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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4)

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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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9. 방산자方山子에 대한
奇頗跌宕하야 似司馬子長하니라
기이함이 자못 질탕하여 사마자장司馬子長(사마천司馬遷)과 유사하다.
方山子
방산자方山子광주光州황주黃州 사이에 은둔한 사람이다.
少時爲人하야 閭里之俠 皆宗之러니 稍壯 하야 欲以此馳騁當世 然終不遇
젊었을 적에 주가朱家곽해郭解의 인품을 흠모하여 마을의 협객들이 모두 그를 종주로 삼았었는데, 차츰 장성하자 평소의 뜻을 굽히고 책을 읽어서 이것을 가지고 당세에 재능을 발휘하고자 하였으나 끝내 좋은 기회를 만나지 못하였다.
晩乃遯(遁)於光, 黃間曰하니 庵居蔬食하야 不與世相聞이라
만년에 마침내 광주光州황주黃州 사이에 있는 기정岐亭이라는 곳에 은둔하니, 암자에서 거처하고 채소를 먹으면서 세상 사람들과 서로 소식을 주고받지 않았다.
棄車馬하고 毁冠服하고 徒步往來山中하니 人莫識也
수레와 말을 버리며 선비의 과 의복을 찢어버리고 평상복을 입고는 도보로 산중을 왕래하니, 아무도 그를 아는 이가 없었다.
見其所著帽 하고인저하고 因謂之方山子라하니라
사람들은 그가 쓰고 있는 모자가 네모진 지붕처럼 높이 솟은 것을 보고는 말하기를 “이것이 어찌 옛날 방산관方山冠의 남은 모습이 아니겠는가?”라고 하고, 인하여 그를 ‘방산자方山子’라고 불렀다.
余謫居于黃할새 過岐亭이라가 適見焉하고 曰 嗚呼
내가 황주黃州에 좌천되어 있을 적에 기정岐亭을 지나다가 우연히 그를 보고 말하기를 “아!
此吾故人陳慥季常也 何爲而在此오하니 方山子亦矍然問余所以至此者
이 사람은 나의 친구 진조 계상陳慥 季常인데, 무슨 일로 여기에 있는가?”라고 하니, 방산자方山子도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내가 여기에 온 까닭을 물었다.
余告之故한대 俯而不答하고 仰而笑하고 呼余宿其家하니 環堵蕭然이로되 而妻子奴婢 皆有自得之意하니 余旣聳然異之로라
내가 그 이유를 말해주자, 방산자方山子는 고개를 숙이고 대답하지 않다가 고개를 들어 웃고는 나를 불러 자기 집에서 유숙하게 하였는데, 오막살이가 쓸쓸하였으나 처자와 노비들이 모두 스스로 만족한 뜻이 있었으니, 내 이미 크게 기이하게 여겼다.
獨念方山子少時 使酒好劍하고 用財如糞土
내 홀로 생각해보니, 방산자方山子는 젊었을 적에 술주정하고 검술을 좋아하며 재물을 거름처럼 함부로 사용하였다.
前十有九年 余在岐山하야 見方山子하니 從兩騎하고 挾二矢하야 游西山할새 鵲起于前이어늘 使騎逐而射之호되 不獲이라
19년 전에 내가 기산岐山에 있으면서 보니, 방산자方山子가 말을 탄 사람 두 명을 대동하고, 자신은 두 개의 화살만 가지고서 서산西山에서 놀았는데, 까치가 앞에서 날자 말을 탄 사람들로 하여금 쫓아가 활을 쏘아 잡게 하였으나 잡지 못하였다.
方山子怒馬獨出하야 一發得之하고 因與余馬上論用兵及古今成敗하고 自爲一世豪士러니
방산자方山子노기怒氣를 띠고 말을 치달려 홀로 나가서 한 발에 쏘아 잡고는, 나와 함께 말을 타고 용병用兵고금古今성패成敗를 논하고 스스로 당대의 호걸스런 선비라고 하였다.
今幾日耳어늘
지금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는가.
精悍之色 猶見於眉間하니 而豈山中之人哉
그런데 날쌔고 용맹한 기색이 아직도 미간眉間에 나타나니, 어찌 그가 산중山中의 사람이겠는가?
