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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5)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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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3. 세 마리의 말 그림에 대한
贊名馬로되 而其意全在本朝廷却名馬上하니라
명마名馬하였으나, 그 뜻은 온전히 본 조정에서 명마名馬를 물리는 데 있다.
하고 謝遣諸將한대 建遣하야 行邊飭武備하다
원우元祐 초년에 성상聖上옥문관玉門關을 폐쇄하고 제장諸將을 파견하는 것을 사절하자, 태사 문언박太師 文彦博재상 여대방宰相 呂大防, 범순인范純仁이 건의하여 제생諸生유사웅游師雄을 보내어 변방을 순행하면서 무비武備를 감독하게 하였다.
유사웅游師雄희하熙河에 이르니, 번관 포순蕃官 包順이 자기가 거느리고 있는 숙호熟戶를 가지고 변방의 근심을 제거할 것을 청하였다.
師雄 許之한대 하야 以獻하니 百官皆賀하고 하다
유사웅游師雄이 이를 허락하자, 마침내 교활한 오랑캐의 큰 수령 귀장청의결鬼章靑宜結을 사로잡아 바치니, 백관百官들이 모두 축하하고 사자를 보내어 영유릉永裕陵(신종神宗)에 하였다.
西域貢馬하니 首高八尺이요 龍顱而鳳膺하고 虎脊而豹章이라
이때 서역에서 말을 바치니, 머리 높이가 8척이고 의 머리에 봉황의 가슴이었으며 호랑이 등마루에 표범의 무늬였다.
할새 振鬣長鳴하니 萬馬皆瘖이요 父老縱觀하고 以爲未始見也라하니라
이 말이 동화문東華門을 나서서 천사감天駟監으로 들어갈 적에 갈기를 떨치고 길게 우니, 수많은 말들이 모두 울지 못하였고, 부로父老들은 한껏 구경하고는 일찍이 보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上方恭黙思道하사 在廷이로되 未嘗一顧하시고
황상皇上은 이때 공손하고 침묵하여 를 생각해서 팔준마八駿馬가 조정에 있었으나 일찍이 한 번도 돌아보지 않으셨다.
하야 馬有斃者로되 上亦不問하시니라
그 뒤에 어인圉人이 제때에 기거起居하게 하지 못해서 말 중에 죽은 것이 있었으나 황상皇上은 그의 죄를 묻지 않으셨다.
明年 有良馬로되 不敢進하고 請於邊吏하야 願以餽이어늘 詔許之하다
다음 해에 오랑캐인 온계심溫溪心이 좋은 말이 있었으나 감히 황제皇帝에게 올리지 못하고, 변방 관리에게 청해서 태사 노국공太師 潞國公(문언박文彦搏)에게 선물하려고 하였는데, 황제께서 이것을 허락하였다.
爲熙河帥하니 西蕃 有貢어늘 有司以非入貢歲月이라하야 留其使與馬於邊하니 之奇爲請호되 乞不以時入이라
장지기蔣之奇희하熙河의 장수가 되었는데, 서번西蕃에서 준마인 한혈마汗血馬를 바치는 자가 있었으나 유사有司입공入貢하는 해와 달이 아니라고 하여 그 사자와 말을 변방에 체류시키니, 장지기蔣之奇가 조정에 제철이 아니라도 받아줄 것을 청하였다.
事下禮部하니 軾時爲하야 判狀云 朝廷 方却走馬以糞이어늘 正復汗血 亦何所用이리오하야 事遂寢하다
그래서 이 일을 예부禮部에 내렸는데, 내가 당시 대종백大宗伯이 되어서 판결하는 글에 이르기를 “현재 조정이 잘 달리는 말을 물려서 똥처럼 여기는데, 바로 다시 한혈마汗血馬를 또한 어디에 쓰겠는가?”라고 하여, 이 일이 마침내 중지되었다.
于時 兵革不用하야 海內小康하니 馬則不遇矣어니와 而人少安이라
이때 병기와 갑옷을 사용하지 않아서 해내海內가 다소 편안하니, 말에게는 불우하였으나 인민人民들은 다소 편안하였다.
軾嘗私請於承議郞하야 畫當時三駿馬之狀하고 而使鬼章靑宜結校之하야 藏於家하다
내 일찍이 승의랑 이공린承議郞 李公麟에게 사사로이 청하여 당시 세 준마駿馬의 모습을 그리게 하고, 귀장청의결鬼章靑宜結로 하여금 교정하게 해서 이것을 집에 보관하였다.
四年三月十四日 軾在惠州할새 謫居無事어늘 閱舊書畫라가 追思一時之事하고 而歎三馬之神駿하야 乃爲之贊하노라
소성紹聖 4년(1097) 3월 14일에 내가 혜주惠州에 있을 적에 유배 생활을 하면서 일이 없으므로 옛날 서화書畫를 보다가 한때의 일을 추억하고 세 마리 말의 신준神駿함을 탄식하여 마침내 을 짓는다.
