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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2)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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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1. 유면劉沔에게 답한 글
情致이니라
정취가 깨끗하고 소삽하다.
頓首都曹劉君足下하노이다
저는 도조 유군都曹 劉君 족하足下에게 머리 조아립니다.
蒙示書敎及編錄拙詩文二十卷이로라
보내주신 서교書敎와 함께 저의 졸렬한 시문詩文편록編錄한 20권을 받아 보았습니다.
平生 以言語文字 見知於世하고 亦以此 取疾於人하야 得失相補하니 不如不作之安也
저는 평소 언어와 문자 때문에 세상에 알려졌고 또한 이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이 서로 보완되니, 글을 짓지 않는 편안함만 못합니다.
以此 常欲焚棄筆硯하야 爲瘖黙人이로되 而習氣宿業 未能盡去하고 亦謂隨手雲散鳥沒矣러니
이 때문에 항상 붓을 불태우고 벼루를 버리고 벙어리처럼 침묵하는 사람이 되고자 하였으나 오랫동안 익힌 습관과 하던 일을 다 떨쳐버리지 못하였고, 또한 생각하기를 내가 지은 시문은 곧바로 구름처럼 흩어지고 새처럼 사라질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不知足下黙隨其後하야 掇拾編綴하야 略無遺者하니 覽之慙汗하야 可爲多言之戒
그런데 족하足下가 묵묵히 뒤를 따라 주워 모으고 엮어 책으로 만들어서 조금도 빠뜨린 것이 없을 줄을 알지 못했으니, 이것을 봄에 부끄러워 식은땀이 나서 말을 많이 한 경계로 삼을 만합니다.
이나 世之蓄軾詩文者 多矣로되 率眞僞相半하고 又多爲俗子所改竄하야 讀之 使人不平이라
그러나 세상에 저의 시문을 보관하는 자가 많지만 대체로 진짜와 가짜가 반반씩이고 또 자구字句가 대부분 세상 사람들에 의해 뒤바뀌어, 그 글을 읽어보면 사람으로 하여금 불쾌하게 합니다.
然亦不足怪하니 識眞者少 蓋從古所病이라
그러나 이 또한 괴이하게 여길 것이 없으니, 진짜를 아는 자가 적은 것은 예로부터 병통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世以爲工이나 以軾觀之하면 拙於文而陋於識者 莫統若也
나라 소통蕭統이 편집한 《문선文選》을 세상에서는 아주 훌륭하다고 여기고 있으나, 내가 보건대 문장이 졸렬하고 식견이 누추하기로는 소통蕭統만 한 자가 없습니다.
송옥宋玉이 〈고당부高唐賦〉와 〈신녀부神女賦〉를 지을 적에 그 첫머리에 꿈꾼 이유를 대략 서술하기를 사마상여司馬相如자허子虛무시공亡是公이 서로 함께 문답한 것처럼 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입니다.
而統謂之敍하니 此與兒童之見으로 何異
그런데 소통蕭統은 이것을 ()이라 하였으니, 이것이 어린아이의 식견과 어찌 다르겠습니까?
이어늘 而詩有江漢之語하고 及陵與武書 詞句儇淺하니 正齊梁間小兒所擬作이요 決非西漢文이어늘
이릉李陵소무蘇武장안長安에서 작별하면서 를 지어주었다고 하였는데, 이 강한江漢이란 말이 있고 또 이릉李陵소무蘇武에게 준 편지는 글귀가 경박하고 천근하니, 이것은 바로 남조南朝나라와 나라 사이의 어린아이들이 모방하여 지은 것이고 결코 서한시대西漢時代의 문장이 아닙니다.
而統不悟하고
그런데도 소통蕭統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였고, 유자현劉子玄만이 홀로 이것을 알았습니다.
載其二詩하니 亦非是
범엽范曄이 〈채염전蔡琰傳〉을 지을 적에 채염蔡琰이 지은 두 편을 기재하였는데, 이것 또한 옳지 않습니다.
董卓已死 琰乃流落이라 方卓之亂하야 어늘 而其詩 乃云 以卓亂故 流入於胡라하니 此豈眞琰語哉
동탁董卓이 죽고 난 뒤에 채염蔡琰이 비로소 유락流落하였고, 동탁董卓이 막 난을 일으켰을 때에는 채염蔡琰의 아버지 백개伯喈(채옹蔡邕)가 아무런 탈이 없었는데, 이 에는 동탁董卓의 난리 때문에 오랑캐로 흘러들어 갔다고 말했으니, 이 어찌 진실로 채염蔡琰의 말이겠습니까?
