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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3)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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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此等文 非子瞻之佳者로되 以其是蘇家說理文字故 錄而存之하노라
甚矣 道之難明也
論其著者 鄙滯而不通하고 論其微者 汗漫而不可考하니 其弊 始於昔之儒者 求爲聖人之道而無所得이라 於是 務爲不可知之文하야 庶幾乎後世之以我爲深知之也
後之儒者 見其難知하고 而不知其空虛無有하야 以爲將有所深造乎道者라하고 而自恥其不能하야 則從而和之曰然이라하야
相欺以爲高하고 相習以爲深하야 而聖人之道 日以遠矣니라
子思者 豈亦斯人之徒歟리오
蓋嘗試論之호리라
夫中庸者 孔氏之遺書而不完者也 其要有而已矣
三者 是周公, 孔子之所從以爲聖人이요 而其虛詞蔓延 是儒者之所以爲文也
是故 去其虛詞하고 而取其三하시니 其始하고 其次 論聖人之道所從始하야 推而至於其所終極하고 而其卒 乃始內(納)之於中庸하니 蓋以爲聖人之道 略見於此矣니라
夫誠者 何也
樂之之謂也 樂之則自信이라 曰誠이요
夫明者 何也
知之之謂也 知之則達이라 曰明이니라
夫惟聖人 知之者未至로되 而樂之者先入하니 先入者爲主하야 而待其餘 則是樂之者爲主也 若夫賢人 樂之者未至하고 而知之者先入하니 先入者爲主하야 而待其餘 則是知之者爲主也
是故 有所不知언정 知之 未嘗不行하고 知之者爲主 是故 雖無所不知라도 而有所不能行이니라
知之者與樂之者 是聖人, 賢人之辨也 好之者 是賢人之所由以求誠者也
君子之爲學 愼乎其始하니 何則
其所先入者重也일새라
知之多而未能樂焉이면 則是不如不知之愈也
人之好惡莫如好色而惡臭 (則)[是]人之性也 好善如好色하고 惡惡如惡臭 是聖人之誠也
曰 自誠明 謂之性이라하니라
孔子蓋長而好學하사
이나 其所先得於聖人者 是樂之而已
且夫子路能死於衛로되 而不能不慍於陳, 蔡하니 是豈其知之罪耶리오
夫弟子之所爲從孔子游者 非專以求聞其所未聞이요 蓋將以求樂其所有也
明而不誠이면 雖挾其所有 倀倀乎不知所以安之 苟不知所以安之 則是可與居安이나 而未可與居憂患也
夫惟憂患之至而後 誠明之辨 乃可以見이니 由此觀之컨대 君子安可以不誠哉리오


04. 《중용中庸》에 대한 논 상論 上
이러한 글은 자첨子瞻의 아름다운 문장은 아니지만, 소씨蘇氏 집안의 성리학을 논한 문자(문장)이므로 기록하여 남겨두는 것이다.
심하다! 를 밝히기 어려움이여.
그 드러난 것을 논하면 매우 비루하고 막혀서 통하지 못하고, 그 은미한 것을 논하면 너무 광활하고 아득해서 상고할 수가 없으니, 이러한 병폐는 옛날 유자儒者들이 성인聖人를 행하려고 하였으나 얻을 수가 없자, 이에 되도록 이해할 수 없는 글을 지어 행여 후세에서 자신의 글을 보고 를 깊이 안다고 여기길 바란 데에서 시작되었다.
후세의 유자儒者들은 이 알기 어려운 글을 보고는 이것이 공허하여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마땅히 에 깊이 나아간 바가 있는 자라고 생각하고는 자신이 그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덩달아 화답하기를 “이 말이 옳다.”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서로 속이면서 높음으로 삼고, 서로 익히면서 에 심오하다고 여겨서, 성인聖人가 날로 멀어지게 되었다.
자사子思가 《중용中庸》을 지은 이래로 유자儒者들이 모두 이것을 조종祖宗으로 삼아서 성명性命의 말을 하니, 아!
자사子思란 분이 또한 어찌 이런 부류의 사람이시겠는가?
내가 한번 논해보겠다.
저 《중용中庸》은 공씨孔氏유서遺書로서 완전하지 못한 책이니, 그 요점은 세 가지가 있을 뿐이다.
이 세 가지는 바로 주공周公공자孔子가 따라서 성인聖人이 되신 이유이고, 허언虛言으로 견강부회한 것은 유자儒者들이 문장을 지은 것이다.
