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唐宋八大家文抄 蘇軾(2)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9. 나라 양공襄公에 대한
千古隻眼之論이요 自正當이라
천고千古의 남다른 안목이 있는 의논이요, 또 본래 말이 정당하다.
冬十有一月己巳朔 宋公 及楚人으로 戰于泓하야 이라하니 春秋書戰 未有若此之嚴而盡也하니라
춘추春秋》에 이르기를 “나라 희공僖公 22년 겨울 11월 기사삭己巳朔송공宋公나라 사람과 홍수泓水에서 싸워서 나라 군대가 대패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춘추春秋》에서 전쟁을 쓴 것이 이와 같이 엄격하고 지극한 경우는 있지 않다.
蘇子曰
이에 소자蘇子는 다음과 같이 논한다.
이요 先代之後 於周 爲客하야 天子有事 膰焉하고 有喪이면 拜焉하야 非列國諸侯之所敢敵也어늘
송공宋公천자天子상공上公이고 나라는 선대先代(선왕조先王朝)의 후손後孫으로 나라에게는 빈객賓客이 되어서, 천자天子제사祭祀가 있으면 제사고기를 보내고 이 있으면 절하여, 열국列國제후諸侯들이 감히 대등하게 대할 수 있는 바가 아니었다.
而曰及楚人戰于泓이라하니 蠻夷之國이요 微者之稱이라
그런데 《춘추春秋》에 “나라 사람과 홍수泓水에서 싸웠다.”라고 썼으니, ‘나라’는 이적夷狄의 나라이고 ‘사람’은 미천한 자의 칭호이다.
以天子之上公으로 而當夷狄之微者하야 至於敗績하니 宋公之罪 蓋可見矣어늘
천자天子상공上公으로서 이적夷狄의 미천한 자와 대등하게 나열되어 패적敗績에 이르렀으니, 송공宋公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라하니 學者疑焉이라 不可以不辨이로라
그런데도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는 이르기를 “문왕文王의 전쟁도 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칭찬하였으니, 배우는 자들이 이것을 의심하므로 내가 분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宋襄公 非獨行仁義而不終者也 以不仁之資 盜仁者之名爾
나라 양공襄公은 다만 인의仁義를 행하다가 마치지 못한 자가 아니요, 불인不仁한 자질로 인자仁者의 이름을 도둑질하였다.
나라 선왕宣王이 어떤 사람이 소를 끌고 당하堂下를 지나가자, “그 소는 어디로 가는가?”라고 물었는데, 대답하기를 “장차 이 소를 잡아서 그 피로 종의 틈을 바르려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王曰 舍(捨)之하라
선왕宣王이 말하기를 “그 소를 놓아주어라.
吾不忍其觳觫若無罪而就死地라하니라
내 벌벌 떨면서 죄 없이 죽을 곳으로 나아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라고 하였다.
夫捨一牛 於德 未有所損益者어늘하시니 所謂이니 三代之所共也니라
소 한 마리를 놓아주는 것이 에 있어서 줄어들거나 더함이 있는 것이 아니지만, 맹자孟子는 이것을 가지고 선왕宣王왕도王道를 행할 수 있다고 인정해주었으니, 이른바 〈선왕先王이〉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어진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어진 정사政事를 했다는 것이니, 이는 삼대시대三代時代에 공통된 것이었다.
그런데 나라 양공襄公증자鄫子를 사로잡아 그를 죽여서 차수次睢에 희생으로 사용하였다.
君子 殺一牛之不忍이어늘 而宋公 戕一國君 若犬豕然하니 此而忍爲之 天下 孰有不忍者耶리오
군자는 한 마리 소를 죽이는 것도 차마 못하는데, 나라 양공襄公은 한 나라의 군주를 죽이기를 개와 돼지를 죽이듯이 쉽게 하였으니, 이것을 차마 한다면 천하에 무슨 일인들 차마 못할 일이 있겠는가?
양공襄公홍수泓水의 전쟁에서 몸과 나라가 똑같이 피투성이가 되었는데, ‘부상당한 사람을 거듭 상해하지 않고 반백이 된 자를 사로잡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제후諸侯들을 속이고자 하였다.
