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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5)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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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 조주 한문공묘潮州 韓文公廟에 대한
予覽此文 不是昌黎本色이니 前後議論 多漫然이라
내가 보건대 이 글은 창려昌黎(한유韓愈)의 본색이 아니니, 전후의 의논이 산만한 것이 많다.
이나 蘇長公 生平氣格獨存이라
그러나 소장공蘇長公의 평생 기격氣格이 유독 여기에 보존되어 있다.
錄之하노라
그러므로 기록하는 것이다.
是皆有以參天地之化하고 關盛衰之運하야 其生也有自來하고 其逝也有所爲矣
필부匹夫로서 백세百世의 스승이 되고 한마디 말씀으로 천하의 법이 되는 것은 모두 천지天地의 조화에 참여되고 성쇠盛衰의 시운에 관계되어, 태어남은 말미암아 온 곳이 있고 서거逝去함은 다시 되는 바가 있는 것이다.
하고 하니 古今所傳 不可誣也니라
그러므로 신백申伯여후呂侯가 산악으로부터 내려오고 부열傅說열성列星이 되었으니, 고금古今에 전하는 바를 속일 수 없는 것이다.
맹자孟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나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잘 기른다.”라고 하셨으니,
是氣也 寓於尋常之中하고 而塞乎天地之間하야
호연지기浩然之氣심상尋常한 가운데 붙여 있고 천지天地의 사이에 꽉 차 있어서,
卒然遇之 則王, 公失其貴하고 하고
갑자기 만날 적에 (천자天子)과 (제후諸侯)이 그 귀함을 잃고, 나라와 나라가 그 부유함을 잃고,
하고 하고 하나니 是孰使之然哉
장량張良진평陳平이 그 지혜를 잃고, 맹분孟賁하육夏育이 그 용맹을 잃고, 소진蘇秦장의張儀가 그 언변을 잃으니, 이는 누가 그렇게 만드는 것인가?
其必有不依形而立하고 不恃力而行하고 不待生而存하고 不隨死而亡者矣
아마도 반드시 형체를 의지하여 서지 않고, 힘을 믿어 행하지 않고, 삶을 기다려 존재하지 않고, 죽음을 따라 없어지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다.
在天 爲星辰하고 在地 爲河嶽하고 幽則爲鬼神하고 而明則復爲人하나니 此理之常이니 無足怪者니라
그러므로 하늘에서는 성신星辰이 되고 땅에서는 이 되며, 그윽하면 귀신이 되고 밝으면 다시 사람이 되는 것이니, 이는 떳떳한 이치로서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다.
自東漢以來 道喪文弊하야 異端竝起하니 하야 輔以이로되 而不能救러니 獨韓文公 起布衣하야 談笑而麾之하니 天下靡然從公하야 復歸于正 蓋三百年於此矣
동한東漢(후한後漢) 이래로 가 망하고 이 피폐하여 이단異端이 아울러 일어나니, 나라 정관貞觀개원開元 연간의 전성기를 지나 방현령房玄齡두여회杜如晦요숭姚崇송경宋璟 같은 어진 재상이 보필하였으나 이것을 바로잡지 못하였는데, 홀로 한문공韓文公포의布衣로 일어나 담소하면서 지휘하니, 천하 사람들이 모두 을 따라서 다시 정도正道로 돌아온 지 이제 3백 년이 되었다.
하고 而道濟天下之溺하며 하고하니 豈非參天地, 關盛衰하야 浩然而獨存者乎
문풍文風은 8의 쇠함을 일으키고 천하天下의 빠짐을 구제하였으며, 충성은 인주人主의 노여움을 범하고 용맹은 삼군三軍의 장수를 빼앗았으니, 이 어찌 천지天地에 참여되고 성쇠盛衰의 시운에 관계되어 호연浩然히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蓋嘗論天人之辨하야 以謂 人無所不至로되 惟天 不容僞
내 일찍이 하늘과 사람의 분별을 논하여 이르기를 “사람은 이르지 못하는 것(못하는 짓)이 없으나 오직 하늘은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
智可以欺王公이로되 力可以得天下로되 不可以得匹夫匹婦之心이라
지혜가 을 속일 수 있으나 돼지와 물고기를 속이지는 못하고, 힘이 천하를 얻을 수 있으나 필부匹夫필부匹婦의 마음은 얻을 수 없다.”고 하였다.
하고 하고 能信於南海之民하야 廟食百世로되 而不能使其身一日安於朝廷之上하니 蓋公之所能者 天也 其所不能者 人也
그러므로 의 정성이 형산衡山의 구름을 걷히게 하였으나 헌종憲宗의 미혹됨을 돌리지는 못하였고, 악어의 포악함을 길들였으나 황보박皇甫鎛이봉길李逢吉의 비방을 그치게 하지는 못하였고, 남해南海의 백성들에게 신뢰를 받아 사당에서 백세토록 제향을 받고 있으나 그 몸을 하루도 조정에서 편안히 있게 하지는 못하였으니, 이 능한 것은 하늘의 일이요 능하지 못한 것은 인간의 일이었다.
