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唐宋八大家文抄 蘇軾(2)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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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7. 大臣論 下
07. 대신大臣에 대한 논 하論 下
與前是一篇이라
앞 편과 한 편이다.
天下之權 在於小人이어늘 君子之欲擊之也인댄 不亡其身이면 則亡其君이라
천하의 권세가 소인小人에게 있는데 군자君子소인小人을 공격하고자 하면, 자기 몸을 망치지 않으면 군주를 망하게 한다.
然則是小人者 終不可去乎
그렇다면 이 소인小人들을 끝내 제거할 수 없단 말인가?
聞之호니 曰 迫人者 其智淺하고 迫於人者 其智深이라하니 非才有不同이요 所居之勢然也니라
내가 들으니 “남을 핍박하는 자는 지혜가 얕아지고, 남에게 핍박받는 자는 지혜가 깊어진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재주에 똑같지 않음이 있는 것이 아니요, 처한 바의 형세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古之爲兵者 하니 誠恐其知死而致力이면 則雖有衆이나 無所用之
옛날 전쟁을 잘하는 자들은 포위된 군대는 막지 않고 궁지에 몰린 적은 쫓지 않았으니, 이는 진실로 그들이 죽게 되었음을 알고 사력을 다해 싸우면 비록 무리가 많더라도 쓸 곳이 없게 될까 두려워해서였다.
그러므로 병법兵法에 말하기를 “같은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면 나라와 나라 사람들도 서로 구원하기를 왼손과 오른손과 같이 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小人之心 自知其負天下之怨하야 而君子之莫吾赦也 則將日夜爲計하야 以備一旦卒然不可測之患이어늘 今君子又從而疾惡之
소인小人의 마음에 자신들이 천하의 원망을 짊어지고 있어서 군자君子들이 자신들을 용서하지 않는 줄을 알게 되면 장차 밤낮으로 계책을 세워 하루아침에 별안간 닥쳐오는 측량할 수 없는 환란을 대비할 터인데, 지금 군자君子들이 또 따라서 소인小人을 미워한다.
是以 其謀不得不深하고 其交不得不合이니 交合而謀深이면 則其致毒也 忿戾而不可解니라
이 때문에 소인小人들의 계책이 깊지 않을 수가 없고 소인小人들의 사귐이 단합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니, 그 사귐이 단합되고 그 계책이 깊어지면 해독을 끼치는 것이 사나워서 풀 수가 없는 것이다.
凡天下之患 起於小人하고 而成於君子之速之也니라
그러므로 무릇 천하의 환란은 소인小人에게서 시작되고 군자君子가 그것을 부르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小人在內하고 君子在外하며 君子爲客하고 小人爲主어늘 主未發而客先焉이면 則小人之詞直이요 而君子之勢 近於不順하니 直則可以欺衆이요 而不順則難以令其下
소인小人이 안에 있고 군자君子가 밖에 있으며 군자君子가 객이 되고 소인小人이 주인이 되었는데, 주인이 발동하기 전에 객이 먼저 발동하면 소인小人의 말이 곧고 군자君子의 형세가 불순不順에 가까워지니, 말이 곧으면 무리를 속일 수 있고 형세가 불순不順하면 아랫사람을 부리기가 어렵다.
昔之擧事者 常以中道而衆散하야 以至於敗하니 則其理豈不甚明哉리오
그러므로 옛날 거사擧事하는 자들이 항상 중도에 무리가 흩어져서 실패에 이르렀으니, 그렇다면 그 이치가 어찌 매우 분명하지 않겠는가?
若夫智者則不然하야 內以自固其君子之交하야 而厚集其勢하고 外以陽浮而不逆於小人之意하야 以待其間이라
지혜로운 자의 경우는 그렇지 않아서, 안으로는 군자君子들의 사귐을 스스로 견고하게 하여 그 세력을 많이 모으고, 밖으로는 소인小人들을 겉으로 치켜세워서 저들의 뜻을 거스르지 아니하여 틈이 생기기를 기다린다.
