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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3)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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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2. 자사子思에 대한
雖非知思孟之學者 而其文自圓하니라
비록 자사子思맹자孟子의 학문을 이해하는 작품은 아니나 문장은 본래 원만하다.
昔者 夫子之文章 非有意於文이라
옛날 부자夫子(공자孔子)의 문장文章은 글에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是以 未嘗立論也하사 所可得而言者 唯其歸於至當하시니 斯以爲聖人而已矣시니라
이 때문에 일찍이 자신의 의논을 내세우지 않아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지극히 합당함에 귀결시키셨으니, 이로써 성인聖人이 되셨을 뿐이다.
夫子之道 可由而不可知 可言而不可議하니 此其不爭爲區區之論하야 以開是非之端이라
부자夫子는 행할 수는 있으나 알 수는 없고, 말할 수는 있으나 의논할 수는 없으니, 이는 하찮은 의논을 다투어서 시비是非의 단서를 열어놓지 않은 것이다.
是以 獨得不廢하야 以與天下後世하야 爲仁義禮樂之主하시니라
이 때문에 부자夫子가 홀로 없어지지 않고 천하와 후대에 전해져서 인의仁義예악禮樂의 주체가 되신 것이다.
夫子旣沒 諸子之欲爲書以傳於後世者 其意皆存乎爲文하야 汲汲乎惟恐其汨沒而莫吾知也
부자夫子께서 돌아가시자, 책을 만들어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여러 제자弟子들은 그 뜻이 모두 글을 짓는 데 있어서, 급급하게 행여 자신의 사상思想이 매몰되어 자신을 알아주는 이가 없게 될까 두려워하였다.
是故 皆喜立論하니 論立而爭起
이 때문에 모두 을 세우기를 좋아하였으니, 이 세워짐에 분쟁이 일어났다.
皆務爲相攻之說하고 其餘不足數者紛紜於天下하니라
맹자孟子 이후로 순경荀卿양웅揚雄에 이르기까지 모두 힘써 서로 공격하는 말을 하였고, 그 나머지 굳이 거론할 가치가 없는 자들도 천하에서 어지럽게 다투었다.
嗟夫
아! 슬프다.
夫子之道 不幸而有之徒하야 各持其私說하야 以攻乎其外하니 天下方將惑之하야 而未知其所適從이어늘 奈何其弟子門人 又內自相攻而不決
부자夫子가 불행하게도 노담老聃, 장주莊周, 양주楊朱, 묵적墨翟, 전병田騈, 신도愼到, 신불해申不害, 한비韓非의 무리들이 있어서 각각 그 사사로운 말을 가지고 밖에서 공격하니, 천하 사람들이 여기에 혹해서 따를 바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해서 그 제자와 문인들이 또 안으로 서로 공격하여 해결하지 못하였는가?
千載之後 學者愈衆이로되 而夫子之道 益晦而不明者 由此之故歟인저
천 년이 지난 뒤에 부자夫子를 배우는 자들이 더욱 많아졌으나, 부자夫子는 더욱 어두워져서 밝아지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昔三子之爭 起於孟子
옛날 맹자孟子순자荀子양자揚子(양웅揚雄) 세 사람의 분쟁은 맹자孟子로부터 시작되었다.
孟子曰 人之性善이라하니 是以 荀子曰 人之性惡이라하고 而楊子又曰 人之性善惡混이라하니라
맹자孟子가 말씀하기를 “사람의 하다.”라고 하니, 이 때문에 순자荀子는 “사람의 하다.”라고 하였고, 양자揚子는 또 “사람의 이 혼재되어 있다.”라고 한 것이다.