潮人 未知學이러니 하야 爲之師하니 自是 潮之士 皆篤於文行하야 延及하야
처음에 조주潮州 사람들은 학문을 할 줄 몰랐는데, 진사 조덕進士 趙德에게 명하여 스승이 되게 하니, 이로부터 조주潮州 선비들이 모두 문학文學행실行實에 독실하여 일반 백성들에게까지 뻗쳐나갔다.
至于今號稱易治하니 信乎
그리하여 조주潮州가 지금까지 다스리기 쉽다고 알려져 있으니, 참으로 옳다!
군자君子를 배우면 백성을 사랑하고 소인小人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고 하신 공자孔子의 말씀이여!
潮人之事公也 하며 水旱疾疫凡有求 必禱焉이로되 而廟在刺史公堂之後하야 民以出入爲艱이라
조주潮州 사람들은 을 섬김에 있어 음식을 먹을 적에 반드시 에게 를 올렸으며, 수해와 한해와 질병이 있어 소망이 있을 때마다 반드시 기도하였는데, 사당이 자사 공관刺史 公館의 뒤에 있어 백성들이 출입하는 것을 어렵게 여겼다.
前守欲請諸朝하야 作新廟라가 不果러니
지난번 태수太守가 조정에 요청하여 새 사당을 지으려 하다가 결행하지 못하였다.
元祐五年 來守是邦할새 凡所以養士治民者 一以公爲師하니 民旣悅服이라
원우元祐 5년(1090)에 조산랑 왕군朝散郞 王君 이 와서 이 고을을 맡으면서 선비를 양성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모든 방법을 한결같이 을 모범으로 삼으니, 백성들이 기뻐하고 복종하였다.
則出令曰 願新公廟者이라하니 民讙趨之하야 卜地於州城之南七里하야 朞年而廟成하니라
왕공王公은 명령을 내기를 “의 사당을 새로 짓기를 원한다면 들어주겠다.”라고 하니, 백성들이 기꺼이 달려와서 주성州城의 남쪽 7리쯤 되는 곳에 터를 잡아 1년 만에 사당이 이루어졌다.
或曰 公去國萬里而謫於潮하야 하니 沒而有知 其不眷戀于潮也審矣라하니
혹자는 말하기를 “도성都城에서 만 리나 되는 조주潮州로 귀양 와서(좌천되어) 한 해가 안 되어 돌아갔으니, 죽어서 〈영혼이 있어〉 앎이 있다면 조주潮州를 돌아보고 연연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라고 하였다.
軾曰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不然하다
“그렇지 않다.
公之神在天下者 如水之在地中하야 無所往而不在也어늘 而潮人 獨信之深하고 思之至하야 하야 若或見之하니
의 신령이 천하에 있는 것은 물이 땅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가는 곳마다 있지 않은 곳이 없는데, 조주潮州 사람들이 특히 을 깊이 믿고 지극히 생각하여 쑥을 태워 올리면서 서글픈 마음을 품고 혹시라도 뵈올 듯이 여긴다.
譬如鑿井得泉하고 而曰水專在是라하면 豈理也哉리오
비유하면 우물을 파서 샘물을 얻고는 물이 오로지 이곳에만 있다고 하는 것과 같으니, 이 어찌 이치이겠는가?”
元豐七年 詔封公昌黎伯이라 라하니라
원풍元豐 7년(1084)에 조칙을 내려 창려백昌黎伯으로 봉하였기 때문에, 에 “창려백 한문공昌黎伯 韓文公의 사당”이라고 써 붙였다.
潮人 請書其事于石하니 因作詩以遺之하야 使歌以祀公하노라
조주潮州 사람들이 이 사실을 비석에 써줄 것을 청하니, 인하여 를 지어 보내서 그들로 하여금 이것을 노래하여 을 제사하게 하였다.
其辭曰
는 다음과 같다.
이 옛날 백운향白雲鄕에서 용을 타고 손으로 운한雲漢을 열어 천장天章을 나누니, 천손天孫운금雲錦의 치마를 짜주었네.
飄然乘風來帝旁하야 이라
표연飄然히 바람을 타고 상제上帝의 곁에 와서 아래로 탁세濁世비강粃糠을 쓸어주었네.
서쪽으로 함지咸池에 노닐고 부상扶桑을 스쳐가니, 초목草木들도 모두 밝은 광채를 입었네.
하니 하야 滅沒倒景不可望이라
이백李白두보杜甫를 따라 함께 날아오르니, 장적張籍황보식皇甫湜 등은 땀 흘리며 달리다가 넘어져 가물가물 사라지는 햇빛처럼 바랄 수가 없었네.