寬之하야 使不吾疾하고狃之하야 使不吾慮하며 啖之以利하야 以昏其智하고 順適其意하야 以殺其怒하나니
저들을 너그러이 대해서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하고 저들을 친하게 대하여 자신을 염려하지 않게 하며, 이익을 주어서 지혜를 어둡게 하고 저들의 뜻에 순순히 맞추어서 노여움을 줄인다.
然後 待其發而乘其隙하고推其墜而挽其絶이라
그런 뒤에 저들이 발동하기를 기다려서 틈을 타고서 떨어지는 것을 밀어버리고 끊어진 끈을 당겨버린다.
其用力也約而無後患하며 莫爲之先이라 君不怒而勢不偪하니 如此者 功成而天下安之하나니라
그러므로 힘쓰는 것이 간략하고 후환이 없으며, 자신이 먼저 시작함이 없기 때문에 임금이 노여워하지 않아서 형세가 핍박하지 않는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공이 이루어지고 천하가 편안해지는 것이다.
今夫小人 急之則合하고 寬之則散하니 從古以然也
지금 소인小人들은 저들을 급하게 몰아치면 단합하고 너그럽게 대하면 흩어지니, 이는 예로부터 그러하였다.
見利 不能不爭하고 見患이면 不能不避하며 無信하야 不能不相詐하고 無禮하야 不能不相瀆이라
소인小人들은 이익을 보면 다투지 않을 수가 없고 환란을 보면 피하지 않을 수가 없으며, 신의가 없어서 서로 속이지 않을 수가 없고 가 없어서 서로 모독하지 않을 수가 없다.
是故 其交易間하고 其黨易破也어늘
이 때문에 그 교유가 틈이 벌어지기 쉽고 그 이 깨지기가 쉬운 것이다.
而君子不務寬之以待其變하고 而急之以合其交하니 亦已過矣
그런데 군자君子들이 이들을 너그럽게 대하면서 변란이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에 힘쓰지 않고 이들을 급박하게 몰아서 이들의 교유를 단합시키니, 또한 너무 잘못된 것이다.
君子小人 雜居而未決 爲君子之計者 莫若深交而無爲 苟不能深交而無爲 則小人 倒持其柄하야 而乘吾隙하나니라
군자君子소인小人이 뒤섞여 거처하여 아직 결판이 나지 않았을 적에는 군자君子의 계책은 깊이 교유하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 가장 좋으니, 만일 이렇게 하지 못하면 소인小人이 거꾸로 칼자루를 잡아 자신의 틈을 타게 된다.
옛날 나라 고조高祖가 죽을 적에 천하를 진평陳平주발周勃에게 부탁하였는데, 고후高后임조臨朝하게 되자 제멋대로 여러 여씨呂氏들을 왕으로 봉하고 유씨劉氏들을 폐출시켰다.
진평陳平이 날마다 술을 마시면서 한마디 말도 못하고 있다가, 육가陸賈의 계책을 따라 천금千金을 써서 강후 주발絳侯 周勃과 서로 사이좋게 지냄으로써 끝내 여러 여씨呂氏들을 죽이고 유씨劉氏를 안정시켰다.
使此二人者而不相能이면 則是將相 相攻之不暇리니 而何暇及於劉呂之存亡哉리오
만약 이 두 사람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다면 장수와 정승이 서로 공격하기에 겨를이 없었을 것이니, 어느 겨를에 유씨劉氏여씨呂氏존망存亡에 힘이 미쳤겠는가?
其說曰 將相和調하면 則士豫附하고 士豫附하면 則天下雖有變이나 而權不分이라하니 嗚呼
그러므로 그(육가陸賈)의 말에 이르기를 “장수와 정승이 화합하면 선비들이 기꺼이 따르고, 선비들이 기꺼이 따르면 천하에 비록 변란이 있더라도 권력이 분산되지 않는다.”라고 하였으니, 아!
知此 其足以爲大臣矣夫인저
이것을 안다면 충분히 대신大臣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역주
역주1 圍師勿遏 窮寇勿迫 : 《孫子》 〈軍爭〉에 “돌아가는 군대는 막지 말고, 포위된 군대는 반드시 도망갈 통로를 열어주고, 궁지에 몰린 적은 압박하지 말아야 하니, 이는 用兵하는 방법이다.[歸師勿遏 圍師必闕 窮寇勿迫 此用兵之法也]”라고 하였다.
