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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3)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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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8. 초어론楚語論에 대한 속편續篇
辨而正이라
분명하면서도 바르다.
러니 有疾 召其宗老而屬之曰 祭我 必以芰하라
굴도屈到가 세모난 마름을 좋아하였는데 병이 심해지자, 그 종로宗老(가로家老)를 불러서 부탁하기를 “내가 죽거든 나를 제사할 적에 반드시 세모난 마름을 쓰라.”고 하였다.
한대 君子曰 (不)違而道라하니라
그가 죽은 지 기년期年이 되어 소상小祥에 제사할 적에 종로宗老가 장차 세모난 마름을 올리려고 하자, 굴건屈建이 이것을 제거하라고 명하였는데, 군자君子가 말하기를 “아버지의 명령을 어겼으나 에 맞는다.”라고 하였다.
唐柳宗元 非之曰 屈子以禮之末 忍絶其父將死之言이로다
그런데 나라의 유종원柳宗元은 이것을 비판하기를 “굴자屈子(굴건屈建)가 의 지엽적인 것을 가지고 아버지가 장차 죽으려 할 적에 내린 유언을 차마 끊어버렸도다.
하니 子木去芰 安得爲道리오하니라
에는 ‘재계齋戒하는 날에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바를 생각하고 기호하던 바를 생각한다.’는 내용이 있으니, 자목子木(굴건屈建)이 세모난 마름을 제사상에서 제거한 것이 어찌 자식의 도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甚矣
심하다!
柳子之陋也
유자柳子(유종원柳宗元)의 고루함이여.
子木 楚卿之賢者也 夫豈不知爲人子之道 事死如事生이리오
자목子木나라의 어진 이었는데, 그가 어찌 자식 된 도리에 죽은 분(아버지)을 섬기기를 살아 계신 분을 섬기는 것과 같이 해야 함을 몰랐겠는가?
況於將死丁寧之言 棄而不用하니 人情之所忍乎
더구나 자기 아버지가 장차 죽을 적에 간곡하게 당부한 말씀을 버리고 따르지 않았으니, 이것은 인정에 차마 못하는 바이다.
必有大不忍於此者하야 而奪其情也리라
이는 반드시 여기에 차마 할 수 없는 것이 크게 있어서 그 정을 빼앗았던 것이다.
夫死生之際 聖人嚴之하야 하며 하야도 不敢不勉하니 其於死生之變 亦重矣
사람이 죽고 사는 즈음은 성인聖人이 매우 엄격하게 여겨서 노침路寢에서 죽되 부인婦人의 손에서는 죽지 않으며, 갓끈을 매고 수족을 열어 보이는 등의 작은 일에 이르러서도 감히 태만하게 하지 못하였으니, 그 죽고 사는 변고에 있어서 또한 중한 것이다.
父子平日之言 可以恩掩義어니와 至於死生至嚴之際하야는 豈容以私害公乎
부자간에 평소의 말은 은혜로써 공의公義를 가릴 수 있으나, 죽고 사는 지극히 엄격한 즈음에 이르러서는 어찌 사사로운 정을 가지고 공의公義를 해칠 수 있겠는가?
증자曾子가 병환이 있자 “군자君子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라고 말씀하셨고, 맹희자孟僖子가 죽을 적에 그 아들들로 하여금 중니仲尼에게서 를 배우게 하였고, 관중管仲이 병이 위독하자 위공威公(환공桓公)에게 권하여 세 명의 소인을 제거하게 하였다.
夫數君子之言 或主社稷하고 或勤於道德하고 或訓其子孫하야 雖所趣不同이나 然皆篤於大義하야 不私其躬也如此하니라
이 몇 군자君子들의 말씀은 혹은 사직社稷을 위주하고 혹은 도덕道德을 힘쓰고 혹은 그 자손子孫들을 훈계하여 비록 나아간 바가 똑같지 않았으나, 모두 대의大義에 돈독하여 자기의 몸을 사사로이 돌보지 않음이 이와 같았다.
今赫赫楚國 之賢 聞於諸侯어늘 身爲正卿하야 死不在民하고 而口腹是憂하면 其爲陋亦甚矣
이제 혁혁한 나라에 약오씨若敖氏의 어짊이 제후諸侯들에게 알려져 있는데, 자신이 정경正卿이 되어서 죽을 적에 관심이 백성들에게 있지 않고 입과 배를 걱정하였다면, 그 누추함이 매우 심한 것이다.