글을 지어 부처를 비방하고 군왕君王을 비판하였으니,
이는 남해南海를 구경하고 형상衡湘을 엿보며 임금의 묘가 있는 구의산九疑山을 지나 아황娥皇여영女英에게 조문하려 해서였네.
축융祝融이 앞에서 몰고 해약海若이 숨으니, 악어를 단속하기를 양 떼를 몰듯이 하였네.
균천鈞天에 사람 없어 상제上帝가 슬퍼하니, 노래 읊으며 을 불러오라고 아래로 무양巫陽을 보내왔네.
들소의 희생을 올리고 닭 뼈로 점을 치며 우리 술잔 올리니, 아! 찬란한 붉은 여지荔枝와 황금색 향초香蕉라오.
公不少留我涕滂하니 이라
이 조금도 머물지 않아 우리들 눈물 흘리니, 편연翩然히 머리 풀어 산발하고 대황大荒에 내려오시는 듯.
역주
역주1 潮州韓文公廟碑 : 이 글은 元祐 7년(1092) 3월에, 知潮州事 王滌이 潮州에 있는 韓文公의 사당을 重修하고 그 碑文을 東坡에게 요청하여 쓴 것이다. 潮州는 宋나라 때 州의 하나로 지금의 廣東省 潮州이다. 韓文公은 韓愈(768~824)로 文은 諡號인데, 唐나라의 대문호이자 정치가로 字는 退之이고 昌黎伯에 봉해져 韓昌黎라고도 불린다. 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데, 처음으로 사륙변려문을 비판하고 古文復興運動을 주창하였으며, 《昌黎先生集》등 많은 저작을 남겼다.
역주2 匹夫而爲百世師 一言而爲天下法 : 匹夫는 일반적으로 벼슬하지 않는 평민을 이르는데 여기서는 王者에 상대하여 쓰였으며, 百世師는 후세의 영원한 스승을 이른다.
《孟子》 〈盡心 下〉에 “聖人은 百世의 스승이니, 伯夷와 柳下惠가 이것이다.[聖人百世之師也 伯夷柳下惠 是也]”라고 보이며, 《中庸》 29장에 “君子는 動함에 대대로 天下의 道가 되니, 行함에 대대로 천하의 法度가 되며 말함에 대대로 천하의 準則이 된다. 멀리 있으면 우러러봄이 있고, 가까이 있으면 싫지 않다.[君子動而世爲天下道 行而世爲天下法 言而世爲天下則 遠之則有望 近之則不厭]”라고 보인다.
또 《史記》 〈孔子世家〉에는 “孔子께서 布衣셨으나 10여 世에 전해져서 배우는 자들이 宗主로 높이고 있다.[孔子布衣 傳十餘世 學者宗之]”라고 보인다.
역주3 申呂自嶽降 : 申․呂는 申伯과 呂侯(甫侯)로 모두 周 宣王 때의 충성스런 제후들이다.
이 내용은 《詩經》 〈大雅 崧高〉에 “우뚝 솟은 山嶽이 높아 하늘에 이르도다. 山嶽에서 神을 내려 甫侯와 申伯을 내셨도다.[崧高維嶽 駿極于天 維嶽降神 生甫及申]”라고 보인다.
朱子의 《詩經集傳》에 “宣王의 외숙인 申伯이 나가 謝邑에 봉해지자, 尹吉甫가 詩를 지어 그를 전송하였다. 嶽山이 높고 커서 그 神靈과 和氣를 내려 甫侯와 申伯을 내니, 실로 周나라의 楨榦과 藩屛이 되어서 그 德澤을 天下에 베풂을 말한 것이다.[宣王之舅申伯 出封于謝 而尹吉甫作詩以送之 言嶽山高大 而降其神靈和氣 以生甫侯申伯 實能爲周之楨榦屛蔽 而宣其德澤於天下也]”라고 注하였다.
역주4 傅說(부열)爲列星 : 傅說은 商나라 高宗(武丁)의 재상인데 죽은 뒤에 천상의 星宿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莊子》 〈大宗師〉에 “傅說이 武丁을 보좌하여 천하를 소유하였는데, 죽어서 東維에 올라 箕星과 尾星을 타고 천상으로 올라가서 列星이 되었다.[相武丁 奄有天下 乘東維 騎箕尾 而比於列星]”라고 보인다. 東維는 箕星과 南斗星 사이에 있는 天漢(은하)의 별이라 하며, 일설에는 바로 箕星과 尾星이라 하기도 한다.
역주5 孟子曰 我善養吾浩然之氣 : 《孟子》 〈公孫丑 上〉에 “〈公孫丑가〉 ‘감히 묻겠습니다. 夫子께서는 어디에 장점이 계십니까?’라고 여쭈니, 孟子께서 ‘나는 남의 말을 알며, 나는 나의 浩然之氣를 잘 기르노라.’고 하셨다. 〈公孫丑가〉 ‘감히 묻겠습니다. 무엇을 浩然之氣라 합니까?’라고 하니, 孟子께서 ‘말하기 어렵다. 그 氣됨이 지극히 크고 지극히 강하니, 정직함으로써 기르고 해침이 없으면 〈이 浩然之氣가〉 天地의 사이에 꽉 차게 된다.’라고 하셨다.[敢問 夫子惡乎長 曰 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 敢問 何謂浩然之氣 曰難言也 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于天地之間]”라고 보인다.
