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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2)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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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왕병부王兵部에게 올린 글
奇氣
기운이 기이하다.
南北之交 而士大夫往來之衝也
형주荊州는 남북이 교차하는 지점이고 사대부들이 왕래하는 요충지입니다.
執事以高才盛名으로 作牧於此하시니 蓋亦嘗有以相馬之說 告於者乎잇가
집사께서 높은 재주와 성대한 명성으로 이곳의 목사牧使(지주사知州事)가 되셨는데, 일찍이 말의 을 보는 말씀으로 좌우左右에게 아뢴 자가 있었습니까?
聞之호니 曰 騏驥之馬 一日行千里而不殆하야
제가 들으니, “훌륭한 준마는 하루에 천 리를 가면서도 위태롭지 않아서,
其脊如不動하고 其足如無所著하며
등마루는 움직이지 않는 듯하고 발은 땅에 붙지 않는 듯하며,
升高而不輊하고 走下而不軒하야
높은 데로 올라가면서도 앞으로 기울지 않고 아래로 달리면서도 뒤로 기울지 아니하여,
其伎藝卓絶而效見明著하야
기예가 아주 뛰어나고 효험이 밝게 드러난다.
至於如此로되 而天下莫有識者 何也
이와 같은데도 천하에 알아보는 자가 없는 것은 어째서인가?
不知其相而責其技也일새라하니이다
은 알아보지 못하고 그 기예만 바라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夫馬者 有昂目而豊臆하고 方蹄而密睫하야 捷乎若深山之虎하고 曠乎若秋後之兎하며 遠望 目若視日하고 而志不存乎芻粟하니 若是者 飄忽騰踔하야 去而不知所止
말 중에는 눈이 높이 박혀 있고 가슴이 넓고 발굽이 네모지고 눈썹이 촘촘하여 깊은 산의 호랑이처럼 빠르고 늦가을 토끼처럼 활달하며, 바라보는 눈은 해처럼 광채가 나고 꼴이나 곡식에 마음을 두지 않는 놈이 있으니, 이와 같은 말은 경쾌하게 높이 뛰어오르고 달려가 그칠 줄을 모릅니다.
是故 古之善相者 立於五達之衢하야 一目而眄之하고 聞其一鳴하고 顧而循其色하면 馬之技盡矣 何者
이 때문에 옛날에 말의 을 잘 보는 자들은 사통오달의 거리에 서서 한눈에 잠깐 쳐다보고 울음소리를 한번 듣고서 돌아보며 색깔을 훑어보면 말의 기예를 다 알았으니, 이는 어째서이겠습니까?
其相 溢於外而不可蔽也일새니이다
이 외면에 넘쳐서 가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士之賢不肖 見於面顔하고 而發泄於辭氣하야 卓然其有以存乎耳目之間이어늘 而必曰久居而後察이라하면 則亦名相士者之過矣니이다
선비의 어짊과 불초함이 얼굴에 나타나고 말소리에 드러나 귀와 눈 사이에 확실하게 나타는데, 굳이 말하기를 “함께 오래 있은 뒤에야 선비의 재능을 살필 수 있다.”라고 한다면 이는 선비를 잘 알아보는 자라고 칭하는 자의 잘못일 것입니다.
夫軾 之鄙人이요 而荊之過客也
저는 서천西川( 지역)의 비천한 사람이요, 형주荊州의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其足跡 偶然而至於執事之門하고 其平生之所治以求聞於後世者 又無所挾持以至於左右하니 蓋亦易疎而難合也니이다
발걸음이 우연히 집사의 문에 이르렀고 또 평소 잘 다듬어 후세에 알려지기를 바라는 문장들을 좌우左右에게 가지고 온 적이 없었으니, 아마도 또한 소원疏遠하기 쉽고 합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舟行六十日 過郡十一 縣三十有六하야 取所見郡縣之吏數十百人이어늘 莫不孜孜論執事之賢하고 而敎之以求通於下吏하니 且執事何修而得此稱也잇고
그러나 으로부터 (형주荊州)에 이르기까지 60일 동안의 뱃길에서 11개 과 36개 을 지나오면서 만나본 군현의 관리가 수십 명 내지 백 명에 이르는데, 이들이 모두 집사의 어짊을 열심히 말하고 저에게 집사의 하리下吏에게 성명姓名을 통보해 주기를 청하라고 가르쳐주지 않는 이가 없었으니, 집사께서는 어떻게 훌륭한 행실을 닦으시어 이런 칭찬을 얻으셨습니까?
非敢以求知하야 而望其所以先後於仕進之門者 亦徒以爲執事立於五達之衢하야 而庶幾乎一目之眄하야 或有以信其平生爾니이다
저는 감히 집사께서 저를 알아주시어 벼슬하는 길목에서 앞뒤로 주선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요, 오직 집사께서 사통오달의 거리에 서서 행여 한눈에 바라보고 혹 제가 평생 동안 지니고 있는 것을 믿어주실까 여겨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夫今之世 豈惟王公擇士리오
지금 세상에 어찌 왕공王公만이 선비를 가리겠습니까?
士亦有所擇이니이다
선비 또한 가리는 바가 있습니다.
將自楚遊하고 自魏無所不遊하리니 恐他日 以不見執事爲恨也
저는 장차 로부터 에 가고 로부터 두루 유람하고자 하니, 후일에 집사를 뵙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길까 염려됩니다.
是以 不敢不進이니이다
이 때문에 감히 나아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不宣하노이다
이만 줄입니다.
역주
역주1 上王兵部書 : 嘉祐 4년(1059) 9월, 蘇軾은 아버지 蘇洵, 아우 蘇轍과 함께 모친상을 마치고 조정으로 돌아오기 위해 고향을 떠나 12월에 荊州에 이르렀는데, 이때에 이 글을 王兵部에게 보냈다. 王兵部는 누구인지 알려진 바 없으나 편지의 내용으로 볼 때 知荊州事로 재임하면서 兵部의 직위를 겸했던 자인 듯하다.
역주2 荊州 : 남부 중국의 교통의 요충지로 오래된 도시인데, 宋代에 江陵府로 바뀌었는바, 지금의 湖北省 江陵縣이다.
역주3 左右 : 상대방의 좌우에 있는 사람이란 뜻으로, 상대방을 높여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左右에 있는 사람을 칭하였는데, 執事라는 말과 같다.
역주4 西川 : 지금의 四川省 서쪽 지방이다. 郎曄의 《經進東坡文集史略》에는 西州로 되어 있다.
역주5 自蜀至於楚 : 蜀과 楚는 모두 옛날 지명으로 蜀은 西川(四川), 楚는 荊州를 가리킨다.
역주6 : 戰國時代에 河南과 山西 일대를 차지했던 나라로 大梁을 가리킨 것이다. 宋나라는 開封(大梁)에 도읍하였는데, 蘇軾이 京師인 開封으로 가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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