이 때문에 자사子思가 그 허언虛言을 제거하고 세 가지를 취하셨으니, 그 처음은 에 들어가는 바를 논하였고, 그 다음은 성인聖人가 말미암아 시작한 바를 논하고 미루어서 종극終極에 이르렀으며, 마지막에는 마침내 다시 처음 중용中庸으로 귀납하였으니, 이는 성인聖人를 대략 여기에서 볼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예기禮記》에 이르기를 “으로 말미암아 밝아짐을 이라 이르고 으로 말미암아 성실해짐을 라 이르니, 성실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성실해진다.”라고 하였다.
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즐거워함을 말하니, 즐거워하면 스스로 진실해지므로 이라 말한 것이다.
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앎을 말하니, 알면 통달해지므로 이라 한 것이다.
오직 성인聖人만은 아는 것이 지극하지 못하더라도 즐거워하는 것이 먼저 들어가니 먼저 들어가는 것이 주장이 되어서 그 나머지를 기다리면 이것은 즐거워하는 것이 주장이 되는 것이요, 현인賢人으로 말하면 즐거워하는 것은 지극하지 못하고 아는 것이 먼저 들어가니 먼저 들어가는 것이 주장이 되어서 그 나머지를 기다리면 이것은 아는 것이 주장이 되는 것이다.
성인聖人은 즐거워하는 것이 주장이 되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바가 있을지언정 알면 일찍이 행하지 않는 적이 없고, 현인賢人은 아는 것이 주장이 되기 때문에 비록 알지 못하는 바가 없더라도 행하지 못하는 바가 있는 것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시기를 “아는 자가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가 즐거워하는 자만 못하다.”라고 하셨다.
아는 자와 즐거워하는 자는 바로 성인聖人현인賢人의 분변이니, 그 중간에 있는 좋아하는 자는 바로 현인賢人이 말미암아 성실해지기를 구하는 자이다.
군자君子가 학문할 적에 그 처음을 삼가야 하니, 어째서인가?
먼저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는 것이 많으나 능히 즐거워하지 못하면 이는 모르는 것만 못한 것이다.
사람의 좋아하고 미워함은 여색을 좋아하고 악취를 싫어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이는 사람의 본성이요, 을 좋아하기를 아름다운 여색을 좋아하는 것처럼 하고, 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미워하는 것처럼 하는 것는 성인聖人의 성실함이다.
그러므로 말씀하기를 “으로 말미암아 밝아짐을 이라 한다.”라고 한 것이다.
공자孔子께서는 장성하여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셨다.
그리하여 나라에 가서 를 행하는 것을 보시고 노담老聃사양師襄의 무리에게 을 물은 뒤에야 에 밝으셨으며, 50세가 된 이후에 《주역周易》을 읽으셨으니, 아마도 또한 말년이 된 뒤에야 아신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먼저 성인聖人의 경지를 얻은 까닭은 그 를 즐거워하셨기 때문일 뿐이다.
공자孔子나라와 나라의 사이에서 곤궁하실 적에 자로子路자공子貢에게 묻자, 두 사람은 기뻐하지 않았고 자공子貢은 또 부자夫子를 조금 낮추기를 바랐으니, 이 두 사람은 알지 못한 것이 아니나 즐거워한 것은 지극하지 못한 것이었다.
자로子路나라에서 용감히 죽을 수 있었으나 나라와 나라에서 곤궁할 적에 노여움을 참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알기만 한 죄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제자弟子들이 공자孔子를 따라 배운 것은 오로지 아직 듣지 못했던 것을 들으려고 하였을 뿐이 아니요, 장차 공자孔子가 소유하신 바를 즐거워하려고 한 것이었다.
밝기만 하고 성실하지 못하면 비록 그 소유한 바를 가지고 있으나 아득하여 편안히 여길 바를 알지 못하니, 만일 편안히 여길 바를 알지 못한다면 함께 편안함에는 처할 수 있으나 우환에는 함께 처할 수가 없는 것이다.
오직 우환이 이른 뒤에야 성실함과 밝음의 분별을 비로소 볼 수 있으니,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군자君子가 어찌 성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역주
역주1 中庸論 上 : 《中庸》은 《大學》과 함께 원래 《禮記》의 편명이었는데, 孔子의 손자인 子思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으며, 儒家의 중요한 경전으로 인식되어 唐나라 때부터 별행본으로 나왔고, 《論語》, 《孟子》, 《大學》과 함께 四書로 불렸다. 中庸이란 말은 《中庸》에 자주 보이며, 《論語》 〈雍也〉에도 “中庸의 德이 지극하다.[中庸之爲德也 其至矣乎]”라고 보인다.
