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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3)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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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1. 이윤伊尹에 대한
讀此而後 可以身自信於天下하야 而成不韙之功이니 而行文斷續不羈하니라
이 글을 읽은 뒤에야 자기 몸이 천하 사람들에게 믿어져서 위대한 을 이룰 수 있으니, 글을 쓴 것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여 속박당하지 않았다.
辦天下之大事者 有天下之大節者也 立天下之大節者 狹天下者也
천하天下의 큰일을 해낼 수 있는 자는 천하의 큰 절개를 가지고 있는 자이니, 천하의 큰 절개를 세울 수 있는 자는 천하를 하찮게 여기는 자이다.
夫以天下之大로도 而不足以動其心이면 則天下之大節 有不足立이요 而大事有不足辦者矣
큰 천하를 가지고도 그 마음을 동요시킬 수 없다면, 천하의 큰 절개를 굳이 세울 것이 없고 천하의 큰일에 굳이 힘쓸 것이 없는 것이다.
今夫匹夫匹婦 皆知潔廉忠信之爲美也하나니 使其果潔廉而忠信이면 則其智慮未始不如王公大人之能也로되
지금 필부匹夫필부匹婦도 모두 청렴결백과 충신忠信함이 아름다움이 됨을 알고 있으니, 만약 과연 이 필부匹夫필부匹婦들이 청렴결백하고 충신하다면 그 지혜와 생각이 일찍이 왕공王公대인大人의 재능만 못하지 않다.
唯其所爭者 止於簞食豆羹하야 而簞食豆羹 足以動其心하나니 則宜其智慮之不出乎此也
그러나 이들은 오직 다투는 것이 한 그릇 밥과 한 그릇 국에 그칠 뿐이어서 한 그릇 밥과 한 그릇 국이 그 마음을 동요시킬 수 있으니, 그렇다면 그들의 지혜와 생각이 청렴결백하고 충신忠信한 데로 나오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簞食豆羹 非其道不取 則一鄕之人 莫敢以不正犯之矣 一鄕之人 莫敢以不正犯之 而不能辦一鄕之事者 未之有也
한 그릇 밥과 한 그릇 국을 가 아니면 취하지 않으니, 그렇다면 온 고을 사람들이 감히 부정한 것으로 그를 범하지 못할 것이니, 한 고을 사람들이 감히 부정한 것으로 그를 범하지 못하고서 한 고을의 일을 해내지 못하는 자는 있지 않다.
推此而上하야 其不取者愈大하면 則其所辦者愈遠矣리라
이것을 미루어 위로 올라가 그 취하지 않는 것이 더욱더 커지면 해내는 일이 더욱더 원대하게 되는 것이다.
讓天下 與讓簞食豆羹으로 無以異也 治天下 與治一鄕으로 亦無以異也
천하天下를 사양하는 것은 한 그릇 밥과 한 그릇 국을 사양하는 것과 차이가 없고,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한 고을을 다스리는 것과 또한 차이가 없다.
然而不能者 有所蔽也일새라
그런데도 이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가려진 바가 있기 때문이다.
天下之富 是簞食豆羹之積也 天下之大 是一鄕之推也
천하天下는 바로 한 그릇 밥과 한 그릇 국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요, 큰 천하는 바로 한 고을을 미루어 나간 것이다.
不能運千金之資하나니
천금千金을 가진 집안의 자식이 아니면 천금千金의 자금을 운용하지 못한다.
販夫販婦得一金 而不知其所措 非智不若이요 所居之卑也일새라
하찮은 물건을 파는 가난한 지아비와 지어미가 1을 얻었을 적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은 지혜가 천금千金을 소유한 집안의 자식만 못해서가 아니요, 거처하는 바가 비천해서이다.
