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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2)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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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나라 고제高帝에 대한
議論正하야 勝老泉하니라
의논이 정당하여 노천老泉(소순蘇洵)보다 낫다.
有進說於君者 因其君之資而爲之說하면 則用力寡矣 人唯好善而求名이라 是故 仁義可以誘而進이요 不義可以劫而退니라
군주에게 말씀을 올리는 자가 군주의 타고난 자질을 인하여 설득하면 힘이 적게 드니, 사람은 오직 을 좋아하고 명예를 구하기 때문에 인의仁義의 일은 유도誘導하여 나아가게 할 수 있고 불의不義의 일은 겁을 주어 물러가게 할 수 있는 것이다.
若漢高帝 起於草莽之中하야 徒手奮呼하야 而得天下
나라 고조高祖와 같은 경우는 초야에서 몸을 일으켜 맨손으로 분발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아 천하를 얻었다.
彼知天下之利害 與兵之勝負而已 安知所謂仁義者哉리오
고조高祖는 천하의 이해와 군대의 승부만을 알았을 뿐이니, 어찌 이른바 인의仁義라는 것을 알았겠는가?
觀其天資하면 固亦有合於仁義者 而不喜仁義之說하니 此如小人 終日爲不義로되 而至以不義說之하면 則亦怫然而怒
타고난 자품을 보면 진실로 또한 인의仁義에 부합되는 것이 있었으나 인의仁義의 말을 좋아하지 않았으니, 이것은 비유하면 소인이 종일토록 의롭지 않은 짓을 하더라도 딴 사람이 의롭지 않은 것을 가지고 말하면 분연히 성내는 것과 같은 것이다.
當時之善說者 未嘗敢言仁義與三代禮樂之敎하고
그러므로 당시에 설득을 잘하는 자들도 일찍이 감히 인의仁義삼대 예악三代 禮樂의 가르침을 말하지 못하고,
亦惟曰 如此而爲利 如此而爲害 如此而可 如此而不可라하니
오직 “이와 같이 하면 이로움이 되고 이와 같이 하면 해로움이 되며, 이와 같이 하면 옳고 이와 같이 하면 불가하다.”고 말하였을 뿐이니,
然後 高帝擇其利與可者而從之호되 蓋亦未嘗遲疑하니라
그런 뒤에야 고조高祖가 이로운 것과 옳은 것을 가려 따랐으나 또한 일찍이 지체하거나 의심한 적이 없었다.
천하가 이미 평정되자 자기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태자太子를 바꾸고자 하였으니, 대신 중에 숙손통叔孫通주창周昌의 무리들이 힘써 간쟁諫爭하였으나 고조高祖를 깨우치지 못하였는데, 유후留侯(장량張良)의 계책을 써서 겨우 깨우칠 수 있었다.
嘗讀其書라가 至此 未嘗不太息하야
내 일찍이 그 글을 읽다가 이 부분에 이르면 크게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어서 늘 이렇게 생각하였다.
以爲高帝最易曉者 苟有以當其心이면 彼無所不從이어늘 盍亦告之以呂后太子從帝하야 起於布衣하야 以至於定天下하야
고조高祖는 가장 깨우치기 쉬운 군주였으니, 만일 그 마음에 합당하게 여김이 있으면 따르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어찌하여 “여후呂后가 낳은 태자太子는 황제를 따라 포의布衣에서 일어나 천하를 평정함에 이르렀습니다.
天下望以爲君하니 雖不肖 而大臣心欲之
그리하여 천하 사람들이 그를 군주로 삼기를 바라고 있으니, 비록 불초하다 할지라도 대신들의 마음은 태자太子가 황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如百歲後 誰肯北面事戚姬子乎잇가
만일 황제께서 돌아가시고 나면 누가 기꺼이 북면北面하여 척희戚姬의 아들 여의如意를 섬기겠습니까?