朱子의 《孟子集註》에 程子(伊川)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늘과 인간이 똑같아 다시 분별이 없으니, 浩然之氣는 바로 나의 氣이다. 이것을 잘 기르고 해침이 없으면 天地에 충만하고, 한 번이라도 私意에 가려지면 푹 꺼져 굶주려서 부족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라고 注하였다.
역주6 晉楚失其富 : 晉과 楚는 춘추시대에 가장 부강했던 두 나라의 이름이다. 두 나라의 부유함에 대해서는 《孟子》 〈公孫丑 下〉에 “曾子가 말씀하기를 ‘晉나라와 楚나라의 富裕함은 내 따를 수 없다.’ 하셨다.[曾子曰 晉楚之富 不可及也]”라고 보인다.
역주7 良平失其智 : 良․平은 張良과 陳平의 병칭인데, 두 사람은 모두 漢 高祖의 모신으로 高祖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張良은 字가 子房이고 시호가 文成이다. 뛰어난 智略으로 漢 高祖인 劉邦을 도와 천하를 통일하여 蕭何, 韓信과 함께 開國三傑로 불렸고 留侯로 봉해졌다. 《史記》 〈高祖本紀〉에 “帷幄의 가운데에서 수판을 움직여 천 리의 밖에서 승리를 결단함은 내가 子房만 못하다.[夫運籌帷幄之中 決勝千里之外 吾不如子房]”라는 高祖의 평이 보인다.
陳平은 陽武 사람으로 高祖의 책사가 되어 여섯 번이나 기이한 계책을 내어 高祖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였으며, 뒤에는 丞相이 되어 漢나라를 안정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역주8 賁育失其勇 : 賁育은 孟賁과 夏育의 병칭으로, 두 사람은 모두 전국시대에 힘과 용맹이 뛰어난 역사들이다.
역주9 儀秦失其辯 : 儀․秦은 張儀와 蘇秦의 병칭으로, 이들은 모두 전국시대 縱橫家들이다.
張儀는 魏나라 출신으로 蘇秦과 함께 齊나라의 鬼谷子에게 동문수학하였으며, 秦 惠文王에게 유세하여 連橫의 설로 6國의 合從을 와해시켜 秦나라의 통일에 기여하였다.
蘇秦은 자가 季子로 洛陽 사람인데, 鬼谷子에게 縱橫의 학설을 배웠다. 秦 惠文王에게 유세하였으나 등용되지 못하자, 6國의 제후들을 合從說로 설득하여 同盟을 체결해 秦나라에 대항하게 하였다. 6國은 楚․齊․燕․韓․魏․趙의 여섯 나라로, 여기에 秦을 포함시켜 七雄이라 칭하였다.
역주10 歷唐貞觀開元之盛 : 貞觀과 開元은 모두 唐나라의 연호로, 이 두 시기는 ‘貞觀의 治’와 ‘開元의 治’라고 불리는데, 중국 역사를 통하여 가장 뛰어난 太平聖代이다. 貞觀은 唐 太宗의 연호로 627년부터 649년까지이며, 開元은 玄宗의 연호로 713년부터 756년까지이다.
역주11 房杜姚宋 : 이들은 모두 唐나라의 名相들이다. 房은 房玄齡으로 字가 喬이며 齊州 臨淄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文中子인 王通을 사사하고 학문을 깊이 닦았는데, 隋나라 말기 太宗 李世民이 渭水 북쪽을 점령하고 隋나라에 반기를 들었을 적에 투신하여 唐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웠다. 太宗이 즉위한 뒤에 15년간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 杜如晦, 魏徵 등과 함께 태평성대인 ‘貞觀의 治’를 이룩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며, 褚遂良과 함께 《晉書》를 편찬하였다.
杜는 杜如晦로 字가 克明이며 京兆 杜陵 사람이다. 隋나라 때 縣尉 벼슬을 한 뒤에 초야에 묻혀 지내다가, 唐 高祖가 長安을 평정하자, 秦王府兵參軍으로 太宗의 휘하에 들어갔다. 房玄齡에게 재능을 인정받아 太宗이 즉위한 뒤에 兵部尙書에 발탁되고 尙書右僕射가 되어 唐나라의 법률제도와 인사행정을 정비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姚는 姚崇으로 字가 元之이며 陝州 硤石 사람이다. 본래의 이름은 元崇이었는데, 玄宗의 ‘開元’의 연호를 휘하여 崇으로 개명하였다. 則天武后와 睿宗, 玄宗 3대에 걸쳐 재상을 지내면서 나라를 잘 다스려 玄宗 때의 태평성대인 ‘開元의 治’를 이룩하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宋은 宋璟으로 字가 廣平이며 邢州 南和 사람이다. 弱冠에 進士로 출사하여 吏部侍郎, 吏部尙書를 역임하고 開元 연간에 尙書右丞相이 되었는데, 올곧고 바른 정사를 펴서 크게 공헌하였다.