程子(伊川)는 이를 “치우치지 않음을 中이라 하고 변치 않음을 庸이라 하니, 中은 天下의 바른 道이고 庸은 천하의 정해진 理이다.[不偏之謂中 不易之謂庸 中者 天下之正道 庸者 天下之定理]”라고 注하였으며, 朱子는 “中은 편벽되지 않고 치우치지 않고 過와 不及이 없음의 이름이요, 庸은 平常함이다.[中者 不偏不倚無過不及之名 庸 平常也]”라고 해석하였다.
역주2 自子思作中庸……以爲性命之說 : 子思는 孔子의 손자로 이름은 伋인데, 曾子에게서 배워 孔門의 心法을 터득하고 《中庸》을 저술하여 후세에 述聖이라고 일컬어졌다.
性命은 儒家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적 개념 중의 하나로 만물이 하늘로부터 품부 받은 理를 이른다. 子思는 《中庸》에서 性命에 대해 “하늘이 命하신 것을 性이라 이르고, 性을 따름을 道라 이르고, 道를 品節해놓음을 敎라 이른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라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오직 天下에 지극히 성실한 분이어야 능히 그 性을 다할 수 있으니, 그 性을 다하면 능히 사람의 性을 다할 것이요, 사람의 性을 다하면 능히 물건의 性을 다할 것이요, 물건의 性을 다하면 天地의 化育을 도울 것이요, 天地의 化育을 도우면 天地와 더불어 참여하게 될 것이다.[惟天下至誠 爲能盡其性 能盡其性 則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 則能盡物之性 能盡物之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 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라고 하였다.
역주3 : 여기서 세 가지는 《中庸》의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를 이른다.
역주4 誠明之所入 : 誠은 至誠의 마음을 이르고 明은 모든 이치를 밝게 아는 것을 이른다. 이 내용은 《中庸》에 “誠으로 말미암아 밝아짐을 性이라 이르고, 明으로 말미암아 성실해짐을 敎라 이르니, 성실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성실해진다.[自誠明謂之性 自明誠謂之敎 誠則明矣 明則誠矣]”라고 보인다.
역주5 記曰……明則誠矣 : 記는 《禮記》를 가리키는바, 《中庸》은 본래 《禮記》의 한 편이었으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이 내용은 《中庸》 제21장에 그대로 보이는데, 이에 대해 鄭玄은 “自는 말미암음이다. 至誠으로 말미암아 明德을 소유하는 것은 聖人이 本性대로 하는 것이요, 明德을 말미암아 至誠에 이르는 것은 賢人이 배워서 아는 것이니, 至誠이 있으면 반드시 明德이 있고 明德이 있으면 반드시 至誠이 있다.[自 由也 有至誠而有明德 是聖人之性者也 有明德而有至誠 是賢人學以知之也 有至誠則必有明德 有明德則必有至誠]”라고 注하였다.
또 제20장에 “성실히 하는 것은 하늘의 道이고 성실히 하려는 것은 사람의 道이니 성실히 하는 자는 힘쓰지 않아도 道에 맞고 생각하지 않아도 터득하여 從容히 道에 맞게 하니, 이는 聖人이요, 성실히 하려는 자는 善을 가려 굳게 지키는 자이다.[誠者天之道也 誠之者人之道也 誠者不勉而中 不思而得 從容中道 聖人也 誠之者 擇善而固執之者也]”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朱子는 誠은 성실한 것으로 行을 이르고 明은 밝게 아는 것으로 知를 이른다고 보고, 集註에 두 절을 묶어서 “自는 말미암음이다. 德이 성실하지 않음이 없고 밝음이 비추지 않음이 없는 자는 聖人의 德으로서 性대로 하여 간직한 자이니 하늘의 道이고, 먼저 善을 밝게 안 뒤에 그 善을 성실히 하는 자는 賢人의 배움으로서 가르침을 말미암아 들어가는 자이니 사람의 道이다. 성실해지면 밝지 않음이 없고 밝아지면 성실함에 이를 수 있다.[自 由也 德無不實而明無不照者 聖人之德 所性而有者也 天道也 先明乎善而後 能實其善者 賢人之學 由敎而入者也 人道也 誠則無不明矣 明則可以至於誠矣]”라고 해석하였다.
역주6 子曰……好之者不如樂之者 : 이 내용은 《論語》 〈雍也〉에 그대로 보이는데, 程伊川의 제자인 尹焞은 “안다는 것은 이 道가 있음을 아는 것이요, 좋아한다는 것은 좋아하되 아직 얻지 못한 것이요, 즐거워한다는 것은 얻음이 있어 즐거워하는 것이다.[尹氏曰 知之者 知有此道也 好之者 好而未得也 樂之者 有所得而樂之也]”라고 하였다.