其筆勢乃效 非東漢詩也
그 필세는 바로 건안칠자建安七子의 것이요, 동한시대東漢時代가 아닙니다.
李太白, 韓退之, 白樂天詩文 皆爲庸俗所亂하니 可爲太息이라
그리고 이태백李太白(이백李白)과 한퇴지韓退之(한유韓愈), 백낙천白樂天(백거이白居易)의 시문詩文도 모두 용렬한 속인들에게 어지럽혀졌으니, 크게 탄식할 만합니다.
今足下所示二十卷 無一篇僞者하고 又少謬誤하며 及所示書詞 淸婉雅奧하야 有作者風氣하니 知足下致力於斯文 久矣로라
지금 족하足下가 저에게 보여주신 20권은 한 편도 위작이 없고 또 오류가 적으며, 또 당신이 보여준 글은 내용이 깨끗하고 완곡하고 고상하고 심오하여 작자의 풍기風氣가 있으니, 족하足下께서 이 문장에 오래도록 치력致力했음을 알겠습니다.
某窮困 本坐文字하니
나의 곤궁함은 본래 문자 때문이었습니다.
蓋願刳形去皮而不可得者
그리하여 형체를 도려내고 가죽을 벗겨내어 크게 달라지기를 원하였으나 될 수 없었습니다.
이나 幼子過文益奇
그러나 어린 아들 의 문장이 매우 기이합니다.
在海外 孤寂無聊일새 過時出一篇見娛하면 則爲數日喜하야 寢食有味하니 以此 知文章如金玉珠貝하야 未易鄙棄也
해외에 있으면서 고적하여 무료한데 가 때로 글 한 편을 지어내서 즐겁게 해주면 나는 며칠 동안 기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는 데도 재미가 있으니, 이로써 문장은 , 진주와 큰 자개와 같아서 쉽거나 하찮게 여겨 버릴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見足下詞學如此하니 又喜
족하足下사학詞學(문장학)이 이처럼 훌륭한 것을 보니, 또 우리 동년同年용도공龍圖公 형에게 훌륭한 자손이 있음을 기뻐합니다.
勉作報書하노라
그러므로 억지로 답장을 쓰는 것입니다.
悤悤不宣하노라
총총 이만 줄입니다.
역주
역주1 答劉沔書 : 元符 3년(1100) 劉沔이 蘇軾의 詩文 20권을 수록하여 보내자, 蘇軾이 이 글로 답한 것이다. 劉沔은 字가 沔之로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 劉沔의 부친이 蘇軾과 동방급제하여 龍圖閣學士를 지냈음을 알 수 있다. 本集에는 제목이 〈答劉沔都曹書〉로 되어 있는데, 都曹는 都事로 六部의 尙書에 예속되었다.
역주2 脫落蕭颯 : 脫落은 俗氣를 떨쳐버려 깨끗함을 이르며, 蕭颯은 蕭灑自然으로 역시 깨끗하고 자연스러움을 이른다.
역주3 梁蕭統集文選 : 蕭統(501~531)은 六朝時代 南朝 梁나라 武帝의 長子로 즉위하기 전에 죽었으며, 시호는 昭明이다. 일찍이 문학하는 선비들을 모아 《文選》을 편집하였는데, 後人들이 《昭明文選》이라 칭하였다.
역주4 宋玉賦高唐神女 : 宋玉은 楚나라의 문장가로 屈原의 제자라 한다. 楚나라 襄王이 꿈에서 神女를 만난 일을 서술하여 〈高唐賦〉와 〈神女賦〉를 지었는데, 《文選》 19권에 수록되어 있다.
역주5 如子虛亡(無)是公……而統謂之敍 : 司馬相如가 지은 〈子虛賦〉와 〈上林賦〉에 子虛와 烏有先生과 亡是公이 서로 문답한 내용이 보이는데, 子虛는 허구의 가공인물이며, 烏有는 ‘어찌 이러한 사람이 있겠느냐?’는 뜻이고, 亡是는 ‘이러한 사람이 없다.’는 뜻으로 烏有先生과 亡是公 역시 모두 가공인물이다. 蘇軾은 〈高唐賦〉와 〈神女賦〉의 첫머리에 나오는 楚 襄王과 宋玉의 문답이 모두 賦인데, 蕭統이 이것을 敍文이라고 잘못 말하였음을 비판한 것이다. 序와 敍는 같이 쓰는데, 蘇軾의 祖父 이름이 序이므로 蘇氏 三父子의 문집에는 모두 敍로 표기하였다.