역주12 文起八代之衰 : 八代는 後漢, 魏, 晉, 宋, 齊, 梁, 陳, 隋의 8개 王朝를 가리킨다. 이 내용은 《新唐書》 〈韓愈傳〉에 “韓愈는 항상 생각하기를 魏․晉時代 이후로 글을 짓는 자들이 對偶에 구애되어 經典訓詁의 習趣와 司馬遷․揚雄의 氣格이 다시 떨쳐지지 못하고 있다고 여겼다. 이에 韓愈는 글을 지을 적에 近體의 문장을 강력히 반대하고 抒意로 글을 써서 스스로 일가의 새로운 글을 이루니, 후학의 선비들이 師法으로 삼았다.[常以爲自魏晉已還 爲文者多拘偶對 而經詁之指歸 遷雄之氣格 不復振起矣 故愈所爲文 務反近體 抒意立言 自成一家新語 後學之士 取爲師法]”라고 보인다.
역주13 忠犯人主之怒 : 唐 憲宗이 佛敎를 숭상하여 사신을 보내 부처의 진신사리를 궁중으로 맞아들이니, 韓愈가 〈論佛骨表〉를 올려 불가함을 극력 諫하자 憲宗이 노하여 韓愈를 사형에 처하도록 하였으나, 그의 재능을 아낀 승상 裵度가 간언하여 사형을 면하고 潮州로 좌천된 일을 말한 것이다.
역주14 勇奪三軍之帥 : 唐 穆宗 때에 鎭州에 병난이 일어나자 成德軍節度使 田弘正이 이들을 진압하고 있었는데, 이때 王廷湊가 鎭州에 들어가 민중을 선동하여 田弘正을 죽이고 스스로 留後라 칭하였다. 당시 深冀節度使 牛元翼이 田弘正의 군대를 거느리게 되자, 王廷湊가 노하여 牛元翼을 공격해서 그를 포위하였다. 이에 穆宗이 당시 兵部侍郞인 韓愈에게 鎭州를 宣撫하도록 명하였다.
韓愈가 鎭州에 당도하자, 王廷湊가 군대를 도열시키고 위세를 벌여 韓愈를 맞았으나, 韓愈가 추호도 두려워하지 않고 王廷湊의 비행을 준절히 책망하고, 또 말하기를 “神策六軍將 가운데 牛元翼만 한 자가 없는 것은 아니나, 다만 조정이 大體를 감안하여 그를 버리지 못한 것인데, 公이 오래도록 그를 포위하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라고 하니, 王廷湊가 즉시 牛元翼을 풀어주어 鎭州의 난이 평정된 일을 두고 말한 것이다.
‘奪三軍之帥’란 말은 《論語》 〈子罕〉에 “三軍의 將帥는 빼앗을 수 있으나 匹夫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 [三軍 可奪帥也 匹夫 不可奪志也]”라고 보인다. 軍은 군대의 단위로 12,500명을 이르고, 帥는 元帥이다. 옛날 天子國은 六軍이고 제후국은 三軍이었는데, 孔子의 이 말씀은 제후국을 기준한 것이다.
역주15 不可以欺豚魚 : “孚信이 돼지와 물고기에게 미치지 못하면 하늘을 움직일 수 없다.”라는 뜻으로, 앞의 “하늘은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다.[天不容僞]”는 말을 부연한 것이다.
이 내용은 《周易》 中孚卦 彖辭에 “中孚는 柔가 안에 있고 剛이 中을 얻었기 때문이니, 기뻐하고 공손하기에 孚信이 마침내 나라를 감화시킨다. ‘돼지와 물고기에 미쳐 吉함’은 孚信이 돼지와 물고기에게 미친 것이요, ‘大川을 건넘이 이로움’은 나무를 타고 배가 비어 있기 때문이니, 中心이 믿고 利貞으로 하면 마침내 하늘에 應하리라.[彖曰 中孚 柔在內而剛得中 說而巽 孚乃化邦也 豚魚吉 信及豚魚也 利涉大川 乘木 舟虛也 中孚 以利貞 乃應乎天也]”라고 보인다.
이에 대해 孔穎達은 “길함을 얻었다고 해석한 것은 孚信이 돼지와 물고기에게 미쳤기 때문이다.[釋所以得吉 由信及豚魚故也]”라고 疏하였다.