所謂愛之者 祗(只)以禍之오하노라
이른바 ‘아들(여의如意)을 사랑한다.’는 것은 오직 그에게 화를 줄 뿐입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嗟夫
슬프다!
無有以 爲高帝言者歟
해제奚齊탁자卓子가 죽은 이유를 가지고 고조高祖를 위하여 말한 자가 없었단 말인가?
叔孫通之徒 不足以知天下之大計하고 獨有廢嫡立庶之說하야 而欲持此以却之하니 此固高帝之所輕爲也
숙손통叔孫通의 무리는 천하의 큰 계책을 알지 못하고, 다만 적자嫡子를 폐하고 서자庶子를 세운다는 말을 하여 이것을 가지고 태자를 바꾸려는 계책을 물리치고자 하였으니, 이것은 진실로 고조高祖가 하찮게 여기는 일이었다.
人固有所不平하니 使如意爲天子하고 爲臣이면 之徒 圜視而起하리니 如意安得而有之리오
사람은 누구나 진실로 불평하는 바가 있으니, 만일 여의如意천자天子가 되고 혜제惠帝가 신하가 되었더라면 강후 주발絳侯 周勃관영灌嬰의 무리가 둘러보고 일어나 반발했을 것이니, 여의如意가 어떻게 천하를 소유할 수 있었겠는가?
孰與其全安而不失爲王之利也리오
어찌 온전히 편안하여 제후왕諸侯王이 되는 이로움을 잃지 않는 것만 하겠는가?
여의如意제후왕諸侯王이 되어 죽음을 면치 못한 것은 바로 고조高祖의 잘못이었다.
不少抑遠之하야 以泄呂后不平之氣하고 而又厚封焉하니 其爲計不已疎乎
고조高祖가 조금만 여의如意를 억제하고 멀리해서 여후呂后의 불평하는 마음을 덜어주지 않고 여의如意를 더욱 후하게 봉해주었으니, 그 계책을 세운 것이 너무 소략하지 않은가?
或曰 呂后强悍하니 高帝恐其爲變이라 欲立趙王이라하니 此又不然이라
혹자는 말하기를 “여후呂后가 강하고 사나우니, 고조高祖는 그녀가 변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조왕趙王을 황제로 세우고자 한 것이다.”라고 하는데, 이것은 더욱 그렇지 않다.
自高帝之時而言之하면 計呂后之年컨대 當死於惠帝之手하리니 呂后雖悍이나 이라
고조高祖 당시의 입장으로 말한다면, 여후呂后의 나이를 계산해보건대 마땅히 혜제惠帝의 손에서 죽을 것이니, 여후呂后가 비록 사나우나 또한 자기 자식에게서 황제의 자리를 빼앗아 친정 조카에게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惠帝旣死하니 此出於無聊耳 而高帝安得逆知之리오
혜제惠帝가 죽고 나서야 여후呂后가 비로소 사특한 계책을 세웠으니, 이것은 어쩔 수 없는 데에서 나온 것인데, 고조高祖가 어떻게 이것을 미리 알 수 있었겠는가?
且夫事君者 不能使其心知其所以然하야 以樂從吾說하고 而欲以勢奪之하면 亦已危矣
또 군주를 섬기는 자가 군주로 하여금 마음속으로 그 소이연所以然을 알아 자신의 말을 기꺼이 따르게 하지 못하고서, 세력으로 빼앗고자 한다면 이 또한 너무 위태로운 짓이다.
예컨대, 유후留侯가 계책을 세웠을 적에 고조高祖척희戚姬(척부인戚夫人)를 돌아보고 슬피 노래하며 차마 말하지 못한 것은 다만 그 형세가 유후留侯의 계책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일 뿐이었다.
是以 猶欲區區爲趙王計하야 使周昌相之하니
이 때문에 여전히 구구하게 조왕趙王을 위하여 계책을 세우고자 해서 주창周昌으로 하여금 조왕趙王국상國相이 되게 하였다.
