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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5)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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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0. 방학정放鶴亭에 대한 기문記文
疎曠爽然이나 特少沈深之思하니라
활달하고 상쾌하나 다만 침착하고 심오한 생각이 부족하다.
熙寧十年秋 彭城大水하야 之草堂 水及其半扉러니 明年春 水落이어늘 遷於故居之東, 東山之麓할새 升高而望하야 得異境焉하고 作亭於其上하니라
희령熙寧 10년(1077) 가을에 팽성彭城에 큰 홍수가 나서 운룡산인 장군雲龍山人 張君(장사후張師厚)의 초당草堂에 물이 문의 절반까지 차올랐는데, 다음 해 봄에 수위가 떨어지자 옛날 살던 곳의 동쪽인 동산東山의 기슭으로 옮길 적에, 높은 곳에 올라가 바라보아 기이한 경치를 얻고 그 위에 정자를 지었다.
彭城之山 岡嶺四合하야 隱然如大環이요 獨缺其西十二하니 而山人之亭 適當其缺이라
팽성彭城은 산마루와 고개가 사방에 둘러 있어서 그윽하여 큰 고리와 같고, 유독 그 서쪽 10분의 2쯤 되는 곳이 트여 있는데, 산인山人의 정자가 마침 그 트인 곳을 마주하고 있다.
春夏之交 草木際天하고 秋冬雪月 千里一色하야 風雨晦明之間 俯仰百變이라
봄과 여름이 교차할 적에는 풀과 나무가 하늘 끝까지 닿고 가을과 겨울에 밝은 달이 천 리를 한결같이 비추어서,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날씨가 흐리고 맑은 사이에 고개를 한 번 들어 바라보고 고개를 한 번 숙여 굽어보는 동안에도 변화가 무상하였다.
山人 有二鶴하니 甚馴而善飛
산인山人에게는 두 마리의 이 있었는데, 잘 길들여지고 날기를 잘하였다.
旦則望西山之缺而放焉하야 縱其所如하면 或立於陂田하고 或翔於雲表라가 莫(暮)則傃東山而歸
아침에 서산西山의 트인 곳을 바라보면서 학을 놓아주고 가는 대로 내버려두면, 혹은 논두렁에 서 있고 혹은 하늘 높이 구름 위로 날아올랐다가 저녁이면 동산東山을 향하여 돌아오곤 하였다.
名之曰放鶴亭이라하니라
그러므로 정자의 이름을 ‘방학정放鶴亭’이라고 하였다.
郡守蘇軾 時從賓客僚吏하야 往見山人하고 飮酒於斯亭而樂之러니 揖山人而告之曰
군수郡守인 내(소식蘇軾)가 때로 빈객賓客과 관리들을 대동하고 가서 산인山人을 만나 이 정자에서 술을 마시며 즐기곤 하였는데, 산인山人에게 읍하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子知隱居之樂乎인저
“그대는 은거의 즐거움을 아십니다그려.
비록 남면南面한 군주라도 이 즐거움과 바꿀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우는 이 음지에 있는데 그 새끼가 화답한다.’라고 하였고,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이 깊은 웅덩이에서 울자 그 소리가 하늘에까지 들린다.’라고 하였습니다.
蓋其爲物 淸遠閑放하야 超然於塵垢之外 易, 詩人 以比賢人君子하니 隱德之士 狎而玩之 宜若有益而無損者
이라는 동물은 깨끗하고 고원高遠하고 한가롭고 방일放逸해서 속세의 밖에 초연하므로 《주역周易》과 《시경詩經》의 시인詩人으로써 현인賢人군자君子에 비유하였으니, 을 지닌 선비가 과 친하여 노는 것이 마땅히 유익하고 손해되는 것이 없을 듯합니다.
그러나 위 의공衛 懿公을 좋아하여 나라를 망쳤습니다.
하고 하야 以爲荒惑敗亂 無若酒者로되之徒 以此全其眞而名後世하니라
주공周公은 《서경書經》의 〈주고酒誥〉를 짓고 위 무공衛 武公은 〈억계抑戒〉를 지어 ‘사람을 황혹荒惑하게 하고 패란敗亂하게 하는 것은 술보다 더한 것이 없다.’라고 훈계하였으나, 유령劉伶완적阮籍의 무리는 이 술로써 자신의 진솔함을 온전히 하고 후세에 이름이 알려지기도 하였습니다.