역주6 李陵蘇武贈別長安 : 李陵(?~B.C. 74)과 蘇武(?~B.C. 60)는 모두 前漢 武帝 때의 장군으로, 李陵은 騎都尉가 되어 匈奴를 공격하다가 패하여 항복하고 匈奴에서 죽었으며, 蘇武는 天漢 元年(B.C. 100) 匈奴에 사신으로 갔다가 구금되어 온갖 박해를 받았으나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19년 동안 버티다가 始元 6년(B.C. 81)에 돌아왔다. 李陵과 蘇武가 匈奴에 있으면서 서로 만났는데, 이때 蘇武가 지어주었다는 詩에 “江漢이 흘러감을 굽어본다.[俯觀江漢流]”는 내용이 있다. 蘇統은 이것을 《文選》 29권에 수록하였으며, 또 李陵이 蘇武에게 주었다는 글도 《文選》 41권에 수록하였으나, 蘇軾은 모두 後世의 僞作으로 본 것이다.
역주7 劉子玄獨知之 : 子玄은 唐나라의 史學家인 劉知幾(661~721)의 字이다. 그가 지은 《史通》 〈雜說 下〉에 李陵이 蘇武에게 지어주었다는 편지는 僞作이라고 하였다.
역주8 范曄作蔡琰傳 : 范曄(398~446)은 字가 蔚宗으로, 後漢에 대한 각종 기록을 산삭하여 《後漢書》 80권을 편찬하였다. 蔡琰은 蔡邕의 딸인 蔡文姬로, 博學하고 재주가 있었으며 音律에 달통하였다. 처음에 河東 衛仲道에게 시집갔는데 남편이 죽자 친정으로 돌아왔으며, 後漢 말기 董卓의 반란으로 천하가 큰 혼란에 빠지자 董卓의 부하에게 사로잡혀 匈奴의 左賢王에게 시집가 12년 동안 있었다. 이때 권력자인 曹操가 蔡邕이 죽고 후사가 없음을 생각하여 많은 돈을 주고 데려다가 董祀에게 시집보냈다. 〈蔡琰傳〉은 《後漢書》 〈列女傳〉 가운데 〈董祀妻〉의 기록을 가리키는데, 여기에 그녀가 지은 〈悲憤詩〉로 五言詩와 騷體詩가 각각 한 수씩 보이는바, 자신이 그동안 받은 고통을 서술한 내용이다.
역주9 伯喈尙無恙也 : 伯喈는 蔡邕(133~192)의 字로, 後漢의 문학가․음악가․서법가이다. 董卓이 정권을 독단할 적에 그의 압박에 못 이겨 中郞將이 되었다. 蘇軾은 “蔡琰의 아버지인 蔡邕이 董卓 밑에서 벼슬하고 있었는데, 그의 딸이 어떻게 董卓의 부하장수에게 사로잡혔겠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리하여 《後漢書》에 수록된 두 수의 〈悲憤詩〉는 蔡琰이 지은 것이 아니고 僞作이라고 말한 것이다. 淸나라 何焯은 그가 지은 《義門讀書記》에서 蘇軾의 의논이 명확하지 않음을 밝혔는데, 중국에서는 요즘 첫 번째 수는 蔡琰의 작품으로 보고, 두 번째 수는 분명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역주10 建安七子 : 建安은 後漢 獻帝의 年號(196~220)이다. 建安七子는 이때 활약한 일곱 명의 文士인 孔融, 阮瑀, 徐幹, 陳琳, 應瑒, 王粲, 劉楨을 가리키는데, 曹植의 《典論》 〈論文〉에 보인다.
역주11 吾同年兄龍圖之有後也 : 同年은 같은 해에 함께 科擧에 급제한 자를 이르며, 龍圖는 龍圖閣直學士의 약칭으로, 本集에는 龍圖 아래에 公자가 있는데, 누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有後는 훌륭한 자손이 있다는 것으로, 이로써 劉沔이 그의 아들임을 알 수 있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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