人能紾其兄之臂以取食하고 而能忍饑於 天下知其不情也리라
자기 형의 팔뚝을 비틀어 음식을 빼앗아 먹으면서 술과 밥이 있는데도 먹지 않고 청렴을 지킨다며 굶주림을 참는 자가 있으면, 천하 사람들은 이것이 실정實情이 아님을 안다.
이로되 이어든 況用人於夷鬼以求霸하고 而謂之 可乎
환공桓公문공文公의 군대는 망한 나라를 보존시켜 주고 끊어진 대를 이어주었는데도 중니仲尼문하門下에 끼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생사람을 오랑캐 귀신의 제사에 희생으로 사용하여 패자霸者가 되기를 구하면서 이것을 왕자王者의 군대라고 말하는 것이 되겠는가?
使鄫子有罪而討之인댄 雖聲之諸侯而라도 天下不以爲過리라
만일 증자鄫子가 죄가 있어서 토벌했다면 비록 이것을 제후들에게 알리고 에서 죽였더라도 천하 사람들이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若以喜怒興師어든 而況敢用諸淫昏之鬼乎
만약 기뻐하고 노여워하는 자신의 감정 때문에 군대를 일으켰다면, 나라 목공穆公진후晉侯를 사로잡고도 오히려 놓아주었는데, 하물며 감히 이것을 〈제사 지낼 만한 대상이 아닌〉 어둡고 음란한 귀신에게 사용한단 말인가?
以愚觀之컨대 宋襄公 之流
어리석은 내가 살펴보건대 나라 양공襄公왕망王莽의 부류이다.
襄公 以諸侯爲可以名得하고 王莽 以天下爲可以文取也하니 其得喪小大 不同이나 其不能欺天下 則同也니라
양공襄公제후諸侯들을 인자仁者라는 명성으로 얻을 수 있다고 여겼고, 왕망王莽천하天下문식文飾으로 취할 수 있다고 여겼으니, 그 득실의 크고 작음은 똑같지 않으나 천하를 속이지 못한 것은 똑같았다.
양공襄公이 상대방이 전열戰列을 이루지 못했을 적에 북을 쳐서 공격하지 않은 것’이 양공襄公의 포악함을 덜 수 없고, ‘왕망王莽유자孺子를 안고서 운 것’이 왕망王莽이 찬탈한 죄를 덮을 수가 없으니, 만약 왕망王莽이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하나의 나라 양공襄公이었을 것이요, 양공襄公이 뜻을 얻었더라면 또한 하나의 왕망王莽이었을 것이다.
라하니 襄公 行王者之師 猶足以當桓文之師어늘 一戰之餘 救死扶傷不暇하니 此獨妄庸耳
옛사람이 말하기를 “왕자王者를 도모하다가 이루지 못하면, 잘못되더라도 패자霸者는 될 수 있다.”라고 하였으니, 양공襄公왕자王者의 군사를 행했더라면 그래도 나라 환공桓公나라 문공文公의 군대를 당해낼 수 있었을 것인데, 한 번 싸운 뒤에 죽어가는 병졸을 구원하고 부상당한 사람을 부축하기에도 겨를이 없었으니, 이것은 다만 망령되고 용렬한 짓일 뿐이었다.
이어늘 襄公 有一로되 不能用하니 豈可同日而語哉
나라 환공桓公나라 문공文公관중管仲자범子犯을 얻어서 흥하였는데, 양공襄公자어子魚 한 사람이 있었으나 그의 말을 따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똑같이 논할 수 있겠는가?
自古 失道之君 如是者多矣로되 死而論定 未有如宋襄公之欺於後世者也니라
예로부터 를 잃은 군주로서 이와 같은 자들이 많았으나, 죽은 뒤에 의논이 정해진 자로는 나라 양공襄公처럼 후세를 속인 자는 있지 않았다.