역주16 公之精誠……而不能回憲宗之惑 : “公의 정성이 衡山의 구름을 걷히게 하였다.”는 것은 韓愈의 〈謁衡嶽廟遂宿嶽寺題門樓〉 詩에 “衡山에 온 것이 마침 가을 雨期인지라, 陰氣만 어둑하게 깔리고 맑은 바람 없었네. 마음 가라앉히고 말 없이 기도하자 응험이 있는 듯하니, 올바른 기운이 바로 神明을 감통시킴이 아니겠는가? 조금 있자 운무가 깨끗이 개어 뭇 봉우리 드러나니, 우러러봄에 우뚝하게 창공을 버티고 있구나.[我來正逢秋雨節 陰氣晦昧無淸風 潛心黙禱若有應 豈非正氣能感通 須臾淨掃衆峰出 仰見突兀撐靑空]”라고 보인다.
위의 詩는 韓愈가 〈論佛骨表〉로 憲宗의 미움을 받아 潮州로 좌천되어, 부임하는 도중에 衡山을 들렸으나 마침 때가 雨期라서 날씨가 흐렸는데, 韓愈가 속으로 기도하자 홀연히 음습한 雲霧가 흩어지고 뭇 봉우리들이 드러났다고 한다.
衡山은 중국의 五嶽 가운데 南嶽으로 湖南省 衡陽市에 위치해 있다. 모두 72개의 봉우리가 있으며, 최고봉은 祝融峯으로 해발 1,300m이다. 五嶽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해져, “南嶽이 홀로 가장 아름답다.[南嶽獨秀]”라는 상찬을 받는다.
“憲宗의 미혹됨은 돌리지 못하였다.”는 것은 앞의 〈論佛骨表〉로 憲宗의 미움을 받아 潮州로 좌천된 일을 이른 것이다.
역주17 能馴鰐魚之暴……李逢吉之謗 : “鰐魚의 포악함을 길들였다.”는 것은 《新唐書》 〈韓愈傳〉에 “처음 韓愈가 潮州에 이르러 백성들의 고통을 물으니, 모두 말하기를 ‘惡溪에 鰐魚가 있어서 백성들의 畜産을 잡아먹어 장차 멸종하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이 때문에 곤궁합니다.’라고 하였다. 며칠 후 公(韓愈)이 직접 가서 보고 관속인 秦濟로 하여금 양 한 마리와 돼지 한 마리를 시내에 던지게 하고 축원하였다.……
축원한 날 저녁에 暴風과 천둥 벼락이 시내 가운데서 일어나고 며칠 후 물이 모두 말라 서쪽으로 60리를 옮겨가니, 이후로 潮州에는 鰐魚의 폐해가 없었다.[初愈至潮州 問民疾苦 皆曰 惡溪有鰐魚 食民畜産且盡 民以是窮 數日 愈自往視之 令其屬秦濟 以一羊一豚 投谿水而祝之……祝之夕 暴風震電起谿中 數日水盡涸 西徙六十里 自是潮無鰐魚患]”라고 보이는데, 이 축문인 〈逐鰐魚文〉이 《古文眞寶後集》에 보인다.
皇甫鎛은 唐 憲宗 때의 재상이고 李逢吉은 唐 穆宗 때의 재상이다. “皇甫鎛과 李逢吉의 비방은 그치게 하지 못하였다.”는 것은 憲宗이 潮州刺史로 있던 韓愈를 내직으로 부르려 하자, 皇甫鎛이 평소에 韓愈의 강직함을 꺼려, 그를 비방하여 다시 袁州刺史로 내보낸 일과, 李逢吉이 李紳을 미워하여 그와 韓愈를 함께 臺府에 근무시키고 이들이 다투자, 이를 빌미로 韓愈를 兵部侍郞으로, 李紳을 江西觀察使로 내친 일을 말한 것이다.
역주18 公命進士趙德 : 이 내용은 韓愈의 〈潮州請置鄕校牒〉에 “趙德은 秀才로 沈雅하고 專靜하여 자못 經典에 통달하고 문장이 있으며 능히 先王의 道를 알아 이를 논하고, 또 異端을 배척하고 孔子를 높이니, 스승이 될 만하다.[趙德秀才 沈雅專靜 頗通經 有文章 能知先王之道 論說且排異端而宗孔氏 可以爲師矣]”라고 보인다.
역주19 齊民 : 일반 백성 즉 평민을 이른다. 《漢書》 〈食貨志 下〉에 이 말이 보이는데, 顔師古가 如淳의 말을 인용하여 “齊는 等이다. 貴賤에 관계없이 齊民이라 이르니, 지금의 平民이란 말과 같다.[齊等也 無有貴賤 謂之齊民 若今言平民矣]”라고 注하였다. 顔師古는 唐 太宗 때의 저명한 훈고학자로 《漢書》의 주석을 집대성하였다.
역주20 君子學道則愛人 小人學道則易使也 : 이 내용은 《論語》 〈陽貨〉에 孔子의 말씀으로 보인다. 여기의 君子와 小人은 지위를 가지고 말한 것이다.
