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年正月己亥晦
에 春服旣成
이어늘 從二三子
하야 遊於
사수泗之上
이라
登
환산桓山하야 入石室
하야 使道士
대일상戴日祥으로 鼓
하고 이상조操하고 曰 噫嘻悲夫
라
余將弔其藏이나 而其骨毛爪齒 旣已化爲飛塵하고 蕩爲冷風矣어든 而況於椁乎아
使
환퇴魋而無知也
인댄 余雖鼓琴而歌
라도 可也
요 使
환퇴魋而有知也
인댄 聞余鼓琴而歌
하고 知哀樂之不可常
과 리니 其愚豈不少瘳乎
아
乃歌曰 환산桓山之上에 維石嵯峨兮여 司馬之惡이 與石不磨兮로다
환산桓山之下에 維水瀰瀰兮여 司馬之藏이 與水皆逝兮로다하고 歌闋而去하다
원풍元豐 2년 정월 기해일己亥日 그믐날에 봄옷이 이루어졌으므로 나는 두서너 사람을 데리고 사수泗水 가에서 노닐었다.
환산桓山에 올라 석실石室에 들어가서 도사道士인 대일상戴日祥으로 하여금 뇌씨雷氏의 거문고를 타고 〈이상조履霜操〉의 남은 음조音調를 읊게 하고, 말하기를 “아! 슬프다.
이것은 송宋나라 사마 환퇴司馬 桓魋의 묘이다.”라고 하였다.
계무자季武子의 상喪에 증점曾點이 그의 문門에 기대어 노래하였다.
중니仲尼(공자孔子)는 해와 달처럼 훌륭한 분인데도 환퇴桓魋는 공자孔子를 훼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또 죽음에 대비하여 석곽石椁을 만들면서 3년이 되어도 이루지 못하였으니, 옛날의 어리석은 사람이다.
내 장차 그의 무덤에 조문하려 하나 그의 뼈와 털과 손톱과 이빨이 이미 변하여 날아가는 먼지가 되고 모두 사라져 차가운 바람이 되었는데, 하물며 석곽石椁에 있어서이겠는가?
더구나 그를 따라 죽은 신첩臣妾과 반함飯含한 패물과 옥玉에 있어서이겠는가?
만일 환퇴桓魋가 죽어 영혼이 없어서 아는 것이 없다면 내가 비록 그의 묘墓에서 거문고를 타고 노래하더라도 괜찮을 것이요, 만일 환퇴桓魋가 영혼이 있어서 아는 것이 있다면 내가 거문고를 타고 노래하는 것을 듣고서 사람의 기쁨과 슬픔이 일정할 수 없다는 것과 물건의 변화(죽음)가 신속하다는 것을 알 것이니, 그 어리석음이 어찌 조금 나아지지 않겠는가?”
나는 이에 노래하기를 “환산桓山의 위에 돌이 우뚝하니, 사마 환퇴司馬 桓魋의 죄악이 저 돌과 함께 없어지지 않으리라.
환산桓山의 아래에 물이 넘실넘실 흐르니, 사마 환퇴司馬 桓魋의 무덤이 저 물과 함께 가버렸도다.”라고 하고는 노래를 마치고 떠났다.
나를 따라 유람한 자는 여덟 사람이니, 필중손畢仲孫․서환舒煥․구창조寇昌朝․왕적王適․왕휼王遹․왕이王肄와 나의 아들 매邁와 서환舒煥의 아들 언거彦擧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