孟子旣已據其善이라 是故 荀子不得不出於惡이요 人之性 有善惡而已어늘 二子旣已據之 是以 揚子亦不得不出於善惡混也
맹자孟子가 이미 성선性善을 차지하였으므로 순자荀子성악性惡에서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고, 사람의 이 있을 뿐인데 두 분이 이미 이것을 차지하였으므로, 양자揚子 또한 이 혼재하였다는 데에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爲論 不求其精하고 而務以爲異於人이면 則紛紛之說 未可以知其所止로라
의논을 세울 적에 정밀함을 구하지 않고 힘써 남과 다르고자 하면 분분한 설이 어디에서 그칠지를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부자夫子께서는 을 말씀하신 적이 없었고, 또한 말씀하신 적이 있더라도 필연적인 의논은 하지 않으셨다.
하니 子思之書 皆聖人之微言篤論이어늘 孟子得之而不善用之하고 能言其道로되 而不知其所以爲言之名이라
맹자孟子가 말씀한 성선性善은 모두 스승인 자사子思의 글에서 나왔으니, 자사子思의 글은 모두 성인聖人의 은미한 말씀과 독실한 의논이었는데, 맹자孟子는 이것을 얻어 잘 사용하지 못해서 그 를 말씀할 수 있었으나, 그 말씀한 바의 명칭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다.
擧天下之大하야 而必之以性善之論하야 昭昭乎自以爲的於天下하야 使天下之過者 莫不欲援弓射之
그리하여 지극히 큰 천하를 가지고 성선性善의 이론으로 기필하여, 분명하게 스스로 천하의 표적이 되어 천하의 길 가는 자들로 하여금 활을 당겨 쏘고자 하지 않는 이가 없도록 만들었다.
夫二子之爲異論者 皆孟子之過也니라
그러므로 순자荀子양자揚子 두 사람이 이론異論을 편 것은 모두 맹자孟子의 잘못인 것이다.
若夫子思之論則不然하야
자사子思의 의논으로 말하면 그렇지 않다.
자사子思는 말씀하시기를 “부부夫婦의 어리석음으로도 참여하여 알 수 있으나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聖人이라도 또한 알지 못하는 바가 있으며, 부부夫婦의 불초함으로도 행할 수 있으나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비록 성인聖人이라도 또한 능하지 못한 바가 있다.”라고 하였다.
聖人之道 造端乎夫婦之所能行하야 而極乎聖人之所不能知하니 造端乎夫婦之所能行이라 是以 天下無不可學이요 而極乎聖人之所不能知 是以 學者不知其所窮이니라
성인聖人부부夫婦가 능히 행하는 바에서 시작하여 성인聖人이 능히 알지 못하는 바에까지 이르니, 부부夫婦가 능히 행하는 바에서 시작하였기 때문에 천하 사람들 중에 배울 수 없는 사람이 없고, 성인聖人이 알지 못하는 바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배우는 자가 그 끝나는 바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夫如是 則惻隱足以爲仁이로되 而仁不止於惻隱이요 羞惡足以爲義로되 而義不止於羞惡 此不亦孟子之所以爲性善之論歟
이와 같으면 측은惻隱한 마음이 충분히 이 될 수 있으나 측은惻隱에만 그치지 않고, 수오羞惡하는 마음이 충분히 가 될 수 있으나 수오羞惡에만 그치지 않으니, 이것이 맹자孟子성선론性善論을 펴신 이유가 아니겠는가?
子思 論聖人之道出於天下之所能行하고 而孟子 論天下之人皆可以行聖人之道하니 此無以異者로되 而子思 取必於聖人之道하고 孟子 取必於天下之人이라
자사子思성인聖人가 천하 사람들이 능히 행하는 바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였고, 맹자孟子는 천하 사람들이 모두 성인聖人를 행할 수 있다고 말씀하였으니, 이것은 차이가 없으나, 자사子思성인聖人에서 기필을 취하였고 맹자孟子는 천하 사람들에게서 기필을 취하였다.
夫後世之異議 皆出於孟子하고 而子思之論 天下同是而莫或非焉하니 然後 知子思之善爲論也로라
그러므로 후세의 이론異論은 모두 맹자孟子에게서 나왔고, 자사子思의 의논은 천하 사람들이 똑같이 옳다고 하여 혹시라도 비난하는 이가 없었으니, 그런 뒤에야 자사子思의 의논이 뛰어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唐荊川曰
당형천唐荊川이 말하였다.