嗟夫
아!
南面之君 雖淸遠閑放 如鶴者라도 猶不得好 好之則亡其國이요 而山林遁世之士 雖荒惑敗亂 如酒者라도 猶不能爲害어든 而況於鶴乎
남면南面한 군주는 비록 처럼 깨끗하고 고원高遠하고 한가롭고 방일放逸한 것이라도 좋아해서는 안 되니 좋아하면 그 나라를 망치고, 세속을 떠나 산림에 은둔한 선비는 비록 술과 같이 사람을 황혹荒惑하고 패란敗亂하게 하는 것이라도 해로움이 되지 않는데 하물며 에 있어서이겠습니까?
由此觀之하면 其爲樂 未可以同日而語也니라
이것을 가지고 살펴보면 그 즐거움을 동일하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山人 欣然而笑曰 有是哉라하야늘
이에 산인山人이 흔쾌히 웃으며 말하기를 “이러한 면이 있군요.”라고 하였다.
乃作放鶴招鶴之歌하니라
이에 〈방학초학가放鶴招鶴歌〉를 지었다.
曰 鶴飛去兮 西山之缺이로다
이 날아가니 서산西山의 트인 곳으로 향하도다.
高翔而下覽兮 擇所適이로다
높이 날다가 내려다보고 갈 곳을 선택하는구나.
飜然斂翼하야 婉將集兮러니
번연飜然히 나래를 접고 곱게 내려앉으려 하더니
忽何所見 矯然而復擊이로다
갑자기 무엇을 보았는지 높이 나래를 치고 다시 올라간다.
獨終日於澗谷之間兮 啄蒼苔而履白石이로다
홀로 산 개울 사이에서 종일토록 노닐며 푸른 이끼를 쪼아 먹고 흰 돌을 밟는구나.
鶴歸來兮 東山之陰이로다
이 돌아오니 동산의 북쪽에서 오도다.
其下有人兮 黃冠草屨 葛衣而鼓琴이로다
그 아래 은사가 있으니 황관黃冠에 짚신을 신고 갈옷에 거문고를 타도다.
躬耕而食兮하야 其餘以汝飽로다
몸소 농사지어 먹고 나머지 곡식으로 너를 먹이는구나.
歸來歸來兮어다
돌아올지어다. 돌아올지어다.
西山不可以久留니라
서산西山에서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되느니라.
역주
역주1 放鶴亭記 : 王文誥의 《蘇文忠公詩編注集成總案》 17권에 “東坡가 元豐 원년(1078) 11월 8일에 張天驥를 위하여 〈放鶴亭記〉를 지었다.”라고 보인다.
역주2 雲龍山人張君 : 張師厚로 雲龍山人은 그의 호이고 字가 天驥인데 蜀 지방 사람이다. 雲龍山은 徐州에 있는 명산이다.
역주3 雖南面之君 未可與易也 : 南面은 南向으로 옛날 군주들은 반드시 南面을 하였는바, 군주가 누리는 즐거움도 이것과 바꿀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4 易曰……其子和之 : 이 내용은 《周易》 中孚卦 九二 爻辭에 그대로 보인다.
역주5 詩曰……聲聞于天 : 이 내용은 《詩經》 〈小雅 鶴鳴〉에 그대로 보이는데, 朱子의 《詩經集傳》에 “皐는 못 가운데에 물이 넘쳐 나와서 생긴 구덩이이니, 밖에서부터 세어 아홉에 이름은 深遠함을 비유한 것이다.”라고 注하였다.
역주6 衛懿公好鶴則亡其國 : 懿公은 춘추시대 衛나라의 군주로 이름이 赤이다. 이 내용은 《春秋左氏傳》 閔公 2년에 “狄人이 衛나라를 침공하였다. 懿公은 鶴을 좋아하여 鶴 중에는 대부의 지위에 올라 軒을 타는 학까지 있었다. 狄人과 전쟁하려 할 적에 갑옷을 받은 國人들이 모두 ‘鶴에게 싸우게 하라. 鶴은 실로 대부의 녹과 지위가 있지만, 우리는 아무 지위도 없으니 어찌 싸울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衛나라 군대는 狄人과 熒澤에서 싸워 대패하니, 狄人이 드디어 衛나라를 멸망시켰다.[狄人伐衛 衛懿公好鶴 鶴有乘軒者 將戰 國人受甲者皆曰 使鶴 鶴實有祿位 余焉能戰……及狄人戰于熒澤 衛師敗績 遂滅衛]”라고 보인다.
