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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2)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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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入奉禁嚴하고 出膺方面 皆人臣之殊選이요 在儒者以尤榮이니이다
伏念 臣受寵逾涯 積憂成疾이라
旣思退就於安養하고 又欲少逃於滿盈이러니 仰荷至仁하사 曲從微願하시니이다
江山故國 所至如歸 父老遺民 與臣相問하니이다
知朝廷輟近侍爲太守하니 蓋聖主視天下如一家
鞭扑未施 爭訟幾絶하니 臣之厚幸 豈易名言이릿고
此蓋伏遇太皇太后陛下 天地之仁으로 賢愚兼取하시고 日月之照 邪正自分이라
每包函其憃迂하야 欲保全其終始하시니이다
兄弟孤立하야 嘗親奉於德音하오니 死生不移하야 更誓堅於晩節하노이다


13. 항주杭州에 부임하여 사례한
들어와서는 황궁의 가까운 곳에서 군주를 받들어 모시고 나가서는 한 방면方面(지역)을 맡는 것은, 모두 신하로서는 특별한 선발이요 유자儒者에게 있어서는 더더욱 영광입니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은 과분한 은총을 입고서 근심이 쌓여 병을 이루었습니다.
이에 물러나 편안히 수양할 곳으로 나갈 것을 생각하였고, 또 관직이 지나치게 높은 자리를 다소 피하려고 했었는데, 우러러 성상의 지극하신 인자함을 입어서 작은 소원을 곡진히 따르게 하셨습니다.
고국의 강산이라서 이르는 곳마다 집에 돌아온 듯하고, 얼굴이 익숙한 부로父老유민遺民들이 에게 안부를 묻습니다.
조정이 근시近侍를 거두어 태수로 삼았으니, 이에 성주聖主께서 천하를 한 집안과 같이 여기심을 알겠습니다.
채찍과 회초리를 시행하기 전에 분쟁과 송사가 거의 근절되었으니, 의 넘치는 행복을 어찌 쉽게 말로 다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태황태후太皇太后 폐하께서 천지天地의 인자함으로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를 겸하여 취하시고, 해와 달의 광명으로 간사한 자와 바른 자가 저절로 구분되게 하심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매번 의 미련하고 오활함을 포용하시어 처음부터 끝까지 보전하고자 하셨습니다.
형제가 외로이 서서 항상 덕음德音을 친히 받드니, 죽으나 사나 변치 않아서 만년晩年의 절개를 굳게 지킬 것을 다시 맹세합니다.


역주
역주1 杭州謝上表 : 이 글은 元祐 4년(1089)에 쓰여졌다. 당시 蘇軾은 54세로 翰林學士로 재직하였는데, 집정대신의 뜻에 거슬려 용납되지 못할 것임을 헤아리고 외직을 청하여 龍圖閣學士 知杭州事로 제수되었다. 蘇軾은 7월에 杭州에 도착하자 연이어 두 수의 表를 올려 사례하였는데, 이 글은 그 두 번째 表이다. 本集에는 이 편 머리에 ‘臣軾言 伏奉制書 除臣龍圖閣學士 知杭州 臣已于今月三日到任上訖者’라는 29字가 있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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