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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2)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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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4. 팽하주彭賀州에게 답한
必新命放歸時所作이리라
이 글은 틀림없이 새로이 명령을 받고 석방되어 돌아올 때에 지은 것일 것이다.
竄流 脫身羈하고 하야 拜賜之號
섬 지방에 귀양 가 있다가 매어 있던 귀신의 숲에서 몸이 빠져나오고, 진군眞君의 사당을 깨끗이 청소하여 산인散人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하고 悼報國之無期하야 方自愧於心顔하니 敢聞名於左右리잇가
전원으로 돌아갈 조짐이 있음을 기뻐하고 나라에 보답할 기약이 없음을 슬퍼하여, 막 마음과 얼굴에 스스로 부끄러워하였으니, 어찌 감히 이름을 좌우左右(측근)에게 아뢰겠습니까?
豈謂某官 曲敦雅好하고 深軫窮途하야 賜以尺書하고 借之餘論이리오
뜻밖에도 모관某官께서는 평소의 우호를 돈독히 하시고 곤궁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깊이 염려하셔서 편지를 보내주시고 좋은 의논을 빌려주셨습니다.
溫詞曲盡하야 하고 陋質增華하야
따뜻한 말씀이 간곡하여 열 종사관이 찾아오는 것보다 낫고, 또 누추한 자질에 영화가 더하여 먼저 보내주신 오장五漿에 이미 배가 부릅니다.
但慙衰朽하야 虛辱品題하오니 敬佩至言하야 永以爲好호리이다
다만 노쇠하여 품제品題(인품의 평가)를 헛되이 욕되게 할까 부끄러우니, 지극한 말씀을 공경히 명심하여 길이 우호로 삼겠습니다.
역주
역주1 答彭賀州啓 : 이 글은 元符 3년(1100) 12월에 쓰여졌다. 당시 蘇軾이 북쪽으로 돌아오는 길에 南雄州(現 廣東省 南雄)에 이르러 彭賀州의 편지를 받고 이에 답한 것이다. 彭賀州는 이름이 臨으로 당시 廣南東路에 속한 賀州의 知州로 있었다.
역주2 海國 : 昌化軍(해남도)을 이른다. 蘇軾은 62세 되던 紹聖 4년(1097) 7월부터 65세인 元符 3년 6월까지 이곳에 유배되어 있었다.
역주3 鬼之林 : 귀신이 출몰하는 숲으로, 아열대 기후인 해남도의 울창한 숲을 이른 듯하다.
역주4 洒掃眞祠 : 洒掃는 물 뿌리고 청소하는 것이며, 眞祠는 道家의 神仙인 眞君의 사당을 이른다. 이를 청소한다는 것은 곧 道家로 귀의함을 말하는 듯하다.
역주5 散人 : 세속에 얽매이지 않고 한가롭게 자적하는 隱士를 이른다.
역주6 歸田之有漸 : 歸田은 고향의 전원으로 돌아감을 이르는데, 元符 3년 11월에 蘇軾이 英州에 이르자 朝奉郞 提擧成都玉局觀에 임명되고 자유롭게 거주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7 賢於十部之見臨 : 十部는 열 명의 종사관을 이른다. 晉나라 惠帝 때 문신인 劉弘이 荊州刺史가 되어 政事를 처리하면서 친필로 郡國에 내리는 글이 자세하고 간곡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모두 감동하여 이르기를 “劉公의 서신 한 장을 얻는 것이 열 명의 종사관을 얻는 것보다도 낫다.”라고 하였다. 《晉書 劉弘列傳》
역주8 果已五漿之先餽 : 果는 많이 먹어 배가 부른 것이며, 漿은 마시는 음료로 술과 비슷한데, 五漿은 漿을 파는 다섯 집을 이른다. 《莊子》 〈列禦寇〉에 “列子가 길을 가면서 열 곳의 음식점에서 마실 것을 사서 마셨는데, 이 가운데에 다섯 집에서는 그를 존경하여 음료를 사기도 전에 먼저 주었다.”라고 하였다. 이후로 五漿은 세상에 은둔해 있는데도 사람들이 모두 존경함을 칭하는 말로 쓰인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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