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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3)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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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7. 오자서伍子胥에 대한
초 평왕楚 平王오사伍奢오상伍尙을 죽이자, 오자서伍子胥나라로 망명하여 오왕 합려吳王 闔閭를 섬겼는데, 초 평왕楚 平王이 죽고 아들 소왕昭王이 즉위하였다.
子胥與孫武興兵하야 及唐蔡伐楚하야 夾漢水而陣하야 楚大敗
뒤에 오자서伍子胥손무孫武와 함께 군대를 일으켜 나라와 나라와 함께 나라를 공격하면서 한수漢水를 끼고 을 치고 싸워서 나라를 대파하였다.
於是 吳王 乘勝而前하야 五戰 遂至郢하니 楚昭王 出亡이어늘
이에 오왕吳王이 승세를 타고 전진하여 다섯 번 싸워 모두 승리하고 마침내 나라 도성인 땅에 이르니, 초 소왕楚 昭王이 도성을 빠져나가 도망하였다.
吳兵入郢하야 子胥求昭王호되 旣不得이라
나라 군대가 땅에 입성하자, 자서子胥소왕昭王을 찾았으나 이미 잡을 수가 없었다.
乃掘平王墓하야 出其尸하야 鞭之三百하야 以報父兄之讐하니라
이에 평왕平王의 묘를 파서 시신을 꺼내 채찍 300대를 때려 부형父兄의 원수를 갚았다.
蘇子曰
소자蘇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한다.
子胥, 種, 蠡 皆人傑이어늘
오자서伍子胥문종文種범려范蠡는 모두 인걸人傑이었는데, 양웅揚雄은 고루한 선비였다.
欲以區區之學으로 瑕疵此三人者하야
자신의 하찮은 학식을 가지고 이 세 사람의 하자瑕疵를 트집잡고자 하였다.
以三諫不去하고 으로 爲子胥之罪하고 以不彊諫句踐하야 而棲之會稽 爲種蠡之過
그리하여 세 번 간하고도 떠나가지 않은 것과, 평왕平王의 시신에 채찍질한 것과, 왕의 관사를 차지하여 거처한 것을 가지고 오자서伍子胥의 죄로 삼았으며, 구천句踐에게 강력히 간하지 않아서 궁지에 몰려 회계산會稽山에 머물게 된 것을 가지고 문종文種범려范蠡의 죄로 삼았다.
雄聞하고 卽欲以律天下士하니 豈不陋哉
양웅揚雄은 옛날에 “〈군주에게 잘못이 있으면 신하가〉 세 번 하고는 마땅히 떠나가야 한다.”는 말이 있음을 듣고는, 즉시 이것을 가지고 천하의 선비들을 다스리고자 하였으니, 어찌 고루하지 않겠는가?
三諫而去 爲人臣交淺者言也 乃可耳어니와 이라 與國存亡者也 去將安往哉리오
세 번 간하고 떠나가는 것은 인신人臣으로서 군주君主와의 교분이 얕은 자를 위하여 말한 것이니, 궁지기宮之奇설야洩冶와 같은 사람들은 떠나가도 괜찮지만, 오자서伍子胥와 같은 경우는 나라의 종신宗臣으로 국가와 존망을 함께하는 자이니, 가면 장차 어디로 가겠는가?
百諫不聽이면 繼之以死可也니라
백 번 간하여 듣지 않으면 죽음으로써 뒤를 잇는 것이 옳은 것이다.
孔子去魯하실새 未嘗一諫하시니 又安用三이리오
공자孔子께서 나라를 떠나가실 적에 일찍이 한 번도 하지 않으셨으니, 또 어찌 세 번 간할 필요가 있겠는가?
父受誅 子復讐 禮也
아버지가 죽임을 당했으면 자식이 복수하는 것은 이다.
生則斬首하고 死則鞭尸하야 發其至痛하야 無所擇也
원수가 살아 있으면 그 목을 베고 원수가 죽었으면 시신을 채찍질하여, 그 지극한 애통을 발설하여 가릴 것이 없는 것이다.
是以 昔之君子 皆哀而恕之어늘 獨非人子乎
이 때문에 옛날 군자君子들이 모두 오자서伍子胥를 가엾게 여기고 용서해주었는데, 양웅揚雄은 홀로 사람의 자식이 아니란 말인가?
至於藉館하야는 闔閭與群臣之罪 非子胥意也
초왕楚王의 관사를 차지하여 거처한 것은, 이는 오왕 합려吳王 闔閭와 여러 신하들의 잘못이지 오자서伍子胥의 뜻이 아니었다.