역주7 周公作酒誥 : 周公은 周 武王의 아우로 이름은 旦이다. 武王이 천하를 통일한 뒤에 少昊의 옛 땅인 曲阜에 魯公으로 봉해졌으나, 魯나라에는 아들 伯禽을 보내고, 자신은 冢宰로서 조정에 남아 武王을 보좌하였고, 武王이 죽고 어린 成王이 즉위하자 攝政으로 나라를 다스려 周나라를 안정시키는 데에 큰공을 세웠다.
〈酒誥〉는 《書經》 〈周書〉 가운데 한 편으로 술을 경계한 글이다. 《書經》 〈周書 康誥〉의 小序에 “成王이 管叔과 蔡叔을 정벌하고 殷나라의 남은 백성들을 康叔에게 봉하면서 〈康誥〉․〈酒誥〉․〈梓材〉를 지었다.[成王旣伐管叔蔡叔 以殷餘民 封康叔 作康誥酒誥梓材]”라고 하여 成王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蔡沈의 集傳에는 〈酒誥〉 바로 아래에 “商王 受가 술주정을 하자 天下가 이에 敎化되니, 妹土는 商나라의 도읍으로 惡에 물듦이 더욱 심하였다. 武王이 이 땅을 康叔에게 봉하였으므로 글을 지어 가르쳤다.[商受酗酒 天下化之 妹土商之都邑 其染惡尤 武王以其地封康叔 故作書誥敎之云]”라고 하여 또한 武王이 지은 것이라 하였는데, 東坡는 周公이 당시 冢宰가 되어 모든 政事를 주관하였기 때문에 실제에 있어서는 周公이 지은 것이라고 여겨 이렇게 말한 것으로 보인다.
역주8 衛武公作抑戒 : 武公은 춘추시대 衛나라의 군주로 이름이 和이며, 처음 衛나라에 봉해진 康叔의 8세손인데 康叔의 政事를 닦아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자신은 장수하여 55년 동안 재위하였다.
犬戎이 周나라의 幽王을 시해하자 그는 군대를 거느리고 周나라에 가서 犬戎을 토벌하여 큰 공을 세웠으며, 또 여러 詩를 지어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추태를 부리는 것을 풍자하고 경계하였다. 〈抑〉은 武公이 지은 詩의 제목으로 《詩經》 〈大雅〉에 실려 있는데, 毛萇의 詩序에 이르기를 “〈抑〉은 衛 武公이 厲王을 풍자하고, 또한 스스로 경계한 詩이다.[抑衛武公 刺厲王 亦以自警也]”라고 하였다.
역주9 劉伶阮籍 : 劉伶(221?~300)은 晉나라 때의 詩人이자 사상가로 字가 伯倫이며 沛国(지금의 安徽省 宿縣) 사람으로 竹林七賢 중의 한 명이다. 出仕하여 建威参軍을 역임했으며, 晉 武帝 泰始 연간에 策問을 올려 無爲의 다스림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나, 평생 세속에 개의치 않고 술 마시기를 좋아하며 老壯사상과 淸談을 즐겼다. 항상 鹿車를 타고 술 한 병을 차고 다녔는데, 한 사람에게 삽을 메고 따라다니게 하면서, “내가 죽거든 바로 그 자리에 묻어달라.[死便埋我]”고 했다고 한다. 劉伶은 〈酒德頌〉을 지었는데, 《古文眞寶後集》에도 실려 있다. 《晉書 劉伶列傳》
阮籍(210~263)은 삼국시대 魏나라의 詩人이자 사상가로 字가 嗣宗이며 陳留 尉氏 사람인데, 명문 집안으로 아버지 阮瑀는 建安七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일찍이 步兵校尉를 지냈기 때문에 阮步兵으로도 칭해지며, 은둔하여 술과 詩와 淸談으로 소일하여 竹林七賢 중에 으뜸이 되었으며, 조카인 阮咸 역시 竹林七賢 중 한 명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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