然
이나 所以能敵之者
는 其國
이 無君臣上下
之節
하고 其民
이 無穀米絲麻耕作織絍之勞
하며 其法令
이 以言語爲約
이라 故
로 無
之繁
하고 其居處以逐水草爲常
이라 故
로 無城郭邑居聚落守望之助
하고 其旃裘肉酪
이 足以爲養生送死之具
라
故로 戰則人人自鬪하고 敗則驅牛羊遠徙하야 不可得而破하니이다
蓋非獨古聖人法度之所不加요 亦其天性之所安者니 猶狙猿之不可使冠帶하고 虎豹之不可被以羈紲也라
所得繒絮를 皆以馳草棘中하야 使衣袴弊裂하야 以示不如旃裘之堅善也하고 得漢食物이면 皆去之하야 以示不如湩酪之便美也하니이다
由此觀之하면 中國은 以法勝이요 而匈奴는 以無法勝이니이다
是故로 精修其法而謹守之하야 築爲城郭하고 塹爲溝池하며 大倉廩, 實府庫하고 明烽燧, 遠斥堠하며 使民知金鼓進退坐作之節하야
則中國與胡 本不能相犯이어늘 惟其不然이라 是故로 皆有以相制하니 胡人之不可從中國之法은 猶中國之不可從胡人之無法也니이다
今夫佩玉, 服紱하고 冕而垂旒者는 此宗廟之服이니 所以登降揖讓折旋俯仰爲容者也요 而不可以騎射라
苟不能盡如中國하고 而雜用其法이면 則是佩玉, 服紱, 冕而垂旒하고 而欲以騎射也니이다
昔에 吳之先은 斷髮文身하야 與魚鼈龍蛇居者 數十世로되 而諸侯不敢窺也러니
以蠻夷之資로 而貪中國之美하니 宜其可得而圖之哉니이다
也
에 紛紜於中國
이요 而其豪傑間起
하야 爲之君長
하니 如
는 皆以絶異之姿
로 驅駕一時之賢俊
하야 其强者
는 至有天下太半
하니이다
然이나 終於覆亡相繼하야 遠者 不過一傳再傳而滅은 何也오
其心이 固安於無法也어늘 而束縛於中國之法하고 中國之人은 固安於法也어늘 而苦其無法하야 君臣相戾하고 上下相厭이라
是以로 雖建都邑하고 立宗廟나 而其心岌岌然하야 常若寄居於其間하니 而安能久乎잇가
故로 其朝廷之儀와 百官之號와 文武選擧之法과 都邑郡縣之制로 以至於衣服飮食히 皆雜取中國之象하니이다
然이나 其父子聚居에 貴壯而賤老하고 貪得而忘失하며 勝不相讓하고 敗不相救者 猶在也라
其措置規畫이 皆不復蠻夷之心하야 以爲不可得而圖之라하니 亦過計矣니이다
昔에 先王이 欲圖大事, 立奇功인댄 則非斯人이면 莫之與共하시니이다
彼契丹者 有可乘之勢三이어늘 而中國未之思焉하니 則亦足惜矣니이다
臣觀其朝廷百官之衆하니 而中國士大夫 交錯於其間하야 固亦有賢俊慷慨不屈之士어늘
而詬辱이 及於公卿하고鞭扑이 行於殿陛하야 貴爲將相이나 而不免囚徒之恥하니 宜其有惋憤鬱結而思變者로되 特未有路耳라
自宋之興
으로 所在賢俊
이 雲合響應
하야 無有遠邇
히 皆欲洗濯磨淬
하야 以觀上國之光
이어늘 而此一方
이 하니이다
聞之諜者하니 曰 幽州士民이 謀欲執其帥하야 以城降者러니 聞乘輿之還하고 無不泣下라하니이다
且胡人이 以爲諸郡之民이 非其族類故로 厚斂而虐使之하니 則其思內附之心이 豈待深計哉잇가
此又足爲之謀也니이다 使其上下相猜하고 君民相疑然後에 可攻也리이다
彼
하고 分置守宰
하야 倉廩府庫
를 莫不備具
하니 有一旦之急
이면 適足以自累
라
守之不能하고 棄之不忍이요 華夷雜居하야 易以生變이니 如此면 則中國之長을 足以有所施矣리이다
中國은 不能謹守其法하고 彼는 慕中國之法而不能純用이라
夫蠻夷者는 以力攻하고 以力守하고 以力戰하야 顧力不能則逃하나니
中國則不然하야 其守以形하고 其攻以勢하고 其戰以氣라
形者는 有所不守로되 而敵人莫不忌也하고 勢者는 有所不攻이로되 而敵人莫不憊也하고 氣者는 有所不戰이로되 而敵人莫不懾也하니
苟去此三者하고 而角之於力이면 則中國이 固不敵矣니 尙何云乎잇가
소씨 부자蘇氏 父子가 오랑캐의 정세를 논한 것이 하나하나 매우 실정에 맞는다.