이는 그 마음이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생각하기를 ‘목이 뻣뻣한 한 명의 주창周昌이 충분히 여후呂后에게 항거하고 조왕趙王을 비호할 수 있다.’라고 여긴 것이니, 주창周昌여후呂后의 노여움을 격발시켜서 조왕趙王의 죽음을 재촉할 줄을 알지 못한 것이다.
古之善原人情하야 而深識天下之勢者 無如高帝
옛날에 인정을 잘 살피고 천하의 형세를 깊이 안 자로는 고조高祖만 한 이가 없었다.
이나 至此而惑 亦無有以告之者하니 悲夫
그런데도 이에 이르러 현혹되었을 적에 또한 이것을 그에게 고해준 자가 없었으니, 슬프다!
以高帝之英雄으로도 而群臣不能爭其如意之欲立하고 以武帝之奇氣로도 而廷臣不能明其太子之被讒 威爽之過也니라
고조高祖의 영웅스러움으로도 여의如意를 태자로 세우고자 하는 것을 여러 신하들이 간쟁諫爭하지 못하였고, 무제武帝의 기이한 기개로도 태자太子가 참소를 당한 것을 조정의 신하들이 밝히지 못했으니, 이것은 위엄과 밝음이 너무 지나친 탓이다.
하고 子瞻 論高帝 病其易太子而不能保趙王如意하니
노천老泉고조高祖를 논할 적에 진평陳平주발周勃을 잘 등용한 것을 칭찬하였고, 자첨子瞻고조高祖를 논할 적에 태자太子를 바꾸려 하다가 조왕 여의趙王 如意를 보존하지 못한 것을 책망하였다.
皆非所以論帝王王天下之大端也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제왕이 천하에 왕 노릇하는 큰 단서를 논한 것이 아니다.
高帝起布衣하야 以五年而定天下하니 可謂雄矣
고조高祖포의布衣에서 일어나 5년 만에 천하를 평정하였으니, 영웅이라고 이를 만하다.
特其大封同姓하야 而病於疎하고 誅戮功臣하야 而病於猜하고 寵嬖後宮하야 而病於無制
다만 자신의 동성同姓들을 너무 크게 봉해주어 계략을 소략히 함에 결함이 있었고, 공신들을 주륙하여 시기함에 결함이 있었고, 후궁을 너무 총애하여 제재하지 못함에 결함이 있었다.
當其在位之時하야는 反者吹蝟毛而起하고 而身沒未幾 漢業幾殆而陵夷하야 至於文景하야도 天下猶而不安하니 由其不能講求先王之法故也니라
황제로 재위할 적에는 배반하는 자들이 고슴도치 털처럼 일어났고, 몸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라 왕업이 거의 위태롭고 침체하여 문제文帝경제景帝에 이르러서도 천하가 여전히 일이 많아 편안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선왕先王경제經制한 법을 강구하지 않은 때문이었다.
역주
역주1 漢高帝論 : 이 글은 앞의 〈始皇論 二〉와 함께 올린 50편의 글 가운데 하나인 듯한데, 저작 연도는 미상이다. 漢 高帝는 漢나라 高祖로 劉邦을 이른다.