使子木行之하야 國人誦之하고 太史書之하면 天下後世 不知夫子之賢하고 而唯陋是聞하리니 子木 其忍爲此乎
만일 자목子木이 자기 아버지의 명령을 실행하여 국민들이 이것을 외고 태사太史가 이것을 역사책에 썼다면, 천하天下와 후세 사람들이 부자夫子(굴도屈到)의 어짊은 알지 못하고 오직 누추한 것만 알려졌을 것이니, 자목子木이 어찌 차마 이런 것을 그대로 둘 수 있겠는가?
曰 是 必有大不忍者而奪其情也라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이는 반드시 차마 하지 못함이 크게 있어서 그 정을 빼앗았던 것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나 禮之所謂思其所樂, 思其所嗜 此言人子追思之道也
그러나 《예기禮記》에 이른바 “부모님의 좋아하시던 바를 생각하고 기호하시던 바를 생각한다.”는 것은, 인자人子가 부모를 추후에 생각하는 도리를 말한 것이다.
하시고 皆人子之情 自然也 豈待父母之命耶리오
증석曾晳양조羊棗를 좋아하였는데, 증자曾子가 차마 양조羊棗를 먹지 못하셨고, 아버지가 죽으면 아버지의 책을 읽지 못하고 어머니가 죽으면 어머니의 기물을 잡지 못하는 것은 모두 인자人子의 정에 자연스러운 것이니, 어찌 부모의 명령을 기다리겠는가?
今薦芰之事 若出於子 則可어니와 自其父命이면 則爲陋耳
지금 세모난 마름을 올리는 일이 만일 아들에게서 나왔다면 괜찮지만, 아버지의 유명遺命에서 나왔다면 누추함이 되는 것이다.
豈可以飮食之故 而成父莫大之陋乎
어찌 마시고 먹는 음식 때문에 아버지의 막대한 누추함을 이룰 수 있겠는가?
증자曾子가 병환이 위독할 적에 증원曾元이 대자리를 바꾸는 것을 어렵게 여기자, 증자曾子가 말씀하시기를 “군자君子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덕으로써 하고, 소인小人들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고식姑息으로써 한다.”라고 하셨다.
若以柳子之言爲然이면 曾元 爲孝子 而童子 顧禮之末하야 易簀於病革之中이니 爲不仁之甚也니라
만약 유자柳子의 말을 옳다고 한다면 증원曾元효자孝子가 되고, 동자童子의 지엽적인 것을 돌아보아서 병환이 심한 가운데 대자리를 바꾸게 한 것이니, 심한 불인不仁이 되는 것이다.
중항언中行偃이 죽었을 적에 눈을 뜨고 있어서 반함飯含할 수가 없었다.
范宣子盟而撫之曰 事吳 敢不如事主리잇고호되 猶視러니 欒懷子曰 主苟終 所不嗣事於齊者 有如河라한대 乃瞑하니라
범선자范宣子가 맹세하면서 시신을 어루만지고 말하기를 “아들 를 섬기기를 감히 (중항언中行偃)를 섬기는 것과 같이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으나 그대로 눈을 뜨고 있었는데, 난회자欒懷子가 말하기를 “가 만일 별세하신 뒤에 제가 맹세하건대 나라에 대한 토벌을 계속하지 않는다면 하수河水이 벌을 내릴 것입니다.”라고 하자, 그제야 눈을 감았다.
嗚呼
아!
范宣子 知事吳爲忠於主하고 而不知報齊以成夫子憂國之美 其爲忠則大矣하니라
범선자范宣子는 아들 를 섬기는 것이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이라는 것만 알았고, 나라에 보복하여 대부大夫가 나라를 걱정하는 아름다움을 이루는 것이 큰 충성이 됨을 알지 못하였다.
옛사람이 사랑하는 것과 미워하는 것을 가지고 아름다운 (고통이 없는 )과 약석藥石에 비유하여 말하기를 “약석藥石은 오히려 나를 살게 할 수 있지만, 병의 아름다운 것은 그 해독害毒이 더욱 많다.”라고 하였으니,
由是觀之하면 柳子之愛屈到 是疢之美
이것을 가지고 관찰하면 유자柳子굴도屈到를 사랑한 것은 병을 아름답게 여긴 것이요,
子木之違父命 藥石也哉인저
자목子木이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것은 약석藥石이 되는 것이다.
唐荊川曰
당형천唐荊川이 말하였다.
