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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3)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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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유자儒者는 더불어 수성守成할 수가 있다는
論歸於正하고 而文更翩飜하니라
의논이 바름에 돌아갔고 문장은 더욱 반복을 잘하였다.
聖人之於天下也 無意於取之也
성인聖人천하天下에 대하여 취하려는 뜻이 없으시다.
譬之江海하면 百谷赴焉하고 譬之麟鳳하면 鳥獸萃焉하니 雖欲辭之 豈可得哉
이것을 과 바다에 비유하면 온갖 골짜기의 물이 저절로 달려오고, 기린과 봉황에 비유하면 새와 짐승이 저절로 모여드는 것과 같으니, 비록 천하를 사양하고자 하나 어찌 될 수 있겠는가?
禹治洪水하야 排萬世之患하야 使溝壑之地 疏爲桑麻하고 魚鼈之民으로 化爲衣冠하며 하고 하야 世濟其德하고 至於湯武하야는 拯塗炭之民하야 而置之於이라
우왕禹王홍수洪水를 다스려서 만세萬世의 우환을 제거하여 물구덩이의 땅을 소통시켜 뽕나무와 삼을 가꾸는 땅으로 만들고, 물고기와 자라를 잡아먹고 사는 백성들로 하여금 변하여 의관을 입는 백성이 되게 하였으며, 사도司徒로 임명하여 오교五敎해지고 후직后稷으로 임명하여 여러 백성들이 곡식을 먹어서 대대로 그 덕을 입었으며, 탕왕湯王무왕武王에 이르러서는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하여 인수仁壽의 경지에 두었다.
天下相率而朝之하니 此三聖人者 蓋推之而不能去하고 逃之而不能免者也
그러므로 천하天下 사람들이 서로 거느리고 와서 조회하였으니, 이 세 성인聖人들은 제왕帝王의 자리를 밀쳐내려 해도 떠나보낼 수가 없고 도피하려 해도 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於是 益修其政하고 明其敎호되 因其民하고 不易其俗하야
이에 더욱 정사를 닦고 가르침을 밝히되 백성들의 마음을 따르고 풍속을 바꾸지 않았다.
以是得之하고 以是守之하야 傳世數十하야 而民不叛하니 豈有他道哉리오
그리하여 이 방법으로 천하를 얻고 이 방법으로 천하를 지켜서 수십 대를 물려주었는데도 백성들이 배반하지 않았으니, 어찌 다른 방법이 있었겠는가?
周室旣衰 諸侯竝起하야 力征爭奪者 天下皆是也
나라가 이미 쇠약해지자 제후諸侯들이 함께 일어나서 무력으로 정벌하고 다투어 빼앗으니, 천하天下가 모두 이러하였다.
德旣無以相過 則智勝而已 智旣無以相傾이면 則力爭而已러니 至秦之亂하야 天下蕩然하야 無復知有仁義矣
이 상대방보다 뛰어나지 못하면 지혜로 이길 뿐이요, 지혜가 상대방을 넘어뜨릴 수 없으면 힘으로 다툴 뿐이었는데, 나라의 혼란에 이르러서는 천하天下인의仁義가 깨끗이 없어져서 다시는 인의仁義가 있음을 아는 이가 없었다.
하니 雖稍輔以仁義 然所用之人 常先於智勇하고 所行之策 常主於權謀
한 고조漢 高祖삼척三尺을 가지고 포의布衣로 군대를 일으켜서 5년 만에 천하天下를 통일하였으니, 비록 다소 인의仁義로써 보조하였으나 등용한 사람들은 항상 지혜와 용맹을 우선하였고, 행한 계책은 항상 권모술수權謀術數를 위주로 하였다.
是以 戰必勝하고 攻必取하니라
이 때문에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고 공격하면 반드시 점령했던 것이다.
天下旣平 思所以享其成功而安於無事하야 以爲子孫無窮之計로되 而武夫謀臣 擧非其人하야 莫與爲之者
한 고조漢 高祖천하天下가 이미 평정되자, 그 성공을 누리고 무사함을 편안히 여겨서 자손의 무궁한 계책을 세울 것을 생각하였으나, 무부武夫모신謀臣들은 모두 마땅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더불어 이것을 할 만한 자들이 없었다.
그러므로 육가陸賈가 비평하여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마상馬上에서 천하를 얻었지만 어찌 마상馬上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고, 숙손통叔孫通이 또한 말하기를 “유자儒者들은 진취하기는 어려우나 더불어 수성守成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한 것이다.
於是 酌古今之宜하고 興禮樂之中하야 取其簡而易知하고 近而易行者하야 以爲朝覲會同冠昏喪祭之法하니 雖足以傳數百年하야 上下相安이나 然終莫若三代聖人 取守一道하야 源深而流長也하니라
이에 육가陸賈숙손통叔孫通은 고금의 마땅함을 참작하고 예악禮樂의 알맞음을 일으켜서 간략하여 알기 쉽고 천근淺近하여 행하기 쉬운 것들을 취해서, 조근朝覲회동會同예법禮法으로 삼았으니, 비록 이것들이 충분히 수백 년을 전해가서 상하上下가 서로 편안하였으나, 끝내 삼대 성인三代 聖人이 취하고 지키기를 한 가지 방법으로 하여 근원이 깊어 흐름이 긴 것만 못하였다.