역주2 以愛故……僅得之 : 太子는 呂后의 소생인 劉盈(뒷날의 惠帝)을 가리키는데, 마음이 유약하고 순하여 高祖의 마음에 들지 못하였다. 留侯는 張良의 封號이다. 즉위 12년(B.C. 195)에 漢나라 高祖가 戚夫人을 총애한 나머지 呂后가 낳은 太子를 폐하고 戚夫人의 아들 趙王 如意를 태자로 바꿔 세우려 하였다. 이에 叔孫通이 간하기를 “폐하께서 嫡子를 폐하고 어린 아들을 세우고자 하신다면 먼저 臣을 죽여 그 피로 땅을 더럽히신 다음 시행하소서.”라고 하였으며, 평소 말을 더듬던 周昌도 적극 간하여 말하기를 “臣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나 이것이 불가함을 잘 압니다.”라고 하였으나 이들의 간언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留侯 張良이 계책을 내어, 高祖가 평소 만나고 싶어 하였으나 피하던 商山四皓를 초빙하여 태자와 함께 들어와 알현하게 하자, 高祖는 이들이 太子를 잘 보필할 것으로 생각하여 마침내 태자를 바꾸려는 계획을 중지하였다. 《史記 叔孫通傳》, 《史記 周昌傳》 呂后는 이름이 雉로 高祖의 皇后인데, 뒤에 高皇后로 추존되어 高后로도 일컬어진다. 商山四皓는 秦나라 말기의 隱士들로 東園公, 夏黃公, 甪里先生, 綺里季의 네 사람을 가리킨다. 皓는 머리털과 수염이 하얗게 센 노인을 이른다.
역주3 奚齊卓子之所以死 : 奚齊는 晉나라 獻公의 애첩인 驪姬의 소생이고, 卓子는 驪姬의 여동생의 소생이다. 獻公은 驪姬의 참소에 따라 太子 申生을 자살하게 하고 또 重耳, 夷吾 두 公子를 핍박하여 다른 나라로 도망하게 한 다음 驪姬의 아들 奚齊를 후사로 세웠다. 그러나 獻公이 죽자 大夫 里克이 驪姬의 소행을 미워하여 奚齊를 시해하였고, 荀息이 驪姬의 동생의 아들인 卓子를 세워 보필하였으나 里克이 또다시 卓子를 시해하였다. 《國語 晉語》
역주4 惠帝 : 高祖가 죽고 太子 盈이 즉위하니, 이가 바로 惠帝이다.
역주5 絳灌 : 絳은 絳侯 周勃을, 灌은 潁陰侯 灌嬰을 이르는데 이들은 모두 高祖가 군대를 일으켜 천하를 평정할 때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역주6 如意之爲王……則亦高帝之過矣 : 呂后는 高祖가 생전에 가장 총애하던 戚夫人과 그녀의 아들 趙王 如意를 가장 미워하였는데, 高祖가 서거하고 惠帝가 즉위하자 趙王을 조정으로 불러들여 짐독으로 독살하고 戚夫人까지 죽였다. 蘇軾은 이러한 呂后의 원한이 戚夫人과 趙王 如意에 대한 高祖의 총애가 지나쳤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여겨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7 亦不忍奪之其子 以與姪 : 呂后는 高祖가 죽고 아들 惠帝가 즉위한 다음 呂太后로 추존되고 정치에 참여하였다. 惠帝가 죽자 직접 통치하여 高祖의 아들과 조카들을 대거 죽였으며, 친정의 呂祿과 呂産을 중용하고 황제의 자리를 친정 조카에게 물려주려 하였다. 蘇軾은 그러나 자기의 소생인 惠帝가 살아 있었다면 차마 자식의 帝位를 빼앗아 친정 조카에게 주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역주8 呂后始有邪謀 : 邪謀는 사특한 계책으로 呂后가 漢나라의 國統을 친정 조카에게 물려주려 한 일을 가리킨다.
