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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5)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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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2. 사보살각四菩薩閣에 대한 기문記文
長公 愛道子畫하야 爲障하니 而對惟簡語 甚達이라
장공長公오도자吳道子의 그림을 좋아해서 장자障子를 만들었는데, 유간惟簡에게 대답한 말이 매우 이치를 통달하였다.
始吾先君 於物 無所好하야 燕居如齋하며 言笑有時로되 顧嘗嗜畫하시니 弟子門人 無以悅之 則爭致其所嗜하야 庶幾一解其顔이라
처음에 우리 선군先君(선친先親)께서는 물건에 대하여 좋아하는 것이 없으셔서 한가로이 거처하실 적에 재계하는 듯하셨으며, 말씀하고 웃는 것이 일정한 때가 있었으나 다만 일찍이 그림을 좋아하시니, 제자弟子문인門人들이 선군先君을 기쁘게 해드릴 것이 없으면 좋아하시는 그림을 다투어 마련하여 행여 한 번 안색을 펴시기를 바랐었다.
雖爲布衣 而致畫 與公卿等하시니라
그러므로 선군先君께서는 비록 포의布衣(선비)로 계셨으나 그림을 소장한 것은 공경公卿들과 대등하셨다.
長安 有故하니所建이라
장안長安에 오래된 장경감藏經龕이 있으니, 당 명황제唐 明皇帝(현종玄宗)가 세운 것이다.
其門 四達八板 하니 凡十有六軀
그 문에는 사방으로 통한 여덟 개의 판자에 모두 오도자吳道子의 그림이 걸렸는데, 앞면은 보살菩薩이고 뒷면은 천왕天王으로 모두 16개의 그림이었다.
爲賊所焚하니 有僧忘其名 於兵火中 拔其四板以逃러니 旣重不可負 又迫於賊이라 恐不能皆全일새
광명廣明의 난리에 이 그림이 도적들에게 불탔는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어떤 승려 하나가 병화兵禍 중에 네 화판畫板을 뽑아가지고 도망을 갔으나, 무거워서 짊어질 수 없고 또 도적에게 쫓겨 모두 온전히 보전하지 못할까 두려워했다.
遂竅其兩板以受荷하야 하야 而寄死於烏牙之僧舍하니 板留於是 百八十年矣
마침내 두 개의 화판畫板에 구멍을 뚫어 화판畫板을 짊어지고 서쪽 기주岐州로 도망해서 오아烏牙승방僧房에 의탁하였다가 그 승려가 죽으니, 이 화판畫板이 이곳에 180년 동안 보관되어 있었다.
客有以錢十萬으로 得之하야 以示軾者어늘 歸其直(値)而取之하야 以獻諸先君하니
어떤 사람이 돈 10만 으로 이것을 사서 나에게 보여주었으므로 내가 그 값을 치르고 사서 선군先君에게 드렸다.
先君之所嗜 百有餘品이로되 一旦 以是四板爲甲이라
선군先君께서 좋아하시는 그림이 백여 종류였으나, 하루아침에 이 네 개의 화판畫板을 으뜸으로 여기셨다.
四年 先君 沒於京師하시니 하야 泝于江하야 載是四板而歸하니라
치평治平 4년(1067)에 선군先君경사京師에서 별세하셨는데, 나는 변하汴河로부터 회수淮水로 들어와 장강長江(양자강)을 거슬러 올라 이 네 화판畫板을 싣고 돌아왔다.
旣免喪 所嘗與往來 誦其師之言하야 敎軾爲先君捨施호되 必所甚愛 與所不忍捨者라하야늘
내가 상복喪服을 벗자, 예전부터 왕래하던 부도인 유간浮屠人 惟簡이 자기 스승의 말을 외면서 나로 하여금 선군先君을 위해 시주하되 반드시 몹시 아끼는 것과 차마 버리지 못하는 것을 내놓게 하였다.
軾用其說하야 思先君之所甚愛 軾之所不忍捨者하니 莫若是板이라
내가 그 말을 따라 선군先君이 심히 아끼시던 것과 내가 차마 버릴 수 없는 것을 생각해보니, 이 화판畫板만 한 것이 없었다.