옛날에 흉노匈奴의 병력은 한漢나라의 한 큰 현縣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흉노匈奴가 한漢나라를 대적할 수 있었던 까닭은 흉노匈奴의 조정에는 군신간君臣間과 상하간上下間에 조회하여 뵙고 회동하는 예절이 없고, 백성은 곡식과 쌀, 실과 삼을 얻기 위하여 농지를 경작하고 직조하는 수고로움이 없으며, 그들의 법령은 언어로 약속하기 때문에 문서와 부전符傳의 번잡함이 없고, 사는 곳은 늘 수초水草를 따라 옮기기 때문에 성곽城郭과 읍거邑居와 취락聚落의 지키고 망보는 도움이 필요 없고, 털옷과 갖옷과 고기와 우유가 충분히 산 사람을 봉양하고 죽은 이를 장송하는 도구가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싸우면 사람마다 각자 용감히 싸우고, 패하면 소와 양을 몰고 멀리 옮겨가서 중국中國이 그들을 격파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비단 옛 성인聖人의 법도法度를 가加할(시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의 천성天性에 편안히 여기는 것이니, 마치 원숭이에게 관冠을 씌우고 띠를 묶게 할 수 없고 호랑이와 표범에게 굴레를 씌울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중항열中行說이 흉노匈奴의 선우單于에게 ‘한漢나라의 물건을 좋아하지 말라.’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漢나라에서 얻은 비단과 솜으로 만든 옷을 입고서 풀과 가시덤불 사이를 달려서 옷과 바지가 찢기고 해어지게 하여 털옷과 갖옷만큼 단단하고 좋지 않음을 보여주었고, 한漢나라의 음식물을 얻으면 모두 버려서 젖과 유제품만큼 편리하고 맛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살펴본다면 중국中國은 법法으로써 이기고 흉노匈奴는 무법無法으로 이깁니다.
이 때문에 법을 정밀하게 제정하고 삼가 지켜서, 돌과 흙을 쌓아 성곽을 만들고 땅을 파서 해자를 만들며 창고를 크게 짓고 곡식을 가득히 채우며 봉수烽燧를 밝히고 척후를 멀리 보내며, 백성들로 하여금 징을 치고 북을 쳐서 전진하고 후퇴함과 앉고 일어나는 절도를 알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승리하여도 서로 먼저 달려가지 않고 패하여도 서로 버리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중국中國 사람들이 법을 삼가 지키고 감히 잃지 않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한 번 그 법法을 잃으면 오랑캐들의 무법無法의 편리함만 못합니다.
이 때문에 각각 그 성정性情을 길러서 생업에 안주하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중국中國과 오랑캐가 본래 서로 침범할 수 없는데, 중국中國에서 이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두 서로 견제하였으니, 오랑캐 사람들이 중국의 법法을 따를 수 없는 것은 중국 사람들이 오랑캐 사람들의 무법無法을 따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 옥玉을 차고 슬갑을 입고 면류관을 쓰고서 면류관 술을 드리우는 것은 종묘에서 제사지내는 복식이니, 계단을 오르내리고 읍하고 사양하며 ㄱ자字 모양으로 꺾어 돌고 몸을 숙이고 우러르는 용모를 하는 것이요, 이런 차림으로 말을 타고 활을 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저 오랑캐들이 중국의 법을 사용한다면 어찌 모두 중국처럼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모두 중국과 같이 하지 못하면서 중국의 법을 뒤섞어 쓴다면, 이는 옥玉을 차고 슬갑을 입고 면류관에 술을 늘이고서 말을 타고 활을 쏘려는 것과 똑같습니다.