夫武夫謀臣 譬如藥石하야 可以伐病이나 而不可以養生이요 儒者 譬之五穀하야 可以養生이나 而不可以伐病이라
무부武夫모신謀臣들은 비유하면 약석藥石과 같아서 병을 치료할 수는 있으나 양생養生은 할 수가 없고, 유자儒者들은 비유하면 오곡五穀과 같아서 양생養生은 할 수 있으나 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
宋襄公爭諸侯 不禽二毛하고 不鼓不成列이라가 以敗於泓하야 身夷而國蹙하니 以五穀伐病也
송 양공宋 襄公제후諸侯들과 패권을 다툴 적에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고 대열을 이루지 않은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았다가, 이 때문에 홍수泓水에서 패하여 몸이 상처를 입고 나라가 위축되었으니, 이것은 비유하자면 오곡五穀을 가지고 병을 치료한 것이다.
秦始皇 燔詩書하고 殺豪傑하며 하야 民不得休息하야 傳之二世 宗廟蕪滅하니 以藥石養生也
진 시황제秦 始皇帝는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불태우고 호걸들을 죽였으며,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을 적에 동쪽으로는 임조臨洮에서부터 축성하고, 북쪽으로는 요수遼水에까지 축성하여 백성들이 휴식하지 못해서 제위帝位를 전한 지 2 만에 종묘宗廟가 황폐하여 멸망하였으니, 이것은 약석藥石을 가지고 양생養生을 한 것이다.
善夫
훌륭하다.
가생賈生(가의賈誼)의 이여!
曰 仁義不施하고 而攻守之勢異也라하니
에 이르기를 “나라가 망한 것은 인의仁義를 베풀지 않았고 공격과 수비의 형세가 달라서이다.”라고 하였다.
夫世俗之不察하고 直以攻守爲二道
세속에서는 이것을 살피지 못하고, 다만 공격과 수비를 두 가지 방법이라고 여긴다.
悉論三代以來所以取守之術하야 使知禹湯文武之盛德 亦儒者之極功이요 而陸賈, 叔孫通之流 蓋儒術之粗也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삼대三代 이후 천하를 취하고 지키는 방법을 자세히 논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우왕禹王탕왕湯王, 문왕文王무왕武王성덕盛德은 또한 유자儒者의 지극한 이요, 육가陸賈숙손통叔孫通의 부류는 유술儒術 중의 아주 조악粗惡한 것임을 알게 하노라.
역주
역주1 儒者可與守成 : 本集에는 이 글의 제목이 〈儒者可與守成論〉으로 되어 있으며, 孔校本 文集의 제목 아래에는 ‘以下二首俱程試’라고 하였는데, 二首는 이 편과 아래의 〈物不可以苟合〉을 가리킨다. ‘俱程試’라는 말은 과거시험의 규격을 따랐다는 뜻이므로 이 글이 젊은 시절의 작품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역주2 契爲司徒 而五敎行 : 契은 舜임금의 신하로 성이 子氏이며 商나라의 시조이다. 司徒는 교육을 관장하는 관원이고, 五敎는 父子有親․君臣有義․夫婦有別․長幼有序․朋友有信의 다섯 가지의 당연한 도리로 사람을 가르침을 이른다.
《書經》 〈虞書 舜典〉에 “帝舜이 말씀하였다. ‘契아! 백성들이 친목하지 않고 五品이 순하지 않으므로 너를 司徒로 삼으니, 공경히 다섯 가지 가르침을 펴되 너그러움에 있게 하라.’[帝曰 契 百姓不親 五品不遜 汝作司徒 敬敷五敎 在寬]”라고 보인다. 五品은 앞에서 언급한 五敎의 일을 가리킨다.
역주3 棄爲后稷 而烝民粒 : 棄는 周나라의 시조로 성은 姬이며, 帝嚳의 元妃인 姜嫄이 巨人의 발자국을 밟고 잉태하여 낳았는데, 상서롭지 못하게 여겨 내다버렸으나, 마소와 새들이 모두 보호하므로 다시 주워 기르면서 이름을 棄라고 하였다 한다. 后稷은 농사를 담당한 관직의 이름이고, 烝民은 모든 백성을 이른다.
《書經》 〈虞書 舜典〉에 “帝舜이 말씀하였다. ‘棄야! 백성들이 곤궁하고 굶주리므로 너를 后稷으로 삼으니, 이 백곡을 파종하도록 하라.’[帝曰 棄 黎民阻飢 汝后稷 播時百穀]”라고 보인다.
