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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5)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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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6. 서주徐州연화누蓮華漏에 대한
借漏以發明道術하니 吾所以謂蘇長公仙於文者也로라
(물시계)를 빌어서 도술道術을 발명하였으니, 내가 이 때문에 소장공蘇長公을 일러 문장의 신선이라고 하는 것이다.
以創物之智 聞於天下하야 作蓮華漏하니 世服其精이라
고 용도각직학사故 龍圖閣直學士 예부시랑 연공禮部侍郞 燕公 이 물건을 창조하는 지혜로 천하에 알려져서 연화누蓮華漏를 만드니, 세상 사람들이 그 정교함에 탄복하였다.
凡公所臨 必爲之하야 今州郡 往往而在하니 雖有巧者라도 莫敢損益이어늘 而徐州獨用瞽人衛朴所造하야 廢法而任意하야 有壺而無箭이라
무릇 이 부임하는 곳에는 반드시 이것을 만들어서 지금 들에 곳곳마다 남아 있으니, 비록 솜씨가 좋은 자가 있어도 감히 줄이고 더하지 못하였는데, 서주徐州에서는 유독 맹인인 위박衛朴이 만든 것을 사용하여, 〈물시계를 제작하는〉 법을 폐기하고 자기 뜻대로 만들어서 물병(항아리)만 있고 시간을 가리키는 바늘이 없었다.
自以無目而廢天下之視하야 使守者伺其滿이라가 則決之而更注하니 人莫不笑之
맹인은 자신이 눈이 없기 때문에 천하의 모든 사람들이 보지 못한다고 여겨서 물병을 지키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다리고 있다가 물이 차면 물을 터주고 다시 주입하게 하니, 사람들이 비웃지 않는 이가 없었다.
國子博士傅君裼 公之外曾孫이니 得其法爲詳이라
국자박사 부군國子博士 傅君 의 외증손인데, 연화누蓮華漏를 제작하는 을 자세히 터득하였다.
是邦也 實始改作하고 而請銘於軾이라
그래서 이 고을의 통판通判이 되었을 적에 처음으로 다시 만들고 나에게 명문銘文을 청하였다.
銘曰
명문銘文은 다음과 같다.
人之所信者 手足耳目也 目識多寡하고 手知重輕이라
사람이 믿는 것은 손과 발과 귀와 눈인데, 눈은 많고 적음을 알고 손은 무겁고 가벼움을 안다.
이나 人未有以手量而目計者하야 必付之於度量與權衡하나니 豈不自信而信物이리오
그러나 사람들이 손으로 헤아리고 눈으로 계산하는 자가 있지 않아, 반드시 과 저울에게 맡기니, 어찌하여 자신을 믿지 않고 물건을 믿는가?
蓋以爲無意無我然後 得萬物之情이라
이는 감정이 없고 아집이 없는 뒤에야 만물의 실정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天地之寒暑 日月之晦明 라도 而不能逃於三尺之箭 五斗之缾(甁)하야 雖疾雷霾風雨雪晝晦라도 而遲速有度하야 不加虧贏이라
그러므로 하늘과 땅의 춥고 더움과 해와 달의 어둡고 밝음과 3십8만7천 리의 밖에 버티고 있는 곤륜산崑崙山도 이 세 자의 시곗바늘과 다섯 말들이 물병의 물을 피할 수 없어서, 비록 빠른 우레와 흙비 섞인 바람과 함박눈과 캄캄한 낮이라도 더디고 빠른 것이 일정한 도수가 있어서, 더 모자라지도 않고 더 남지도 않는다.
使凡爲吏者 如缾之受水 不過其量하고 如水之浮箭 不失其平하며 如箭之升降也 視時之上下하야 降不爲辱하고 升不爲榮이면 則民將靡然心服하야 而寄我以死生矣리라
그러니 만일 모든 관리들이 물병이 물을 받는 것이 그 을 넘지 않는 것과 같고, 물이 시곗바늘을 띄우는 것이 그 평평함을 잃지 않는 것과 같고, 시곗바늘이 오르내리는 것이 시간의 오르내림을 보는 것과 같이 해서, 내려가도(좌천되어도) 욕되게 여기지 않고 올라가도 영화롭게 여기지 않는다면, 백성들이 장차 모두 쏠려 진심으로 복종해서 자신의 목숨을 맡길(바칠) 것이다.
按樓迂齋曰 坡翁 最長於物理上推到義理精微處하야 妙於形容이요 而引歸吏身上하니 尤佳
살펴보건대, 누우재樓迂齋(누방婁昉)가 말하기를 “동파옹東坡翁은 물건의 이치에서 미루어 의리의 정미한 곳으로 가는 데 매우 뛰어나 형용을 묘하게 하였고, 또 관리에게로 귀결시켰으니 더욱 빼어나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徐州蓮華漏銘 : 王文誥의 《蘇文忠公詩編注集成總案》 16권에 “東坡가 元豐 원년(1078) 정월에 梁交와 함께 傅裼의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徐州蓮華漏銘〉을 지었다.”라고 보이며, 또 “내가 살펴보니 〈徐州蓮華漏銘〉의 서문에서 말한 傅君裼은 바로 燕公 肅의 外曾孫이니, 詩의 제목인 〈與梁左藏飮傅國博家〉에 말한 傅國博은 바로 傅裼이다.”라고 하였다. 蓮華漏는 연꽃 모양으로 만든 시각을 알리는 물시계이다.
역주2 故龍圖閣直學士禮部侍郞燕公肅 : 燕肅(961~1040)으로 宋나라 초기의 문신이자 화가이고 과학자이며, 字가 穆之이고 靑州 益都 사람이다. 進士로 출사하여 鳳翔府觀察推官에 보임되었으며 監察御史, 殿中侍御史, 提點廣南西路刑獄 등에 제수되고 龍圖閣直學士로 여러 州의 知事를 역임하다가 禮部侍郞으로 치사하였다. 春山圖 등의 그림을 남겼으며, 蓮華漏․指南車 등을 제작하여 조정에 바쳤다. 《宋史》에 傳이 있다.
역주3 通守 : 通判으로 州의 副官의 직책인데 太守(知州事)를 도와 州郡을 다스리며, 太守와 공동으로 문서에 서명하였다.
역주4 昆侖旁薄於三十八萬七千里之外 : 昆侖은 산의 이름으로 崑崙으로도 표기하는데, 지금의 新疆과 西域 사이에 있으며 서쪽으로는 파미르 고원과 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靑海省 경내에 이른다. 이 산은 중국의 여러 신화와 전설의 무대로 《山海經》, 《淮南子》, 《神異經》 등에 자주 보이며, 중국에서 가장 큰 산이나 먼 塞外를 말할 적에 보통 이곳을 든다. 旁薄은 磅礡으로도 표기하는데, 地形이나 山勢가 크게 버티고 있는 모양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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