역주
역주1 宋襄公論 : 이 글은 《志林》의 高論 가운데 하나로 해남도에서 쓰여진 것으로 보이나 구체적인 저작 시기는 알 수 없다. 宋 襄公(재위 B.C. 650~B.C. 637)은 이름이 玆父이다. 春秋時代 宋나라의 군주로 史家에 따라서는 春秋時代 五霸의 하나로 꼽기도 한다. 公子 目夷의 충고를 따르지 않고 楚나라와 패권을 다투다가 楚나라에 억류되는 수모를 겪기도 하고, 또 楚나라와 泓水에서 싸울 적에도 楚나라의 군대가 泓水를 반쯤 건넜을 적에 공격하자는 司馬 子魚의 간쟁을 물리치고 楚軍이 물을 다 건너고 대열을 다 갖출 때까지 기다렸다가 싸워 크게 패하였다. 이에 세상 사람들이 ‘宋襄之仁’이라 하여 이를 비웃었다.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僖公 22년조에 보인다. 子魚는 目夷의 字이다.
역주2 魯僖公二十二年 : 僖公은 莊公의 아들이며 閔公의 형으로 이름이 申이다. 《春秋》의 기사는 魯나라 위주로 되어 있는데, 魯나라 僖公 22년은 宋나라 襄公 13년으로 B.C. 638년이다.
역주3 宋師敗績 : 敗績은 크게 패함을 이른다.
역주4 宋公 天子之上公 : 宋나라 군주는 周나라 天子가 봉한 上公이란 말인데, 上公은 제후의 다섯 등급 중 가장 높은 지위이다. 宋나라는 殷나라의 후손인 微子를 봉한 나라로 天子의 禮로 先王을 제사하게 하는 등 특별히 우대하였다.
역주5 公羊傳……不過是 : 《春秋公羊傳》 僖公 22년조에 宋나라와 楚나라의 전쟁을 기록한 뒤 평하기를 “그러므로 君子는 대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공격하지 않은 것과, 전쟁에 임해서도 큰 禮를 잊지 않은 것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훌륭한 군주는 있었으나 좋은 신하가 없었으니, 비록 文王이 전쟁을 했더라도 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故君子大其不鼓不成列 臨大事而不忘大禮 有君而無臣 以爲雖文王之戰 亦不過此也]”라고 하였다. 《春秋》의 각 傳에 언급되어 있는 君子는 대체로 孔子를 가리킨다.
역주6 齊宣……吾不忍其觳觫(곡속)若無罪而就死地 : 이 내용은 《孟子》 〈梁惠王 上〉에 보인다.
역주7 孟子予之以王 : 孟子가 齊나라 宣王에게 “백성을 보호하면서 王道政治를 행하면 王者가 될 수 있다.”라고 말씀하자, 宣王은 “寡人과 같은 자도 王者가 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孟子는 예전에 宣王이 죽으러 가는 소를 살려준 사례를 들며 이 측은해하는 마음이 충분히 王者가 될 수 있다고 말씀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8 以不忍人之心 行不忍人之政 : 不忍人之心은 사람을 차마 해치지 못하는 인자한 마음으로, 이 내용은 《孟子》 〈公孫丑 上〉에 보인다.
역주9 宋襄公……用於次睢之社 : 鄫子는 약소국인 鄫나라의 임금이고, 次睢는 地名으로 지금의 山東省 臨沂縣에 있었으며, 社는 土地神을 이른다. 《春秋左氏傳》 僖公 19년조에 “여름에 宋 襄公이 邾 文公에게 鄫子를 次睢의 社에 희생으로 쓰게 하여 東夷를 복속시키려 하였다.”라고 보인다.
역주10 泓之役……不禽二毛 : 二毛는 머리털이 반은 희고 반은 검은 50대의 斑白을 이른다. 《春秋左氏傳》 僖公 22년조에 “宋나라의 군대가 대패하여 襄公은 허벅지에 상처를 입었고 좌우에서 임금을 보호하는 門官들은 모두 죽었다. 國人들이 襄公을 원망하자, 襄公이 말하였다. ‘君子는 부상당한 敵은 거듭 찌르지 않으며 반백의 노인은 포로로 잡지 않는 것이다. 옛날의 전쟁에는 험한 지형을 이용해 敵을 공격하지 않았으니, 과인이 비록 亡國의 후손이지만 戰列을 이루지 못한 敵에게 진격을 명하는 북을 치지 않았노라.’ ”라고 보인다. 宋나라는 殷나라의 후손이므로 亡國의 후손이라고 한 것이다.