吁鬼章이여
아! 귀장鬼章이여.
世悍驕하야
대대로 사납고 교만해서 이사장군貳師將軍(이광리李廣利)을 도망하게 하고 표요장군嫖姚將軍(곽거병霍去病)을 패주하게 하였네.
今在廷 하야 立內朝
지금 조정에서 호피虎皮초피貂皮 옷을 입고 천기天驥를 바치고 궁정에 서 있네.
若將西하야
8척의 용마龍馬 정신이 아주 뛰어나서 장차 서쪽으로 달려가 곤륜산崑崙山요지瑤池에서 잔치할 듯하네.
帝念民하사 乃下招 로다
상제上帝께서 백성을 염려하여 마침내 아래로 내려와 부르니, 돌아가는 구름을 밟고서 방요房妖의 별자리로 가도다.
역주
역주1 三馬圖贊 : 三馬圖는 宋나라 李公麟의 작품인데, 이 글은 哲宗 紹聖 4년(1097) 3월 24일에 쓰였다. 이때 東坡는 惠州에 귀양 가 있었다.
역주2 元祐 : 哲宗의 연호로 1086년부터 1094년까지이다.
역주3 上方閉玉門關 : 玉門關은 관문 이름으로 지금의 甘肅省 敦煌 서북쪽에 있었는데, 漢 武帝 때에 西域인 이곳에서 옥돌을 가져왔으므로 玉門關이라 이름하였다.
《宋史》 〈哲宗本紀〉를 보면, 元祐 원년(1086) 정월에 陝西와 河東, 그리고 元豐 4년(1081)에 다시 설치했던 軍에 관한 부서를 혁파하였는데, 玉門關을 폐쇄하였다는 것은 바로 이 일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역주4 太師文彦博 : 文彦博(1006~1097)은 汾州 介休(지금의 山西省 介休縣) 사람으로 字가 寬夫이다. 潞國公에 봉해지고 90여 세의 장수를 누렸으며, 北宋의 名相으로 유명하였다.
역주5 宰相呂大防范純仁 : 呂大防(1027~1097)은 陝西省 藍田縣 사람으로 字가 微仲이다. 仁宗 寶元 원년(1038)에 진사로 출사하였는데, 哲宗 元祐 연간에 尙書左僕射에 제수되어 范純仁과 함께 王安石의 신법을 폐지하고 옛 정사를 회복하는 데 주역이 되었다. 그러나 哲宗이 친정한 뒤에 다시 정권을 잡은 新法黨의 章惇 등에게 배척을 받아 外職으로 좌천되어 끝내 朝廷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었다. 《宋史》에 傳이 있다.
范純仁(1027~1101)은 宋나라 초기의 명재상 范仲淹의 아들로 字가 堯夫이고 시호는 忠宣이다. 哲宗 때에 尙書僕射, 中書侍郞을 역임하며 옛 정사를 회복하는 데 앞장섰으나, 뒤에 新法黨 등에게 배척을 받아 永州로 좌천되었다. 徽宗이 즉위하자 朝廷으로 돌아와 觀文殿太學士에 제수되었으나 곧바로 치사하였다. 《宋史》에 傳이 있다.
역주6 諸生游師雄 : 游師雄(1038~1097)은 字가 景叔으로 京兆 武功 사람인데 橫渠 張載에게 수학하였다. 英宗 治平 원년(1064)에 進士에 급제하고 集賢校理 등을 거쳐 陝西轉運使와 直龍圖閣學士에 이르렀다. 諸生은 儒生으로 游師雄이 張橫渠의 門生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역주7 熙河 : 熙河路로, 宋나라 때에 熙州와 河州를 합하여 路로 만들었는데, 지금의 甘肅省 臨洮․臨夏縣 일대에 걸쳐 있었다.
역주8 蕃官包順……除邊患 : 北宋 때 변경의 소수민족을 모집하여 방위군을 편성하고 이를 蕃軍이라 하고, 蕃軍을 관장하는 관원을 蕃官이라 하였는데, 包順은 바로 蕃官의 이름이다. 熟戶는 北宋 때 서북 지방 변경에서 귀순한 소수민족이다. 邊患은 변경의 분란을 이른다.
역주9 遂擒猾羌大首領鬼章靑宜結 : 猾羌은 교활한 西羌이며, 鬼章靑宜結은 西羌(吐蕃)의 유력한 족장 가운데 한 명이다. 神宗 熙寧 6년(1073) 王韶가 熙河를 평정할 적에 吐蕃의 수령 鬼章靑宜結이 河州의 踏白城을 침략하였는데, 神宗이 招撫하여 그를 刺史로 삼았다. 元祐 원년에 다시 배반하자, 8월에 鬼章靑宜結을 사로잡아 京師로 호송하였으나 얼마 후 다시 방면하였다. 그를 사로잡은 일은, 본서 4권 〈因擒鬼章論西羌夏人事宜箚子〉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10 遣使告永裕陵 : 永裕陵은 神宗의 陵號이다. 神宗은 여러 번 군대를 보내어 西羌을 정벌하였으나 승리하지 못했는데, 이때 이들을 정벌하여 승리하였으므로 陵에 이 사실을 고유한 것이다.