借客形主하야 轉丸於千仞之上이니라
을 빌어 주인을 나타내어 천 길 위에서 탄환彈丸을 굴리는 듯 문장이 시원하다.”
역주
역주1 子思論 : 이 글은 저작 연도가 분명하지 않으나 東坡의 젊은 시절 작품인 듯하다. 子思(B.C. 481~B.C. 402)는 이름이 伋으로 子思는 字인데, 孔子의 손자이고 孔鯉의 아들이다. 子思는 曾子에게 수학하고 孔子의 학문을 전수받아 《中庸》을 지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述聖으로 칭해진다.
역주2 自孟子之後 至於荀卿揚雄 : 孟子(B.C. 372~B.C. 289)는 이름이 軻이고 字가 子輿로 子思의 문인에게 수학하여 思孟學派라고도 불리며, 孔門의 적통을 이어받아 발전시켰다.
荀卿(B.C. 313~B.C. 238)은 이름이 況이고 字가 卿으로 전국시대 趙나라 사람인데, 西漢 宣帝의 이름을 휘하여 孫卿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학문은 儒學을 기본으로 하였으나 다른 학파의 사상을 흡수하여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性惡說을 주장했으며, 초자연적인 힘과 미신을 부정하고 합리주의적 사고를 주장하여 이후 法家의 토대를 만들었다. 저서에는 《荀子》가 있으며, 法家를 대표하는 韓非子와 李斯는 모두 荀卿의 제자이다.
揚雄은 漢나라의 유학자이자 문인으로 字가 子雲이며 蜀郡 成都 사람이다. 박학다식하고 뛰어난 문장가였으나 王莽의 新나라 때에 王莽을 찬미하는 글을 지어 후대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저서로는 《易經》을 모방하여 지은 《太玄經》과 《論語》를 모방하여 지은 《法言》이 있다.
역주3 老聃莊周楊朱墨翟田騈愼到申不害韓非 : 모두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이다. 老聃은 老子로 姓이 李이고 이름은 耳이며 字가 伯陽으로, 聃은 시호라 하는데, 道家의 창시자로 《道德經》을 지었다.
莊周는 宋나라 蒙 땅 사람인데, 일설에는 河南省 商丘 사람이라고도 한다. 老子의 道家思想을 계승 발전시켜 道家의 가장 중요한 학자로 꼽히는바, 저서에 《莊子》가 있다.
楊朱는 전국시대 사상가로 字가 子居로 각자 자신을 닦아야 한다는 爲我說을 제창하였는데, 孟子는 “楊朱는 자신의 수행을 위주하여, 털 하나를 뽑아서 천하가 이롭더라도 하지 않았다.[楊朱爲我 拔一毛而利天下不爲]”라고 평하여 그의 은둔주의를 비난하였다. 저서는 남아 있는 것이 없고 그의 주장은 《莊子》, 《孟子》, 《韩非子》, 《呂氏春秋》, 《列子》 등의 책에 흩어져 보인다.
墨翟은 墨家의 창시자로 ‘兼愛說’를 주장하였는데, 孟子는 “墨子는 兼愛를 주장하여 이마를 갈아 발꿈치에 이르더라도 천하에 이로우면 하였다.[墨子兼愛 摩頂放踵 利天下爲之]”라고 평하여, 楊朱를 無君, 墨翟을 無父라고 비판하였다. 저서에 《墨子》가 있다.
田騈은 齊나라의 사상가로 陳騈이라고도 불리는데, 그의 사상은 道家에 근본하여 ‘齊萬物’을 주장하였으며, 《田子》란 책을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愼到는 趙나라의 사상가로 저서에 《愼子》가 있는데, 본래 12편이었으나 지금은 5편만 남아 있다. 그의 사상은 道家에 근본하면서도 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였는데, 이러한 주장은 뒤에 韓非子의 法家에 수용되었다.