역주2 同舟而遇風……如左右手 : 《孫子》 〈九地〉에 “吳나라 사람은 越나라 사람과 사이가 매우 나쁘다. 그러나 한 배를 타고 가다가 풍랑을 만나게 되면 서로 구원해주기를, 왼손이 오른손을 구원하듯이 한다.[夫吳人與越人 相惡也 當其同舟而遇風 其相救也 如左右手]”라고 하였다. ‘吳’는 底本과 本集에는 모두 ‘胡’로 되어 있으나 郎曄本과 《孫子》를 근거하여 ‘吳’로 고쳤다. 옛글에 북쪽에 있는 胡와 남쪽에 있는 越을 상대하여 많이 인용하나, 胡와 越은 春秋時代 吳․越처럼 그렇게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다.
역주3 漢高之亡 以天下屬平勃 : 漢高는 漢나라를 건국한 高祖 劉邦이며, 平勃은 陳平과 周勃을 가리킨다. 漢나라 高祖가 병이 위독하니, 呂后가 묻기를 “陛下께서 백 세를 사신 뒤에 蕭相國(蕭何)이 죽으면 누구로 정승을 대신하여야 합니까?” 하고 묻자, 高帝는 “曹參이 좋을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다음을 묻자, “王陵이 좋다. 그러나 다소 우직하니, 陳平이 도와야 한다. 陳平은 지혜는 충분하나 그에게 홀로 맡기기는 어렵다. 周勃은 사람이 厚重하고 문화가 부족하나 우리 劉氏를 편안하게 할 자는 반드시 周勃이니, 그를 太尉로 삼아 軍權을 맡게 하여야 한다.”라고 하였다. 《漢書 高帝記》 呂后는 呂雉로 高帝의 皇后인데, 뒤에 高皇后로 추존되어 高后로 일컬어지게 되었다.
역주4 高后臨朝……廢黜劉氏 : 高后는 呂后(呂太后)를 가리키며, 臨朝는 조정에 臨御하여 垂簾聽政함을 이른다. 惠帝가 죽고 太子가 섰으나 나이가 어리자 呂后는 垂簾聽政하면서 친정 조카인 呂台, 呂産, 呂祿과 呂台의 아들 呂通을 王으로 봉했으며, 또 詔命을 내려 少帝를 폐위하고 다시 常山王을 세웠다. 이외에도 趙王 如意 등 高祖의 자손들을 많이 살해하였다.
역주5 平日縱酒……定劉氏 : 平은 陳平이며, 縱酒는 술에 빠져 있음을 이른다. 呂太后가 垂簾聽政하며 정권을 독단하자, 左丞相 陳平은 어찌할 방도가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화가 자신에게 미칠까 우려하여 날마다 술만 마시고 있었다. 陸賈가 陳平을 찾아가 “당신이 현재 고민하고 있는 것은 여러 呂氏와 어린 군주에 대한 걱정일 것입니다.”라고 곧바로 말하자, 陳平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하고 대책을 물었다. 陸賈는 “천하가 편안하면 정승에게 유념하고 천하가 위태로우면 장수에게 유념하여야 하니, 장수와 정승이 서로 화합하면 선비들이 기꺼이 따르고, 선비들이 기꺼이 따르면 천하에 비록 변란이 있더라도 권력이 분산되지 않습니다. 정승인 당신(陳平)과 太尉 周勃 두 분이 협력하여 권력이 분산되지 않는다면 社稷의 계책이 두 분 손아귀에 들어가게 됩니다. 일이 이러한데 당신은 어찌하여 太尉와 서로 좋게 지내지 않으십니까?”라고 말하였다. 陳平은 그의 계책을 따라 太尉 周勃에게 많은 선물을 보내고 친하게 지냈다. 뒤에 呂后가 죽자 둘이 힘을 합하여 呂氏들을 모두 주살하고 孝文帝를 迎立하였다. 《漢書 陸賈傳》

당송팔대가문초 소식(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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