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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2)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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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7. 등주登州에 부임해서 양부兩府에 사례한
迂愚之守 沒齒不移하니 廢逐之餘 歸田已幸이라
저는 오활함과 어리석음을 지켜 죽을 때까지 바꾸지 않았으니, 버림받고 쫓겨난 뒤에 전원으로 돌아온 것도 참으로 다행입니다.
豈謂之寄 忽爲枯朽之榮이리오
그런데 어찌 황제의 명령을 베푸는 지방관을 맡기셔서 홀연히 늙고 쇠약한 몸을 영화롭게 하실 줄 알았겠습니까?
眷此 하니 俗近齊魯之厚하고 迹皆秦漢之陳이라
돌아보건대 이 동쪽 고을인 등주登州는 아래로 북쪽 변방과 접해 있으니, 풍속은 나라와 나라의 후덕함에 가깝고 자취는 모두 한시대漢時代의 옛것입니다.
賓出日於 山川炳燿하고 傳夕烽於海嶠 鼓角淸閑이라
뜨는 해를 여초麗譙에서 공경히 맞이함에 산천이 찬란하고, 저녁 봉홧불을 바닷가에서 올림에 고각鼓角소리가 맑고 한가롭습니다.
顧靜樂之難名하니 笑妄庸之濫據
돌아보건대 이곳의 조용하고 즐거운 생활은 필설筆舌로 형용하기 어려우니, 저와 같이 망령되고 용렬한 자가 함부로 차지한 것이 가소롭습니다.
此蓋伏遇某官 股肱元聖하고 師保萬民하사 才全而德不形하고 任重而道愈遠이라
이는 모관某官의 은혜 덕분이니, 모관某官께서는 원성元聖(임금)을 보필하고 만민萬民사보師保가 되시어 재주가 온전한데도 덕을 드러내지 않고 임무는 막중한데 갈 길은 더욱 멉니다.
이라하사 特借齒牙하야 曲成羽翼하시니
공로가 있는 사람을 부리는 것이 허물이 있는 사람을 부리는 것만 못하고, 잘못을 살펴보면 충분히 을 알 수 있다고 여기시어 특별히 칭찬의 말씀을 베푸셔서 간곡히 우익羽翼을 이루어주셨습니다.
軾敢不服勤簿領하고 祗畏簡書리오
제가 감히 부령簿領(공무公務)을 부지런히 처리하고 간서簡書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策蹇磨鈍하야 少答非常之遇하고 息黥補劓하야 漸收無用之材하리니 過此以還 未知所措로소이다
절뚝거리는 말을 채찍질하고 무딘 칼을 갈아서 비상한 지우知遇에 다소나마 보답하고, 묵형墨刑을 지우고 베인 코를 보전해서 쓸모없는 재주를 점점 거두려 하오니, 이 이상은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역주
역주1 登州謝兩府啓 : 本集에는 제목 아래에 ‘元豐八年’이라는 4字가 있고, 편 머리에 ‘右軾啓 蒙恩受前件官 已於今月十五日到任上乞訖者’라는 22字가 있다. 蘇軾은 元豐 3년(1080)에 烏臺詩案으로 유배되어 黃州에 거주하였는데, 元豐 7년에 유배가 풀리고 汝州團練副使로 常州에 거주하게 되었다가, 元豐 8년 5월에 朝奉郞 知登州事로 복직되었는바, 10월 15일에 登州에 부임하여 사례하는 表와 이 啓를 올렸다. 兩府는 中書省과 樞密院을 이르는데, 蘇軾이 知登州事로서 知軍州事를 겸하였으므로 兩府에 모두 감사의 뜻을 전한 것이다.
역주2 承宣 : 원래는 王命을 출납하는 承旨를 지칭하나, 여기서는 임금을 대신하여 백성들에게 政事를 직접 시행하는 지방의 감사나 수령을 이른다.
역주3 東州 : 登州가 山東반도에 위치하여 京師의 동쪽에 있기 때문에 東州라고 칭한 것이다.
역주4 下臨北徼 : 北徼는 북쪽 변방으로, 이때에 登州의 북쪽은 遼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5 麗譙 : 화려하게 장식된 높은 누각을 가리킨다. 원래 삼국시대 曹操가 지은 누각의 이름인데 화려하기로 유명하다.
역주6 使功不如使過 : 使功은 공이 있는 사람을 등용하는 것이고, 使過는 허물이 있는 사람을 등용함을 이르는바, 이 말은 後漢 초기 更始皇帝 때 索盧放이 한 말이다. 索盧放은 字가 君陽으로 東郡 사람인데, 성문을 지키는 낮은 관리였다. 更始皇帝의 使者가 郡國을 순행하며 감독할 적에 죄를 지은 태수를 참수하려고 하자, 索盧放이 나아가 이르기를 “지금 천하가 王莽의 학정에 시달리고 있어서 漢나라의 덕을 우러러 받들고 있습니다. 지금 使者께서 지나는 곳마다 은택을 베풀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는데, 郡의 太守를 참수하신다면 천하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의심할까 근심됩니다. 공로가 있는 사람을 부리는 것이 허물이 있는 사람을 부리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고, 옷을 벗고 태수를 대신하여 참수당하고자 하였다. 이에 使者가 의롭게 여겨 태수를 용서하였으며, 索盧放은 이로써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後漢書 索盧放傳》 蘇軾이 죄를 지었다가 다시 등용되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7 觀過足以知仁 : 觀過는 사람을 관찰할 적에 그 사람이 어떠한 잘못을 저질렀는가를 살펴봄을 이르는바, 《論語》 〈里仁〉에 “사람의 과실은 각기 그 類대로 하는 것이니, 그 사람의 과실을 보면 仁을 알 수 있다.[人之過也 各於其黨 看過斯知仁矣]”라고 보인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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