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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2)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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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옷과 도포를 하사한 것에 사례한
已寬卒歲之憂하고 更佩先春之暖하니 恩均吏士하고 聲動華夷하니이다
나라 관원의 세 벌 옷은 이미 해를 마치는 근심을 풀어주었고, 나라 황제의 열 줄 편지는 다시 봄볕의 따뜻함을 느끼게 하니, 은혜가 관리와 군사들에게 똑같이 미치고 소문이 중화中華와 오랑캐 지방에 진동합니다.
伏以 하고 하니이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예기禮記》에는 “10월에 처음 갖옷을 입는다.”라는 내용이 나와 있고, 《시경詩經》에는 ‘갈옷(털옷)이 없는 것’을 노래하였습니다.
邊陲更戍 本爲臣子之常이로되 朔易早寒 特軫聖神之念하니이다
변방에 번갈아 수자리 사는 것은 본래 신자臣子의 떳떳한 일이나, 북쪽 변방의 이른 추위는 특별히 성스럽고 신명하신 군주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이니 豈曰無衣리잇고
오직 그 물건을 덕으로 여기는 것이니, 어찌 옷이 없다고 말하겠습니까?
恭惟皇帝陛下 廣運聰明하고 力行恭儉하사 威風旁振 方戰慄於하고 溫詔下融 遂流澌於河凍하니이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황제 폐하께서는 총명을 널리 운용하고 공검恭儉을 힘써 행하셔서 위풍을 사방으로 떨치시어 하늘에 교만한 오랑캐를 전율케 하시고 따뜻한 조칙을 내리시어 마침내 얼었던 황하를 흐르게 하셨습니다.
旣無功而坐食하니 實有愧於
저는 공도 없는데 앉아서 밥만 먹고 있으니, 옷을 벗어주심에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敢不推廣朝廷之仁하야 益收凍餒하고 申嚴祖宗之法하야 少肅惰婾이리잇고
감히 조정의 인자함을 미루어 넓혀서 헐벗고 굶주린 자들을 더욱 거두지 않으며, 조정의 법을 엄격히 수행하여 나태한 자들을 다소나마 바로잡지 않겠습니까?
庶收汗馬之勞하야 以解호리이다
행여 한마汗馬의 수고로움을 거두어서 사다새가 깃털이 젖지 않는다는 비방을 벗으려 합니다.
역주
역주1 謝賜衣襖表 : 이 글은 元祐 8년(1093) 11월에 쓰여졌다. 이해 9월에 蘇軾은 端明殿 翰林侍讀兩學士로 知定州事에 임명되었는데, 아마도 定州로 부임하기 전에 哲宗으로부터 옷와 도포를 하사받고 이에 사례하여 올린 듯하다. 本集에는 이 편 머리에 ‘十一月九日 翰林醫官王宗古至 伏蒙聖慈傳宣存問 賜臣等勅及初冬衣襖者’라는 31字가 있다.
역주2 齊官三服 : 朝廷에서 내려주는 세 가지의 두건과 의복을 이른다. 《漢書》 〈元帝記〉에 “罷齊三服官”이란 말이 나오는데, 그 注에 이르기를 “齊나라의 옛 제도는 봄에 冠과 두건과 머리싸개를 하사하여 首服으로 삼게 하고, 흰 비단으로 冬服을 지어주었으며, 얇은 비단으로 夏服을 지어주었다.[春獻冠幘縰爲首服 紈素爲冬服 輕綃爲夏服]”라고 하였다. 罷齊三服官은 齊나라 때 세 가지의 복식을 맡은 관원을 없앰을 이른다.
역주3 漢札十行 : 황제의 詔書를 이른다. 《後漢書》 〈循吏傳序〉에 의하면 “光武帝가 方國에 손수 쓴 글을 내렸는데, 모두 열 줄로 되어 있었다.”라고 하였다. 이는 원래 光武帝가 검소하여 편지나 詔書를 쓸 적에 작은 글씨로 내용을 열 줄로 간략히 써서 종이를 아낀 것을 이르는데, 이후로 황제가 직접 쓴 편지나 詔書를 ‘漢札十行’이라고 하였다.
역주4 禮著始裘 : 《禮記》 〈月令〉에 “이달 10월에 天子가 비로소 갖옷을 입는다.[是月也 天子始裘]”라고 보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5 詩歌無褐 : 褐은 굵은 털로 짜서 만든 허름한 갈옷이다. 《詩經》 〈豳風 七月〉에 “一陽(동짓달)의 날에는 바람이 차갑고 二陽(섣달)의 날에는 기온이 차가우니, 옷이 없고 갈옷이 없으면 어떻게 해를 마치겠는가?[一之日觱發 二之日栗烈 無衣無褐 何以卒歲]”라고 보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6 惟德其物 : 임금이 德으로 이룬 물건을 내리면 이것을 받은 신하가 이를 德으로 여겨 귀하게 여김을 이른다. 이 말은 《書經》 〈周書 旅獒〉에 “사람들이 물건을 하찮게 여기지 않아 그 물건을 덕으로 여긴다.[人不易物 惟德其物]”라고 보이는데, 孔安國의 傳에 “물건의 귀함은 사람으로 말미암는다. 사람이 德이 있으면 그 물건이 귀하고, 德이 없으면 그 물건이 천하다.”라고 하였다.
역주7 天驕 : 天之驕子의 준말로 흉노의 별칭인데, 여기서는 遼나라를 가리킨 것이다.
역주8 解衣 :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벗어 상대방에게 주는 것으로 임금이 베푼 각별한 은혜를 말한다. 漢나라 장수 韓信이 漢나라 高祖에게서 받은 은혜를 술회하면서 “옷을 벗어 나에게 입혀주고 먹을 것을 주어 나에게 먹게 하였다.[解衣衣我 推食食我]”라고 말한 고사에서 연유하였다. 《史記 淮陰侯列傳》
역주9 濡鵜之誚 : 鵜는 사다새로 도요새의 일종인데, 이 말은 小人이 조정에 있으면서 지위만 차지한 채 자기의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난이다. 《詩經》 〈曹風 候人〉에 “사다새가 魚梁에 있으면서 날개도 적시지 않네.[維鵜在梁 不濡其翼]”라고 보이는데, 사다새는 원래 물속으로 들어가 물고기를 잡는 새인데, 사람들이 설치한 魚梁에서 편안히 물고기를 훔쳐 먹어 날개도 적시지 않음을 비판한 것이다. 魚梁은 돌다리나 돌 틈에 통발 따위를 설치하여 물고기를 잡는 시설을 이른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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