맹자孟子가 말씀하기를 “이윤伊尹유신有莘의 들에서 농사지으면서 그 가 아니고 그 가 아니면 비록 천하로써 祿을 주더라도 받지 않았다.”라고 하셨으니,
夫天下不能動其心이라 是故 其才全이요 以其全才而制天下 是故 臨大事而不亂하니라
천하가 이윤伊尹의 마음을 동요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재주가 온전하였고, 그 온전한 재주를 가지고 천하를 통제하였기 때문에 큰일을 당하여도 어지러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古之君子 必有高世之行이나 非苟求爲異而已
옛날 군자君子들은 반드시 세상에 뛰어난 행실이 있었으나, 구차히 남들과 다르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卿相之位 千金之富 有所不屑 將以自廣其心하야 使窮達利害 不能爲之하야 以全其才하야 而欲有所爲耳니라
경상卿相의 지위와 천금千金의 부유함을 〈마음에 연연하여〉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것은 장차 스스로 자기 마음을 넓혀 궁달窮達이해利害로 하여금 자기 마음에 개체芥蔕가 되지 못하게 하여, 자신의 재주를 온전히 해서 훌륭한 일을 성취함이 있고자 했던 것이다.
後之君子 蓋亦嘗有其志矣로되 得失 亂其中하고 而榮辱 奪其外
후세의 군자들 또한 일찍이 이러한 뜻을 가지고 있었으나, 득실得失이 마음을 어지럽히고 영욕榮辱이 밖에서 빼앗는다.
是以 役役하야 至于老死而不暇하니 亦足悲矣
이 때문에 여기에 치중해서 늙어 죽음에 이르도록 〈옛 군자들이 가졌던 뜻을 행할〉 겨를이 없으니, 또한 가련하게 여길 만하다.
孔子敍書라가 至于하사 蓋未嘗不太息也하시리라
공자孔子께서 《서경書經》을 차례로 엮으시다가 임금과 임금과 고요皐陶가 서로 사양하는 즈음에 이르러서는 아마도 크게 탄식하지 않은 적이 없으셨을 것이다.
夫以朝廷之尊으로 而行匹夫之讓이어시늘 孔子安取哉리시오
높은 조정朝廷에서 필부匹夫의 사양을 실행하셨으니, 공자孔子께서 무엇을 취하셨겠는가?
取其不汲汲於富貴하사 有以大服天下之心焉耳시니라
부귀에 급급하지 아니하여 천하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복종시킴이 있음을 취하신 것이다.
天下未嘗有是어늘 而伊尹始行之로되 天下不以爲驚하며 以臣放君호되 天下不以爲僭하고 旣放而復立太甲호되 不以爲專하니 何則
태갑太甲폐위廢位를 당한 것은 천하에 일찍이 이러한 일이 있지 않았는데, 이윤伊尹이 처음으로 행하였으나 천하 사람들이 그것을 놀랍게 여기지 않았고, 신하로서 군주君主를 추방하였으나 천하 사람들이 참람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고, 이미 추방한 뒤에 다시 태갑太甲을 세웠으나 천하 사람들이 전횡專橫한다고 여기지 않았으니, 어째서인가?
其素所不屑者 足以取信于天下也일새라
이윤伊尹이 평소에 어떤 일도 〈마음에 연연하여〉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 충분히 사람들에게 믿음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彼其視天下眇然하야 不足以動其心하니 而豈忍以廢放其君求利也哉리오
이윤伊尹은 천하를 하찮게 여겨서 〈천하를 가지고도〉 자신의 마음을 동요시킬 수 없었으니, 어찌 차마 군주君主폐위廢位시키고 추방함으로써 이익을 추구했겠는가?
後之君子 蹈常而習故하고 惴惴焉懼不免於天下라가
후세의 군자君子들은 평상적인 일을 행하고 예전의 것들을 익히면서 두려워 벌벌 떨고 천하의 비난을 면치 못할까 근심하다가,
一爲希闊之行이면 則天下群起而誚之어든 不知求其素하고
한번 세상에 드문 행실을 하여 천하 사람들이 떼로 일어나 비방하면, 평소 자신이 행한 일에서 되찾을 줄을 모르고
而以爲古今之變하야 時有所不可者라하니 亦已過矣夫인저
“옛날과 지금이 시대가 변하여 시대에 따라 불가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니,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斷續兩字 是文家血脈三昧處라하니 非荊川이면 不能道니라
형천荊川(당순지唐順之)의 비평에 “단속斷續이라는 두 글자는 바로 문장가의 혈맥에 있어 삼매三昧(깊은 경지)인 곳이다.”라고 하였으니, 형천荊川이 아니면 이것을 말하지 못한다.