역주11 壺飱 : 酒食을 이른다. 壺는 병으로 술을 이르고, 飱은 저녁밥을 이른다. ‘飱’은 本集에는 ‘餐’으로 되어 있다.
역주12 桓文之師 存亡繼絶 : 桓은 齊나라의 桓公이고 文은 晉나라의 文公으로 모두 春秋時代의 盟主이며, 存亡繼絶은 멸망한 나라를 보존시켜 주고 끊어진 代를 이어줌을 이른다. 齊나라 桓公은 邢, 衛, 杞의 세 나라를 보존해준 적이 있었고, 晉나라 文公은 曹나라와 衛나라의 군주를 복위시킨 적이 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13 猶不齒於仲尼之門 : 이 내용은 《孟子》 〈梁惠王 上〉에 보인다. 齊나라 宣王이 齊 桓公과 晉 文公의 일, 즉 霸業을 이룬 일을 들려줄 수 있느냐고 묻자, 孟子는 대답하기를 “仲尼의 門徒들은 桓公과 文公의 일을 말한 자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후세에 전해진 것이 없어, 臣이 아직 듣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仲尼는 孔子의 字이다.
역주14 王者之師 : 仁義를 위하여 일으킨 군대를 말한다.
역주15 戮於社 : 戮은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말한다. 社는 땅을 맡은 土地神을 모시는 곳인데 土地神은 陰을 주관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죽일 적에는 서쪽에 있는 社에서 행하고, 상을 내릴 적에는 동쪽에 있는 宗廟에서 행하였다.
역주16 秦繆公……且猶釋之 : 繆公은 穆公으로도 쓴다. 《春秋》 僖公 15년조에 “11월 壬戌日에 晉侯와 秦伯이 韓 땅에서 싸웠는데 晉侯가 사로잡혔다.”라는 내용이 보이며, 《春秋左氏傳》에 “11월에 晉侯가 돌아왔다.”라고 보인다. 秦伯은 秦나라 穆公으로 이름이 任好이고 成公의 아들이다. 晉侯는 晉나라 惠公 夷吾를 말한다.
역주17 王莽 : 西漢 말의 권신으로 元帝의 妃인 孝元皇后의 친정 조카이다. 大司馬가 되어 처음에는 善政을 베풀어 宰衡이라고 일컬어지기까지 하였으나, 마침내는 平帝를 시해하고 孺子 嬰을 세워 섭정하다가 뒤이어 帝位를 찬탈하고는 국호를 新이라 하였는데, 在位 15년 만에 光武帝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역주18 抱孺子以泣……亦一莽也 : 王莽은 居攝 원년(6) 3월에 宣帝의 玄孫 嬰을 황태자로 세우고 孺子라고 칭하다가 마침내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였는데, 이때 孺子를 안고서 흐느껴 울어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이렇게 하는 것임을 보였다. 《漢書 王莽傳》
역주19 古人有言……其弊猶足以霸 : 春秋時代에 越王 無疆이 북쪽으로 齊나라를 공격하자, 齊나라의 威王이 사신을 보내어 越王을 설득하기를 “越나라가 楚나라를 정벌하지 않으면 크게는 王者가 못 되고 작게는 霸者도 되지 못합니다. 제가 들으니, 王者를 도모하다가 이루지 못하면 아무리 잘못되어도 霸業은 이룬다고 하니, 대왕께서는 군대를 돌려 楚나라를 공격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越나라는 齊나라를 버려두고 楚나라를 공격하였다. 《史記 越世家》
역주20 齊桓晉文得管仲子犯以興 : 齊나라 桓公은 管仲을 재상으로 등용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霸者가 되었으며, 晉나라 文公은 子犯의 도움으로 霸者가 되었다. 子犯은 文公 重耳의 외삼촌으로 성이 狐이고 이름이 偃인데, 重耳와 함께 각국으로 망명하다가 晉나라로 돌아와 文公을 도와 패업을 이루게 하였다.
역주21 子魚 : 宋 襄公의 庶兄으로 司馬의 직책을 맡았던 公子 目夷를 이른다. 宋나라가 楚나라와 전쟁할 적에 子魚가 襄公에게 楚나라의 군대가 泓水를 건너기 전에 공격할 것을 간하였으나 襄公이 듣지 않았다가 결국 대패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18 By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