遂以與之하니라
그러므로 나는 마침내 이 화판畫板을 그에게 주었다.
且告之曰
나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明皇帝之所不能守하야 而焚於賊者也 而況於余乎
“이는 명황제明皇帝도 지키지 못하여 도적에게 불탄 것이니, 하물며 나에게 있어서이겠는가.
余視天下之蓄此者 多矣로되 有能及三世者乎
내 보건대 천하에 이러한 물건(보물급의 골동품)을 보관한 자들이 많으나 능히 3대에 미친 자가 있었는가?
其始求之 若不及하고 旣得 惟恐失之로되 而其子孫 不以易衣食者 鮮矣 余惟自度不能長守此也일새
처음 구할 적에는 미치지 못할 듯이 여기고 이미 얻고서는 행여 잃을까 두려워하였으나, 그 자손들이 이것을 가지고 의식衣食과 바꾸지 않은 자가 별로 없으니, 내 스스로 헤아려보건대 이것을 장구히 지킬 수가 없다.
是以 與子하노니 子將何以守之
이 때문에 그대에게 주는 것이니, 그대는 장차 어떻게 이것을 지키려는가?”
簡曰
이에 유간惟簡이 말하였다.
吾以身守之하야 吾眼 可霍(矐)이요 吾足 可斮이라도 吾畫 不可奪이니 若是 足以守之歟
“내 몸으로 이것을 지켜서, 내 눈은 뺄 수 있고 내 발은 자를 수 있어도 내 그림은 빼앗을 수 없게 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한다면 충분히 지킬 수 있겠는가?”
軾曰 未也
나는 “이것 가지고는 안 된다.
足以終子之世而已니라
이는 그대의 일생 동안에만 마칠 수 있을 뿐이다.”라고 하였다.
簡又曰
유간惟簡이 또 말하였다.
吾盟於佛而以鬼守之하야 凡取是者 與凡以是予人者 케호리니 若是 足以守之歟
“내 부처님에게 맹세하고 귀신으로 지키게 하여, 무릇 이것을 취하는 자와 또는 이것을 남에게 파는 자는 불법佛法에 의거하여 치죄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한다면 지킬 수 있겠는가?”
軾曰 未也
“이것 가지고도 안 된다.
世有無佛而蔑鬼者하니라
세상에는 부처를 무시하고 귀신을 멸시하는 자가 있다.”
然則何以守之
“그렇다면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曰 軾之以是予子者 凡以爲先君捨也 天下 豈有無父之人歟
“내가 이것을 그대에게 준 것은 모두 선군先君을 위하여 시주한 것이니, 천하天下에 어찌 부모父母가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其誰忍取之리오
그 누가 차마 이것을 취하겠는가?
若其聞是而不悛하야 不惟一觀而已 將必取之然後 爲快 則其人之賢愚 與廣明之焚此者 一也
만일 이러한 말을 듣고도 고치지 아니하여 한 번 구경할 뿐만이 아니요, 장차 반드시 취한 뒤에야 만족하고자 한다면, 그 사람의 어리석음은 광명光明 연간에 이것을 불태운 자와 똑같다.
全其子孫 難矣리니 而況能久有此乎
그 자손을 온전히 보존하기도 어려울 것이니, 하물며 오랫동안 이것을 소유할 수 있겠는가?
且夫不可取者 存乎子하고 取不取者 存乎人하니 子勉之矣어다
또 취할 수 없게 하는 것은 그대에게 달려 있고, 취하고 취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달려 있으니, 그대는 힘쓸지어다.
爲子之不可取者而已 又何知焉이리오
그대는 남이 취할 수 없게 하는 것을 할 뿐이니, 다른 것을 어찌 알겠는가?”
旣以予簡하니 簡以錢百萬으로 度爲大閣以藏之하고 且畫先君像其上이어늘
내가 이 화판畫板유간惟簡에게 주었더니, 유간惟簡은 돈 백만 전으로 헤아려 큰 을 만들어 이것을 보관하고, 또 그 위에 선군先君화상畫像을 그렸다.
助錢二十之一하야 期以明年冬 閣成이라
이에 내가 돈 20분의 1을 협조하여 다음 해 겨울에 이 이루어졌다.
