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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4)

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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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7. 정공定公 원년에는 어찌하여 정월이 없는가에 대한 논 정공論 定公 원년
明辯이라
변론이 명쾌하다.
始終授受之際 春秋之所甚謹也
을 주고받는 즈음은 《춘추春秋》에서 매우 삼가 기록하였다.
하고 事在二月而書王二月하고 事在三月而書王三月者 例也
일이 없으면 수시首時를 쓰고 일이 2월에 있으면 ‘왕이월王二月’이라고 쓰고 일이 3월에 있으면 ‘왕삼월王三月’이라고 쓰니, 이것이 준례이다.
至於公之始年하야는 雖有二月三月之書 而又特書正月하니
그러나 이 처음 즉위한 연도에 이르러서는 비록 ‘이월二月’과 ‘삼월三月’이라고 쓴 경우가 있으나 또 특별히 ‘정월正月’을 썼으니, 은공隱公 원년에 “춘왕정월春王正月이다.
三月 公及邾儀父 盟于蔑이라하고
삼월三月나라 의보儀父 땅에서 맹약했다.”라고 표기하였고, 장공莊公 원년에 “춘왕정월春王正月이다.
三月 夫人孫于齊라하니 所以揭天子之正朔하야 而正諸侯之始也
삼월三月부인夫人(문강文姜)이 나라로 갔다.”라고 표기하였으니, 이것은 천자天子정삭正朔을 게시하여 제후諸侯가 처음 즉위한 것을 바로잡은 것이다.
公羊傳曰 緣民臣之心이면 不可一日無君이요 緣始終之義 一年 不二君이요 不可曠年無君이라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이르기를 “신민臣民의 마음을 따른다면 단 하루도 군주가 없을 수 없으며, 의 뜻을 따른다면 1년에 군주가 둘일 수가 없고 또 해를 지나도록 군주가 없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諸侯皆踰年卽位而書正月이라하니라
그러므로 제후諸侯가 모두 해를 넘겨 즉위하고 정월正月이라고 쓴 것이다.
定公元年 書曰 王三月 晉人 執宋仲幾于京師라한대 先儒疑焉이로되 而未得其當也하니
정공定公 원년에 쓰기를 “왕삼월王三月나라 사람이 나라 중기仲幾경사京師에서 체포했다.”라고 표기하였는데, 선유先儒들이 이것을 의심하였으나 합당한 내용을 찾지 못하였다.
嘗試論之호리라
내 한번 이것을 논해 보겠다.
春秋十有二公 其得終始之正하고 而備卽位之禮者 四 文公, 成公, 襄公, 哀公也 攝而立하야 不得備卽位之禮者 一이니 隱公也 先君不以其道終하야 而己不得備卽位之禮者 六이니 桓公, 莊公, 閔公, 僖公, 宣公, 昭公也 先君不以其道終하고 而又在外者 二 莊公, 定公也 在外踰年而後至者 一이니 定公也
춘추春秋》에 기록된 나라의 12명의 가운데 의 바름을 얻고 즉위의 를 갖춘 자는 네 명이니 문공文公성공成公양공襄公애공哀公이요, 대신 세워져서 즉위의 를 갖추지 못한 자가 한 명이니 은공隱公이요, 선군先君이 바른 로써 끝마치지(죽지) 못하여 자신이 즉위의 를 갖추지 못한 자가 여섯 명이니 환공桓公장공莊公민공閔公희공僖公선공宣公소공昭公이요, 선군先君이 바른 로써 끝마치지 못하고 또 밖에 있었던 자가 두 명이니 장공莊公정공定公이요, 나라 밖에 있다가 한 해가 지난 뒤에 온 자가 한 명이니 정공定公이다.
且夫先君 雖在外하야 不以其道終이나 而未嘗有踰年而後至者하니 則是 未嘗一日無君이어늘
선군先君이 비록 나라 밖에 있어서 바른 로써 끝마치지 못했으나 일찍이 한 해가 지난 뒤에 이른 자가 있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저 《춘추春秋》의 242년 동안에 일찍이 단 하루도 군주가 없었던 적이 없는데, 정공定公 원년에 나라의 국통은 정월正月부터 유월六月까지 끊어졌다가 그런 뒤에야 다시 계속되었다.
正月者 正其君也 昭公未至하고 定公未立하야 季氏當國하니 而天子之正朔 將誰正耶
정월正月을 쓰는 것은 군주가 즉위한 것을 바로잡는 것인데, 소공昭公이 아직 이르지 못하였고 정공定公이 아직 즉위하지 못해서 계씨季氏가 국정을 담당하였으니, 천자天子정삭正朔을 장차 누가 바로잡겠는가?
定之所以無正月也니라
이것이 정공定公의 원년에 정월正月이 없게 된 이유이다.