옛날 오吳나라의 선조는 단발斷髮하고 문신文身하여 물고기와 자라, 용龍과 뱀과 함께 수십 대를 살았으나 제후諸侯들이 감히 넘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초楚나라 신공 무신申公 巫臣이 처음으로 수레를 타는 방법과 활 쏘고 말 모는 방법을 오吳나라 사람들에게 가르쳐서 군대를 내어 초楚나라를 침략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왕吳王인 합려闔廬와 부차夫差는 또 만족함이 없는 욕망을 부려서 운하運河를 파서 물길을 통하게 하여, 제齊나라와 진晉나라와 함께 강성함을 다투면서 황지黃池의 모임에 억지로 스스로 관冠을 쓰고 띠를 매니, 오吳나라 사람들이 그 병폐를 이기지 못해서 끝내 월越나라에 먹히고 말았습니다.
저 오吳나라를 강성하게 했던 것들이 바로 오吳나라를 망하게 만들었으니, 어째서이겠습니까?
오랑캐의 자질資質로서 중국의 아름다움을 탐하였으니, 당연히 중국 사람들이 오吳나라를 도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서진西晉이 망할 적에 흉노족匈奴族과 선비족鮮卑族, 저족氐族과 강족羌族의 무리들이 중국에 분분하였고 호걸豪傑들이 간간히 일어나서 군장君長이 되었으니, 예컨대 흉노匈奴의 유원해劉元海와 전진前秦의 부견苻堅, 후조後趙의 석륵石勒과 후연後燕의 모용준慕容雋 같은 무리들은 모두 크게 뛰어난 자질로서 한때의 어진 이와 준걸들을 임용해서, 강한 자는 천하天下의 태반을 소유함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끝내 연이어 전복하고 멸망하여, 오래 간 자도 불과 한 대代나 두 대代를 전하고 멸망했던 것은 어째서입니까?
그들의 마음은 진실로 무법無法을 편안히 여기는데 중국의 법法에 속박을 당하였고, 중국 사람들은 진실로 법法을 편안히 여기는데 무법無法을 괴로워하여, 군주와 신하가 서로 어긋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싫어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비록 도읍을 세우고 종묘宗廟를 세웠으나 그 마음이 언제나 위태롭고 위태로워서 항상 그 사이에 더부살이하는 것과 같았으니, 이러고서 어찌 오래 갈 수 있었겠습니까?
또 사람이 하늘에게서 얻은 분수를 버린다면 망하지 않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거란契丹(요遼)은 오대시대五代時代부터 남침하였는데, 석진石晉(후진後晉)의 난리를 틈타 곧바로 경사京師에 와서 중원의 부유하고 화려함과 종묘․사직과 궁궐의 장대함을 보고 좋아하였으나, 여기에 오랫동안 머물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돌아가서 몰래 중국의 제도를 익혔습니다.
산전山前의 여러 군郡이 이미 병합되니, 중국의 사대부士大夫들 중에 거란의 조정에서 벼슬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조정의 의식과 백관百官의 칭호와 문과文科와 무과武科의 선거選擧하는 방법과 도읍都邑과 군현郡縣의 제도로부터 의복과 음식에 이르기까지 모두 중국의 모양을 뒤섞어 취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비와 자식이 모여 살면서 건장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늙은이를 천히 여기며 얻는 것을 탐하고 잃는 것을 잊으며, 승리하면 서로 양보하지 않고 패하여도 서로 구원하지 않는 습관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마음속에 개와 양과 승냥이의 성질을 바꾸지 못하고, 겉으로만 중국 사람들의 법에 끌려갔으니, 이는 함정과 그물 속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격입니다.
그런데도 중국 사람들은 말하기를 “지금의 흉노匈奴(거란契丹)는 옛날의 흉노匈奴가 아니다.
그들이 조치하고 계획하는 것이 모두 다시는 옛날 오랑캐의 마음이 아니어서 우리가 도저히 도모할 수 없다.”라고 하니, 또한 잘못된 계책입니다.
또 천하天下에는 진실로 침착하게 도모하고 은밀히 계획하는 선비가 있습니다.
옛날 선왕先王들이 대사大事를 도모하고 기이한 공을 세우고자 할 경우, 이 사람이 아니면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진秦나라의 울료자尉繚子와 한漢나라의 진평陳平은 모두 술동이와 도마 사이에서 적국의 운명을 제압하였으니, 이는 또한 왕자王者의 마음에 천하天下의 화禍를 늦추려고 하였을 뿐이었습니다.
