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惟인종仁宗, 英인종宗, 神考三聖眷倚之重하야 不敢以旣老爲辭하고 杖而造朝라가 期年乃求去라
詔曰
하고 하니 태공公自爲謀則善矣
어니와 獨不爲朝廷惜乎
아하시고
蓋復留四年하야 天下無事하고 朝廷奠安이어늘 乃力請而歸하니라
公之在朝也에 거란契丹使야율영창耶律永昌, 유소劉霄來聘이라
軾이 奉詔관반館客하야 與使者入覲할새 望見노국공公殿門外하고 却立改容하야 曰 此노국공潞노국공公也耶아
所謂以德服人者라하고 問其年하고 曰 何壯也오하다
其綜理庶務하고 酬酢事物은 雖精練少年이라도 有不如요 貫穿古今하고 洽聞彊記는 雖專門名家라도 有不逮라하니
公旣歸낙양洛에 서강西羌首領有온계심溫溪心者 請於邊吏하야 願獻良馬於公이어늘
邊吏以聞한대 詔聽之하니 公이 心服天下하야 至于四夷라
若夫非德之威는 雖猛而人不畏하고 非德之明은 雖察而人不服이라
公이 修德於几席之上하야 而其威折衝於萬里之外하고 退居於家에 而人望之 如在廊廟하니 可不謂德威乎아
이 爲
하양태수河陽하양태수守어늘 公將往臨之
한대 吏民喜甚
하야 히 歡呼之聲
이 相屬
이라
급及이 作堂以待公하고 而請銘於軾이어늘 乃榜之曰 德威라하고 而銘之曰
서문의 뜻이 모두 넓고 크니, 이른바 문로공文潞公(문언박文彦博)을 위해서 지었다는 것이다.
원우元祐 초년에 황제께서 조명詔命을 내려 태사 노공太師 潞公을 낙양洛陽에서 불러 나오게 하여 막중한 일을 명하셨다.
공公은 인종仁宗․영종英宗․신고神考(신종神宗) 세 성군聖君께서 깊이 아끼고 중히 여기신 뜻을 생각하여, 감히 늙었다고 사양하지 못하고, 지팡이를 짚고 조정에 나아갔다가 1년 만에야 비로소 떠나갈 것을 청하였다.
황제께서 조명詔命을 내려 말씀하시기를 “옛날 서백西伯이 노인老人을 잘 봉양함에 태공太公이 스스로 왔고, 노 목공魯 穆公은 자사子思 곁에 자신의 성의를 말해줄 사람이 없으면 장자長者가 떠나갈까 염려하였으니, 공公이 스스로 자신을 위해서 도모하는 것은 좋지만, 어찌 조정을 위하여 떠나가는 것을 애석해하지 않는가?”라고 하셨다.
또 말씀하시기를 “당 태종唐 太宗은 전쟁하는 일을 가지고도 이미 늙은 이정李靖을 기용하였는데,
목종穆宗과 문종文宗은 편안한 즈음에 아직 병들지 않은 배도裴度를 등용하지 못했으니,
나라가 다스려지고 혼란함의 효험을 여기에서 볼 수 있다.”라고 하셨다.
공公은 이 조명詔命을 읽고는 두려워하여 감히 떠나갈 것을 말씀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다시 4년을 머물러서 천하에 일이 없고 조정이 편안해지자, 비로소 강력히 물러갈 것을 청하여 돌아갔다.
공公이 조정에 있을 적에 거란契丹의 사신使臣인 야율영창耶律永昌과 유소劉霄가 빙문聘問을 왔다.
내가 명령을 받들고 관반館伴(접반사接伴使)이 되어서 사자使者와 함께 들어가 공公을 뵐 적에 사자使者는 전문殿門 밖에서 공公을 바라보고는 멈춰 서서 옷매무새를 고치고 말하기를 “이 분이 노국공潞國公인가?
이른바 덕德으로써 사람을 복종시킨다는 분이다.”라고 하였고, 공公의 나이를 묻고는 “어쩌면 이리도 건강한가?”라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사자使者는 공公의 용모만 보았고 아직 말씀을 듣지 못하였다.
공公께서 여러 가지 사무를 종합하여 다스리고 사물에 대처하는 것은 비록 정련된 젊은이라도 그만 못한 점이 있고, 고금古今을 꿰뚫어 알며 박학다식하고 기억을 잘하는 것은 비록 한 분야에 전문가라고 이름난 자라도 공公에게 미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사자使者가 공수拱手하고 말하기를 “천하天下의 비범한 인물이다.”라고 하였다.
공公이 이미 낙양洛陽으로 돌아가자, 서강西羌의 수령首領인 온계심溫溪心이 변방 관리에게 청하여 공公에게 좋은 말을 바치고자 하였다.
변방 관리가 보고하자, 성상聖上께서는 명하여 그의 소청을 따르게 하셨으니, 그렇다면 공公이 천하 사람들을 심복시켜서 사방 오랑캐에게까지 이른 것이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덕德으로 위엄을 보이자 두려워하였고 덕德으로 밝히자 밝아졌다.”라고 하였으니, 세상에서 백이伯夷의 법을 잘 지키고 고요皐陶의 법을 잘 따르는 이유는바로 덕德 때문이다.
덕德이 아닌 위엄은 아무리 사나워도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덕德이 아닌 밝음은 아무리 살펴도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는다.
공公이 궤석几席의 위에서 덕德을 닦아 그 위엄이 만 리 밖에서 적의 충돌을 꺾고, 물러나 집에 거처하는데도 사람들이 공公을 조정에 있는 것처럼 바라보고 있으니, 덕德으로 위엄을 보이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공公의 아들 급及이 하양태수河陽太守가 되었는데, 공公이 장차 그리로 가려 하자, 관리와 백성들이 몹시 기뻐하여 낙양洛陽으로부터 삼성三城에 이르기까지 환호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급及이 당堂을 짓고 공公을 기다리면서 나에게 명문銘文을 청하므로 마침내 ‘덕위德威’라 써 붙이고,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덕德으로 위엄을 보이자 두려워하고 덕德으로 밝히자 밝아지니
태사 노공太師 潞公이여 참으로 크게 이루었도다.
공公이 낙사洛師(낙양洛陽)에 계시니 숭산崧山과 낙수洛水가 빛나고
멍에하고 삼성三城으로 가시니 황하黃河에 파도가 일지 않도다.
원컨대 공公은 백 년 장수를 누리고 자손子孫들은 천 명 억 명이 되어서
황하黃河와 낙수洛水에 집을 지어 날마다 공公의 안색顔色을 볼지어다.
서쪽 오랑캐가 와서 조회하여 궁궐 문에서 공경하고 조심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