問世之治亂인댄 必觀其人이요 問人之賢不肖인댄 必以世考之라
合抱之木은 不生於步仞之丘하고 千金之子는 不出於三家之市하나니라
臣嘗逮事인종황제仁宗皇帝하니 其愚하야 不足以測知聖德之所至나 獨私竊覽觀호니 四十餘年之間에 左右前後之人이 其大者는 固已光明儁(俊)偉하고 深厚雄傑하야 不可窺較요 而其小者도 猶能敦朴愷悌하고 靖恭持重하야 號稱長者라
當是之時하야 天人和同하고 上下懽心하야 才智不用而道德有餘하고 功業難(明)[名]而福祿無窮하니라
에 若臣若子 罔有內外
하고 下至深山窮谷
의 老婦稚子
하고 外薄四海
의 裔夷君長
하야 見當時之人
하고 聞當時之事
하면 未有不流涕稽首者也
하니 此豈獨上之澤歟
아
臣不及見其人矣나 而識其爲人호니 其流風遺俗을 可得而稱者는 以世考之也일새라
희령熙寧六年冬
에 以事至
고소姑蘇러니 其子
회誨 出
中所賜公端敏字二
와 飛白筆一
하야 以示臣
하고 且謂臣記之
하라 將刻石而傳諸世
라하니라
且以爲抱
이 不若藏此筆
이요 保
가 不若傳此書
며 考
이 不若推點畫以究觀其所用之意
요 存
가 不若因褒貶以想見其所與之人
이라
或藏於名山
하고 或流於四方
에 凡所見者 皆當聳然而作
하야 如望
하야 相與勉爲忠厚而恥爲浮薄
이 或由此也夫
인저
01. 인종황제仁宗皇帝께서 직접 비백체飛白體로 쓰신 어서御書에 대한 기문記文
세상이 다스려지는가 혼란한가를 물으려면(알려면) 반드시 그 사람을 관찰해야 하고, 사람이 어진가 불초한가를 물으려면 반드시 그 세대를 고찰해야 한다.
맹자孟子가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의 시詩를 외우고 그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도 그 사람의 인품을 알지 못하는 것이 되겠는가?
이 때문에 그 사람이 살았던 세대를 논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한 아름이 되는 나무는 몇 걸음이나 한 길쯤 되는 언덕에서는 자라지 않고, 천금千金을 소유한 부귀한 집안의 자식은 세 가호 정도 있는 궁벽한 시장에서는 나오지 않는 법이다.
내 일찍이 인종황제仁宗皇帝를 섬겼는데, 나는 어리석어 성덕聖德의 지극한 바를 측량하여 알 수 없었으나 홀로 은밀히 살펴보니, 40여 년 동안 좌우와 전후에서 보좌하는 사람들 중에서 큰 자들은 진실로 이미 광명하고 위대하고 심후深厚하고 걸출해서 엿보아 비교할 수가 없었으며, 작은 자들도 모두 돈후敦厚하고 질박하고 화락하고 안정되고 공손하고 근신하여 장자長者라고 일컬어졌다.
이때를 당하여 하늘과 사람이 화합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기뻐하는 마음을 품어서, 재주와 지혜를 쓰지 않고도 도덕道德이 유여하였으며, 공업功業을 다 형용하기 어려워 복록이 무궁하였다.
인종황제仁宗皇帝께서 승하하신 이래로 12년 동안 신자臣子들이 안과 바깥을 가릴 것 없이, 아래로는 깊은 산과 궁벽한 골짝의 늙은 부인과 어린아이에까지 이르고, 밖으로는 사해四海의 변방 오랑캐 군장君長에 이르기까지 그 당시의 사람을 보고 그 당시의 일을 들어보면 인종황제仁宗皇帝를 그리워해서 눈물을 흘리고 머리를 조아리지 않는 자가 없으니, 이 어찌 다만 인종황제仁宗皇帝의 은택일 뿐이겠는가?
무릇 조정에 있는 자들도 참여하여 공력功力이 있었던 것이다.
태자소부太子少傅인 안간 왕공安簡 王公은 휘諱가 거정擧正이다.
나는 미처 그 인물을 보지 못했으나 그 사람됨을 아니, 그의 유풍流風과 유속遺俗을 지금도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분이 살았던 세대(인종仁宗의 시대)를 가지고 고찰하기 때문이다.
희령熙寧 6년 겨울에 내가 공무公務 때문에 고소姑蘇에 이르자, 공公의 아들 회誨가 경력慶曆 연간에 인종仁宗께서 공公에게 하사한 ‘단민端敏’이라는 두 글자와 비백체飛白體로 쓴 글씨 하나를 꺼내어 나에게 보여주고, 또 나에게 이르기를 “이에 대한 기문記文을 지어달라. 내 장차 비석碑石에 새겨서 후세에 전하겠다.”라고 하였다.
나는 벼슬이 태상太常의 지위에 있고 직책이 태사太史를 맡고 있으니, 법法에 따라 당연히 이 글(어서御書)을 써야 한다.
또 생각하건대 오호烏號라는 활을 안고 있는 것이 이 필적을 보관하는 것만 못하고, 곡부曲阜의 신발을 보존하는 것이 이 글을 전하는 것만 못하고, 퇴려追蠡를 고찰하여 음악을 논하는 것이 한 점 한 획을 미루어서 그 쓰신 바의 뜻을 자세히 연구해보는 것만 못하고, 창포김치를 보존하여 선왕의 기호嗜好를 추념하는 것이 포폄하신 일을 인하여 그 친애하신 사람을 상상해보는 것만 못할 것이다.
혹 이것을 명산名山에 보관하고 혹 사방에 유전하면, 누구나 이것을 보는 자들이 모두 마치 모두旄頭의 먼지를 바라보고 뒤따르는 수레의 소리를 듣는 것처럼 마땅히 벌떡 일어나서, 서로 힘써 충후忠厚한 행실을 하고 부박浮薄한 짓을 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혹 이로 말미암아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작은 제목인데도 큰 곳으로부터 의논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