역주21 飮食必祭 : 潮州의 백성들이 음식을 먹을 적에 반드시 먼저 韓愈에게 祭(고수레)를 하고 먹었음을 말한 것이다. 《論語》 〈鄕黨〉에 “비록 거친 밥과 나물국이라도 반드시 祭(고수레)하시되 반드시 공경히 하셨다.[雖疏食菜羹 瓜[必]祭 必齊如也]”라고 보인다.
이에 대해 朱子의 《論語集註》에 “옛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적에 모든 종류를 각기 조금씩 덜어내어 그릇 사이에 놓아두어서 맨 처음 음식을 만든 사람에게 祭하였으니, 이는 근본을 잊지 않은 것이다. 齊는 엄숙하고 공경하는 모양이다. 孔子는 비록 하찮은 음식이라도 반드시 祭하시고 祭할 적에는 반드시 공경하셨으니, 이는 聖人의 정성이다.[古人飮食 每種各出少許 置之豆間之地 以祭先代始爲飮食之人 不忘本也 齊嚴敬貌 孔子雖薄物 必祭 其祭必敬 聖人之誠也]”라고 注하였다.
역주22 朝散郞王君滌 : 朝散郞은 宋나라 문관의 品階로, 7品이다. 王滌은 字가 用霖으로 瑯琊 사람인데, 벼슬이 知潮州事를 역임하고 中書舍人에 이르렀다.
역주23 不能一歲而歸 : 韓愈가 唐 憲宗 元和 14년(819) 정월에 潮州刺史로 좌천되었다가 동년 10월에 袁州刺史로 옮겼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24 焄蒿(훈호)悽愴 : 焄蒿는 제사 때에 쑥을 태워 降神하는 것으로 古代에는 향나무 대신 쑥을 태웠다. 悽愴은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여 마음이 슬퍼지는 것으로, 《禮記》 〈祭義〉에 “그 기운이 위로 發揚해서 昭明과 焄蒿와 悽愴이 되니, 이것은 여러 물건의 精氣로, 귀신이 드러난 것이다.[其氣發揚于上 爲昭明焄蒿悽愴 此百物之精也 神之著也]”라고 보인다.
역주25 榜曰 昌黎伯韓文公之廟 : 榜은 扁額으로 사당에 ‘昌黎伯韓文公之廟’라고 표기한 것이다.
역주26 公昔騎龍白雲鄕 : 白雲鄕은 《莊子》 〈天地〉에 “저 흰 구름을 타고 帝鄕에 이른다.[乘彼白雲 至於帝鄕]”라고 보이는데, 바로 天帝가 사는 곳이나 神仙이 사는 곳을 이른다.
역주27 手抉雲漢分天章 : 雲漢은 은하수를 이르며 天章은 하늘의 문채를 이른다.
역주28 天孫爲織雲錦裳 : 天孫은 織女星을 이르며, 雲錦은 織女가 짠 비단으로 은하수라 하는데, 아름다운 문장을 이른 것이다.
역주29 下與濁世掃粃糠 : 粃糠은 쭉정이와 겨란 뜻으로 여기서는 儒家思想 이외의 佛家나 道家의 不正한 학설을 이른다.
역주30 西游咸池略扶桑 : 咸池는 신화 속의 연못으로 동쪽 暘谷에서 솟은 태양이 이곳으로 진다고 한다. 扶桑은 신화 속의 나무로 해가 뜰 때 이 나무 아래에서 솟아나 나무를 스치고 떠오른다고 한다.
역주31 草木衣被昭回光 : 衣被는 입혀진다는 뜻으로 蒙受, 承受의 의미이고, 昭回는 찬란히 밝게 비치는 광채를 이른다.
역주32 追逐李杜參翶翔 : 李․杜는 李白과 杜甫를 이른다. 두 사람은 唐나라 때의 가장 저명한 시인들인데, 韓愈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33 汗流籍湜走且僵 : 籍․湜은 張籍과 皇甫湜으로 두 사람은 韓愈와 동시대의 저명한 文人들이자 韓愈의 門人들이다. 張籍(767~830)은 字가 文昌으로 和州 烏江 사람인데, 樂府詩에 능하고 行書와 草書를 잘 썼으며, 著書에 《張司業詩集》이 있다. 皇甫湜(777~835)은 字가 持正이고 睦州 新安 사람으로 古文復興運動에 동참하였으며, 《皇甫持正文集》 등의 저작을 남겼다.
역주34 作書詆佛譏君王 : 〈論佛骨表〉를 지어 불교를 비판하고 불교에 빠진 憲宗의 잘못을 간언한 것을 이른다.
역주35 要觀南海窺衡湘 : ‘觀南海’는 潮州가 남해와 연해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며, 衡․湘은 衡山과 湘江으로 韓愈는 潮州로 부임하는 길에 湖南을 들러 衡山에 오르고 湘江을 유람하였다.