句踐 困於會稽하고 乃能用二子하니 若先戰而彊諫以死之 則雄 又當以子胥之罪 罪之矣리라
구천句踐회계산會稽山에서 곤궁에 처하고서야 비로소 두 사람(문종文種범려范蠡)의 말을 따랐으니, 만약 이 전쟁에 앞서서 두 사람이 강력히 하다가 죽었더라면 양웅揚雄은 또다시 오자서伍子胥의 죄로써 이들을 죄주었을 것이다.
역주
역주1 伍子胥論 : 이 글의 저작 연도 역시 미상이다. 伍子胥는 춘추시대 楚나라 사람으로 이름이 員이고 子胥는 그의 字인데, 伍氏는 莊王 이래 楚나라의 명문 집안이었다.
역주2 楚平王……事吳王闔閭 : 伍奢는 伍員의 아버지이고, 伍尙은 伍員의 형이다. 伍奢는 平王의 太子 建의 스승이었는데, 태자와 사이가 나쁜 費無忌가 태자를 모함하면서 伍奢를 참소하여 큰 아들 伍尙과 함께 참수하였다. 이에 伍子胥는 복수를 기약하고 온갖 고초를 겪으며 吳나라로 도망하여, 당시 公子 신분이던 闔閭를 도와 吳王 僚를 시해하고 왕위에 오르게 한 다음 전심전력으로 보좌하였다. 그 결과 吳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고 楚나라에 복수전을 전개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吳나라는 예전부터 越나라와 원한관계에 있었는데, 吳王 闔閭가 越나라를 공격하다가 越王 句踐에게 姑蘇에서 패하고 부상을 입었다. 闔閭는 부상이 도져 죽게 되자, 태자 夫差를 불러 유언하기를 “너는 越王 句踐이 너의 아버지를 죽인 일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어이 나의 원수를 갚아라.”라고 당부하였다.
이에 夫差는 즉위한 다음 나무 섶에서 자면서 절치부심하며 복수심을 불태웠다. 2년 뒤에 吳王 夫差는 군대를 이끌고 越나라를 공격하여 夫湫에서 越軍을 대파하였다. 越王 句踐은 남은 병력 5천 명을 이끌고 會稽山에 올라 농성하면서 대부 文種을 시켜 吳나라 太宰 伯嚭에게 많은 뇌물을 바치고 화의를 청하였다. 伍子胥는 句踐을 살려두면 후환이 될 것이라 하여 죽일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나 吳王 夫差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越나라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句踐을 살려 보냈다.
句踐은 귀국한 다음 文種과 范蠡를 중용하고 국정을 닦아 부국강병을 이룩하고 다시 吳王 夫差와 싸워 吳軍을 대파하였다. 夫差는 자신을 살려줄 것을 청하였으나, 句踐이 허락하지 않자 마침내 姑蘇臺에서 자결하였다. 伍子胥는 夫差가 伯嚭의 말을 듣고 越王 句踐을 놓아주자, 10여 년이 지나면 越나라가 吳나라를 멸망시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그 후 夫差가 승리에 도취되어 齊나라를 공격하려 하자, 伍子胥는 “越나라는 우리의 심복의 병환인데, 越나라를 내버려두고 齊나라를 공격하려 하시니, 이는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원컨대 齊나라를 정벌하는 대신 越나라를 멸망시키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뒤에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여러 번 간하였으나, 夫差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마침내 伍子胥를 멀리하였다.
夫差가 伍子胥를 齊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는데, 伍子胥가 길을 떠나면서 아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여러 차례 王에게 간하였으나 王은 내 말을 듣지 않으니, 장차 吳나라가 越나라에게 망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네가 吳나라와 함께 죽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라고 하고는 아들을 데리고 가서 齊나라의 대부 鮑牧에게 부탁하고 돌아왔다.
이것을 안 伯嚭가 吳王에게 참소하기를 “伍子胥는 인품이 잔인하고 고집이 세며 은혜를 베푸는 데 인색하고 시기심이 많습니다. 齊나라에 사자로 가서 그의 아들을 齊나라의 鮑牧에게 부탁하였으니, 대왕께서 齊나라를 정벌하러 가시면 伍子胥는 반드시 내란을 일으킬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夫差는 蜀鏤(촉루)라는 검을 주어 伍子胥를 자살하게 하였다.
伍子胥는 죽으면서 집안사람들에게 “내가 죽거든 나의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吳王의 관을 만들게 하라. 그리고 나의 두 눈을 뽑아 城의 동문 위에 걸어놓아라. 나는 죽어서라도 越나라가 吳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보리라!”라고 당부하였다.
