譬之江海하면 百谷赴焉하고 譬之麟鳳하면 鳥獸萃焉하니 雖欲辭之나 豈可得哉아
禹治洪水
하야 排萬世之患
하야 使溝壑之地
로 疏爲桑麻
하고 魚鼈之民
으로 化爲衣冠
하며 하고 하야 世濟其德
하고 至於湯武
하야는 拯塗炭之民
하야 而置之於
이라
故로 天下相率而朝之하니 此三聖人者는 蓋推之而不能去하고 逃之而不能免者也라
於是에 益修其政하고 明其敎호되 因其民하고 不易其俗하야
以是得之하고 以是守之하야 傳世數十하야 而民不叛하니 豈有他道哉리오
周室旣衰에 諸侯竝起하야 力征爭奪者 天下皆是也라
德旣無以相過면 則智勝而已요 智旣無以相傾이면 則力爭而已러니 至秦之亂하야 天下蕩然하야 無復知有仁義矣라
하니 雖稍輔以仁義
나 然所用之人
이 常先於智勇
하고 所行之策
이 常主於權謀
라
天下旣平에 思所以享其成功而安於無事하야 以爲子孫無窮之計로되 而武夫謀臣이 擧非其人하야 莫與爲之者라
於是에 酌古今之宜하고 興禮樂之中하야 取其簡而易知하고 近而易行者하야 以爲朝覲會同冠昏喪祭之法하니 雖足以傳數百年하야 上下相安이나 然終莫若三代聖人이 取守一道하야 源深而流長也하니라
夫武夫謀臣은 譬如藥石하야 可以伐病이나 而不可以養生이요 儒者는 譬之五穀하야 可以養生이나 而不可以伐病이라
宋襄公爭諸侯에 不禽二毛하고 不鼓不成列이라가 以敗於泓하야 身夷而國蹙하니 此는 以五穀伐病也요
秦始皇
은 燔詩書
하고 殺豪傑
하며 하야 民不得休息
하야 傳之二世
에 宗廟蕪滅
하니 此
는 以藥石養生也
라
故로 悉論三代以來所以取守之術하야 使知禹湯文武之盛德이 亦儒者之極功이요 而陸賈, 叔孫通之流는 蓋儒術之粗也하노라
05. 유자儒者는 더불어 수성守成할 수가 있다는 논論
의논이 바름에 돌아갔고 문장은 더욱 반복을 잘하였다.
성인聖人은 천하天下에 대하여 취하려는 뜻이 없으시다.
이것을 강江과 바다에 비유하면 온갖 골짜기의 물이 저절로 달려오고, 기린과 봉황에 비유하면 새와 짐승이 저절로 모여드는 것과 같으니, 비록 천하를 사양하고자 하나 어찌 될 수 있겠는가?
우왕禹王은 홍수洪水를 다스려서 만세萬世의 우환을 제거하여 물구덩이의 땅을 소통시켜 뽕나무와 삼을 가꾸는 땅으로 만들고, 물고기와 자라를 잡아먹고 사는 백성들로 하여금 변하여 의관을 입는 백성이 되게 하였으며, 설契을 사도司徒로 임명하여 오교五敎가 행行해지고 기棄를 후직后稷으로 임명하여 여러 백성들이 곡식을 먹어서 대대로 그 덕을 입었으며, 탕왕湯王과 무왕武王에 이르러서는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하여 인수仁壽의 경지에 두었다.
그러므로 천하天下 사람들이 서로 거느리고 와서 조회하였으니, 이 세 성인聖人들은 제왕帝王의 자리를 밀쳐내려 해도 떠나보낼 수가 없고 도피하려 해도 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더욱 정사를 닦고 가르침을 밝히되 백성들의 마음을 따르고 풍속을 바꾸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 방법으로 천하를 얻고 이 방법으로 천하를 지켜서 수십 대를 물려주었는데도 백성들이 배반하지 않았으니, 어찌 다른 방법이 있었겠는가?