此文 逐段關鎖하니하니라
“이 글은 단락마다 뜻을 거두어 맺었으니, 한유韓愈의 〈휘변諱辨〉의 체재와 같다.”
역주
역주1 續楚語論 : 이 글은 東坡가 젊은 시절에 지은 작품이다. 本集에는 이 글의 제목이 〈屈到嗜芰論〉으로 되어 있다. 이 글은 柳宗元의 〈非國語下 嗜芰〉에 屈建을 비판한 내용에 대해 반박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제목에 續이라고 붙인 것이다.
이 내용은 《國語》 〈楚語〉에 “屈到가 세모난 마름을 좋아하였는데 병이 심해지자, 그 宗老(家老)를 불러서 부탁하기를 ‘나를 제사할 적에 반드시 세모난 마름을 올리도록 하라.’고 하였다.
그가 죽은 지 期年이 되어 小祥에 제사할 적에 宗老가 장차 세모난 마름을 올리려고 하자, 屈建이 이것을 제거하라고 명하니, 宗老가 말하기를 ‘夫子께서 부탁하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子木(屈建)이 말하기를 ‘그렇지 않습니다. 夫子께서 楚나라의 정치를 받들어 다스리시면서 그 형법이 백성들의 마음에 심어져 있고, 또 왕실의 문서 창고에도 보관되어 있습니다. 위로는 선왕의 훌륭한 덕과 비교될 수 있고 아래로는 후세에 교훈이 될 수 있어, 초나라뿐만 아니라 제후국들에서도 기리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제사에 관한 法典에 이르기를 「나라의 군주는 소를 제사에 올리고, 대부는 羊을 올리고, 士는 돼지와 개를 제사 음식으로 차리고, 庶人들은 구운 생선을 올린다. 그리고 마른 음식을 올리는 대나무 제기(籩)와 진음식을 올리는 나무 제기(豆), 脯와 醢는 상하가 함께 사용한다.」라고 하여, 진기하거나 기이한 음식은 올리지 않고, 여러 가지 음식을 늘어놓지도 않습니다.
夫子께서는 사사로운 욕심으로 나라에서 제정한 법들을 범하고자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라고 하고, 마침내 마름을 사용하지 않았다.[屈到嗜芰 有疾 召其宗老而屬之曰 祭我必以芰 及祥 宗老將薦芰 屈建命去之 宗老曰 夫子屬之 子木曰 不然 夫子承楚國之政 其法 刑在民心 而藏在王府 上之可以比先王 下之可以訓後世 雖微楚國 諸侯莫不譽 其祭典有之 曰 國君有牛享 大夫有羊饋 士有豚犬之奠 庶人有魚炙之薦 籩豆脯醢 則上下共之 不羞珍異 不陳庶侈 夫子不以其私 欲干國之典 遂不用]”라고 보인다.
이에 대해 柳宗元은 〈非國語下 嗜芰〉에서 “집안의 도리는 은혜가 義를 가린다. 부자지간은 은혜의 지극한 것이니, 마름을 제사에 올리는 것이 義에 허물이 되지 않는데, 屈子(屈建)가 禮의 지엽적인 것을 가지고 아버지가 장차 죽으려 할 적에 내린 유언을 차마 끊어버렸으니, 나는 그를 감히 어질다고 여길 수 없다.
제사에 羊을 올릴 적에 대나무 제기(籩)에 마름을 담아 올리는 것은 진실로 잘못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禮에는 ‘齋戒하는 날에 부모님이 좋아하시던 바를 생각하고 기호하시던 바를 생각한다.’는 내용이 있으니, 屈建은 일찍이 부모님이 기호하시던 바를 생각함이 없었는가?
또 이르기를 ‘아버지의 명령을 어겼으나 道理에 맞는다.’라고 하나, 나는 道理를 어겼다고 여긴다.[門內之理 恩掩義 父子 恩之至也 而芰之薦 不爲愆義 屈子以禮之末 忍絶其父將死之言 吾未敢賢乎爾也 苟薦其羊饋 而進芰於籩 是故不爲非 禮之言齋也 曰思其所嗜 屈建曾無思乎 且曰違而道 吾以爲逆也]”라고 屈建을 비판하였는데, 東坡가 다시 이것을 반박한 것이다.
역주2 屈到嗜芰 : 屈到는 춘추시대 楚나라의 卿으로 屈蕩의 아들인데, 字가 子石이며 국정을 담당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다. 芰는 수초의 일종인데 열매는 삼각형으로 식용된다.
