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
은 皆以身徇義
하야 招之不來
하고 麾之不去
하야 하면 則豺狼狐狸 自相呑噬
라
故
로 能消禍於未形
하고 救危于將亡
하니 使皆如
이면 雖累千百
이라도 緩急
에 豈可望哉
리오
方是時
하야 朝廷淸明
하야 無大姦慝
이라 然
이나 하야 耿然如秋霜夏日
하야
有如不幸而處於衆邪之間
과 安危之際
런들 則公之所爲
가 必將驚世絶俗
하야 使
之流
로 心破膽裂
하리니 豈特如此而已乎
아
始予過
라가 見公之畫像
하고 想其遺風餘烈
하야 이나 而不可得
이러니 其後爲
서주徐州에 而公之
이 爲
연주兖소주州하야 以公墓碑示余
어늘 乃追爲之贊
하야 以附其家傳云
이라
維昔聖賢은 患莫己知어늘 公遇태종太宗하니 允也其時라
一時之屈이요 萬世之信(伸)이니 紛紛鄙夫 亦拜公像이라
전傳에 이르기를 “군자君子가 있지 않으면 어찌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는데, 내 일찍이 이 말을 세 번 반복하고서 눈물을 흘리고 크게 한숨 쉬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한漢나라의 급암汲黯․소망지蕭望之․이고李固와 오吳나라의 장소張昭와 당唐나라의 위정공魏鄭公(위징魏徵)․적인걸狄仁傑과 같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 몸으로 의리를 지켜서 남들이 불러도 오지 않고 손을 저어도 떠나가지 아니하여, 얼굴빛을 엄숙히 하고 조정에 서면 시랑豺狼과 여우와 살쾡이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물어 죽였다.
그러므로 화禍가 나타나지 않았을 적에 화禍를 사라지게 하고, 장차 망하려 할 적에 위태로운 나라를 구원하였으니, 그 당시 대신들이 모두 공손승상公孫丞相(공손홍公孫弘)과 장우張禹와 호광胡廣과 같았다면, 비록 몇천 명과 몇백 명이 있더라도 위급할 적에 어찌 도움을 바랄 수 있겠는가?
고 한림故 翰林 왕공 원지王公 元之(왕우칭王禹偁)는 웅장한 문장과 정직한 도道로 당세에 홀로 우뚝 서서, 충분히 이 여섯 명의 군자君子에게 추배追配할 수 있었다.
이때를 당하여 조정이 깨끗해서 크게 간악한 자가 없었는데도, 공公은 조정에서 용납되지 못하여 꼿꼿한 모습이 가을의 서리와 여름의 태양과 같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친압할 수 없어서 세 번 쫓겨났다가 죽음을 맞았다.
만일 불행하게도 여러 간사한 신하의 사이와 국가가 위태로운 즈음에 처했더라면, 공公이 행하신 바는 반드시 장차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세속보다 크게 뛰어나서 두소斗筲와 천유穿窬하는 무리들로 하여금 심담心膽이 파열되게 하였을 것이니, 어찌 다만 이와 같을 뿐이었겠는가?
처음 내가 소주蘇州의 호구사虎丘寺를 지나다가 공公의 화상畫像을 보고 유풍遺風과 여열餘烈을 사모하여 공公을 위해 채찍을 잡고 말을 몰아 경의를 표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하였는데, 그 후 서주徐州를 맡음에 공公의 증손 분汾이 연주兖州의 지사知事가 되어 공公의 묘비문墓碑文을 나에게 보여주므로, 이에 뒤따라 찬贊을 지어서 그의 가전家傳에 부친다.
옛날 성현聖賢들은 자신을 알아주지 못할까 근심하였는데, 공公은 태종太宗을 만났으니 진실로 좋은 시기였네.
황제가 공公을 등용하고자 하였으나, 공公은 조금도 스스로를 굽히지 않았네.
세 번 궁벽한 산山으로 쫓겨나서 죽음에 이르렀으나 유감이 없었으니, 함평咸平 연간 이래로 홀로 명신名臣이 되었네.
한때에 굽혔고 만세萬世에 펼쳤으니, 분분紛紛한 비부鄙夫들도 공公의 화상畫像에 절한다네.
비부鄙夫들의 이마에 땀이 나니, 공公이 비부鄙夫들을 땀나게 하여 그치지 못하게 하네.
내 공公을 사랑해도 다시 세상에 나오게 할 수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