吳王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伍子胥의 시신을 술 담는 가죽부대인 鴟夷에 넣어 강물에 띄워 보냈는데, 그 후 伍子胥의 예언대로 결국 吳나라는 越나라에 의해 멸망하였다. 《史記 伍子胥傳》, 《十八史略》
역주3 揚雄曲士也 : 揚雄은 漢나라의 학자이며 문인으로, 자는 子雲이며, 蜀郡 成都 사람이다. 박학다식하고 뛰어난 문장가였으나, 王莽의 新나라 때에 王莽을 찬미하는 글을 지어 후대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저서로는 《太玄經》과 《法言》이 가장 유명하며 많은 賦를 지었다. 曲士는 전체를 꿰뚫어보지 못하고 한쪽만 아는 수준 낮은 선비를 이른다.
본문의 내용은 전대의 帝王과 將相, 諸子先賢들의 업적과 학설을 평가한 《法言》 〈重黎〉에 보이는데, 蘇軾은 揚雄의 평가에 왜곡이 있음을 비판하여 曲士라고 말한 것이다.
역주4 鞭尸藉館 : 鞭尸는 시신에 채찍을 때리는 것을 이른다. 藉館은 吳나라 군대가 楚나라의 수도에 들어가서 吳王은 楚王의 궁궐에 머물고, 吳나라 대부들은 楚나라 대부들의 집에 유숙한 일을 이른다.
揚雄이 지은 《法言》 〈重黎〉에 “어떤 사람이 揚雄에게 ‘伍子胥와 文種과 范蠡 중에 누가 제일 훌륭합니까?’라고 묻자, 揚雄이 대답하였다.
‘伍子胥는 吳나라 闔閭로 하여금 내란을 일으켜 王僚를 시해하게 하고 楚나라를 격파한 다음, 郢 땅에 들어가서 平王의 시신에 채찍질을 하고 楚王의 관사에 유숙하였으니, 이는 모두 예법을 따르지 않은 것이며, 夫差에게 越나라를 도모하고 齊나라를 공격하지 말 것을 간하였으나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도 떠나가지 못하고 끝내 눈알을 뽑고 말았다.
文種과 范蠡는 越王 句踐을 설득하여 吳나라와 전쟁하지 않도록 간하지 못해서 越나라로 하여금 會稽山에서 대패하여 越나라의 社稷을 욕되게 하였으며, 또 끝내는 吳나라를 멸망시켰으니, 훌륭하다고 할 수 없다.’ ”라고 비판하였다.
역주5 古有三諫當去之說 : 三諫當去는 신하가 군주에게 세 번 간하여 듣지 않으면 마땅히 떠나야 함을 이른다. 《春秋公羊傳》 莊公 24년에 “戎이 장차 曹나라를 침략하고자 하였는데, 曹羈가 간하기를 ‘戎은 義理가 없으니, 임금께서는 저들과 대적하지 마십시오.’라고 하였으나 曹나라 임금은 듣지 않았다. 세 번 간하였는데도 따르지 않자 曹羈가 마침내 曹나라를 떠나가니, 군자들이 군신의 의리를 얻었다고 평가하였다.”라고 보인다.
《史記》 〈宋微子世家〉에는 “殷나라 紂王이 무도한 짓을 자행하여 比干을 죽이고 箕子를 가두자, 微子가 말하기를 ‘부자간은 骨肉(血緣)의 은혜가 있고 군신간은 義理로써 합하였다. 이 때문에 아버지가 잘못이 있을 경우 자식이 세 번 간하여도 듣지 않으면 그 뒤를 따르면서 울부짖고, 군주가 잘못이 있어 세 번 간하는데도 듣지 않으면 의리상 떠나갈 수 있다.’[微子曰 父子有骨肉 而臣主以義屬 故父有過 子三諫不聽 則隨而號之 人臣三諫不聽 則其義可以去矣]”라고 하였다.
역주6 宮之奇洩冶 : 宮之奇는 춘추시대 虞나라의 대부이다. 晉나라가 虢나라를 치려면 虞나라를 통과해야 하므로 晉나라에서는 虞나라 임금에게 많은 뇌물을 주고 길을 빌려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때 宮之奇는 ‘脣亡齒寒’의 이치를 들어 길을 빌려주지 말 것을 간하였다. 그러나 뇌물에 눈이 먼 虞나라 임금이 그의 말을 듣지 않자, 宮之奇는 가족을 데리고 虞나라를 떠났는데, 晉나라는 虢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虞나라마저 멸망시켰다.
洩冶는 춘추시대 陳나라의 대부로 임금이 무도하여 자주 간하였으나 듣지 않자 마침내 陳나라를 떠나갔다. 脣亡齒寒은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는 뜻으로 이웃나라가 망하면 그 화가 자신에게 미침을 이른다.
역주7 至如子胥 吳之宗臣 : 宗臣은 국가에 여러 대에 걸쳐 功이 있는 大臣을 이른다. 伍子胥는 楚나라에서 吳나라로 도망하여 처음 吳王 僚를 섬겼고, 이어 대신의 지위에 있으면서 闔閭와 夫差를 차례로 도왔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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