역주11 出東華門 入天駟監 : 東華門은 宋나라 궁궐 東門의 이름으로 宮城의 둘레가 4, 5리인데, 동쪽문을 東華, 서쪽문을 西華라 하였다. 天駟監은 御馬를 기르는 장소이다.
역주12 八駿 : 여덟 필의 駿馬로 옛날 周 穆王이 타고 다닌 名馬인 華騮․綠耳․赤驥․白義․踰輪․渠黃․盜驪․山子를 이른다. 그러나 여기서는 여덟 마리가 아니고 단지 駿馬의 뜻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역주13 其後圉人起居不以時 : 圉人은 御馬를 관리하는 사람이며, 起居는 말을 제때에 움직이고 쉬게 하는 것을 이른다.
역주14 溫溪心 : 鬼章靑宜結과 함께 吐蕃의 유력한 족장 가운데 한 명이다. 당시 吐蕃의 군주인 董氊이 죽고 그의 양자였던 阿里骨이 뒤를 이어 즉위하여 宋나라로부터 군주로 봉해졌으나, 鬼章과 溫溪心 등 강성한 족장들은 阿里骨을 인정하지 않고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였다.
역주15 太師潞國公 : 潞國公은 文彦搏의 封號이다.
역주16 蔣之奇 : 1031~1104. 字는 潁叔으로 常州 宜興 사람이다. 嘉祐 2년(1057) 進士試에 급제하고 神宗 때 殿中侍御史가 되었으며 知熙州事, 江淮荊浙發運使 등을 역임하였다. 본문의 내용은 知熙州事로 있을 때의 일인 듯하다.
역주17 駿馬汗血 : 汗血은 千里馬의 이름으로, 앞 어깨에서 피와 같은 땀이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역주18 宗伯 : 大宗伯으로 禮部尙書를 이르는데, 朝鮮朝의 禮曹判書와 같은 직책이다.
역주19 李公麟 : 1049~1106. 北宋의 유명한 화가로 字가 伯氏이고 舒州 舒城 사람이다. 다방면의 그림에 모두 능하여 宋代 제일의 화가로 불린다. 熙寧 3년(1070) 進士가 되고 벼슬이 朝奉郞에 이르렀다.
역주20 紹聖 : 哲宗의 연호로 1094년부터 1098년까지이다.
역주21 奔貳師 走嫖姚 : 貳師는 貳師將軍 李廣利를 가리키고, 嫖姚는 驃駣로도 쓰는데 嫖姚將軍 霍去病을 가리킨다. 두 사람은 모두 漢 武帝 때의 名將으로 匈奴族을 공격하여 큰 공을 세웠는바, 여기서는 鬼章의 오랑캐 세력이 매우 강성하여 이들처럼 中國의 훌륭한 장수들도 달아나게 했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22 服虎貂 效天驥 : 虎․貂는 虎皮와 貂皮로 만든 官服으로 지위가 높은 자가 착용한다. 效는 바침이며 天驥는 하루에 千里를 달린다는 駿馬로, 鬼章이 虎皮와 貂皮로 만든 官服을 입고 좋은 名馬를 바쳤음을 말한 것이다.
《唐宋八大家文鈔 校注集評》에는 鬼章이 千里馬처럼 조정에 서서 충성을 바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역주23 八尺龍 神超遙 : 八尺龍은 키가 큰 駿馬를 이른다. 《周禮》 〈夏官〉에 “키가 8척 이상 되는 말을 龍이라 한다.[馬八尺以上爲龍]” 하였다. 이 때문에 駿馬를 龍馬라 칭한다. 神超遙는 정신이 초일하여 천릿길을 달리는 데 뜻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24 燕昆瑤 : 燕은 잔치하여 술을 마시는 것이며, 昆瑤는 昆侖山에 있다는 瑤池로 여자 神仙을 관장하는 西王母가 있는 곳이라 한다. 昆侖은 崑崙으로도 표기하는데, 지금의 新疆과 西藏에 걸쳐 있는 큰 山이다.
역주25 籋(躡)歸雲 逝房妖 : 籋은 밟는 것이며, 房은 房星으로 天駟라 하고 妖는 妖精으로 房妖는 말을 가리킨다. 《爾雅》 〈釋天〉에 “天駟는 房星이다.”라고 하였는데, 註에 “龍馬를 天馬라 한다. 그러므로 房駟星을 天駟라 한다.” 하였다. 天駟는 말을 맡은 별이라 한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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