湘江은 湖南省을 흐르는 강으로 총 길이는 800㎞이며 揚子江의 주요 지류인데, 廣西壯族自治區의 興安縣에서 발원하여 북동쪽으로 흘러 湖南省으로 들어간다. 瀟水와 零陵에서 합쳐지며, 衡山 아래로 흘러 廣東省 경계 부분에서 흘러오는 耒水와 합쳐지고 다시 북쪽으로 흘러 長沙를 거쳐 洞庭湖로 들어가 揚子江으로 흘러간다.
역주36 歷舜九疑弔英皇 : 九疑는 九疑山으로 湖南省 寧遠縣에 있는데 蒼梧山이라고도 한다. 《史記》 〈五帝本紀〉에 “舜帝가 남쪽 지방을 순수하다가 蒼梧의 들에서 崩하시어 江南의 九疑山에 장례하니, 이곳이 바로 零陵이다.[南巡狩 崩於蒼梧之野 葬於江南九疑 是爲零陵]”라고 보인다.
《水經注》에 의하면 九疑山은 모두 9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봉우리의 생김새가 모두 비슷하여 유람하는 사람들이 疑心에 빠지기 때문에 九疑라고 이름하였다고 한다.
英․皇은 堯帝의 두 딸로 舜帝의 부인이 된 女英과 娥皇인데, 舜帝가 崩하자 湘江에 뛰어들어 자살하였다.
역주37 祝融先驅海若藏 : 祝融은 南海의 神이다. 韓愈의 〈南海神廟碑〉에 “바다는 천지 사이에서 물건이 가장 크니, 三代 聖王으로부터 제사하여 섬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傳記를 상고해보면 南海神의 位次가 가장 귀하여 북해, 동해, 서해 세 神과 河伯의 위에 있으니, 이름을 祝融이라 한다.[海於天地間 爲物最鉅 自三代聖王 莫不祀事 考於傳記 而南海神次最貴 在北東西三神河伯之上 號爲祝融]”라고 보인다.
海若은 海神의 이름이다. 屈原이 지은 〈遠遊〉에 “湘江의 神에게 거문고를 타게 함이여. 海若에게 명하여 馮夷를 춤추게 하도다.[使湘靈鼓瑟兮 令海若舞馮夷]”라고 보이는데, 南宋의 洪興祖가 지은 《楚辭輔注》에 “海若은 海神의 이름이요 馮夷는 河水의 仙人이다.[海若海神名也 馮夷水仙人]”라고 하였다.
역주38 約束蛟鰐如驅羊 : 韓愈가 潮州에 이르러 백성들을 위해 〈逐鰐魚文〉을 지어 악어들을 물리친 일을 가리킨다.
역주39 鈞天無人帝悲傷 : 鈞天은 中天으로 天帝가 사는 곳이라 한다.
역주40 謳吟下招遣巫陽 : 巫陽은 고대 신화에 나오는 神巫의 이름으로, 天帝의 명을 받들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들인다고 한다. 《楚辭》 가운데 宋玉이 지은 〈招魂〉에 “天帝가 巫陽에게 이르기를 ‘어진 이가 下界에 있는데, 내가 그를 불러 나를 돕게 하려 하나 魂魄이 흩어졌으니, 네가 점쳐서 나에게 불러오라.’ 하였다.[帝告巫陽曰 有人在下 我欲輔之 魂魄離散 汝筮予之]”라고 보인다.
역주41 犦牲鷄卜羞我觴 : 犦은 犦牛로 목덜미에 肉峰이 있는 들소를 이르는바, 犦牲은 제사에 犦牛를 犧牲으로 올린 것을 이른다. 鷄卜은 占卜 중의 하나로 수탉을 잡아 그 정강이뼈를 취하여 점을 치는 것을 이른다.
역주42 於粲荔丹與蕉黃 : 於는 감탄사이다. 荔丹은 붉은 荔枝를 이른다. 荔枝는 중국 남부 아열대 지역이 원산인 荔枝나무의 열매로 살구 크기의 붉은 과일인데 수분이 많고 매우 달다. 蕉黃은 황금색의 香蕉(바나나)를 이른다. 潮州는 중국 남부 아열대 지역으로 荔枝와 香蕉가 재배되므로 제사에 올린 것이다.
역주43 翩然被髮下大荒 : 大荒은 一說에는 原野 곧 들판이라 하며, 一說에는 신화에 나오는 仙山인 大荒之山이라 한다. 《山海經》 〈大荒西經〉에 “大荒의 가운데 大荒之山이란 山이 있는데, 해와 달이 지는 곳이다.[大荒之中 有山名曰大荒之山 日月所入]”라고 보이는바, ‘大荒의 가운데’라고 한 大荒은 매우 먼 곳을 이른다. 이 글은 韓愈의 〈雜詩〉에 “翩然히 大荒에 내려와 머리 풀어 산발하고 麒麟을 탔다.[翩然下大荒 被髮騎麒麟]”라는 말을 원용한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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