역주3 及祥……屈建命去之 : 祥은 3年喪에 있어 朞年에 올리는 小祥과 2년에 올리는 大祥을 통칭하는데, 여기서는 첫 번째로 맞이하는 小祥을 뜻하는 듯하다. 宗老는 같은 宗族으로서 家臣의 우두머리인 家老가 된 자를 이른다. 屈建은 屈到의 아들로 字가 子木이다. 宗老가 屈到의 유언에 따라 小祥의 제사상에 세모난 마름을 올리려 하였는데, 喪主인 屈建이 이를 치우도록 명한 것이다.
역주4 禮有齋之日……思其所嗜 : 齋는 제사를 지내기 전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不淨한 일을 멀리하여 경건히 지내는 것을 이른다. 보통 큰 제사에는 散齊 7일과 致齊 3일을 지내는데, 散齊 때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술과 음악을 멀리하고, 상을 당한 자와 형벌을 받은 자를 멀리하는 등 몸을 경건히 하며, 致齊 때에는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재실에 들어가 제사 지낼 분의 생전의 일을 생각하면서 오직 제사에 정신을 집중한다.
《禮記》 〈祭義〉에 “안에서 致齊를 하고 밖에서 散齊를 하여, 재계하는 날에 제사하는 분의 거처하시던 것을 생각하며, 웃고 말씀하시던 것을 생각하며, 뜻하시던 것을 생각하며, 즐거워하시던 것을 생각하며, 嗜好하시던 것을 생각해서 재계한 지 3일이 되면, 비로소 위하여 齋戒하는 분을 볼 수 있는 것이다.[致齊於內 散齊於外 齊之日 思其居處 思其笑語 思其志意 思其所樂 思其所嗜 齊三日 乃見其所爲齊者]”라고 보인다.
역주5 薨於路寢 不死於婦人之手 : 薨은 諸侯의 죽음을 이르며, 路寢은 천자나 제후가 국정을 다스리는 正寖을 이른다. ‘不死於婦人之手’는 죽음을 엄격하게 여기고 男女有別을 끝까지 지켜서 男子는 부인의 손(품)에서 운명하지 않고 女子는 男子의 손에서 운명하지 않는 것이다.
역주6 至於結冠纓 啓手足之末 : ‘結冠纓’은 죽을 적에 갓끈을 고쳐 매고 죽는 것이다. 衛나라의 蒯聵(괴외)가 자신의 아들 出公(衛輒)에게서 임금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내란을 일으키자, 당시 衛나라에서 벼슬을 하고 있던 孔子의 제자 子路가 적군의 창에 갓끈이 끊어지자, “君子는 죽어도 관을 벗을 수 없다.”라고 하고, 갓끈을 고쳐 매고 죽은 일을 이른다.
‘啓手足’은 임종에 앞서 제자들에게 이불을 헤치고 손과 발을 보여주는 것으로, 曾子가 병환이 있으시자, 門下의 弟子들을 불러 이불을 헤치고 자신의 발과 손을 보인 일을 이른다.
이 내용은 《論語》 〈泰伯〉에 보이는데, 朱子의 集註에 “曾子는 평소에 ‘신체는 父母에게 받았으니, 감히 훼상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때에 弟子들로 하여금 이불을 헤쳐 〈하나도 손상됨이 없는 자신의 손과 발을〉 보게 한 것이다.[曾子平日 以爲身體受於父母 不敢毁傷 故於此 使弟子開其衾而視之]”라고 하였다.
역주7 曾子有疾 稱君子之所貴乎道者三 : 曾子는 孔子의 제자인 曾參으로 자는 子輿이다.
《論語》 〈泰伯〉에 “曾子가 병환이 있자, 孟敬子가 問病을 갔는데, 曾子가 말씀하였다. ‘새가 장차 죽을 적에는 그 울음소리가 애처롭고, 사람이 장차 죽을 적에는 그 말이 착한 법이다. 君子가 귀중히 여기는 道가 세 가지이니, 용모를 움직일 적에는 거칠고 태만한 모습을 멀리하며, 얼굴빛을 바룰 때에는 誠實함에 가깝게 하며, 말소리를 낼 때에는 비루함과 도리에 위배되는 것을 멀리하여야 한다. 籩豆의 소소한 일은 有司(담당자)가 있는 것이다.’[曾子有疾 孟敬子問之 曾子言曰 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 君子所貴乎道者三 動容貌 斯遠暴慢矣 正顔色 斯近信矣 出辭氣 斯遠鄙倍矣 籩豆之事則有司存]”라고 보인다.