주周나라가 이미 쇠약해지자 제후諸侯들이 함께 일어나서 무력으로 정벌하고 다투어 빼앗으니, 천하天下가 모두 이러하였다.
덕德이 상대방보다 뛰어나지 못하면 지혜로 이길 뿐이요, 지혜가 상대방을 넘어뜨릴 수 없으면 힘으로 다툴 뿐이었는데, 진秦나라의 혼란에 이르러서는 천하天下에 인의仁義가 깨끗이 없어져서 다시는 인의仁義가 있음을 아는 이가 없었다.
한 고조漢 高祖는 삼척三尺의 검劒을 가지고 포의布衣로 군대를 일으켜서 5년 만에 천하天下를 통일하였으니, 비록 다소 인의仁義로써 보조하였으나 등용한 사람들은 항상 지혜와 용맹을 우선하였고, 행한 계책은 항상 권모술수權謀術數를 위주로 하였다.
이 때문에 싸우면 반드시 승리하고 공격하면 반드시 점령했던 것이다.
한 고조漢 高祖는 천하天下가 이미 평정되자, 그 성공을 누리고 무사함을 편안히 여겨서 자손의 무궁한 계책을 세울 것을 생각하였으나, 무부武夫와 모신謀臣들은 모두 마땅한 사람들이 아니어서 더불어 이것을 할 만한 자들이 없었다.
그러므로 육가陸賈가 비평하여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마상馬上에서 천하를 얻었지만 어찌 마상馬上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고, 숙손통叔孫通이 또한 말하기를 “유자儒者들은 진취하기는 어려우나 더불어 수성守成은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한 것이다.
이에 육가陸賈와 숙손통叔孫通은 고금의 마땅함을 참작하고 예악禮樂의 알맞음을 일으켜서 간략하여 알기 쉽고 천근淺近하여 행하기 쉬운 것들을 취해서, 조근朝覲과 회동會同과 관冠․혼昏․상喪․제祭의 예법禮法으로 삼았으니, 비록 이것들이 충분히 수백 년을 전해가서 상하上下가 서로 편안하였으나, 끝내 삼대 성인三代 聖人이 취하고 지키기를 한 가지 방법으로 하여 근원이 깊어 흐름이 긴 것만 못하였다.
무부武夫와 모신謀臣들은 비유하면 약석藥石과 같아서 병을 치료할 수는 있으나 양생養生은 할 수가 없고, 유자儒者들은 비유하면 오곡五穀과 같아서 양생養生은 할 수 있으나 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
송 양공宋 襄公은 제후諸侯들과 패권을 다툴 적에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고 대열을 이루지 않은 상대방을 공격하지 않았다가, 이 때문에 홍수泓水에서 패하여 몸이 상처를 입고 나라가 위축되었으니, 이것은 비유하자면 오곡五穀을 가지고 병을 치료한 것이다.
진 시황제秦 始皇帝는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불태우고 호걸들을 죽였으며,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을 적에 동쪽으로는 임조臨洮에서부터 축성하고, 북쪽으로는 요수遼水에까지 축성하여 백성들이 휴식하지 못해서 제위帝位를 전한 지 2세世 만에 종묘宗廟가 황폐하여 멸망하였으니, 이것은 약석藥石을 가지고 양생養生을 한 것이다.
그 논論에 이르기를 “진秦나라가 망한 것은 인의仁義를 베풀지 않았고 공격과 수비의 형세가 달라서이다.”라고 하였다.
세속에서는 이것을 살피지 못하고, 다만 공격과 수비를 두 가지 방법이라고 여긴다.
그러므로 나는 삼대三代 이후 천하를 취하고 지키는 방법을 자세히 논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우왕禹王과 탕왕湯王,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성덕盛德은 또한 유자儒者의 지극한 공功이요, 육가陸賈와 숙손통叔孫通의 부류는 유술儒術 중의 아주 조악粗惡한 것임을 알게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