또한 張敬夫(張栻)는 “五穀에 비유하면 아는 자는 그것이 먹을 수 있음을 아는 것이요, 좋아하는 자는 먹고서 좋아하는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는 좋아하여 배불리 먹은 것이다. 알기만 하고 좋아하지 못하면 이는 앎이 지극하지 못한 것이요, 좋아하기만 하고 즐거워함에 미치지 못하면 이는 좋아함이 지극하지 못한 것이니, 이는 옛날 배우는 자들이 스스로 힘써 쉬지 않은 이유일 것이다.[譬之五穀 知者 知其可食者也 好者 食而嗜之者也 樂者 嗜之而飽者也 知而不能好 則是知之未至也 好之而未及於樂 則是好之未至也 此古之學者 所以自强而不息者與]” 하였다. 《論語集註》
역주7 適周觀禮……明於禮樂 : 老聃은 바로 老子이며, 師襄은 魯나라의 樂師인데, 《史記》에는 師襄子라고 되어 있다. 孔子가 老子에게 禮를 배운 일은 《史記》 〈孔子世家〉에 “孔子가 周나라에 가서 禮에 대해 물었으니, 이는 老子를 만난 것이다.[適周問禮 蓋見老子云]”라고 보이며, 師襄에게 樂을 배운 일은 〈孔子世家〉에 “孔子가 樂師인 師襄子에게 거문고 타는 법을 배웠다.[孔子學鼓琴師襄子]”라고 보인다.
역주8 五十而後讀易 : 이 내용은 《史記》 〈孔子世家〉에 “孔子는 말년에 《周易》에 심취하여 〈彖傳〉, 〈繫辭傳〉, 〈象傳〉, 〈說卦傳〉, 〈文言傳〉을 서술하였으며, 《周易》을 반복해서 읽어 책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졌다. 孔子는 ‘나에게 몇 년의 수명을 빌려주어 이와 같이 하면 내 《周易》에 彬彬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였다.[孔子晩而喜易 序彖繫象說卦文言 讀易 韋編三絶 曰 假我數年 若是 我於易則彬彬矣]”라고 보인다.
역주9 孔子厄於陳蔡之間……而子貢又欲少貶焉 : 孔子가 초빙을 받고 楚나라로 가는 길에, 陳나라와 蔡나라의 大夫들은 이것이 자신들에게 불리하리라 생각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孔子의 일행을 포위하고 楚나라로 가는 것을 막았다. 孔子의 일행이 식량이 떨어지니, 따르던 제자들 중에 병이 들어 일어나지 못하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孔子는 계속하여 강론하고, 거문고를 타고 노래를 부르며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子路가 성난 얼굴로 孔子를 뵙고, “君子도 곤궁할 때가 있습니까?”라고 묻자, 孔子는 “君子라야 진실로 곤궁한 것이니, 小人은 곤궁하면 넘친다.”라고 대답하였다. 子貢의 얼굴색이 변하자, 孔子가 “賜(子貢)야! 너는 내가 많이 배우고 그것을 기억하는 자라고 여기느냐?”라고 물으셨다. 子貢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자, 孔子는 “아니다. 나는 하나의 이치가 모든 사물을 꿰뚫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孔子는 제자들이 화가 난 것을 보고 子路를 불러 물었다. “詩에 이르기를 ‘외뿔소가 아니며 범이 아닌데도 저 曠野를 따르게 한단 말인가?’라고 하니, 나의 道가 잘못인가? 내 어찌하여 이 지경이 되었는가?”라고 물으시자, 子路가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어질지 못해서 사람들이 우리를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우리가 지혜롭지 못해서 사람들이 우리를 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意者吾未仁耶 人之不我信也 意者吾未知(智)耶 人之不我行也]”라고 대답하였다.
子貢이 들어와 뵙자, 孔子께서 똑같은 질문을 하니, 子貢은 “선생님의 道는 참으로 커서 천하 사람들이 선생님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조금 도를 낮추십시오.[夫子之道至大也 故天下莫能容夫子 夫子蓋少貶焉]”라고 하였다.
그러나 顔淵은 똑같은 질문을 듣고 “용납되지 못하시는 것이 어찌 나쁘겠습니까? 소인들에게 용납되지 못한 뒤에야 군자를 만나보는 법입니다.[不容何病 不容然後見君子]”라고 하였는데, 얼마 있지 않아 楚王이 보낸 사자가 와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史記 孔子世家》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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