軾은 平生에 以言語文字로 見知於世하고 亦以此로 取疾於人하야 得失相補하니 不如不作之安也라
以此로 常欲焚棄筆硯하야 爲瘖黙人이로되 而習氣宿業을 未能盡去하고 亦謂隨手雲散鳥沒矣러니
不知足下黙隨其後하야 掇拾編綴하야 略無遺者하니 覽之慙汗하야 可爲多言之戒라
然이나 世之蓄軾詩文者 多矣로되 率眞僞相半하고 又多爲俗子所改竄하야 讀之에 使人不平이라
을 世以爲工
이나 以軾觀之
하면 拙於文而陋於識者 莫統若也
라
이어늘 而詩有江漢之語
하고 及陵與武書
에 詞句儇淺
하니 正齊梁間小兒所擬作
이요 決非西漢文
이어늘
董卓已死
에 琰乃流落
이라 方卓之亂
하야 어늘 而其詩
에 乃云 以卓亂故
로 流入於胡
라하니 此豈眞琰語哉
아
李太白, 韓退之, 白樂天詩文이 皆爲庸俗所亂하니 可爲太息이라
今足下所示二十卷은 無一篇僞者하고 又少謬誤하며 及所示書詞 淸婉雅奧하야 有作者風氣하니 知足下致力於斯文이 久矣로라
在海外에 孤寂無聊일새 過時出一篇見娛하면 則爲數日喜하야 寢食有味하니 以此로 知文章如金玉珠貝하야 未易鄙棄也라
저는 도조 유군都曹 劉君 족하足下에게 머리 조아립니다.
보내주신 서교書敎와 함께 저의 졸렬한 시문詩文을 편록編錄한 20권을 받아 보았습니다.
저는 평소 언어와 문자 때문에 세상에 알려졌고 또한 이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득得과 실失이 서로 보완되니, 글을 짓지 않는 편안함만 못합니다.
이 때문에 항상 붓을 불태우고 벼루를 버리고 벙어리처럼 침묵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였으나 오랫동안 익힌 습관과 하던 일을 다 떨쳐버리지 못하였고, 또한 생각하기를 내가 지은 시문은 곧바로 구름처럼 흩어지고 새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족하足下가 묵묵히 뒤를 따라 주워 모으고 엮어 책으로 만들어서 조금도 빠뜨린 것이 없을 줄을 알지 못했으니, 이것을 봄에 부끄러워 식은땀이 나서 말을 많이 한 경계로 삼을 만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저의 시문을 보관하는 자가 많지만 대체로 진짜와 가짜가 반반씩이고 또 자구字句가 대부분 세상 사람들에 의해 뒤바뀌어, 그 글을 읽어보면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하게 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으니, 진짜를 아는 자가 적은 것은 예로부터 병통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양梁나라 소통蕭統이 편집한 《문선文選》을 세상에서는 아주 훌륭하다고 여기고 있으나, 내가 보건대 문장이 졸렬하고 식견이 누추하기로는 소통蕭統만 한 자가 없습니다.
송옥宋玉이 〈고당부高唐賦〉와 〈신녀부神女賦〉를 지을 적에 그 첫머리에 꿈꾼 이유를 대략 서술하기를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자허子虛와 무시공亡是公이 서로 함께 문답한 것처럼 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부賦입니다.
그런데 소통蕭統은 이것을 서敍(서序)문文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어린아이의 식견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이릉李陵과 소무蘇武가 장안長安에서 작별하면서 시詩를 지어주었다고 하였는데, 이 시詩에 강한江漢이란 말이 있고 또 이릉李陵이 소무蘇武에게 준 편지는 글귀가 경박하고 천근하니, 이것은 바로 남조南朝의 제齊나라와 양梁나라 사이의 어린아이들이 모방하여 지은 것이고 결코 서한시대西漢時代의 문장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소통蕭統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였고, 유자현劉子玄만이 홀로 이것을 알았습니다.
또 범엽范曄이 〈채염전蔡琰傳〉을 지을 적에 채염蔡琰이 지은 시詩 두 편을 기재하였는데, 이것 또한 옳지 않습니다.
동탁董卓이 죽고 난 뒤에 채염蔡琰이 비로소 유락流落하였고, 동탁董卓이 막 난을 일으켰을 때에는 채염蔡琰의 아버지 백개伯喈(채옹蔡邕)가 아무런 탈이 없었는데, 이 시詩에는 동탁董卓의 난리 때문에 오랑캐로 흘러들어 갔다고 말했으니, 이 어찌 진실로 채염蔡琰의 말이겠습니까?
그 필세는 바로 건안칠자建安七子의 것이요, 동한시대東漢時代의 시詩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태백李太白(이백李白)과 한퇴지韓退之(한유韓愈), 백낙천白樂天(백거이白居易)의 시문詩文도 모두 용렬한 속인들에게 어지럽혀졌으니, 크게 탄식할 만합니다.
지금 족하足下가 저에게 보여주신 20권은 한 편도 위작이 없고 또 오류가 적으며, 또 당신이 보여준 글은 내용이 깨끗하고 완곡하고 고상하고 심오하여 작자의 풍기風氣가 있으니, 족하足下께서 이 문장에 오래도록 치력致力했음을 알겠습니다.
그리하여 형체를 도려내고 가죽을 벗겨내어 크게 달라지기를 원하였으나 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아들 과過의 문장이 매우 기이합니다.
해외에 있으면서 고적하여 무료한데 과過가 때로 글 한 편을 지어내서 즐겁게 해주면 나는 며칠 동안 기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데도 재미가 있으니, 이로써 문장은 금金과 옥玉, 진주와 큰 자개와 같아서 쉽거나 하찮게 여겨 버릴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족하足下의 사학詞學(문장학)이 이처럼 훌륭한 것을 보니, 또 우리 동년同年인 용도공龍圖公 형에게 훌륭한 자손이 있음을 기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