公羊傳曰 正月者 正卽位也 定無正月者 卽位後也일새니 定, 哀多微辭라한대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이르기를 “정월正月은 즉위를 바로잡는 것인데, 정공定公에게 정월正月이 없는 것은 즉위가 정월의 뒤에 있었기 때문이니, 정공定公애공哀公 연간에는 《춘추春秋》의 기록 가운데에 은미한 내용이 많다.”라고 하였는데,
而何休以爲 昭公出奔하야 國當絶이요 定公不得繼體奉正이라
이에 대해 하휴何休가 해석하기를 “소공昭公이 외국으로 출분出奔해서 국통이 끊어지게 되었고, 정공定公은 적장자의 지위[]를 계승해서 정통正統을 받들 수가 없었다.
諱爲微辭라하니라
그러므로 하여 은미한 말을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嗚呼
아!
昭公絶하고 而定公又不得立이면 是魯遂無君矣
소공昭公이 이미 죽고 정공定公이 또 즉위하지 못했으니, 그렇다면 나라에는 결국 군주가 없는 것이다.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는 “아버지 소공昭公이 바르게 끝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아들 정공定公이 바르게 시작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정월正月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장공莊公 원년에 정월正月을 쓴 것을 보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의 내용이 터무니없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역주
역주1 定何以無正月 定元年 : 本集에는 제목이 〈問定何以無正月〉로 되어 있다. 이 말은 《春秋公羊傳》 定公 원년의 “元年春王 定何以無正月”이란 기사에서 나왔는데, 東坡의 이 글은 《春秋》 定公 원년에 정월을 쓰지 않은 이유를 논파하고 있다.
역주2 無事而書首時 : 首時는 四時의 첫 번째 달로 孟春인 正月, 孟夏인 4월, 孟秋인 7월, 孟冬인 10월을 이른다.
《春秋公羊傳》 隱公 6년에 “《春秋》는 비록 일이 없더라도 首時가 지나면 이를 기록하였다.[春秋雖無事 首時過則書]”라고 하였는데, 何休가 “首는 시초이고 時는 四時이며 過는 경과함이다. 봄은 정월이 시초가 되고 여름은 4월이 시초가 되고 가을은 7월이 시초가 되고 겨울은 10월이 시초가 된다. 한 철이 지나도록 일이 없으면 그 첫 번째 달을 기록하였다.”라고 注하였다.
역주3 隱元年……公及邾儀父盟于蔑 : 公은 隱公이고 邾는 지금의 鄒縣에 있던 魯나라의 附庸國이며, 儀父는 邾나라 군주인 克의 字이다. 蔑은 姑蔑로 魯나라 땅이다.
역주4 莊元年……夫人孫于齊 : 夫人은 莊公의 어머니인 文姜이다. 文姜은 齊 襄公의 이복동생으로 魯나라로 시집오기 전부터 襄公과 私通하고 있었는데, 桓公 18년에 桓公이 濼 땅에서 襄公과 회합할 적에 동행하였다가 함께 齊나라에 가서 다시 襄公과 私通하였다. 이를 알아차린 桓公이 文姜을 꾸짖자 襄公은 公子 彭生을 시켜 桓公을 살해하였다. 文姜은 아들 莊公이 즉위한 다음 齊나라로 도피하였다. 孫은 遜과 통한다.
杜預의 《春秋左氏經傳集解》에는 “부인은 莊公의 어머니이다. 魯나라 사람들이 〈桓公의 죽음에 대해〉 그녀를 책망하였기 때문에 도망간 것이다. 국내의 不美스러운 일을 숨기기 위해 ‘奔’을 ‘孫’이라고 기록하여, 마치 자리를 사양하고서 떠난 것처럼 표현한 것이다.[夫人莊公母也 魯人責之 故出奔 內諱奔 謂之孫 猶孫讓而去]”라고 해설하였다.
역주5 二百四十二年 : 《春秋》는 魯 隱公 원년(B.C. 722)으로부터 哀公 16년(B.C. 479)까지 모두 242년간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6 定公之元年……而後續也 : 昭公은 25년(B.C. 517)에 군대를 이끌고 季孫氏를 정벌하다가 오히려 三桓의 군대에게 패배하여 齊나라로 도망하였는데, 끝내 도성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32년(B.C. 510)에 晉나라 땅인 乾侯에서 죽었다. 한편 다음 군주인 定公은 원년(B.C. 509) 6월에 즉위하였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7 穀梁以爲 昭無正終 故定無正始 : 《春秋穀梁傳》 定公 원년에 “定公 원년에는 正月이 없다. 定公 원년에 正月이 없는 것은 어째서인가? 昭公의 끝마침이 올바른 것이 아니며 定公의 시작도 올바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 昭公이 올바르게 끝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아들 定公이 올바르게 시작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正月이 없는 것이다.[定無正也 定之無正 何也 昭公之終 非正終也 定之始 非正始也 昭無正終 故定無正始]”라고 하였다.
역주8 觀莊公元年書正 則不言而可知其妄矣 : 莊公은 이름이 同이고 桓公의 아들이다. B.C. 693년에 즉위하였는데, 아버지 桓公이 齊나라에 갔다가 襄公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므로 올바르게 끝마치지 못한 것이나, 《春秋》에는 莊公 원년에 정월을 표기하였다. 그러므로 東坡가 이렇게 말한 것이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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