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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2)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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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3. 진제형陳提刑에게 답한
此以下 竄南海時所作이라
이 이하는 남해로 유배 갔을 적에 지은 것이다.
遠竄島夷 偶未書於이러니 逃歸空谷 固喜聞於足音이라
멀리 도이島夷 지방(해남도)으로 유배 가서 우연히 귀록鬼錄의 명부에 이름이 오르지 않았는데, 빈 골짜기로 달려 돌아옴에 진실로 발자국 소리를 듣고 기뻐하였습니다.
하시니 欲聞名而未敢이어늘 豈流問之輒先이리오
더구나 청묘淸廟호련瑚璉과 같은 자질로 명당明堂의 고리나무와 가래나무의 쓰임이 되시니, 이름을 듣고자 하였으나 감히 청하지 못했는데 어찌 먼저 안부를 물어주시리라고 생각했겠습니까?
恭惟 提刑刑部 才高一時하고 望重多士니이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제형형부提刑刑部께서는 한 시대에 재주가 높고, 많은 선비들 가운데에 명망이 대단하십니다.
으로 緣飾政刑하고 漢循吏之風流 本源經術하니이다
나라 여러 학자들의 덕업德業으로 정사政事와 형벌을 아름답게 꾸미시고, 나라 순리循吏의 풍모로 다스림이 경학에 근본하였습니다.
暫屈雲霄之步하야 來蘇之民이러니 憐遷客之無歸하야 墜尺書而起廢하야 助其羽翼하고 借以齒牙하시니
잠시 운소雲霄의 걸음을 굽혀 영교嶺嶠에 와서 이 지방 백성들을 소생시키셨는데, 귀양 온 나그네가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을 가엾이 여기시고 편지를 보내셔서 버려진 사람을 흥기시켜 그 우익羽翼을 도와주고 칭찬해주셨습니다.
但憂枯朽之餘 難副吹噓之力이니이다
저는 다만 야위고 노쇠한 나머지에 저를 밀어주시는 의 노력에 부응하기 어려울까 근심됩니다.
旣感且怍하야 不知所云이니이다
감사하고 또 부끄러워서 말씀드릴 바를 모르겠습니다.
역주
역주1 答陳提刑啓 : 이 글이 언제 쓰여졌는지는 자세하지 않다. 그러나 글의 내용으로 살펴보건대 元符 3년(1100)에 蘇軾이 永州에 거주하라는 명을 받고 海南島에서 북쪽으로 길을 떠나 廣南東路를 지날 때 쓰여진 듯하다. 蘇軾은 다음해 7월 常州에서 별세하였다. 提刑은 路의 監司 가운데 하나인 提點刑獄을 이른다. 陳提刑에 대해서는 상고할 길이 없으나 당시 廣南東路의 提刑일 것으로 추측된다.
역주2 鬼錄 : 저승사자가 가지고 있는 사망한 사람의 명부를 이른다.
역주3 淸廟瑚璉之資 爲明堂杞梓之用 : 淸廟는 宗廟를 가리키며, 瑚璉은 玉으로 만든 祭器로 宗廟의 제사에 쓰여지는 그릇인데, 夏나라에는 六璉이 있었고 殷나라에는 五瑚가 있었다. 明堂은 泰山에 있는데, 옛날 周나라 天子가 제후들에게 조회받고 政令을 내던 곳이며, 杞梓는 고리나무와 가래나무로 좋은 재목이어서 明堂을 짓는 재목으로 쓰여졌다. 瑚璉과 杞梓는 모두 상대방의 재주와 인품을 높이 칭찬한 말이다.
역주4 魯諸儒之德業 : 魯나라는 옛날 孔子가 生長한 지역으로 學者가 많았으며 德業은 德과 事業을 이른다. 漢나라 초기 叔孫通은 魯 지방의 여러 學者들을 초치하여 한나라의 儀禮를 초안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5 嶺嶠 : 江西, 湖南, 廣東, 廣西 등 네 省의 접경에 위치한 大庾嶺․始安嶺․臨賀嶺․桂陽嶺․揭陽嶺의 다섯 고개를 가리킨다. 또는 交趾와 合浦의 경계에 있는 大庾嶺․越城嶺․萌渚嶺․都龐嶺․騎田嶺의 다섯 고개를 가리키기도 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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