역주
역주1 伊尹論 : 이 글은 東坡가 젊은 시절에 지은 것으로 추측되나 저작 연도는 미상이다. 伊尹은 商나라를 개국한 成湯(湯王)의 재상이다. 尹은 관명인 尹正의 尹이고 이름은 摯이다. 후세의 冢宰와 같은 阿衡을 맡고 成湯을 보좌하여 夏나라 桀王을 정벌하고 商나라를 개국하였으며, 湯王의 손자인 太甲이 즉위한 다음 無道한 짓을 자행하자 추방하였다가 다시 왕위에 복위시키고 자신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周나라의 周公과 姜太公(呂尙)과 함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명재상으로 알려져 伊․周 또는 伊․呂로 칭해진다.
역주2 千金之子 : 千金은 金 1천 근으로, 부귀한 집안의 자제를 이른다. 옛날 부유함을 말할 적에 千金 또는 萬金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의 金은 오늘날의 정제된 黃金이 아니고 대부분 黃銅을 지칭하였다.
역주3 孟子曰……弗受也 : 이 내용은 《孟子》 〈萬章 上〉에 “萬章이 ‘사람들이 말하기를, 「伊尹이 고기를 썰어 요리함으로써 湯王에게 등용되기를 요구하였다.」라고 하니, 그러한 일이 있었습니까?’라고 묻자, 孟子가 말씀하셨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伊尹이 有莘의 들에서 밭을 갈면서 堯․舜의 道를 좋아하여 그 義가 아니고 그 道가 아니면 천하로써 녹을 주더라도 돌아보지 않고 말 千駟를 매어놓더라도 돌아보지 않았으며, 그 義가 아니고 그 道가 아니면 지푸라기 하나도 남에게 주지 않고 지푸라기 하나도 남에게서 취하지 않았다.’[萬章問曰 人有言 伊尹以割烹要湯 有諸 孟子曰 否 不然 伊尹耕於有莘之野 而樂堯舜之道焉 非其義也 非其道也 祿之以天下 弗顧也 繫馬千駟 弗視也 非其義也 非其道也 一介不以與人 一介不以取諸人]”라고 보인다.
역주4 芥蔕 : 작은 가시가 목에 걸려서 계속 신경 쓰임을 비유하는 말인데, 마음에 담아두고 늘 생각하는 것을 이른다.
역주5 舜禹皐陶相讓之際 : 《書經》 〈虞書 大禹謨〉에 “帝舜이 ‘이리 오라. 너 禹야! 朕이 제위에 있은 지가 33년이니 늙어서 부지런히 해야 할 정사에 게으르다. 너는 태만히 하지 말아서 짐의 무리를 거느려라.’라고 말씀하셨다.
禹가 대답하였다. ‘저의 德은 임무를 감당하지 못하여 백성들이 依歸하지 않지만 皐陶는 힘써 행하여 덕을 펴서 덕이 마침내 아래로 백성들에게 내려져 黎民들이 그리워하니, 황제께서는 생각하소서. 이를 생각하여도 皐陶에게 있으며, 이를 버려도 皐陶에 있으며, 이를 이름하여 말함도 皐陶에게 있으며, 진실로 마음에서 나옴도 皐陶에 있으니, 황제께서는 그의 功을 생각하소서.’ 하였다.