이나 方山子 世有勳閥하야 當得官하리니 使從事於其間이면 今已顯聞이요 而其家在洛陽하야 園宅壯麗하야 與公侯等하고 河北有田하야 歲得帛千匹하니 亦足以富樂이어늘
그러나 방산자方山子는 대대로 공훈이 있는 가문이어서 마땅히 벼슬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니, 만일 그가 벼슬하는 데에 종사했더라면 지금 이미 현달하여 소문이 났을 것이요, 또 그의 집이 낙양洛陽에 있어서 전원과 주택이 웅장하고 화려하여 공후公侯들과 대등하고, 하북河北에 수많은 전지田地가 있어서 해마다 비단 천 필을 얻을 수 있으니, 또한 충분히 부유하고 즐겁게 살 수 있었을 것이다.
皆棄不取하고 獨來窮山中하니 此豈無得而然哉
그런데도 방산자方山子는 이것을 모두 버리고 취하지 않고는 홀로 궁벽한 산중에 왔으니, 이 어찌 에 얻음이 없이 그러하겠는가?
余聞光, 黃間 多異人이로되 往往陽狂垢汚하야 不可得而見이라하니 方山子儻見之歟
내가 들으니, 광주光州황주黃州 사이에는 이인異人이 많은데, 왕왕 거짓 미친 체하며 비루한 짓을 행하여 만나볼 수 없다고 하니, 방산자方山子는 혹 그들을 보았는가?
此篇 不載로되 余特愛其煙波生色處 往往能令人涕洟 錄入之하노라
이 글은 《삼소문수三蘇文粹》에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내 특별히 변화무쌍하여 생동감이 넘치는 부분이 왕왕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을 흘리게 함을 좋아하므로 여기에 기록해 넣은 것이다.
역주
역주1 方山子傳 : 元豐 3년(1080)에 東坡는 烏臺詩案으로 인해 黃州로 좌천되었다. 黃州로 가는 길에 崎亭을 지나다가 옛 친구 陳慥를 만나 5일간 그의 집에서 유숙하였는데, 元豐 4년 12월에 그를 위하여 이 傳을 지었다. 陳慥는 字가 季常으로 陳公弼의 아들인데, 자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다.
역주2 光黃間隱人也 : 光黃은 光州와 黃州를 이르는데, 光州의 治所는 지금의 河南省 光山縣이고 黃州의 治所는 지금의 湖北省 黃岡이다. 隱人은 은둔한 사람을 이른다.
역주3 朱家郭解 : 두 사람 모두 前漢 때의 遊俠이다.
朱家는 高祖 때 魯나라 사람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을 살려준 것이 100여 명에 이르러 천하에 義俠으로 명망이 높았다. 季布가 項羽의 장수가 되어 高祖(劉邦)와 싸우면서 여러 차례 高祖를 압박하였는데, 高祖가 천하를 통일한 다음 季布에게 복수할 생각으로 현상금을 내걸고 季布를 잡으려 하였다. 이에 季布는 성명을 바꾸고 삭발한 채 남의 집에 머슴으로 숨어 있었는데, 朱家가 이 사실을 알고 季布를 자기 집으로 불러 숨겨주고는 계책을 내어 季布를 사면받게 해주었다. 그러나 朱家는 보답을 바라지 않아 季布를 일부러 만나지 않았다 한다.
郭解는 文帝 때 軹縣 사람으로 성품이 대범하고 재물에 욕심이 없었으며 남에게 후하게 베풀고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따랐으나 뒤에 승상 公孫弘에 의해 멸족되었다.
두 사람의 事迹은 모두 《史記》 〈遊俠列傳〉에 보인다.
역주4 折節讀書 : 遊俠이 되어 천하를 휩쓸고자 하는 뜻을 꺾고 학업을 닦아 선비가 됨을 이른다.
역주5 岐亭 : 宋나라 당시 黃州에 속한 鎭의 명칭으로 지금의 湖北省 麻城縣 서남쪽에 있었다.
역주6 方屋而高 : 모자의 형태가 사각형이고 높이가 높음을 형용한 말이다.
역주7 此豈古方山冠之遺像乎 : 方山冠은 漢나라 때에 宗廟의 樂師들이 썼던 모자였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宋나라 당시에는 隱士들이 方山冠을 많이 썼다고 한다.
역주8 三蘇文粹 : 書名으로 蘇軾 三父子의 좋은 글을 뽑아 만들었는데, 저자는 미상이다. 모두 70권인데, 老泉 蘇洵의 글이 11권이고 東坡의 글이 32권이고 蘇轍의 글이 27권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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