申不害는 韓나라의 명재상이자 사상가이다. 본래 鄭나라 출신으로 韓나라 昭侯의 재상이 되어 韓나라를 부강하게 하였다. 그의 사상은 道家에 근본을 두면서도 刑과 名을 중시하여 뒤에 法家의 기반이 되었다.
韓非는 韓나라의 사상가로 李斯와 함께 荀卿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諸家의 설을 두로 흡수하여 法家思想을 집대성하였다. 뒤에 秦나라에 사신 갔다가 그의 재능을 질시한 李斯의 무고로 옥에 갇히자 자살하였다. 저서에는 《韓非子》 55편이 있다.
역주4 且夫夫子未嘗言性也……而未有必然之論也 : 蘇軾이 “夫子께서 性을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夫子未嘗言性]”라고 말한 것은, 《論語》 〈公冶長〉의 “夫子의 文章은 들을 수 있으나 夫子께서 性과 天道를 말씀하심은 얻어 들을 수 없다.[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라는 子貢의 말을 근거로 한 것이다.
그러나 〈陽貨〉에 “性은 서로 비슷하나 익힘(습관)에 의하여 서로 멀어지게 된다.[性相近也나 習相遠也]”는 孔子의 말씀을 보면, 孔子께서 性에 대해 전혀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蘇軾이 이어서 “일찍이 있었다.[亦嘗言之矣]”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내용도 性을 특정하여 善하거나 惡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아니므로 蘇軾이 “必然의 論은 하지 않으셨다.[未有必然之論]”라고 말한 것이다.
역주5 孟子之所謂性善者 皆出於其師子思之書 : 子思의 책은 《中庸》을 이른다. 《史記》 〈孔子世家〉에 “孔子가 아들 鯉를 낳으니 字가 伯魚이고, 伯魚가 아들 伋을 낳으니 字가 子思이다. 子思가 《中庸》을 지었다.[孔子生鯉 字伯魚 伯魚生伋 字子思 子思作中庸]”라고 보인다.
《中庸》의 서두는 “하늘이 命하신 것을 性이라 이르고, 性을 따름을 道라 이르고, 道를 品節해놓음을 敎라 이른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라고 시작하여 性을 언급하고 있는데, 孟子는 子思의 문하에게 배워 子思의 學脈을 이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6 夫婦之愚……亦有所不能焉 : 《中庸》 제12장의 일부를 인용한 것으로, 전문은 아래와 같다.
“君子의 道는 費하여 隱微하다. 夫婦의 어리석음으로도 참여하여 알 수 있으나,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비록 聖人이라도 또한 알지 못하는 바가 있으며, 夫婦의 不肖함으로도 행할 수 있으나,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비록 聖人이라도 또한 능하지 못한 바가 있으며, 天地의 큼으로도 사람이 오히려 恨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君子가 큰 것을 말할진댄 너무나도 커서 天下가 싣지 못하며, 작은 것을 말할진댄 너무나도 작아서 天下가 깨뜨리지 못한다.
《詩經》에 이르기를 ‘솔개는 날아 하늘에 이르는데, 물고기는 연못에서 뛰논다.’라고 하였으니, 上下에 이치가 밝게 드러남을 말한 것이다. 君子의 道는 夫婦에게서 시작되니, 그 지극함에 이르러서는 天地에 밝게 드러난다.[君子之道 費而隱 夫婦之愚 可以與知焉 及其至也 雖聖人亦有所不知焉 夫婦之不肖 可以能行焉 及其至也 雖聖人亦有所不能焉 天地之大也 人猶有所憾 故君子語大 天下莫能載焉 語小 天下莫能破焉 詩云 鳶飛戾天 魚躍于淵 言其上下察也 君子之道 造端乎夫婦 及其至也 察乎天地]”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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