孟敬子는 魯나라 大夫인 仲孫氏(孟孫氏)로 이름은 捷이고 敬子는 그의 시호이다. 籩은 대나무 그릇이고 豆는 나무 그릇인데, 모두 禮를 행할 적에 사용하는 기물이다.
역주8 孟僖子卒……學禮於仲尼 : 孟僖子는 춘추시대 魯나라의 卿으로 이름은 貜이고 僖는 諡號이며, 三桓 중의 하나인 孟孫氏의 종주이다. 아들은 南宮敬叔(南宮适)과 孟懿子(孟彘)를 이르는데, 이들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孔子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仲尼는 孔子의 字이다.
《春秋左氏傳》 昭公 7년에 “孟僖子가 말하기를 ‘禮는 사람이 되는 근본이니, 禮가 없으면 立身할 수가 없다. 내 듣건대 장차 顯達할 자로 孔丘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聖人의 후예로 그 가문이 宋나라에서 멸망하였다고 한다. ……
臧孫紇의 말에 「聖人의 후예로서 밝은 덕을 가진 사람이 君主가 되어 국정을 담당하지 못하면 그 후손 가운데 반드시 達人이 나온다.」라고 하였으니, 지금 그 達人이 아마도 孔丘인 듯하다.
내가 만약 수명을 다하고 죽거든 반드시 說(南宮敬叔)과 何忌(孟懿子)를 夫子에게 맡겨 夫子를 師事하여 禮를 배워 그 지위를 安固하게 하라.’고 하였다.”라고 보인다. 그러므로 南宮敬叔과 孟懿子가 仲尼를 師事한 것이다.[禮人之幹也 無禮無以立 吾聞將有達者曰孔丘 聖人之後也 而滅於宋……臧孫紇有言曰 聖人有明德者 若不當世 其後必有達人 今其將在孔丘乎 我若獲沒 必屬說與何忌於夫子 使事之而學禮焉 以定其位 故孟懿子與南宮敬叔師事仲尼]”라고 보인다.
역주9 管仲病……去三竪 : 管仲은 춘추시대 齊나라의 名相으로 이름이 夷吾이며, 仲은 그의 字인데, 평생 字로 행세하였다. 桓公을 도와 霸業을 이루고 仲父로 일컬어졌다. 威公은 桓公으로 춘추시대 五霸의 우두머리인데 이름이 小白이다.
三竪는 桓公이 총애한 內侍들로 易牙와 竪刁, 開方을 이른다. 管仲이 생전에 이들을 제거하지 못하고, 죽음에 임박하여 桓公에게 이들의 행동이 人情에 가깝지 않다는 이유로 멀리할 것을 간곡히 청하였으나, 管仲이 죽은 다음 桓公이 이들을 중용하였다가 결국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史記 齊太公世家》
역주10 若敖氏 : 楚나라의 명문대가 중의 하나인 屈氏는 원래 若敖氏에서 갈려 나왔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11 曾晳嗜羊棗 而曾子不忍食 : 曾晳은 춘추시대 魯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點이고 晳은 그의 字이며 曾參의 아버지로 孔子의 제자이다.
羊棗는 《孟子集註》에 “열매가 작고 색깔이 검으며 둥근 과일로 羊矢棗라고도 한다.” 하였고, 《爾雅翼》에는 “늦가을에 열매가 맺는데 붉은색이며 이를 말리면 검붉은 색으로 포도와 비슷하니, 지금은 丁香柹, 혹은 牛乳柹라고 한다.” 하였다.
《孟子》 〈盡心 下〉에 “曾晳이 羊棗를 좋아했었는데, 曾晳이 죽자 曾子께서 차마 羊棗를 먹지 못하셨다.[曾晳 嗜羊棗 而曾子不忍食羊棗]”라고 보이는데, 朱子의 集註에 “曾子는 아버지가 羊棗를 좋아하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별세한 뒤에 먹을 때마다 반드시 어버이가 생각났으므로 차마 먹지 못하신 것이다.” 하였다.
역주12 父沒而不能讀父之書 母沒而不能執母之器 : 《禮記》 〈玉藻〉에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버지의 서책을 차마 읽지 못함은 아버지의 손때가 남아 있기 때문이며,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잔과 그릇을 사용하여 차마 마시지 못함은 어머니의 입의 기운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父沒而不能讀父之書 手澤存焉爾 母沒而杯圈 不能飮焉 口澤之氣存焉爾]” 한 말을 요약한 것이다.
