩輿叩門하야 見張氏之子碩하니 求余文以記之하니라
내가 팽성彭城에서 옮겨 오흥吳興을 맡았을 적에, 송주宋州에서 배를 타고 사흘 밤을 유숙한 뒤에 그 아래에 이르러 견여肩輿(가마)를 타고 문을 두드려 장씨張氏의 아들 을 만났는데, 이 나에게 글을 지어 이것을 기록해줄 것을 부탁하였다.
維張氏 世有顯人하니 自其으로 始家靈壁而爲此園하야 作蘭皐之亭하야 以養其親이라
장씨張氏 문중에는 대대로 유명한 사람이 있었으니, 백부伯父전중군殿中君과 선친인 통판부군通判府君이 처음으로 영벽靈壁에 집터를 잡고 이 장원을 만들어 난고정蘭皐亭을 짓고서 어버이를 봉양하였다.
其後 出仕於朝하야 名聞一時하니 推其餘力하야 日增治之 於今五十餘年矣
그 후 조정에 출사出仕하여 명성이 한 세상에 알려지자, 남은 재력을 미루어서 날로 장원을 더 넓히고 다스린 것이 지금 50여 년이 되었다.
其木 皆十圍 岸谷隱然하야 凡園之百物 無一不可人意者하니 信其用力之多且久也로다
그리하여 수목들이 모두 열 아름이나 되고 벼랑과 골짝이 깊숙하여, 장원의 온갖 물건들이 하나도 사람의 뜻에 흡족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참으로 많은 공력을 들이고 또 오랫동안 힘쓴 것이다.
古之君子 不必仕하고 不必不仕하니 必仕則忘其身하고 必不仕則忘其君하니
옛날의 군자君子들은 반드시 벼슬하려고 하지도 않았고 또 반드시 벼슬하지 않으려고 하지도 않았으니, 반드시 벼슬하려고 하면 자기 몸을 잊게 되고 반드시 벼슬하지 않으려고 하면 군주를 잊게 된다.
譬之飮食컨대 適於飢飽而已
이것을 음식飮食에 비유하면 형편에 따라 굶주림과 배부름에 맞게 할 뿐인 것과 같은 것이다.
이나 士罕能蹈其義하고 赴其節하야 處者 安於故而難出하고 出者狃於利而忘返이라
그러나 선비 중에는 참으로 의리를 실천하고 절개에 달려가는 자가 적어서, 은둔하는 자들은 옛날을 편안히 여겨 출사하기를 어렵게 여기고, 출사하는 자들은 이익에 익숙하여 돌아오는 것을 잊는다.
於是 有違親絶俗之譏 懷祿苟安之弊
이에 은둔한 자들은 어버이를 버리고 세상을 끊는다는 비난이 있고, 출사한 자들은 녹봉을 그리워하고 구차하게 편안함을 탐하는 병폐가 있는 것이다.
今張氏之先君 所以爲其子孫之計慮者 遠且周
지금 장씨張氏선군先君은 자손을 위하여 계책하고 염려한 것이 원대하고 또 완벽하였다.
是故 築室蓺園於汴泗之間 舟車冠蓋之衝하야 凡朝夕之奉 燕遊之樂 不求而足이라
이 때문에 변수汴水사수泗水 사이에 배와 수레를 타며 을 쓰고 일산을 잡은 관리들이 모여드는 요충지에다가 집을 짓고 장원을 가꾸어서, 아침저녁의 봉양과 편안히 노는 즐거움이 모두 구하지 않아도 충족되었다.
使其子孫으로 開門而出仕하면 則跬步 市朝之上이요 閉門而歸隱하면 則俯仰 山林之下하야 於以養生治性하고 行義求志하야 無適而不可
그리하여 자손들로 하여금 문을 열고 나와 벼슬하면 반걸음 만에 시조市朝의 위에 이르고, 문을 닫고 돌아가 숨으면 고개를 숙이고 우러르는 잠깐 사이에 산림의 아래에 이르러, 이로써 양생養生을 하고 성정性情을 다스리며 의리를 행하고 지조를 지켜 가는 곳마다 불가한 것이 없다.
其子孫 仕者 皆有하고 處者 皆有節士廉退之行하니 蓋其先君子之澤也
그러므로 자손 중에 벼슬하는 자들은 모두 순리循吏로서 어질고 유능하다는 칭송이 있고, 은둔하는 자들은 모두 절사節士로서 청렴하고 겸손한 행실이 있는 것이니, 이는 아마도 선군자先君子의 은택일 것이다.
余爲彭城二年 樂其土風하야 將去不忍이요 而彭城之父老 亦莫余厭也
내가 팽성彭城지주사知州事가 된 지 2년에 이곳의 토질과 풍속을 좋아하여 떠나가려 하나 차마 떠나가지 못하고, 팽성彭城부로父老들 또한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
將買田於泗水之上而老焉하노니 南望靈壁하면 鷄犬之聲 相聞이라
내 장차 사수泗水 가에 농지를 사서 여기서 늙으려 하니, 남쪽으로 영벽靈壁을 바라보면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幅巾杖屨 歲時往來於張氏之園하야 以與其子孫遊 將必有日矣리라
복건幅巾을 쓰고 지팡이를 짚고 신을 신고서 세시歲時장씨張氏의 장원에 왕래하면서 그 자손子孫들과 함께 노닐 날이 장차 반드시 있을 것이다.
역주
역주1 靈壁張氏園亭記 : 本集에는 글의 말미에 ‘元豐二年三月二十七日記’라는 11字가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이 元豐 2년(1079) 3월 27일에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 東坡는 이해 3월에 知徐州事에서 知湖州事로 전임되어 4월 20일 湖州에 부임했는데, 이때 靈壁을 경유하였다. 靈壁은 鎭의 이름으로 지금의 安徽省 靈壁縣이다. 園亭은 園林에 휴식을 위해 만들어놓은 정자를 이른다.
역주2 京師 : 宋나라의 首都 開封을 이른다.
역주3 自彭城移守吳興 : 彭城은 徐州의 治所이고, 吳興은 湖州의 治所이다. 東坡는 元豐 2년(1079) 3월에 知徐州事에서 知湖州事로 전임되어 4월 20일 湖州에 도착하였다.
역주4 伯父殿中君與其先人通判府君 : 모두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역주5 循吏良能之稱 : 관리가 되어 백성을 위하고 법을 지키면서 어질고 유능하다는 칭송을 받음을 이른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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