역주4 仁壽之域 : 사람들이 모두 인자하고 天壽를 누리는 태평성대를 뜻한다. 仁壽는 원래 《論語》 〈雍也〉의 “인자는 장수한다.[仁者壽]”는 구절에서 온 말인데, 이를 원용하여 《漢書》 〈禮樂志〉에는 “온 세상의 백성들을 몰아서 仁壽의 영역으로 인도한다면, 풍속이 어찌 周나라 成王과 康王 때와 같지 않겠으며, 군주의 수명이 어찌 殷나라 高宗과 같지 않겠습니까.[驅一世之民 濟之仁壽之域 則俗何以不若成康 壽何以不若高宗]”라고 하였다. 高宗은 殷王 武丁의 廟號인데, 장수하여 재위 기간이 59년이나 되었다.
역주5 漢高祖以三尺劍……五年而幷天下 : 布衣는 평민 출신임을 이른다. 漢 高祖 劉邦은 沛縣 豊邑 사람으로 자가 季인데, 성격이 활달하고 호방하였다. 평소 큰 포부를 지녀 농사일을 하지 않았는데, 장성하여 泗水의 亭長이 되었다가 秦나라 말기에 혼란한 틈을 타고 일어나 마침내 천하를 차지하였다.
漢나라는 B.C. 206년 高祖가 咸陽으로 진격하여 秦王 子嬰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황제의 玉璽와 符節을 받은 때를 원년으로 삼았는데, 5년에 垓下의 싸움에서 項羽를 물리치고 천하를 차지하였으므로 5년이라고 말한 것이다.
역주6 陸賈譏之曰……豈可以馬上治之乎 : 陸賈(B.C. 240~B.C. 170)는 楚나라 사람으로 漢 高祖 때의 대신이자 외교가․문장가이며, 馬上은 ‘말 위’란 뜻으로 전쟁을 의미한다.
陸賈가 高祖에게 《詩經》과 《書經》의 중요성에 대하여 자주 말하자, 高祖가 화를 내며 “내가 馬上에서 천하를 얻었는데 어찌 詩․書를 일삼겠는가.”라고 하였다. 이에 陸賈는 “폐하께서는 馬上에서 천하를 얻었지만 어찌 馬上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간언하였다. 《史記 陸賈列傳》
역주7 叔孫通亦曰……可與守成 : 叔孫通은 漢나라 초기의 유학자로 薛 땅 사람이다. 秦나라의 博士였으나 陳勝의 난이 일어나자 귀향하였다가 뒤에 高祖에게 귀순하였다.
高祖가 秦나라의 번거로운 의식을 모두 없애고 간소화시키니, 신하들이 조정에서 술 먹고 떠들며 자신의 공로를 자랑하다가 칼을 뽑아 기둥을 치는 등 기강이 매우 문란해졌다. 高祖가 이를 근심하자, 叔孫通이 “儒者들은 진취하기는 어려우나 더불어 守成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며 儀禮의 제정을 건의하였다. 이에 유학자들을 시켜 의례를 제정하고 이를 시행하자, 비로소 조정의 기강이 확립되었다. 《史記 叔孫通列傳》
역주8 東城臨洮 北築遼水 : 臨洮는 지금의 甘肅省 岷縣이며, 遼水는 遼東(지금의 遼寧省 遼陽市 서북쪽)에 있는 灤河로 추정된다.
燕나라 사람 盧生이 海島에 들어갔다가 돌아와서 始皇帝에게 秘書인 《錄圖書》를 바치며 “秦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胡입니다.[亡秦者胡]”라고 하였다. 이에 秦 始皇은 胡가 북쪽의 胡人(匈奴)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고, 즉시 장군 蒙恬으로 하여금 군사 30만을 동원하여 匈奴를 공격하는 한편, 지형에 따라 요새를 만들어 臨洮에서 遼東까지 만여 리의 長城을 쌓았다.
그러나 胡는 匈奴를 가리킨 것이 아니고, 바로 작은 아들인 胡亥를 가리킨 것이었다. 始皇帝는 직간하는 長子 扶蘇를 괘씸하게 여겨 북쪽으로 보내 蒙恬의 군대를 감독하게 하고, 승상 李斯와 환관 趙高와 胡亥를 대동하고 유람을 나갔다가 외지에서 죽었다. 이에 趙高는 李斯를 설득하여 長子 扶蘇를 죽이고 胡亥를 세웠는데, 결국 胡亥가 즉위하여 나라가 혼란에 빠지고 곧 멸망하였다. 《史記 秦始皇本紀》
역주9 賈生之論曰……而攻守之勢異也 : 賈生은 賈誼(B.C. 200~B.C. 168)를 이른다. 西漢 때 洛陽 사람으로 시문에 뛰어나고 제자백가에 정통하였는데, 그가 지은 〈過秦論〉에 “秦나라가 한 필부 陳勝의 난으로 멸망한 것은 바로 仁義를 베풀지 않았고 공격과 수비의 형세가 달라서이다.”라고 설파하였다.

당송팔대가문초 소식(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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