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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5)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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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5. 〈동고자전東皐子傳〉 뒤에 쓰다
曠達之旨
광달曠達한 뜻이다.
予飮酒終日호되 不過五合하니 天下之不能飮 無在予下者
나는 하루 종일 술을 마시지만 다섯 홉에 지나지 않으니, 천하天下에 나만큼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나 喜人飮酒하야 見客擧杯徐引하면 則予胸中 爲之하야 酣適之味 乃過於客이라
그러나 남이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해서 손님이 술잔을 들어 서서히 마시는 것을 보면 내 가슴속이 이 때문에 쾌활해지고 드높아져서, 얼큰하여 기분 좋은 재미가 손님보다도 더하였다.
閑居 未嘗一日無客하고 客至 未嘗不置酒하니 天下之好飮 亦無在予上者
한가로이 거처할 적에 일찍이 하루도 손님이 없은 적이 없었고, 손님이 왔을 적에 일찍이 술자리를 베풀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천하에 나보다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嘗以謂 人之至樂 莫若身無病而心無憂라하니 我則無是二者矣
내 일찍이 말하기를 “사람의 지극한 즐거움은 몸에 질병이 없고 마음에 근심이 없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라고 하였는데, 나는 질병도 근심도 모두 없다.
이나 人之有是者 接於予前이면 則予安得全其樂乎
그러나 질병과 근심이 있는 사람이 내 앞에 오면 내가 어떻게 그 즐거움을 온전히 할 수 있겠는가?
所至 當蓄善藥하야 有求者 則與之하고 而尤喜釀酒以飮客이라
그러므로 그들이 올 때마다 항상 좋은 약을 비축하여 구하는 자가 있으면 주고, 술을 빚어서 손님에게 마시게 하기를 더욱 좋아하였다.
或曰 子無病而多蓄藥하고 不飮而多釀酒하야 勞己以爲人 何也
혹자가 말하기를 “그대가 질병이 없으면서도 약을 많이 비축해두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서도 술을 많이 빚어서 자기 몸을 수고롭게 하여 남을 위하는 것은 어째서인가?”라고 하였다.
予笑曰 病者得藥이면 吾爲之體輕하고 飮者困於酒 吾爲之酣適하니 蓋專以自爲也라호라
내가 웃으며 대답하기를 “병든 자가 약을 얻어 고통을 덜면 내가 이 때문에 몸이 가벼워지고, 술 마시는 자가 술을 마셔서 곤드레가 되면 내가 이 때문에 얼큰하여 기분이 좋아지니, 이것은 오로지 나를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東皐子하니 日給酒三升이라
동고자東皐子(왕적王績)가 문하성門下省에서 대조待詔를 하니, 하루에 술 석 되를 내려주었다.
問曰 待詔樂乎잇가 曰 待詔何所樂이리오
그 아우 이 묻기를 “대조待詔하는 것이 즐겁습니까?”라고 하자, 대답하기를 “대조待詔가 어찌 즐겁겠는가?
但美醞三升 殊可戀耳라하니라
다만 아름다운 술 석 되가 매우 사랑할 만하다.”라고 하였다.
今嶺南 法不禁酒하니 予旣得自釀하야 月用米一斛하야 得酒六斗하고五太守 間復以酒遺予하니 略計其所獲하면 殆過於東皐子矣
지금 영남嶺南 지방은 법에 술 빚는 것을 금하지 않으니, 내가 직접 술을 빚을 수가 있어서 매월 쌀 한 섬으로 술 여섯 말을 얻고, 또 남웅주南雄州광주廣州혜주惠州순주循州매주梅州의 다섯 태수太守가 간간이 술을 나에게 보내주니, 대략 그 얻은 바를 계산해보면 아마도 동고자東皐子보다 더 많은 듯하다.