저 거란契丹에게는 우리가 틈탈 만한 형세가 세 가지 있는데 중국에서 이것을 생각하지 않으니, 또한 애석합니다.
신臣이 거란의 조정과 백관의 무리를 살펴보니, 우리 중국의 사대부士大夫들이 그 사이에 뒤섞여 있어서 진실로 또한 어질고 준걸스럽고 비분강개하여 굽히지 않는 선비가 있습니다.
그런데 거란契丹 군주의 꾸짖음과 모욕이 공경公卿들에게 미치고 채찍질과 매질이 궁전의 계단에서 행해져서 신분은 존귀한 장상將相이 되었으나 감옥에 갇힌 죄수의 치욕을 면치 못하니, 저들 가운데 분하고 답답하여 변란을 일으킬 것을 생각하는 자가 마땅히 있을 것이나, 다만 변란을 일으킬 방법이 없을 뿐입니다.
무릇 이러한 사람들은 모두 우리 송宋나라에게 그 마음을 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쓰임이 되지 못하더라도 또한 그 군주와 신하를 이간시키고 소원하게 할 수 있으니, 이것은 옛날 유여由余가 진秦나라에 들어가 활동했던 이유입니다.
유幽․연燕의 땅은 예로부터 영웅호걸이 많기로 알려져 있어서 역사책에 이름난 자가 왕왕 이 지역 사람들입니다.
송宋나라가 일어나고부터 도처에서 어진 이와 준걸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메아리처럼 호응해서, 멀고 가까움에 관계없이 모두 자신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고 정신을 갈고 연마하여 상국上國의 훌륭한 광채를 보고 싶어 하였는데, 유독 이 한 지방만이 홀로 나쁜 족류族類에 빠져 있습니다.
옛날 태종황제太宗皇帝께서 친히 유주幽州를 정벌하셨다가 이기지 못하고 군대를 돌렸습니다.
그 후 첩자에게 들으니 “유주幽州의 사민士民들이 상의하여 자신들의 장수를 사로잡아 성城을 바치고 항복하려는 자가 있었는데, 황제의 수레가 그대로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는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없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오랑캐들은 산전 제군山前 諸郡의 백성들을 자기 족류族類가 아니라고 여기기 때문에 이들에게 세금을 무겁게 거두고 모질게 부리니, 그들이 속으로 우리 송宋나라에 붙고자 하는 마음을 어찌 깊이 계산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것은 또 쉽게 도모할 수 있으니, 적으로 하여금 상하 간에 서로 시기하고 군주와 백성이 서로 의심하게 한 뒤에 적을 공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쥐가 구멍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구수窶藪를 물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저 오랑캐들이 참람하게 네 곳에 도읍을 세우고 각 고을에 수령과 읍재를 나누어 두고서 창름倉廩과 부고府庫를 구비하지 않음이 없으니, 이러한 것들은 하루아침에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다만 스스로에게 누累가 될 뿐입니다.
지킬 수도 없고 차마 버리지도 못하며 중국 사람과 오랑캐 사람이 뒤섞여 살아서 변란이 생기기 쉬우니, 이와 같으면 중국의 장점을 충분히 시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은 법法을 삼가 지키지 못하고, 저 오랑캐들은 중국의 법을 사모하나 순수하게 사용하지를 못합니다.
이 때문에 승부가 서로 팽팽하여 결판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저 만이蠻夷들은 힘으로 공격하고 힘으로 지키고 힘으로 싸워서, 다만 힘으로 할 수 없으면 도망갑니다.
그런데 중국은 그렇지 않아서 지형地形으로써 지키고 형세로써 공격하고 기운으로써 싸웁니다.
그러므로 백 번 싸워도 힘이 남음이 있는 것입니다.
지형地形은 지키지 않아도 적들이 꺼리지 않음이 없고, 형세形勢는 공격하지 않아도 적들이 피로하지 않음이 없고, 기운은 싸우지 않아도 적들이 두려워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만일 이 세 가지를 버려두고 힘으로 다투려 한다면 중국이 진실로 적을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니, 그러고도 다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국가에서는 큰 것에 유념하여 계책을 세우소서.
그 작은 것은 신臣이 감히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이 글은 지극히 변화해서 자유분방하여 제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