역주13 曾子寢疾……以姑息 : 曾元은 曾子의 아들이고 細人은 小人과 같은 말이다.
《禮記》 〈檀弓 上〉에 “曾子가 병이 들어 위독하였다. 제자인 樂正子春은 평상 아래에 앉아 있고 아들인 曾元과 曾申은 발끝에 앉아 있었으며, 童子는 귀퉁이에 앉아 촛불을 잡고 있었다.
그런데 童子가 대자리를 가리키며 ‘화려하고도 고우니, 大夫가 사용하는 대자리일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樂正子春이 ‘그만두어라’고 타일렀으나, 曾子는 이 말을 들으시고 ‘아!’ 하고 탄식하였다. 童子가 다시 ‘화려하고 고우니 大夫가 사용하는 대자리일 것입니다.’라고 하자, 曾子가 ‘그러하다. 이는 季孫氏가 준 것인데 내가 바꾸지 못했으니, 曾元은 일어나 대자리를 바꾸어라.’라고 하였으나, 曾元은 ‘夫子의 병환이 심하시어 바꿀 수가 없으니, 다행히 내일 아침이 되거든 공경히 바꾸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曾子는 ‘네가 나를 사랑하는 것이 저 童子만도 못하구나. 君子가 사람을 사랑함은 德으로써 하고 小人이 사람을 사랑함은 당장 편한 姑息으로써 하니, 내 무엇을 바라겠는가. 내 바름을 얻고 죽으면 이뿐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몸을 들어 부축하여 대자리를 바꾸었는데, 대자리로 돌아와 편안해지기도 전에 별세했다.”라고 하였다.
역주14 中行偃死……乃瞑 : 中行偃은 춘추시대 晉나라의 卿으로 성은 荀이고 이름이 偃이며 中行은 관직의 칭호인데 뒤에 氏가 되었다. 含은 珠玉과 米貝 따위를 死者의 입에 넣는 것을 이른다. 范宣子는 晉나라 대부인 士匃이다. 吳는 荀偃의 후계자이고, 欒懷子는 晉나라 대부인 欒盈이고, ‘有如河’는 河水를 두고 맹세한다는 말이다.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襄公 19년에 거의 그대로 보인다.
역주15 古人以愛惡……其毒滋多 : 美疢는 고통이 없는 병으로, 여기서는 상대가 나를 사랑하여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잘못을 지적해주지 않는 것은 내 몸을 망치는 질병과 같다는 의미로 비유한 것이다. 藥石은 藥과 鍼石을 이르는데, 여기서는 상대가 나를 미워하여 항상 나의 잘못을 말하는 것은 나의 병을 치료하는 藥石과 같다는 비유이다.
臧紇은 춘추시대 魯나라의 대부인데, 당시 가장 강성하였던 三桓 중에 孟孫氏(莊子)는 그를 미워하였고, 季孫氏(武子)는 그를 좋아하였다. 孟孫氏가 죽자 臧紇(臧孫紇)이 문상을 가서 곡을 하는데, 매우 슬퍼하고 눈물을 많이 흘렸다.
이에 御者가 “孟孫氏은 당신을 미워하였는데 이처럼 슬퍼하시니, 만일 季孫氏가 죽는다면 슬픔이 어떠하겠습니까?”라고 묻자, 臧紇이 대답하기를 “季孫氏가 나를 좋아하는 것은 나에게 질병과 같고, 孟孫氏가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나에게 藥石과 같다. 고통이 없는 질병이 고통이 있는 藥石만 못하다. 藥石은 오히려 나를 살게 할 수 있지만 고통이 없는 질병은 그 해독이 더욱 많다. 孟孫氏가 죽었으니, 내가 멸망할 날도 멀지 않았다.”라고 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 23년》 그 후 臧孫氏는 과연 季孫氏에 의해 魯나라에서 축출되고 말았다.
역주16 諱辨體 : 〈諱辨〉은 唐나라의 문장가인 韓愈가 지은 작품이다. 詩人 李賀의 아버지의 이름이 晉肅으로 中國音으로 進士와 비슷하였는데, 李賀가 進士試에 급제하자, 일부 선비들이 李賀는 아버지의 이름을 諱해야 하기 때문에 進士試에 응시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므로 韓愈가 〈諱辨〉을 지어 논박하였다. 그런데 이 글은 단락마다 마지막에 의문사를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고 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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