이나 東皐子自謂하니 則日給三升 救口不暇어니 安能及客乎
그러나 동고자東皐子는 자신을 ‘오두선생五斗先生’이라고 이름하였으니, 그렇다면 하루에 주는 술 석 되로는 자기 입을 구제하기에도 겨를이 없을 터인데, 어떻게 손님에게 미칠 수 있겠는가?
若予者 乃日有二升五合하야 入野人道士腹中矣
그러나 나로 말하면 날마다 두 되 다섯 홉의 술이 있어서 야인野人도사道士의 뱃속에 넣어줄 수 있다.
東皐子與하니하고 預刻死日하야 自爲墓誌
동고자東皐子중장자광仲長子光과 교유하였는데, 양생養生하기 위해 단약丹藥 복용하기를 좋아하며 미리 죽을 날을 예견해서 스스로 묘지명墓誌銘을 지었다.
予蓋友其人於千載 或庶幾焉하노라
나는 이 사람과 혹 천 년 후에라도 벗하기를 바라노라.
역주
역주1 書東皐子傳後 : 東皐子는 唐나라 초기의 高士인 王績(590?~644)의 호이다. 王績은 字가 無功이고 絳州 龍門(지금의 山西省 龍門) 사람으로 文中子 王通의 아우인데, 隋 煬帝 大業 연간에 孝悌廉潔로 천거되어 秘書省正字가 되었다. 술을 좋아하여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으며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고향으로 돌아왔다.
唐 高祖 武德 연간에 門下省의 待詔로 있었는데, 하루에 술 석 되를 하사받으며 이것을 즐거워하였다. 侍中 陳叔達이 이 말을 듣고 하루에 술을 한 말씩 내려주니, 당시 사람들이 斗酒學士라고 칭하였으며, 자신은 五斗先生이라고 自號하였는데, 太宗 貞觀 원년(627)에 身病으로 벼슬을 그만두었다.
후인들이 그가 지은 〈醉鄕記〉, 〈五斗先生傳〉, 〈無心子傳〉에 기타 저술을 모아 《東皐子傳》을 만들었다. 韓愈는 일찍이 王績의 손자인 王含을 전송하는 〈送王含秀才序〉를 지으면서 위의 〈醉鄕記〉를 들어 말하였다. 《舊唐書》와 《新唐書》에 모두 傳이 있다.
역주2 浩浩焉 落落焉 : 浩浩焉은 胸中이 호탕함을 형용한 말이고, 落落焉은 도량이 넓고 드높아짐을 형용한 말이다.
역주3 待詔門下省 : 門下省에 소속된 吏屬(말단 행정실무에 종사하던 아전)으로 정원이 2명이었다.
역주4 其弟靜 : 王績의 동생 王靜으로 당시 황궁의 禁衛官으로 있었다.
역주5 南雄廣惠循梅 : 모두 宋나라의 州 이름이다. 南雄州는 지금의 廣東省 韶關市 南雄市 일대로 大庾嶺 남쪽 기슭에 있었고, 廣州는 지금의 廣東省 省都인 廣州市 일대이며, 惠州는 지금의 惠州市 惠陽 일대로 東坡가 일찍이 이곳에 안치되었다. 循州는 지금의 廣東省 河源市의 옛 龍川縣 일대이며, 梅州는 지금의 廣東省 梅州市 梅縣 일대이다.
역주6 五斗先生 : 자신이 하루에 술을 다섯 말을 마신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역주7 仲長子光 : 唐나라 초기의 隱士로 仲長은 複姓이고 자는 不曜인데, 처자도 없이 北渚에 은거하면서 오직 王績과 교유하였는바, 《舊唐書》에 보인다.
역주8 養性服食 : 養性은 性命(生命)을 기르는 것으로 養生이란 말과 같으며, 服食은 道家의 말로 丹藥을 복용하여 養生함을 이른다. 丹藥은 道家에서 水銀 등을 불에 태워 만든 것으로 이것을 복용하면 不老長生한다고 하며, 이것을 만드는 방법을 鍊丹術이라고 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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