元年十月二十六日하노라
희령熙寧 원년(1068) 10월 26일에 기록하노라.
역주
역주1 四菩薩閣記 : 이 글은 熙寧 원년(1068) 10월 26일에 쓰였는데, 이때 東坡는 고향에서 부친의 喪中이었다.
역주2 藏經龕 : 佛經을 보관하는 龕室을 이른다. 龕室은 經典이나 彫像, 위패 등을 안치하는 작은 공간[室]을 이르는데, 壁龕과 단독 龕室이 있다.
壁龕은 벽면이나 기둥면 등 수직면에 설치된 우묵한 공간으로, 주로 佛像을 안치하는 용도로 만들어졌는데, 石窟庵의 말굽형(무지개형) 벽감이 유명하다. 단독 龕室의 종류 중에는 정면에 문을 달고 내부에 불상을 따로 만들어 안치한 家屋形(殿閣形)의 佛龕들이 있는데, 여기서 말한 藏經龕도 이러한 家屋形 佛龕이었으나, 다만 그 크기가 거의 殿에 해당될 정도의 규모인 듯하다.
역주3 明皇帝 : 唐나라 6대 황제인 玄宗 李隆基(685~762)의 별호이다. 玄宗은 睿宗의 셋째 아들이었는데 재주와 무략이 뛰어나, 中宗을 시해하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황후 韋氏를 토벌한 공으로 睿宗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開元 연간(713~741)에 姚崇․張九齡 등 뛰어난 재상들을 등용하여 태평성대를 이룩하고 중흥의 군주로 불렸다. 그러나 만년에 楊貴妃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고, 李林甫․楊國忠 등 간신들로 하여금 국정을 전횡하게 하여 끝내는 ‘天寶의 亂(安祿山의 난)’을 불러들였다. 《新唐書 玄宗本紀》
역주4 吳道子 : ?~759. 唐나라의 유명한 화가로 흔히 畫聖으로 불린다. 이름이 道玄이며 陽翟(지금의 河南省 禹州) 사람이다. 어려서 집이 가난하여 민간의 畫工으로 있다가 점차 명성을 떨쳐 兖州 瑕丘縣의 尉에 임명되었으나 사직하고, 洛陽에 살면서 佛家와 道家의 벽화를 그리는 일에 종사하였다.
開元 연간에 뛰어난 솜씨가 알려져 玄宗의 부름을 받고 궁중에 들어가 供奉과 內教博士를 역임하였다. 그는 여러 방면의 그림을 그려 많은 작품을 남겼으나, 佛家와 道家의 인물화와 산수화에 발군이었으며, 벽화에도 뛰어나 후대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남겼다.
역주5 陽爲菩薩 陰爲天王 : 陽은 문짝의 앞면을 이르고 陰은 뒷면을 이른다.
역주6 廣明之亂 : 廣明은 唐 僖宗의 연호로 880년부터 881년까지이며, 亂은 黃巢의 亂을 이른다.
역주7 西奔於岐 : 岐는 岐山으로 지금의 陝西省 岐山縣 동북쪽에 있다.
역주8 治平 : 治平은 宋 英宗의 연호로 1064년부터 1067년까지이다.
역주9 自汴入淮 : 汴河에서 淮水로 진입한 뒤 다시 長江을 거슬러 올라가 蜀으로 들어갔음을 이른다. 汴은 汴河로 隋 煬帝가 黃河와 淮水를 연결하여 만든 운하인데, 汴京(開封)을 경유한다. 淮는 淮河로 河南省 桐柏山에서 발원하여 東으로 흘러 安徽省․江蘇省 일대를 지나 洪澤湖에 들어가고 다시 운하에 합해져서 高郵湖를 지나 江都縣에서 長江과 합류한다.
역주10 浮屠人惟簡 : 浮屠는 梵語의 음역으로 부처 혹은 승려를 이르는데, 여기서는 승려의 뜻으로 쓰였다. 惟簡은 승려의 법명이나 자세한 것은 알려져 있지 않다.
역주11 其罪如律 : 佛法의 刑律에 의거하여 치죄함을 이른다.
역주12 熙寧 : 宋 神宗의 연호로 1068년부터 1077년까지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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