역주9 如留侯之計……悲歌而不忍 : 태자를 바꾸려는 高祖의 마음을 여러 중신들이 돌려놓지 못하자, 呂后가 留侯 張良을 위협하여 계책을 내게 하였다. 이에 留侯가 建成侯 呂澤에게 이르기를 “이는 口舌로 간쟁하기가 어렵습니다. 돌아보건대 上이 그동안 초치하지 못한 자가 네 사람인데, 이들을 굳이 초청하면 마땅히 올 것이니, 上으로 하여금 이들을 보시게 하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呂澤이 사람을 시켜 태자의 편지를 받들어 겸손한 말과 후한 예로 이 네 사람을 초청하였다. 네 사람이 와서 建成侯의 처소에 손님으로 머물러 있었는데, 잔치하여 술자리를 베풀게 되자 태자가 황제를 모실 적에 네 사람이 태자를 따라오니, 나이가 모두 80여 세여서 수염과 눈썹이 희고 의관이 매우 거룩하였다. 上이 괴이하게 여겨 묻기를 “이들은 무엇하는 자들인가?” 하니, 네 사람이 앞으로 나와 각기 자신들의 성명을 말하였다. 上은 마침내 놀라며 말하기를 “내가 公들을 찾았으나 도망하여 나를 피하더니, 이제 公들이 어찌하여 스스로 내 아들을 따라 노는가?” 하고 물었다. 네 사람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는 선비들을 경시하고 잘 꾸짖으시니, 臣들이 의리상 욕을 당할 수가 없으므로 두려워서 도망해 숨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듣자오니 태자가 인자하고 효성스럽고 공경하며 선비들을 사랑하시니, 천하 사람들이 목을 늘이고 태자를 위해 죽기를 원하지 않는 자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신들이 온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上은 “공들에게 번거롭게 당부하노니 부디 끝까지 태자를 調護하라.”라고 하였다. 네 사람이 술잔을 올려 祝壽하고 종종걸음으로 나가니, 上이 눈으로 전송하고 戚夫人을 불러 이들을 가리켜 보이며 말하기를 “내가 태자를 바꾸고자 하였더니, 저 네 사람이 태자의 보필이 되어 羽翼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동요시키기가 어렵다.”라고 하고는 술자리를 파하였다. 高祖가 끝내 태자를 바꾸지 않은 것은 본래 張良이 이 네 사람을 불러온 덕분이었다. 《史記 留侯世家》 네 사람이란 바로 商山四皓이다.
역주10 一彊項之周昌……速之死耳 : 趙王 如意가 나이가 너무 어렸으므로 高祖는 자신이 죽고 난 뒤에 그의 안전을 염려하여 강직한 周昌을 趙의 國相으로 임명하여 보좌하게 하였다. 高祖가 죽자 呂太后가 趙王을 불렀는데 周昌이 趙王에게 병을 칭탁하고 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사신이 세 번 헛걸음질을 하자 呂太后가 노하여 周昌을 불러 꾸짖은 다음 다시 趙王을 불러 독약을 먹여 죽였다. 《漢書 周昌傳》 蘇軾은 강직하기만 한 周昌이 중간에서 呂后와 趙王 如意의 사이를 조율하지 못하고 呂后의 화만 돋게 하여 趙王에 대한 殺意를 부추겼다고 여겨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11 老泉論高帝 與其能用平勃 : 平勃은 陳平과 周勃을 가리킨다. 高祖는 죽기 직전 呂后에게 陳平을 등용하되 周勃로 돕게 하라고 당부하였다. 뒤에 呂后가 정권을 독단하자 두 사람은 서로 친하게 지내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당시 太尉로서 군권을 쥐고 있던 周勃이 陳平과 상의하고 반란을 획책하는 呂祿, 呂産을 주륙한 다음 代王 劉恒을 옹립하니, 이가 바로 文帝이다. 이에 漢나라는 안정을 되찾게 되었다. 이 내용은 蘇洵의 〈高祖論〉에 보이는데, 〈高祖論〉은 《古文眞寶》 卷7에도 실려 있다.
역주12 鞅掌 : 鞅掌은 일이 번거롭고 수고로워 모양을 낼 겨를이 없음을 말한다. 《詩經》 〈小雅 北山〉에 “어떤 사람은 소리쳐 부르짖는 줄도 모르고 어떤 사람은 처참하게 고생하며, 어떤 사람은 집에서 편안히 빈들거리고 어떤 사람은 王事에 고생하여 초라하도다.[或不知叫號 或慘慘劬勞 或棲遲偃仰 或王事鞅掌]”라고 한 말에서 왔다.
역주13 經制 : 나라를 다스리는 법과 제도를 이른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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