而
이라하고 이라하니 儒者之言兵
에 未嘗不以藉其口矣
니
凡形勢之說이 有二하니 有以人爲形勢者하니 三代之封諸侯 是也라
歡然而合하고 合而不去하면 則爲君臣하니 其善을 可得而賞하고 其惡을 可得而罰하며 其穀米를 可得而食하고 其功力을 可得而役使하니 當此之時하야 君臣之勢甚固러니
及其一旦潰然而去하고 去而不返하야는 則爲寇讐하야 彊者起而見攻하고 智者起而見謀하야
彷徨四[回]顧로되 而不知其所恃하니 當是之時하야 君臣之勢甚危라
故로 大封諸侯하야 錯置親賢하야 以示天下形勢하니
然
이나 周之衰也
에 諸侯肆行
이로되 而莫之禁
하야 하니 是則德衰而人之形勢 不足以救也
니라
較之以富
하고 搏之以力
이로되 而猶不服
이어든 又以
하고 然後
에 僅得之
하니 今之臣服而朝貢
은 皆昔之暴骨於原野之子孫也
니
漢之取天下는 雖不若秦之暴나 然要之컨대 皆不本於仁義也라
當此之時하야 不大封諸侯면 則無以答功臣之望이요 諸侯大而京師不安이면 則其勢不得不以關中之固而臨之니
此雖堯, 舜, 湯, 武라도 亦不能使其德一日而信於天下라
然이나 及其衰也엔 皆以大臣專命하야 危自內起하야 而關中之形勢 曾不及施하니 此亦德衰而地之形勢不能救也니라
夫三代, 秦, 漢之君이 慮其後世하야 而爲之備患이 不可謂不至矣라
然이나 至其亡也하야는 常出於其所不慮하니 此豈形勢不如德之明效歟아
人存則德存이니 德存이면 則無諸侯而安이요 無障塞而固矣리라
당시 과시當時 科試에 응應함에 논論이 마땅히 이와 같아야 할 것이다.
전傳(옛 책)에 “천시天時가 지리地利만 못하고, 지리地利가 인화人和만 못하다.”는 내용이 있으니, 이는 형세形勢가 덕德만 못함을 말한 것이다.
오기吳起 또한 말하기를 “나라를 지키는 것은 덕德에 달려 있고, 강산의 험고함에 달려 있지 않다.”라고 하였고, 태사공太史公은 말하기를 “형세形勢가 비록 강하나 요컨대 인의仁義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라고 하였으니, 유자儒者들이 병사兵事를 말할 적에 일찍이 이것을 가지고 말하지 않은 적이 없다.
나는 청컨대 그 남은 말을 주워 모아서 자세히 논해 보겠다.
무릇 형세形勢란 말은 두 가지가 있는데, 사람을 가지고 형세形勢를 삼는 경우가 있으니, 삼대三代에 제후諸侯를 봉해준 것이 이것이다.
천자天子가 천하의 인심을 규합하는 것은 지극히 미미하고 또 위태롭다.
즐거워하여 서로 합하고 합하여 떠나가지 않으면 군신간君臣間이 되니, 선善한 자에게 상賞을 내릴 수 있고 악惡한 자에게 벌罰을 내릴 수 있으며, 신하는 군주의 곡식과 쌀을 녹봉으로 먹을 수 있고 군주는 신하의 공력功力을 부릴 수 있으니, 이때를 당해서는 군신간君臣間의 형세形勢가 매우 견고하다.
그러다가 하루아침에 결연히 떠나가고 떠나가서 돌아오지 않게 되면 원수지간이 되어서, 강한 자는 일어나 군주에게 공격을 가하고 지혜로운 자는 일어나 군주를 도모한다.
그리하여 군주가 방황하여 이리저리 돌아보아도 믿을 곳을 알지 못하니, 이때를 당해서는 군신간의 형세가 매우 위태롭다.
선왕先王은 그 견고함이 믿을 것이 못 되고 이 위태로움을 소홀히 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 때문에 제후諸侯들을 크게 봉하여 친척과 어진 자를 섞어 배치해서 천하天下에게 형세形勢를 보였다.
유송劉頌의 이른바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자는 형세形勢에 맡기고 사람에게 맡기지 않으니, 군현郡縣을 두어 살피는 것은 작은 정사는 잘 다스려지나 큰 형세는 위태롭고, 제후諸侯를 세워 나라를 다스리게 하면 가까이는 어기는 자가 많으나 장구히 생각해보면 견고하다.”는 것이니, 이것은 사람을 가지고 형세形勢를 삼은 경우이다.
그러나 주周나라가 쇠약해지자, 제후諸侯들이 제멋대로 행동하였으나 이것을 금지하지 못하여 평왕平王 이후로는 망한 것과 거의 차이가 없었으니, 이는 덕德이 쇠衰하면 사람의 형세形勢가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다.
땅(지형)을 가지고 형세를 삼은 경우가 있으니, 진秦나라와 한漢나라가 도읍都邑을 세운 것이 이것이다.
진秦나라가 천하天下를 점령한 것은 천하天下 사람들이 심복하여 신하 노릇한 것이 아니다.
부유함을 가지고 서로 겨루고 힘을 가지고 서로 공격하였는데도 상대방이 복종하지 않으면, 또 속임수로 군주를 가두고 장수를 사로잡은 뒤에야 겨우 천하를 얻었으니, 지금 신하로 복종하여 조공朝貢을 바치는 자들은 모두 예전에 원야原野에서 싸우다가 해골을 드러냈던 자들의 자손子孫이다.
그렇다면 내 어떻게 태연히 천하를 장구하게 소유할 수 있겠는가?
한漢나라가 천하天下를 점령한 것은 비록 진秦나라처럼 포악하지는 않았으나, 요컨대 진秦나라와 한漢나라가 천하를 얻은 것은 모두 인의仁義에 근본하지 않았다.
이때를 당하여 제후諸侯들을 크게 봉해주지 않으면 공신功臣의 기대에 보답할 수 없고, 제후국이 커지면 천자국天子國의 경사京師가 불안하게 되니, 그 형세形勢가 험고險固한 관중關中의 지형을 가지고 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는 비록 요제堯帝와 순제舜帝,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이라도 자기 덕德을 하루아침에 천하天下에 펼칠 수가 없는 것이다.
순경荀卿의 이른바 “세 가지를 합한다.”는 것이니, 이는 땅을 가지고 형세形勢를 삼은 경우이다.
그러나 한漢나라와 진秦나라가 쇠약해짐에 미쳐서는 모두 대신大臣들이 자기 마음대로 명령命令하여, 위험이 안으로부터 시작되어 관중關中의 형세形勢가 한 번도 멀리 미치지 못하였으니, 이 또한 덕德이 쇠하면 땅의 형세形勢가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夏․상商․주周의 삼대三代와 진秦․한漢의 군주들이 후세를 염려하여 환란을 대비한 것이 지극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망할 때에 이르러서는 항상 염려하지 않은 데에서 환란이 나왔으니, 이 어찌 형세形勢가 덕德만 못한 분명한 증험이 아니겠는가?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신묘하게 하여 밝히는 것은 그 사람에게 달려 있다.”라고 하였다.
사람이 있으면 덕德이 보존되니, 덕德이 보존되면 제후諸侯가 없어도 국가가 편안하고, 보장保障과 요새要塞가 없어도 국가가 견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