帝舜이 皐陶를 불러 이르기를 ‘皐陶야! 이 신하와 백성들이 혹시라도 나의 정사를 범하는 자가 없는 것은 네가 士師가 되어서 五刑을 밝혀 五品의 가르침을 도와서 나를 다스려짐에 이르도록 기약하였기 때문이다. 형벌을 쓰되 형벌이 없는 경지에 이를 것을 기약하여 백성들이 中道에 맞는 것이 너의 공이니, 힘쓸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皐陶가 대답하기를 ‘황제의 덕이 잘못됨이 없으시어 아랫사람에게 임하되 간략함으로써 하고 무리들을 어거하되 너그러움으로써 하시며, 罰은 자식에게 미치지 않고 賞은 자손 대대로 미치게 하시며, 과오로 지은 죄는 용서하되 크게 처벌함이 없고 고의로 지은 죄는 형벌하되 작게 처벌함이 없으시며, 죄가 의심스러운 것은 가볍게 형벌하시고 공이 의심스러운 것은 중하게 상주시며, 무고한 사람을 죽이기보다는 차라리 떳떳한 법대로 처벌하지 않은 실수를 범하겠다고 하시어, 살려주기를 좋아하는 德이 민심에 흡족하십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有司를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帝舜이 말씀하시기를 ‘나로 하여금 바라는 대로 다스려져서 四方이 風動하게 하니, 이는 바로 너의 아름다운 공이다. 이리 오라. 禹야! 홍수가 나를 경계하였는데 믿음을 이루고 공을 이룸은 너의 어짊이며, 나랏일에 부지런하고 집안에 검소하여 자만하고 큰 체하지 않음은 너의 어짊이다. 네가 자랑하지 않으나 천하에 너와 더불어 능함을 다툴 자가 없으며, 네가 과시하지 않으나 천하에 너와 더불어 공을 다툴 자가 없으니, 내 너의 덕을 성대하게 여기며 너의 아름다운 공적을 가상하게 여기노라. 하늘의 曆數가 너의 몸에 있으니, 네가 마침내 元后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하셨다.[帝曰 格汝禹 朕宅帝位三十有三載 耄期倦于勤 汝惟不怠 總朕師 禹曰 朕德罔克 民不依 皐陶邁種德 德乃降 黎民懷之 帝念哉 念玆在玆 釋玆在玆 名言玆在玆 允出玆在玆 惟帝念功 帝曰 皐陶 惟玆臣庶 罔或干予正 汝作士 明于五刑 以弼五敎 期于予治 刑期于無刑 民協于中 時乃功 懋哉 皐陶曰 帝德罔愆 臨下以簡 御衆以寬 罰弗及嗣 賞延于世 宥過無大 刑故無小 罪疑惟輕 功疑惟重 與其殺不辜 寧失不經 好生之德 洽于民心 玆用不犯于有司 帝曰 俾予從欲以治 四方風動 惟乃之休 帝曰 來禹 洚水儆予 成允成功 惟汝賢 克勤于邦 克儉于家 不自滿假 惟汝賢 汝惟不矜 天下莫與汝爭能 汝惟不伐 天下莫與汝爭功 予懋乃德 嘉乃丕績 天之曆數在汝躬 汝終陟元后]”라고 보인다. 曆數는 帝王이 자리를 물려받는 것이 歲時의 節氣가 서로 계승하는 것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역주6 太甲之廢 : 太甲은 湯王의 손자이다. 伊尹이 湯王을 보필하여 천하를 통일하였는데, 湯王에게 세 아들이 있었으나, 長子인 太丁은 즉위하기 전에 일찍 죽었고, 次子인 外丙은 즉위한 지 2년 만에, 三子인 仲壬은 4년 만에 모두 죽었다.
이에 太丁의 아들 太甲을 후계자로 세웠으나, 太甲은 교만하고 방종하여 湯王의 법도를 전복시켰다. 伊尹은 그를 여러 차례 타일렀으나 듣지 않자, 폐위하여 湯王의 묘소가 있는 桐 땅으로 추방하였다. 천자의 자리에서 쫓겨난 太甲은 桐 땅에서 자신을 원망하고 개과천선하였다. 이에 伊尹은 3년 만에 다시 도성인 亳邑으로 모셔와 복위시키고 자신은 정계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大臣이 군주를 폐위한 일이 중국 역사상 처음 일어났는데도, 백성들은 그가 왕위를 찬탈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그러한 행위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太甲이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온 사실은 《書經》 〈商書 太甲〉에 보이며, 〈商書 咸有一德〉은 伊尹이 정계에서 물러나면서 太甲에게 경계의 말을 올린 내용이다. 이러한 내용은 《孟子》 〈萬章 上〉에도 보인다.
역주7 荊川 : 荊川은 明나라 중기의 학자이며 문장가로, 字는 應德이고, 벼슬이 右僉都御史에 이르렀으며, 시호가 文襄이다. 博學하여 보지 않은 책이 없었으며 古文에 뛰어났는데, 배우는 자들이 荊川先生이라 칭하였다. 《唐宋八大家文抄》의 著者인 茅坤은 唐順之와 尊嚴 王愼中의 評을 뽑아 넣었는데, 대부분 唐順之의 評이며 王愼中은 몇 편에 불과하다. 王愼中 또한 明나라 사람으로 처음에 尊嚴居士라 칭하다가 뒤에는 南江으로 改號하였는데, 古文에 뛰어나 唐順之와 함께 ‘王唐’으로 일컬어진 인물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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